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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화상

  •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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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중략)…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한복음 3장 1~18절)


 ‘자화상’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사람들은 예외 없이 외적인 자화상과 내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적인 자화상은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이고, 내적인 자화상은 자기 속사람을 상상 속에서 살펴본 형상입니다. 어떤 자화상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데, 특히 내적인 자화상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국무총리였던 윈스턴 처칠 경은“태도는 사소한 것이지만, 그것이 만드는 차이는 엄청나다. 즉 어떤 마음을 갖느냐가 어떤 일을 하느냐 보다 더 큰 가치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삶의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의 태도가 매우 중요한데, 이러한 삶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자화상인 것입니다.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진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밝고 적극적이고 힘차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1. 자화상과 삶의 자세


삶의 자화상과 자세를 우리가 살펴보면, 삶의 행동과 자화상은 외적인 자화상이 있습니다. 자기가 덮어쓰고 사는 물질적 자화상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깊은 인생의 모습인 것입니다. 잠언서 23장 7절에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이라고 했습니다. 내적인 자화상은, 외적인 자화상은 감각적인 존재를 지배하지만, 내적인 자화상은 삶을 지배합니다. 눈에 안 보이며, 생각에 떠오르는 자기의 내적인 모습이 자기의 삶의 배후의 조종자인 것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출애굽기 3장 10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함께 일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3장 11절에‘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대답합니다. 모세는 왕궁에서 쫓겨나 양을 치며 살아가는 자기 모습이 보잘것없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을‘할 수 없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위축되어 소극적인 자세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아무리 멋진 계획을 갖고 계셔도, “나는 못 해요, 나는 안 돼요, 나는 할 수 없어요.” 이런 말을 하면서 실패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2, 4차원의 영적 세계


4차원, 즉 안 보이는 세계는 예수님께서 설명해주시는 내적 세계입니다. 요한복음3장6절에‘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육의 세계가 영의 세계를 다스리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4차원적인 영입니다. 성령 4차원이 행동하는 것을 3차원적 물질세계는 알 수도 없고, 다스리지도 못 합니다. 요한복음3장3절과 4절에‘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14절에도‘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를 자세히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사사로 부르셨을 때, 그는 자기에게 대해서 사사기6장15절에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야훼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야훼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사사기6장12절에 말씀합니다. 기드온은 자기 자신을 작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큰 용사로 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누구든지 큰 용사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자기 자신을 보잘것없는 자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 된 사람을 보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의 죄 때문입니까? 그의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맹인이 자신의 죄나 부모의 죄 때문에 앞을 보지 못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제자들의 대답과 전혀 달랐습니다. 요한복음9장3절에‘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의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보셨던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하던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앞을 보게 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의 미래를 보셨던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모습이 부족하고 보잘것없다고 생각하고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 나아가면, 주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으로 바꿔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의 미래를 바꾸어주실 것을 꿈 꿔야 됩니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셀프토크(Self-Talk)의 중요함을 말하고 있는데, ‘셀프토크’란 것은 자기가 자기를 보고 중얼거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정신건강과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말보다는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합니다. 남에게는 하지 않는 온갖 부정적인 말을 자기 자신에게는 쉽게 내뱉는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부정적인 말들은 마음과 삶을 황폐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과 삶을 건강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셀프토크(Self-Talk)는 성경말씀을 자기 자신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향해, “너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라고 말하면 그것이 자기에게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셨으니, 우리는 새로운 자화상을 입술로 고백하고 살아야 됩니다.


3.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피조물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이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여러분은 모두다 십자가의 자화상을 바라보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옛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를 모심으로 옛 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아가서는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과 사랑을 한 노래를 적은 것입니다. 교회를 여인으로 생각하고 솔로몬 남자는 예수님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외모가 그리 아름답지 못하였습니다. 자기 모습이 ‘게달의 장막같이 검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피부색이 검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그녀를 향해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라고 말하면서 모든 여인 중에서 가장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향해 “나의 사랑, 나의 이쁜이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습이 어떠하든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알면, 어떤 어려움도 능히 이겨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베드로가 말합니다.‘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베드로전서 2장 9절)’ 시편 100편 3절에 ‘야훼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마태복음 6장 25절로 26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바라봄의 법칙을 따라서 내가 존경하고 그대로 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항상 그 사람을 바라보고 그분의 인격을 본받으면 그 분의 자화상을 본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12장 26절에‘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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