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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부모에 보답하는 효행 (신 32:5-6, 딤전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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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 보답하는 효행 (신 32:5-6, 딤전 5:1-4)

효는 충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가치관입니다. 효(孝)의 정의는 부모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모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고래로 효란 가족제도와 사회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효는 도덕의 기초이며, 예의범절의 기본입니다. 효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자식이 부모를 대하는 이상적 태도를 말합니다. 부모와 자식의 이상적 관계를 의미합니다. 
  
효는 유교만의 가르침은 아닙니다. 모든 종교, 모든 경전이 효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특히 성경은 효를 가장 강조합니다. 효는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열 가지 중요한 명령 가운데 하나를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명령으로 주셨습니다. 효행은 하나님의 명령의 10분의 1입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효를 다하면 하나님의 명령의 10분의 1은 지킨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효행설화는 삼국사기나 효경 등 고전에서부터 전해주는 효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예부터 인간의 삶에서는 효행을 인륜의 귀감으로 삼았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효행설화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만큼 효행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는 증거입니다. 
  
‘향덕효행’이란 것이 남아 있습니다. 향덕이란 사람은 지금의 공주인 웅천주 사람입니다. 천보(天寶) 14년 을미(乙未) 흉년에 백성들이 굶주림 속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 역질(전염병)까지 돌아서 부모님이 굶주리고 병이 들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종기가 나서 거의 죽게 되자 향덕은 밤낮으로 정성을 다하여 섬겼지만 어머니 봉양조차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어머니께 드리고, 어머니의 몸에 난 종기를 자신의 입으로 빨아내어 편안하게 해 드렸습니다. 왕이 이 사실을 전해 듣고 벼와 집과 밭을 내려주고 석비를 세워 이 사실 적어 후대에 알리도록 하였습니다. 참 지극한 효성입니다. 
  
우리나라 효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천했습니다. 효의 변천사를 보면 고대농경 사회에서 효란 조상숭배와 제례를 뜻했습니다. 삼국시대에는 효경은 필수과목이었고, 충의 개념까지도 효에 포함시켜 효사상이 확대되었습니다. 

고려의 태조 왕건은 나라를 덕치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효도를 정치의 기본이념으로 삼았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받아들여 효를 실천하는 유교국가의 체제를 강화하였고, 효자, 효부, 효녀를 표창하였으며, 효도사상을 토착화하였습니다. 개화기에는 효와 충과 신을 가치의 덕목으로 삼았으며 효가 백행지본이란 사상을 준수하였습니다. 기독교가 전래된 이후에는 효에 대한 우리의 전통과 성경을 조화시켜 효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자의 효(孝)자를 보면 아들(子)이 늙은(老) 아버지를 업고 있는 모양입니다. 성경은 아버지를 업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효를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은 효를 아주 강조합니다. 십계명의 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십계명 외에도 성경에는 부모공경에 대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20:12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합니다. 다른 계명에는 없는 약속이 5계명에는 있습니다. 십계명 가운데 약속이 있는 유일한 계명이 5계명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여 그 약속을 누리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부모공경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듣고 부모를 공경하여 하나님의 귀한 약속을 누리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부모가 아닌 어르신들에게 부모처럼 대하라. 

디모데전서 5:1에는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라고 합니다. 5:2에는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하고 합니다. 이 말은 모든 어르신들이 부모라는 말입니다. 우리 주위에 자기 부모는 공경하고 다른 어르신들을 학대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다른 어르신도 공경할 것이고, 자기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고 학대하는 사람은 다른 어르신도 공경하지 않을 것입니다.  
  
“꾸짖지 말고”라는 말은 ‘에피플렉세스’라는 헬라어인데 이 말은 본래 ‘주먹으로 치다’, ‘말로써 때리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격적 심한 질책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아들 같은 디모데에게 보낼 때에 디모데는 연소하였습니다. 그러나 목회자로서 자신보다 연장자인 교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고쳐주어야 할 경우가 많은데 그 때 온유한 태도로 권할 것을 바울은 충고하고 있습니다. 
  
“권하되”라는 말은 ‘파라칼레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곁으로 부르다’, ‘위로하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을 곁에 오게 하여 충고하고 위로하고 따뜻한 권면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모든 어르신들에게 심하게 질책하지 말고 부드럽게 위로하고 권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사회에 문제가 되었던 막말 판사의 경우를 보세요. 자기 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 막말을 마구 쏟았습니다. “버릇없네”, “늙으면 죽어야 한다”, “딸이 구치소에서 죽는 꼴 보고 싶냐”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요, 귀가 안 좋네” 등의 어르신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 것입니다. 극소수의 젊은 판사가 인격이나 윤리를 배우지 못하고 법전과 공부만 열심히 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초래되어 판사들 전체가 말을 듣게 된 것입니다. 
  
