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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건강한 가정(2) (엡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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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정(2) (엡 6:1-4) 

시골 어느 지역에 닷새 만에 장을 섭니다. 장이 서게 되면 아들은 그동안 모은 나뭇짐을 지게에 지고서 장에 팔러 나갑니다. 저녁이 되면 어머니는 아들이 이제나 저제나 올까 하며 기다립니다. 그래도 돌아오지 않으면 걱정이 되어 동구 밖까지 나갑니다. 어머니는 좀 더 멀리 보기 위하여 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이 애틋한 마음을 한자에서는 어버이 친(親)이라고 합니다. 

이제 아들은 시장에 가서 나무를 팔아 그 돈으로 어머니께 드릴 반찬과 몇 가지 일용품을 사들고 오다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를 만납니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공손하게 말합니다. “어머니! 다리 아프실 텐데 어찌 여기까지 나오셨습니까? 제가 업어드릴 테니까 이 지게 위에 타십시오.” 

그래서 노인을 지게 위에 태우고 오는 아들의 모습이 효도 효(孝)자입니다. 가정은 사랑의 보금자리요, 평화의 보금자리요, 행복의 보금자리입니다. 모든 가정이 친(親)과 효(孝)가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 나온 스토리가 있습니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납치를 당했습니다. 얼마 후 납치범들로부터 며느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가 네 시어머니를 데리고 있다. 빨리 돈을 보내라.” 며느리는 전혀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에 납치범들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몸값을 빨리 보내라!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시어머니를 즉시 돌려보내겠다!!!” 그랬더니 며느리가 곧 연락을 했습니다. “계좌번호를 알려 주세요. 빨리 보내겠습니다.”

오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한국에서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지키다가 어버이날로 바꾸었으므로, 교회도 어머니주일로 지키다가 어버이주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니 교회에서는 아버지날을 챙겨달라고 아버지들이 더 이상 주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은 이미 3천5백년 전에 십계명을 통하여, 신약성경에서 2000년 전에 바울의 서신을 통하여 어버이를 공경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섬김의 원리를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주인과 종의 관계에 적용됩니다. 고대 세계에서 남편은 아내에 대하여, 부모는 자식에 대하여, 주인은 종에 대하여 절대적인 권한을 가졌습니다. 후자는 전자에 대하여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전통적인 가치 체계에 도전을 합니다. 요즘도 아내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남편들이 적지 않고 자식들의 의사에 반하여 무조건 자기의 주장만을 관철시키려는 부모들이 많은데 그 당시 바울의 제안은 상당히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바울의 권면이 기존 질서를 전적으로 무시하거나 파괴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각자의 고유한 역할은 감당하되 자기주장만 하지 말고 상대방의 유익을 세워줄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것을 삶의 기초로 삼아 서로 섬길 것을 촉구합니다. 바울의 권면은 5:18부터 시작됩니다.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5:19-21에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성도들의 변화된 모습이 그려집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온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섬기에 됩니다. 믿음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관계가 제대로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 성령 충만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바울의 권면은 출애굽기 20:12절을 토대로 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물론 이 말이 나온 배경은 오늘날의 상황과 다릅니다. 그 당시 농사나 목축을 하면서 가족들이 서로 의지하고 함께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기에 경제적 필요에 의하여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 자식 심지어 일가친척들까지 모여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살다보니 자연 가족 간의 위계질서가 필요하였고, 윗사람에 대한 절대 순종을 요구했습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뿐 아니라 조부모, 친척과의 다양한 관계에서 오늘날 젊은이들이 배울 수 없는 정서적인 안정감, 소속감과 정체성을 배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약 시대의 히브리 가정은 종교적 공동체로서 자녀의 신앙을 책임지는 교육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도시화 산업화의 과정에서 현대 가족은 확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가르침은 21세기에는 별로 쓸모없는 시대와 동떨어진 낡은 말씀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히브리 기자는 말합니다. 진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오늘날의 상황에 그 변하지 않는 진리를 어떻게 적용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주에 이어 건강한 가정에 관하여 살펴보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만드셨습니다.

