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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최대 계명과 지상 명령 (마 22:37-40; 28:19-20)

첨부 1


제목 : 최대 계명과 지상 명령
(The Great Commandment and the Great Commission)
성경 : 마 22:37-40; 28:19-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믿어 거듭난 성도라면 누구나 신앙생활을 잘 하고 싶어 합니다. 더 큰 은혜를 받고 싶어 하고, 더 깊은 믿음의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는 일에 뒤처지는 것을 좋아하는 성도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실제로 복 받는 방법을 명확하게 알고 이를 실천하는 성도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에 우수한 평점을 얻을 수 있을까요? 믿음의 길에 성공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쉽고도 현명한 대답은 ‘제일 중요한 것부터 잘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최대 계명(The Great Commandment)’과 주님의 ‘지상 명령(the Great Commission)’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최대 계명’은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한 질문, 즉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에 대한 응답으로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37-4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모든 율법과 모든 선지서의 가르침을 두 마디로 요약하면,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과 우리의 이웃을 자기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 최대 계명에 올인하는 것이 신앙생활 성공의 비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로 올리우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세 가지 과제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19-20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예수님이 주신 유언과도 같은 말씀은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삼으라’, ‘그들을 세례주라’ 그리고 ‘주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세 가지 과제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명심하고 지켜야 할 다섯 가지 사명, 즉 교회의 5대 목적을 살펴보고, 여러분 자신과 소속 구역, 그리고 사역 팀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로 삼기를 바랍니다. 

1. 최대 계명 두 가지
 
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물었습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36절).
 
여기서 ‘계명(엔톨레)’은 모세 율법의 총체인 ‘호 노모스’와 구별되는 것으로, 율법의 개개의 가르침과 훈계들을 가리킵니다(막 10:5, 롬 7:8-13). 

즉 율법사는 예수님에게 당대에 존재했던 모든 율법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개의 계명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613개로 나누었습니다. 그중에 248개의 중요한 율법과 365개의 덜 중요한 율법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든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율법을 중요성에 따라 나누어 중요한 율법을 반드시 지키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중요한 율법과 덜 중요한 율법을 나누는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이 기준은 당시 율법사들에게 많은 논쟁거리였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율법사는 예수님에게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가 물어보고 있습니다. 주님의 대답 속에 우리가 최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두 가지 계명이 있습니다.
 
1) 온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라 (= 예배)
 
37-38절=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본문은 한글 성경과 원어 성경의 단어 배열순서가 다릅니다. 원어 성경을 직역하면 ‘너는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너의 온 마음으로, 너의 온 목숨으로, 너의 온 뜻으로’ 입니다.
 
원어 성경을 보면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보다는 사랑하라는 음성이 먼저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먼저 선언하고, 그 다음에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라는 방법론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랑하라’ 동사의 원형 ‘아가파오’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뜻할 때에는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절대적인 복종과 내면적 경의를 가리킵니다. 즉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 이전에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한없는 사랑의 감정을 가리킵니다. 

‘온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한 마디로 묘사하는 단어는 ‘예배’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주님을 예배함으로써입니다.
 
예배자의 숫자의 많고 적음이나 예배 장소의 넓고 좁음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두 세 사람이든, 소그룹이든, 혹은 천명, 만명이 모이든,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할 때 우리는 예배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말합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 4:10). 여기 ‘경배(예배)’가 ‘섬김(service)’보다 먼저인 것에 유의하십시오. 

주님을 예배하는 것이 교회의 첫 번째 목적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주님을 위해 너무 바삐 일하느라 예배를 통한 주님 사랑을 나타낼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한편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라는 표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보여주는 부분으로서 신명기 6:5의 인용입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예배드릴 때에 이 말씀을 신앙 고백문으로 사용했습니다. 

이 말은 자기 자신의 전 인격을 기울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되 가식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전인격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예배의 자세입니다.
 
