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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감사의 능력 (살전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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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능력 (살전 5:18)


며칠 전 국제기아대책기구 이사회에 참석을 했는데, 장소를 제공한 그 교회의 친교실 벽에“불평금지구역”이라고 써 붙인 글씨를 보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흡연금지구역”은 많이 봤어도“불평금지구역”은 처음 봤기 때문입니다. 웃음을 자아낸 그 글귀가 계속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흡연보다 더 무서운 것이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불만을 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감사보다는 불평불만을 토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잘못된 습관인지 모릅니다. 

어느 여자 집사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목사님을 잦아왔습니다. “목사님, 우리 그이는 신앙생활은 열심히 하는데, 그놈의 원수 같은 담배를 전혀 끊지 못하고 있어요. 업무상 스트레스가 많아 하루에 담배를 한 갑 이상씩 피울 수밖에 없다네요. 목사님, 담배를 이렇게 많이 피우면 천국에 못가는 거 아닐까요?” 목사님의 대답이 “아닙니다. 담배를 피운다고 천국 못가는 건 아니에요. 다만 신앙이 좋은 사람이 담배를 많이 피우면 더 빨리 천국에 가게 되죠.” 라고 했답니다. 마찬가지로 믿음 좋은 사람이 불평불만의 습관을 고치지 못하면 천국에 빨리 갈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잠시 후에 말씀드릴 것입니다.

맥추감사절인 오늘은 감사의 능력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성도여러분! 돈의 힘이 얼마나 큰지 잘 아실 것입니다. 권력의 힘도, 지식의 힘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의 힘을 알고 계시는지요? 감사는 물질이나 권력이나 지식보다 훨씬 더 큰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힘일까요?

1. 감사는 행복을 가져오는 힘이 있습니다. 

모두가 원하는 행복은 어디서부터 올까요? 부족함이나 불편함이 없는 잘 갖춰진 생활환경을 통해서 올까요? 이에 대한 해답으로 지난 5월 12일자 기독교 신문에 보도된 기사로 답을 드리고자 합니다. 

미국의 여론조사 관인 갤럽이 2012년 말에 148개국에서 1천명을 대상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정도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인의 행복순위가 97위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낮다는 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작년에 발표한 행복지수에서 36개국 중에 24위로 하위권에 머무른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유엔이 보고한‘세계행복보고서’에서도 한국은 10점 만점에 5.7점으로 156개국 중에 56위에 그쳤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통계는 모두 한국 사람이 행복하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합니다. 한국 사람은 왜 불행할까요? 경제적으로 선진국에 진입할 정도로 발전한 나라가 되었는데, 왜 행복하지 못할까요? 찢어지게 가난했을 때, 가난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행복하리라는 기대 속에“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하는 새마을 노래를 힘차게 부르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드디어 세계 10위권에 드는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습니까? 돈이 행복의 절대적인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만일, 돈이 행복의 척도라면 분명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세계에서 10위를 넘나들어야 합니다. 경제적인 지위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돈이 행복의 절대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신문에서 또 한 가지 지적하는 것은, 우리사회에 그리스도인들이 제 기능을 담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신자가 많은데, 우리나라에서 행복지수가 이처럼 낮다는 것은 충격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랑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감사와 사랑은 행복의 척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값없이 십자가의 죄 용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큰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감사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많은 성도들이 성도답게 감사하며 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 기사는 끝을 이렇게 맺었습니다.“우리는 온전한 감사를 할 때 행복해 질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날 때 우리 사회의 행복지수가 높아질 것이다.”

그렇습니다. 전쟁영웅 나폴레옹도 이렇게 말했습니다.“사치스러운 환경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은 종이 위에 태양의 그림을 그려놓고 그 그림에서 햇빛이 발산되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음과 같다.”그렇습니다. 행복은 부족함이 없는 환경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극한 사치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훗날 그가 깨닫고 전도서 1장 2절과 14절에 말하기를“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행복은 결코 환경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님을 밝혔습니다.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싹이 나고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사에 감사의 조건을 찾아야 합니다. 행복은 외적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서부터 솟아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탐욕에 눈이 어두워 이미 얻은 것, 현재 있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버리고, 없는 것, 못하는 것만 생각한다면 천하를 다 얻는다 해도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참된 만족과 행복은 없을 것입니다. 

어려운 가운데에도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 가는 아내의 정성을 생각한다면 아내에 대한 감사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식구들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열심히 일하고 돌아오는 남편의 성실함을 생각한다면 비록 수입이 많지 못하다 할지라도 남편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솟아날 것입니다. 또한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나는 자녀의 모습을 본다면 비록 학교에서 1등은 못한다 할지라도 감사한 마음이 가득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나를 이만큼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부모님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사무쳐 올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크신 은혜와 내 영혼과 육신을 이날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과 순간마다 깨닫게 하시며 새 힘을 주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감사함이 넘쳐날 것입니다. 