가정은 창조의 섭리에 따라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가정은 남녀 두 사람이 부모를 떠나 인격적, 육체적 연합을 이룸으로써 세워집니다. 가정은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곳일 뿐 아니라 인격 형성의 기틀을 마련해 주는 곳입니다. 

특히 어린 시절에는 모든 면에서 성장이 급속히 이루어지고 가정의 영향을 가장 민감하게 받습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의 영적 의미를 잘 깨닫고, 건강한 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식구들이 각자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지 못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섭섭하게 여기셨습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고, 입술로는 나를 영화롭게 하지만, 그 마음으로는 나를 멀리하고 있다. 그들이 나를 경외한다는 말은, 다만, 들은 말을 흉내 내는 것일 뿐이다”(사 29:13). 

그들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척만 했습니다.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적합하지 않고, 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마 10:37).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건강한 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부모와 자식 간에 네 개의 명령형을 사용하여 권면합니다. 이 말씀들을 온전히 지켜 행할 때 부모와 자식 간의 아름다운 관계가 가지며 주 안에서 복된 가정을 이루어집니다. 

1) 주 안에서 순종하라 (obey your parents in the Lord)

신앙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관계입니다. 이웃과의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반영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웃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를 향한 자녀의 지침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입니다. 여기서 자녀들은 단지 어린아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구원을 얻은 모든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특히 ‘주 안에서’라는 표현은 그리스도를 주로 경외하는 자녀들답게 마치 그리스도를 섬기듯이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5장 22절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힐 때, 복종 (submission)은 남편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아내가 남편에게 자발적으로 자신을 드려 섬기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자식들에게 권면할 때, 자발적인 의미의 복종 대신 강제적인 의미가 담긴 ‘순종’을 사용합니다. 

비록 6장 4절에‘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하며 아버지의 권위를 제한하고는 있으나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것과 자녀가 부모를 섬기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부르며 순종하려는 것과 같이 자녀들도 자기의 부모들에게 순종하여야 합니다. 

전에는 아이들을 많이 낳았지만 요즈음은 보통 하나 많아야 둘을 낳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집에서 우상이 되기 쉽습니다. 교사가 자기 자식을 야단쳤다고 부모가 학교까지 가서 다른 학생들 보는 앞에서 교사를 구타하고 폭언하는 기사가 가끔 보도됩니다. 자기 부모가 그러는 것을 보고 자란 아이가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자녀들은 부모들이 자기를 섬겨야 하는 존재로 착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모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아이들,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쉽게 좌절하는 아이들이 많아집니다. 디모데 후서 3:2에서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들이 언급되는데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부모를 거역”합니다.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은 마땅한 도리입니다. 부모의 권위가 인정되는 가정이 건전한 가정이요 그런 가정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건전한 사회입니다.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honor your father and mother)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십계명의 첫 네 계명은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이고, 나머지 여섯 계명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이웃 사랑의 실천은 가족으로부터 시작되는데 그 첫 번째가 부모 공경입니다. 

십계명 중 5번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인데, 이 명령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option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부모를 공경할 때 누리게 되는 복이 두 가지가 있는데 잘되는 것과 장수의 복입니다. 이 말은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자들은 언제나 하는 일마다 잘되고 반드시 오래 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주 안에서 착실하게 살며 부모를 공경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니 그만큼 죄를 짓지 않으며 그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을 피하게 된다는 것이지 일찍 죽는 자들이 언제나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을 경우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출 21:17절을 보면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1장을 보면 부모는 공경하지 않는 자녀를 장로들에게 직접 끌고가서 보이고 아들의 악행을 말하면 그것을 보고 듣는 성읍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의하여 죽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지켜져야 합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부모로 되어 있으나 원어를 보면 출애굽기 20:12절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되어 있고, 

레위기 19:3절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경외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여자는 사람 수에 들지 못하던 때였지만 부모를 동등하게 공경하고 동등하게 경외해야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 20:12의 약속은 원래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누리게 되는 복인데 바울은 믿는 자들에게 적용합니다. 바울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부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면 복을 받는 아주 중요한 계명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공경이라는 말은 ‘높이 평가하다 가치를 두다’는 뜻을 가집니다. 그런데 이 공경이라는 용어는 요 5:23에서 하나님을 공경하라는 낱말로 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공경하듯이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누가 보십니까? 하나님이 보십니다. 