시 34: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2)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 봉사, 구제)
 
39절=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최대 계명의 두 번째는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그와 같으니(호모이아 아우테)’ 라는 표현은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의 성질이 동일함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곧 둘째 계명도 첫째 계명과 같이 ‘사랑하라’는 메시지로 압축된다는 의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 의무를 행하다 보면 사람, 특히 부모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15:1-9).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이 지켜야 할 계명의 핵심이며,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십니다. 
사랑의 사도 요한은 한걸음 더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요일 4:7-12).
 
성도 여러분! 둘째 계명은 우리의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기 ‘이웃(플레시온)’은 가까이 있는 다른 사람이나 친구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모세 율법이 주어질 당시 이 표현은 동족이나 함께 거주하며 유대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외국인들만 가리켰으며,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이방인이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웃의 범위에서 배제시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전혀 달랐습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이 경멸하는 사마리아인들은 물론(눅 10:29-37) 원수까지도(5:44)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의 개념에 포함시키셨습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주신 이 사명을 묘사하는 단어는 ‘봉사(사역, ministry)'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봉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 줌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교회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모든 종류의 사역으로 도움을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봉사는 영적, 정서적, 관계적, 물리적 필요들을 포함합니다. 교회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곳입니다(엡 4:12).
 
불행하게도 실제적인 봉사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교회들이 적지 않습니다. 참된 경건, 참된 충성은 출석교인들의 숫자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사역에 뛰어 든 성도들에 의해 나타납니다.
 
어떤 이들은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경건한 것처럼 자신을 꾸밉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경건한 사람이 되려고 하면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방언을 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가진다고 하여 그 자체로 경건한 것이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헐벗고 굶주리는 자들, 인권을 유린당하고 소외된 탈북자들이나 조선족들, 다문화 가정들을 외면한 채 종교적 열광주의에 빠지는 것은 경건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알지 못하시며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이것이 교회가 말하는 봉사의 핵심 사상입니다. 

 
2. 지상 명령 세 가지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본 단락(16-20절)은 예수님이 남기신 최후의 유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복음 전파의 명령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40일간의 행적들을 생략하면서 독자들의 관심을 예수님의 지상명령(至上命令)이라고도 하는 이 명령에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예수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과정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과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이 명령을 목숨을 다하여 지켰고 오늘까지 뜻있는 성도들에 의하여 이 명령은 계속 수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그리스도의 진실한 제자가 되기 위하여는 이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본문 19, 20절의 대위임명령은 18절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는 사실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통치 영역에 속한 모든 권세를 받았기 때문에 주님의 제자 된 자들은 마땅히 전도하고 세례주며 양육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1) 가서 제자 삼으라 (= 전도)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 여기 ‘너희’는 직접적으로는 승천 직전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을 지칭하지만, 보다 궁극적으로는 주님을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합니다(행 1:8 참조).
 
가서 제자 삼으라! 이것은 복음 전파의 사명 곧 전도하라는 명령입니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목격한 제자들이 할 일은 주님과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만방에 전파하는 일입니다. 이 일이 너무 중요하여,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다섯 번씩이나 전도 명령을 주교 계십니다.
 
성도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전도와 관련된 일 외에는 주님 앞에 내 세울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영예를 얻고 교회에서 직분을 얻고 교회당을 지어 바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전도하라는 것 아닙니까? 

복음 전파를 위해 온 생애를 헌신했던 바울사도도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9-20). 