최근의 남양유업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동안 잘못된 관행도 많이 있었지만 이번 사건의 불을 지른 것은 어느 영업 팀장이 아버지뻘 되는 대리점 사장에게 욕설을 한 것 때문입니다. 시민들은 남양유업 불매운동에 나서고, 경제민주화를 다시 논하고, 남양유업은 이틀 새 주가총액이 857억 원이나 증발했습니다. 이번 사태로 ‘갑의 횡포’니 ‘절대 갑의 횡포와 을들의 반란’이란 생소한 말도 들어봅니다. 젊은 영업 팀장이 대리점 사장을 자신의 부모처럼 대했으면 애당초 이런 사단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하듯”, “어머니에게 하듯”이란 말은 요즘에는 어울리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말도 요즘에는 절대적 신뢰성을 상실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어머니에게 하지 못할 일을 하는 자녀가 너무 많아졌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폭행하고 막말하는 자녀가 한둘이 아닙니다. 존속살해, 존속폭행이 통계적으로 매년 늘어가고 있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부모를 폭행한 사건이 500여건이나 되고, 존속살해 사건이 68건이었습니다. 
  
아버지를 폭행한 이유도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설거지를 못한다고 폭행하였습니다. 여자 친구를 쫓아내고 잔소리 한다고 아버지를 살해하였습니다. “부모에게 하듯”이란 말이 안 맞는 시대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어른이나 윗사람 혹은 기성세대를 무시하는 경향이 만연합니다. 어른이 뭐라고 하면 “아버지 때하고는 달라”, “엄마는 우릴 몰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부모가 자녀를 잘 모를까요? 아니면 자녀가 부모를 잘 모를까요? 자녀가 부모를 아는 것보다 부모가 자녀를 아는 것 몇이 백배는 더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빠 엄마가 모른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7살 어린 시절에 나는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다.’ 17살 때 나는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많이 알고 계시지 않다.’ 21살 때 나는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는 나와 비교하면 아무 것도 모른다.’ 35살 때 나는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는 생각보다는 많이 알고 계셨다.’ 50살 된 지금 나는 생각한다. ‘우리 아버지는 항상 옳으셨다’.”멋있는 얘기지요? 그렇습니다. 부모님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다 알고 계시며, 자녀에게는 항상 옳으십니다. 
  
욥기 12:·12에는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고 합니다. 늙은 부모에게 지혜와 명철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세요. 내 부모가 아니더라도 어르신들에게서 인생의 경륜을 배우세요. 어르신을 가까이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을 풍요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르신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마음에 담아두는 것이 우리 삶을 유익되게 한다는 사실을 믿으세요. 
  
조선시대 그림 가운데 ‘화성능행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낙남헌양로연도’라고도 하는데 정조대왕이 1795년 2월 13일, 화성에 행차하여 화성일대 노인 384명에게 잔치를 베풀고 선물을 주는 그림입니다. 왕은 노인들에게 노란 끈을 묶은 지팡이와 비단 1단씩을 주었습니다.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홍씨와 세상에서 자신의 수를 다 누리지 못한 아버지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며 노인들을 자신의 부모처럼 대접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옛 임금들에게도 이런 효행이 중요했고 실제로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디모데전서 5:17에는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고 합니다. “장로”라고 하는 단어는 “늙은이”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세상의 모든 어르신을 자신의 부모님처럼 공경하세요. 교회에서 모든 어르신들을 부모님 대하듯이 하면 하늘의 복이 있을 것입니다. 

  
둘째, 부모에게는 효행으로 보답하라. 