따라서 부모를 공경하면 하나님이 그 자녀의 장래를 복되게 하십니다. 물론 부모공경은 부모가 요구하거나 명령한다고 될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부모가 먼저 자녀들에게서 공경 받을 만한 신앙과 덕스런 행위를 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 앞에서 자기의 부모를 공경하는 본을 보여야 합니다. 부모가 하는 대로 자식이 배우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에 대하여 존경을 가지는 태도 뿐 아니라 나이가 든 부모를 육신적으로 돌보는 것도 포함됩니다. 

마가복음 7장을 보면 예수님 당시에도 조직적으로 부모공경을 피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였고 부모를 욕하는 자는 죽이라고 했는데 바리새인들은 고르반이라는 전통을 만들어 부모를 모시는 책임을 벗어버렸습니다. 고르반 제도가 무엇입니까? 자기가 가진 재물은 하나님께 드렸다고 사람들 앞에서 선언합니다. 

그러면 고르반으로 지정된 재물을 가지고는 부모를 위해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부모님을 섬기고 싶은데 하나님께 바쳤어요. 여유가 없어 어떡하지요? 그런데 고르반 제도에 함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기는 드리는데 언제 드린다는 기약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재물을 자기 마음대로 쓰다가 죽으면 그만입니다. 

즉 고르반은 부모를 위하여 쓰기는 싫으면서도 자기 재물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앙을 과시하기 위한 방편으로 만들어낸 제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명분으로 부모에 대한 의무를 게을리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게 하는 위선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육신의 부모에게도 순종하셨습니다(눅 2:51). 

그렇다면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께 순종하며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30세까지 가족을 부양하셨습니다. 그런데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집을 떠납니다. 십자가의 임종을 앞두신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요한을 불러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합니다. “어머니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예수님은 혈육의 동생들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지 않으시고 제자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이때만 해도 예수님의 동생들은 아직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못하고 그저 육신의 형으로만 알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요한은 제자 훈련을 받으면서 누구보다 예수님의 잘 이해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요한은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마리아를 섬길 수 있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거룩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이 당연히 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이 깨어지고 사회의 전통적인 질서는 무너져갑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 대신에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점차로 퍼져 가는 이때에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건전한 가정에서의 질서를 우리부터 회복하며 세상에 본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며 주 안에서 순종하는 자세를 가지고 부모를 섬겨야 합니다. 

자녀로서 당연히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는 효도를 해야 합니다. 잠 23:24,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그와 더불어 믿지 않는 부모가 계신다면 최고의 효도는 부모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을 정탐한 자들이 자기들을 살려준 라합에게 명령합니다.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수 2:18). 

이에 따라 라합이 온 가족을 자기 집으로 불러 모아 그들을 구원합니다. 라합의 이름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간 것을 보면 그는 하나님을 믿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식구들도 라합처럼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되었겠죠. 아무리 육신적으로 잘 해드려도 부모를 구원으로 이끌지 아니하면 부모를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부모님이 계신다면 사명감을 가지고 기도하며 부모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게 해드려야 합니다. 

3)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do not provoke your children)

바울은 세 번째 권면을 이번에는 부모에게 합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아비들’은 문자적으로 아버지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대표하는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1세기 로마시대에 아버지는 자녀에 대하여 법적으로 절대적인 권력을 가졌습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아이의 생사를 결정하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자기의 자식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 그 아이는 팔리거나 버려지거나 심지어 죽게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사회적인 상황 속에서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 대접해야 한다는 담대하게 말합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바울의 가르침은 자칫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부모에게 권면하면서 부모의 권위보다는 부모로서의 책임을 더 강조합니다. 부모가 지나치게 권위적이거나 독재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자녀들로 하여금 분개하고 원망을 일으키게 하는 자세, 말, 행동들을 피하라는 겁니다. 

