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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성적 정체성 탐구

  • 김부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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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2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로마서 9장 30절~33절

설교제목 : 영성적 정체성 탐구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의를 추구하지 않은 이방 사람들이 의를 얻었습니다. 그것은 믿음에서 난 의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의의 율법을 추구하였지만, 그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믿음으로가 아니라, 행위로 의에 이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보아라, 내가 시온에,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를 둔다. 그러나 그를 믿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로마 9:30~33)】


  <책을 읽는 방법, 두 가지>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책을 읽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책에 적혀 있는 내용을 그대로 신뢰하면서 따라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저자의 의도를 염두에 두면서 책에 있는 내용을 참고해 나가는 것입니다. 주로 어린 시절에는 첫 번째 방법으로 책을 읽습니다만, 어른이 되면 두 번째 방법으로 책을 읽지요. 만약에 어른이 되어서도 첫 번째 방법으로 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보일 것입니다. 나이만 어른이고, 그 내면적 인격은 어른이 아닐 것입니다.


  <성경 이야기>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결론은 어른처럼 읽어야 합니다. 어른으로서 읽어야 합니다. 더 이상 아이처럼 읽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의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의를 추구하지 않은 이방 사람들이 의를 얻었습니다. 그것은 믿음에서 난 의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의의 율법을 추구하였지만, 그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믿음으로가 아니라, 행위로 의에 이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보아라, 내가 시온에,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를 둔다. 그러나 그를 믿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로마 9:30~33)】


   바울은 ‘믿음’과 ‘행위’를 구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방의 사람들은 ‘믿음’으로 신앙생활하기 때문에 의(義)의 율법에 도달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행위’로서 신앙생활하기 때문에 걸림돌에 걸려 넘어졌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바울은 ‘행위’에 의한 신앙생활보다 ‘믿음’에 의한 신앙생활을 더 높은 가치로 평가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어린아이라면 바울의 글들을 읽으면서 ‘자책’하고 ‘감탄’해야 합니다. “바울이 높은 경지의 메시지를 주셨는데, 우리가 거기에 다다르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구나”라고 우리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바울의 메시지들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독서는 어린시절에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 성숙한 사람이라면, 혹은 더 깊은 성경 읽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어른으로서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성경의 말씀을 읽고 참고하면서, 성경의 말씀과, - 즉 성경의 기록자와 대화하면서 더 깊은 차원의 성경 읽기를 시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 해석>


  바울은 오늘 성경에서 ‘행위’보다 ‘믿음’을 더 높은 가치로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나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절대적 진리의 선언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에서 ‘행위와 믿음’은 상호보완적 개념이지, 상호 배타적 개념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바, 신앙은 믿음으로서 시작해서 행위로서 완성되는 것이며, 혹은 행위로서 시작해서 믿음으로서 도약하는 것이며, 혹은 일상적 삶 속에서는 행위로서 유지되나, 비상(非常)적 삶 속에서는 믿음으로서 견뎌낼 수 있는 … 뭐 그런 차원이 믿음과 행위의 상관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더 깊은 이야기>


  우리가 오늘 성경에서 주목해야할 더 깊은 이야기는 사실 다른 데 있습니다. 바울이 오늘 성경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더 본질적인 메시지는, 이방인들에 대한 영성적 정체성 탐구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본류(本流)와 아류(亞流)에 대한 논쟁이 있는 것은, 결국 자기 정체성에 대한 탐구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즉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탐구입니다.


  오늘날의 터키와 이탈리아 지방에서 살고 있었던 과거 초대교회 기독교인들, 그들은 항상 ‘이방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습니다. 즉 원류의 하느님 백성이라고 평가받는 이스라엘 본토 사람들과 비교되면서, 그들은 그 원류(原流)보다 한참 품질이 떨어지는 아류(亞流)로서 평가받는 치욕적 콤플렉스를 품고 살았던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 아류적 인간사회를 향해서 바울이 제시한 혁명적 반전(反轉)의 영성적 통찰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본토인들은 원류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행위’로서 신앙생활하면서 율법의 의(義)에 도달하지 못한 채 넘어진 자들이며, 오히려 이방에 살고 있는 우리가 ‘믿음’으로서 신앙생활하면서 비로소 율법의 의에 도달한 하느님의 진정한 백성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바울의 벗이고자 하는 우리가 2000년대를 살면서 주목해야할 초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부당하게 낮게 평가당하고 있는 것들(사람들과 상황들)에 대해서 적합한 영성적 정체성을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영성적 정체성 탐구’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축도>

하늘의 하느님이여. 땅의 예수여. 바람의 성령이여!

이제는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이 땅에서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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