“삶에 대한 감사”라는 책에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나로 하여금 험악한 가운데서 보호해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험악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기도하게 하소서. 나의 괴로움이 그치게 해달라고 빌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그것을 정복하도록 기도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감사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소서.”그러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감사의 분량이 행복의 분량이다.”그렇습니다. 감사의 분량은 행복의 분량입니다. 감사한 만큼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범사에 감사하라.”하셨습니다. 

2. 감사는 육체의 건강을 지키는 힘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악에 받혀 부부싸움을 하는 사람의 입김을 모아 독극물 실험을 했더니 놀랍게도 코브라독보다 더 강학 맹독성 물질이 나왔다고 합니다. 또 한 사람을 데려다가 타액검사를 해본 결과 평소엔 이상이 없었는데, 칸막이 속에 가두어둔 채 약을 올려 신경질을 부리게 한 뒤 타액검사를 했더니, 황소 수 십 마리를 즉사시킬 만큼의 독극물이 검출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즐겁게 웃고 난 사람의 뇌를 조사해보니 놀랍게도 독성을 중화시키고 웬만한 암세포라도 죽일 수 있는 호르몬을 다량 분비시켰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잠언 14장 30절 말씀에“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질투)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하셨습니다. 

어느 목사님 부부가 심방을 갔다가 운전을 해서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도착해서야 사모님은 안경을 그 성도의 집에 두고 온 것을 알았습니다. 운전을 못하는 사모님이 목사님에게 사정을 말하고 다시 그 집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을 하자, 목사님은 불같이 화를 내며 사모님에게 핀잔을 주었습니다. 다시 운전을 해서 교인 집으로 가는 내내 목사님의 잔소리는 이어졌습니다. 교인의 집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는 사모님에게 목사님이 말하기를“안경 가져올 때, 내 핸드폰도 좀 챙겨와요.”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에비 로빈슨이라는 사람에 대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이 사람은 트레일러 운전기사인데, 그가 자동차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이 사고로 졸지에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때에 에비 로빈슨은 실명 후에도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저녁마다 뜰에 나가 잔디밭에 무릎을 꿇고 감사하는데“하나님 감사합니다. 비록 실명된 몸이나 내 생명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살아있다고 하는 사실에 하나님 앞에 감사합 니다.”하며 기도했습니다. 

매일 저녁 잔디밭에 나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드릴 때에 이상하게도 3개월 만에 그 눈이 다시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눈을 뜨고 난 다음 매일같이“저 아름다운 꽃잎들, 저 벌레 소리, 저 모든 생명, 이것으로 인하여 감사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에비 로빈슨 자기의 차에“하나님! 당신의 기적을 감사합니다.”라는 스티커를 불이고 다녔다고 합니다. 

3. 감사는 성공으로 인도하는 힘이 있습니다. 

본문에“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이니라.”(살전 5:17)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감사가 성공의 길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토크쇼의 여왕으로 알려진 미국의 오프라 윈프리는 인종 차별이 극심한 미시시피의 가난한 시골 마을에 사생아로 태어난 흑인입니다. 그녀는 6살까지 외가에서 자랐고, 13살 까지는 파출부로 일하는 편모슬하에서 자랐고, 19살까지는 다른 여자와 살고 있는 아버지 집에서 살았습니다. 9살 때 가까운 친척에게 성폭행 당했고, 14살 때 사생아를 낳았으나 2주 후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 후 그는 마약에 손을 대고, 소녀 감호소를 출입하는 등 희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딛고 일어나 전 세계 1억 4천만 명의 애청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토크쇼의 여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방송에서 읽은 책을 이야기하면 그 책은 다음날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가 입고 나온 옷은 금방 유행이 되고, 그가 불우이웃 시설에서 몇 마디만 하면 다음날 수십억의 성금이 모여진다는 것입니다. 

그의 자서전에서 그녀는 그녀의 성공담을 말하기를‘저는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인도 받아요.’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의 삶은 감사의 삶입니다. 윈프리가 온갖 약점을 극복하고 이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매일 다섯 가지의 감사를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윈프리는 아침에, 거뜬히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점심에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어서 감사하다는 등, 매일 매일 다섯 가지의 감사 조건을 찾아 기록하는 습관을 길렀습니다. 이러한 감사가 오프라 원프리를 오늘의 토크쇼의 여왕의 자리에 올려놓았다는 것입니다. 