그렇습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주님 앞에 설 때 자랑할 수 있고 또한 우리를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복음 전파 뿐입니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도 바로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모든 민족에게 가야 합니다. 복음 전도의 대상에는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고 민족의 담장을 허물고 정치와 이념을 초월하며 신분을 불문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라는 주님의 명령에 유념해야 합니다. 실로 주님은 인류 구원이라는 원대한 사역에 우리의 손과 발과 입술을 빌리고자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능동적으로 신발끈을 단단히 동여맨 다음 우리가 속한 가정과 지역사회, 그리고 좀더 넓게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의 횃불을 들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2) 세례를 베풀라 (= 교제)
 
19절=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본절은 세례가 계속적으로 행해져야 함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한 개인에게 반복적으로 주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또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적으로 행해져야 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세례가 계속적으로 시행되는 과정을 통하여 제자를 삼을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세례를 베풀다는 동사에는 ‘담그다’와 ‘씻다’의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담그다’는 의미로 볼 때 세례 의식을 통해 예수님의 죽으심과 장사됨과 부활하심에 함께 참여한다는 의미가 강조됩니다. ‘씻다’는 의미로 보면 세례는 보다 상징적으로 ‘죄씻음’ 또는 ‘죄사함’ 이란 의미가 강조됩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죄씻음을 의미합니다.
 
왜 예수님은 지상명령 안에 ‘세례’와 같은 단순한 의식(儀式)을 위대한 두 과업인 전도와 양육과 함께 제시하십니까? 그것은 ‘세례’가 교회의 또다른 목적인 ‘교제(fellowship)'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교제는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믿기 위해서(to believe)가 아니라 소속되기 위해(to belong) 부름받습니다. 세례는 구원의 증표일 뿐 아니라 교제의 상징입니다. 세례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삶을 상징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임 받는 것을 보여줍니다. 

교회는 믿는 자들을 위하여 교제의 장을 베푸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교회의 멤버십을 더욱 단단히 하고 다른 성도들과의 교제의 장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겠습니다. 
3) 가르쳐 지키게 하라 (= 양육)
 
20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여기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이란 예수께서 과거 공생애 기간 동안 제자들에게 명령했던 바로 그 ‘말씀들’ 즉 각각의 계명들 전부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 어떤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모두 다 소중한 것임을 잘 보여줍니다. 여기에는 예수님께서 친히 보였던 삶의 모범들도 포함됩니다.
 
또한 본절에서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은 예수께서 명한 모든 것들을 계속해서 지키도록 너희는 ‘그들을 계속적으로 가르치면서 제자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이 목적과 관련하여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단어는 ‘제자도(discipleship)' 또는 ’양육(edification)'입니다. 양육이란 신자가 그의 생각과 느낌 그리고 행동에 있어 예수님을 더욱 닮아가도록 도와주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성도는 거듭난 이후 남은 생애동안 계속적으로 예수님을 닮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전하고, 나아가 그들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교회에 소속된 모든 사람들은 영적인 성숙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부름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엡 4:12-13=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3. 교회의 5대 목적
 
예수님의 지상사역을 살펴보면 주님은 자신의 사역에 다섯 가지 (예배, 봉사, 전도, 교제, 양육) 요소를 포함시켰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역에서 이 다섯 가지를 이루었을 뿐 아니라 이것을 에베소서 4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5대 목적의 가장 분명한 예는 사도행전 2장에 묘사되어 있는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그들은 서로 가르쳤고, 함께 교제했으며, 예배했고, 봉사했고, 전도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목적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교화하고(edify) 격려하며(encourage) 경배하고(exalt) 구비하고(equip) 복음화하기(evangelize) 위하여 존재합니다. 

각 교회가 이 사명들을 어떻게 성취하는가에 있어서는 다를 수 있지만, 우리가 무엇을 하기 위하여 부름받았는가에 대하여는 이견(異見)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예배는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경배여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봉사는 내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섬김이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전도는 주님 원하시는 곳이면 어디든 누구에게든 차별없이 찾아가는 미션이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교제는 새가족을 받아 하나님의 가족으로 동화시키는 사랑의 멤버십이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양육은 예수님의 모든 교훈과 삶의 모범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교육이어야 하겠습니다. 

예배, 봉사, 전도, 교제, 양육의 삶이 여러분 개인의 삶 속에서, 가정 속에서, 구역과 전도회의 모임과 활동 속에서, 그리고 온 교회의 삶 속에서 역동적으로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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