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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사랑

  •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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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 (요한복음 3장 16절)


1. 풍성한 사랑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때 헬라어를 통해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해서 결국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바다를 먹물로 삼고 하늘을 두루마리로 삼아도 하나님의 사랑을 다 기록할 수도 없고 잘 표현할 수도 없다. 그 사랑으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기에 내가 받은 구원의 가치는 무한하다. 십자가는 내 생명이 예수님의 생명만큼 가치 있다는 실물적인 증거다. 사랑의 하나님께 돌아서기만 하면 어떤 잘못이나 아무리 끔찍한 죄도 용서받을 수 있다.

 어느 날 한 처녀가 목회자를 찾아와 상담했다. 좋은 남자를 만나 청혼을 받았는데 자신은 과거가 있어서 양심이 찔려 도저히 결혼을 못하겠고 혼자 평생 죄 짐을 지고 사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겠느냐는 얘기였다. 그때 목회자가 말했다. “과거를 회개했으면 하나님은 다 잊어버리셨으니까 감사함으로 결혼해 잘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말에 용기를 얻고 결혼해서 잘 살았다.

 본문 말씀은 생각할수록 신비하고 감격적인 말씀이다.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이 과거를 불문하고 그토록 나를 사랑하시는가? 내게 하나님의 사랑 받을만한 모습이 있는가? 사람은 하나님 앞에 배반자로서 사랑스럽지 않게 행동할 때도 많다. 마틴 루터는 말했다. “내가 만약 하나님이라면 사람들의 죄악을 보며 금방 진노의 불을 내렸을 것이다.” 그래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한다고 하신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2. 끝없는 사랑

 나의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나는 주님 안에서 깨끗해졌다는 것이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말씀에 내포된 의미다. 자의식을 괴롭히는 가장 큰 죄도 진심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은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한번 구원하신 사람은 포기하지 않는다. 사람이 양 같아서 제 갈 길로 가도 하나님은 끝까지 붙들어주신다.

 한 목장에 성난 이리떼가 밤에 나타나 양들을 물어뜯고 죽였다. 살아남은 양은 놀라서 산과 들로 도망쳤다. 날이 밝아 목자가 양을 찾아 나섰는데 놀란 양들은 주인도 무서워하고 가랑잎 소리에도 놀라 도망갔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해 주인 아들이 양 가죽을 뒤집어쓰고 양처럼 기고 양 소리를 내며 양을 찾아다녔다. 손바닥은 물집이 생겨 터졌고 허리는 끊어지는 고통으로 신음했고 무릎은 찢겨져 피가 흘러내렸다. 그렇게 양을 다 찾아 우리에 넣었을 때 그 아들은 피투성이가 된 채 기진맥진해 죽었다.

 그 아들은 바보 같이 보일 정도도 양들을 사랑했다. 그 사랑보다 훨씬 큰 사랑으로 하나님은 나를 찾으시려고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셨다. 그 사랑으로 지금도 나를 붙잡아주신다. 그 사랑을 누가 얻어 누리는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도 내 것이 된다. 그때 내 신분과 운명과 미래도 달라지고 축복 분량도 달라진다.

3. 베푸는 사랑

 본문에서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말씀은 구체적으로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을 가리킨다. 기독교는 문제를 해결 받고 축복을 요구하는 차원의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받는 종교이기 전에 주는 종교다. 간증도 “기적적으로 받았다.”는 간증보다 “기쁘게 주었다.”는 간증이 더 많아야 한다. 물질보다 영혼을 사랑하고 받는 삶보다 주는 삶을 사랑할 때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 하나님은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그분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주셨다.

 주님을 닮은 삶이란 주기를 힘쓰는 삶이다. 드리고 나누고 베풀면 가난뱅이가 될 것 같지만 하나님은 신기하게 드리고 나누고 베풀 수 있는 능력을 넘치게 주신다. 나눔은 결코 손해가 아니다. 살면서 수많은 기쁜 일 중에 주는 일과 내는 일만큼 기쁨을 주는 일은 없다. 서로 힘써 대접하라. 대접하는 기쁨을 빼앗긴 삶은 불행한 삶이다. 주는 기쁨과 내는 기쁨을 위해 자기 안전을 걸면서 늘 하나님 나라와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쁘게 주라.

 사람은 도저히 못하는 일로서 하나님은 죄인을 살리려고 독생자를 주셨다. 하나님은 하늘이 줄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주며 나를 사랑하셨고 지금도 나를 사랑하신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주는 것은 키스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의 표현이다. 사랑이 없이도 줄 수는 있지만 주는 것이 없이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분의 독생자를 주셨다면 나도 나의 소중한 것을 누군가를 위해 줄 줄 알아야 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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