2009년 11월 25일자 <사이콜로지 투데이>(Psychology today)라는 잡지에 감사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규칙적으로 감사를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그들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늘 감사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잘 통제하여 바람직하지 않는 습관을 극복하고,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또한 일을 하면서도 늘 감사하는 사람은 더 생산적이고, 창의적이며, 바른 심성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감사할 줄 알고, 늘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일수록 더 오래 살고, 더 행복하게 살며, 더 친절하여 사랑도 더 많고, 성공적인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감사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감사할 때 그 사람이 지닌 잠재력을 다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이니라.”(살전 5:17)하셨습니다.

4. 감사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통로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말씀하시기를“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신비로운 능력은 언제나 감사하는 사람에게 나타났습니다. 감사하되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신약성경에 바울이라는 훌륭한 전도자가 있습니다. 유럽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여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신약성경가운데 바울이 기록한 성경이 13권이나 됩니다. 이러한 대 사도가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아 모진 매를 맞고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싸늘한 감옥 속에서도 감사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사도행전 16장). 그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를 얽어맨 쇠사슬이 끊어지고 굳게 닫쳤던 옥문이 열렸습니다. 이처럼 감사하는 곳에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문제들이 해결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교훈입니다. 

구약성경 다니엘서를 기록한 다니엘 선지자가 있습니다. 선지자란,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 나라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 때 포로로 붙잡혀갔습니다. 비록 포로였지만 남달리 영특했던 다니엘은 바벨론 국왕의 총애를 받아 총리가 되었습니다. 바벨론 왕은 매사에 민첩한 다니엘을 남달리 신임하여 수석 총리로 삼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신하들은 다니엘을 시기하여 음모를 꾸며 그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끝내 다니엘을 당시의 처형방법 중 하나였던 굶주린 사자 굴에 던져 넣기에 이르렀습니다. 

다니엘은 이러한 기막힌 현실 앞에서 하나님께 하루에 세 번씩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처럼 범사에 감사하던 다니엘이 사자굴속에 던짐을 받았지만 천사가 나타나 사자의 입을 막았습니다. 간신들의 음모임을 뒤늦게 깨달은 왕은 그들을 사자 굴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러자 굶주린 사자들이 달려들어 그들의 발이 땅에 닫기도 전에 뼈까지 부쉈습니다(다니엘 6:1-24). 그러므로 하나님은 감사하되“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베세다 광야에서 수만 명의 무리들이 운집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가운데(마태복음 14장) 날이 저물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에는 먹을 음식이 없었습니다. 그대로 먼 길을 돌려보낸다면 쓰러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 자리에 먹을 음식이란 고작 어린아이 도시락 하나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도시락에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가 들어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으로 수만 명의 무리 앞에서 감사기도를 드린 후 나눠주도록 하셨습니다. 이때에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나눠줘도 나눠줘도 끝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나 되었습니다. 이처럼 감사하며 살아가는 곳에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나타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는 얽매인 순간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할 때 나를 얽어맨 줄들이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는 죽음의 위기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할 때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 생명을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는 굶주린 순간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할 때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 4장 6절~7절에 말씀하시기를“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하셨습니다. 

미국의 조상들이 처음으로 지킨 추수감사절은 감사할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101명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나왔는데 몇 달 사이에 절반가량이 죽었습니다. 노인과 아이와 병든 사람을 제외하고 나면 일할 사람은 불과 몇 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천신만고를 겪으며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런대도 그들은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미국 조상들이 첫해에 지킨 추수감사절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해의 소득으로 자기 집보다 먼저 예배당을 세웠습니다. 이들의 감사하는 믿음을 보신 하나님은 크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들의 후손들은 지금도 넘치는 복을 받아 누리고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삶의 지혜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늘의 지혜요, 하늘의 방법입니다. 반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닙니다. 원망하며 불평하는 것은 파멸로 이끄는 사탄의 유혹입니다. 430년간 애굽에서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꿈에 그리던 해방을 맞아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가나안까지 가는 과정에 광야를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광야는 메마른 사막입니다. 물이 없고, 그늘도 없고, 농사도 지을 수 없는 사막이라 고생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노예에서 해방된 것을 생각하면 참고 감사해야할 일입니다. 현재는 고생이 되지만 얼마 후에 도착할 가나안 복지를 생각한다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과 입술은 매사에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400년 넘게 억압과 착취를 당하며 살아온 노예의 습관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이 노예의 습성을 고치지 못하고 끝없이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모두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곳에는 하나님이 능력을 나타내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두 곳이다. 한 곳은 천국이요. 다른 한 곳은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이다.”(아이작 윌튼)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만큼 행복합니다.
감사는 건강의 비결입니다. 
감사하는 것은 성공의 길입니다.
감사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오늘 분문에“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이니라.”(살전 5:17)하셨습니다.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감사하되 좋은 일에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범사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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