자녀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부모의 권위만 내세워 윽박지르기만 한다면 자녀가 당장은 그 앞에서 반응을 보이지 않더라도 그 분노가 상처로 남습니다. 그런 식으로 자란 자녀들은 부모에게서 제대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였기에 커서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모릅니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지나친 요구나 욕심에 의하여 때로는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여 자녀들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들부터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하며 노엽게 하기보다 자녀들을 격려하여야 합니다. 

4)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bring them up in the nurture and admonition of the Lord)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가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 것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효도와 자녀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일반 사회에서 말하는 것과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주 안에서” 순종하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신앙적인 본을 보여야 합니다. 말이나 행실이나 경건의 훈련하는 모습들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하고 자녀들에게 또한 그리스도에 대하여 가르쳐야 합니다.

잠 1:8-9에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했습니다. 당시에 가정의 제사장 역할은 아버지가 했습니다. 아버지가 율법을 자녀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오늘날 가정에서 부모가 제사장 역할을 해야 합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들을 가르치고 기도하고 축복할 의무와 특권이 있습니다. 

바울은 자녀를 양육하기 위하여 두 가지를 언급합니다. 첫째가 교훈이요 둘째가 훈계입니다. 교훈에는 훈련이나 체벌의 의미도 있습니다. 히 12:6,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올바른 징계와 교훈은 성경적이요 참다운 사랑의 표현이요 아이들을 바로 세웁니다. 둘째가 훈계인데 주로 말로 타이르면서 잘못된 것을 시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을 보면 교훈과 훈계로 가르치지 못한 부모들도 나옵니다. 열왕기하 20장을 보면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에 걸렸는데 하나님께 회개하고 기도하여 생명을 15년 연장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간절하게 기도하면 응답을 받는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그때 히스기야 나이 39세였습니다. 아직 왕위를 이을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3년이 지난 42세에 므낫세를 얻습니다. 히스기야가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므낫세가 12살에 왕위에 오릅니다. 그때부터 므낫세는 무려 55년이나 유다 왕국을 우상숭배와 악정으로 다스리면서 영적으로 부패한 나라로 만들며 바벨론에 멸망을 당하는 결정적 근거를 제공합니다. 히스기야가 늦둥이를 그저 오냐오냐 하며 키웠을 때 므낫세는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패역한 자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비록 다윗이 압살롬과 연관된 실수를 저지르기는 했지만 다윗은 임종 때까지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을 했습니다.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 2:2-3)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은 패역한 아들이 되어 나라를 망하게 한 반면에, 다른 사람은 부모와 뜻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는 놀라운 일을 하였습니다. 어떤 자녀를 키우기 원하십니까? 

본문을 종합한다면 온전한 성도의 가정은 자녀들이 주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며 부모들은 부모의 권위로 자녀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주안에서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부모와 자녀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권면 속에 포함됩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종과 주인 등 삶의 모든 관계에 있어서, 사랑함으로 서로 복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을 때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습니다. 특히 가정이 신앙훈련의 훌륭한 연습장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이 충만함을 받은 후에 서로 섬길 때 가정과 직장에 화목과 평화가 오며 하나님께도 영광이 됩니다. 귀한 부모를 갖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그동안 자녀들을 사랑으로 양육하시고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신 부모님들께 감사를 드립시다. 귀한 자녀들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자녀들은 주께 하듯 부모를 공경하고 섬겨야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건한 자손으로 키워야 합니다.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이웃을 잘 섬기려는 자세로 가정마다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고, 존경하고, 이해하면서 주님의 위로와 용서와 치유를 경험하며 화평과 희락이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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