디모데전서 5:4에는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꼭 과부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겠습니까? 부모님께 그렇게 하되 특히 홀로 되신 어머니께 효를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라는 말은 집안에서 효를 행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우선되는 일이고,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효행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입니다. 보답한다는 것은 되돌려 줄 것을 주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님께 되돌려 드려야 할 것을 되돌려 드리라는 말입니다. 자녀가 아무리 효행을 해도 부모가 자녀에 대한 일에 보답이 되겠습니까? 부모님의 자녀에 대한 사랑은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독일의 현대 영성가 안셀름 그륀은 우리 삶의 시작과 마지막에 어머니가 계시다고 표현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과 십자가로 끝나는 마지막 부분에 어머니 마리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그는 어머니는 우리가 이 지상으로 들어오게 하는 문이요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우리 삶의 전부일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는 누구나 자식이 아프면 몇날며칠 잠을 못자고 애타합니다. 병들고 아픈 자녀를 위하여 몇 년씩 병수발을 합니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님이 편찮으시면 몇 날이 못 되어 싫증을 내고 이내 지칩니다. 그래서 옛말에도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 속담에는 “한 부모가 열 자녀를 기를 수 있어도, 열 자녀가 한 부모를 모시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새겨들어야 할 교훈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를 하라는 말씀은 아주 강한 명령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장수의 비결입니다. 성경이 부모공경을 얼마나 강조합니까? 구약에 보시면 한 결 같이 강한 어조로 부모공경을 권합니다. 출애굽기 21:15에는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21:17에는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합니다. 

레위기 20:9에는 “만일 누구든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였은즉 그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합니다. 

반드시 죽이라고 하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죽이는 것을 좋아하신다는 말이 아니라 절대로 하지 말라고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러시아에서는 일반적으로 결혼을 할 때에 남자가 처가살이로 시작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장모와 사위의 갈등이 심하다고 합니다. 자동차에도 ‘장모자리’라는 게 있습니다. 운전석 바로 옆자리가 사고가 나면 가장 위험하다고 해서 그 자리를 그렇게 부릅니다. 

러시아에 이런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남자가 길에서 여자를 때리고 있었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말렸습니다. 그 때 때리던 남자는 “내 장모입니다”라고 했더니 말리던 사람이 “하던 일 계속하세요”라고 하면서 가버리더라는 것입니다. 처가살이하면 사위가 장모님께 잘 해드려야지요. 장모님도 어머니입니다. 잘 해드려야 할 대상입니다. 
  
성경에는 감사란 말이 다른 어떤 종교의 경전보다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감사의 종교라고 합니다. 감사란 은혜 받은 자가 은혜 베푼 자에게 고마움을 보답하는 뜻으로 마음과 행동과 입술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부모님께도 보답할 때에 마음과 행동과 입술로 표현해야 합니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효행입니다.  
  
유대인의 지혜서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어디든지 있을 수 없어서 대신 어머니를 보내었노라. 나는 등이 없기에 어머니를 보내서 너희들을 업게 하였노라. 내가 가슴이 없음으로 어머니의 가슴으로 너희들을 품에 안았노라. 내게 생명의 젖줄이 없기에 어머니를 보내어 생명의 젖줄로 너희를 길렀노라. 내가 따뜻한 손으로 너희들을 보살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보내어서 어머니의 손으로 너희를 길렀노라”. 부모님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분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함으로 하나님을 공경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효심의 나라입니다. 세계에서 생체 간이식이 1위입니다. 100만 명 가운데 13.64건이 성사되었습니다. 2위인 싱가포르의 두 배에 가까운 간이식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간의 일부를 이식해 주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로부터 몸을 물려받았다고 하는데 부모의 몸이 상하게 되면 물려받은 몸의 일부를 드리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우리의 효성인지 모릅니다. 
 
‘효행록’이란 책이 있습니다. 고려 충목왕 때 권부(權溥)와 그의 아들 준(準)이 효행에 관한 기록을 모아 엮은 책입니다. 효자 62명에 대한 전기를 모아 엮은 후에 권근이 주해의 발문을 쓴 책입니다. 조선조에 들어와서 세종대왕 10년(1428)에 개정하여 중간하였습니다. 이 책에 있는 내용으로 아이들에게 노래로 불러 외우도록 하여 효도를 고취하는 자료로 삼았던 책입니다. 오랜 전통에서 우리나라는 효행을 극진히 여겼습니다. 
  
신명기 32:5에는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고 삐뚤어진 세대로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악을 행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부모에게 악을 행하면 부모의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부모에게 극진한 효행을 하는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못된 아들이 마지막에 효도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똑똑한 아들은 나라의 아들입니다. 돈을 잘 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입니다. 병들고 실패하고 못 난 아들이 내 아들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못 난 아들이 효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똑똑하고, 돈 잘 벌고, 건강하지만 부모의 자녀로 효를 다 하고, 보답하는 마음을 가지고, 효행이 반듯한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첫 계명을 잘 지켜서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장수하는 귀한 주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부모님들도 믿음으로 자녀를 잘 양육하고,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고, 믿음의 규범을 잘 전수하는 귀한 부모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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