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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향기(4) : 영향력(影響力) (엡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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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향기4 : 영향력(影響力) (엡 5:1-9)
 
 
❚악취 나는 기독교인, 악취 나는 교회

“나는 예수를 사랑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도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마하트마 간디가 한 말입니다. 비록 그는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그의 말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깊이 새겨들어야할 대목입니다. 간디가 이런 말을 남긴 데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힌두교 신자였던 그의 자서전을 보면 간디는 학창시절 성경을 진지하게 읽고 특히 마태복음 5~7장에 나온 산상수훈에 깊은 감명을 받아 기독교로 개종을 고려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간디는 영국의 교회에서 유색인종이란 이유로 쫓겨난 뒤 마음을 바꿉니다. 성경을 들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유색인종을 차별하고, 식민지를 탄압하는 기독교인들을 바라보며 간디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는 이 사건 이후 평생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하되 교회는 나오지 않는, 기독교는 믿지 않는 사람으로 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한 가지 얘기를 더 들려드리지요. “자네도 교회를 한 번 다녀보게.” 한 기독교인이 후배에게 신앙생활을 권고했습니다. 전도를 한 것이지요. 그런데 그 후배는 극구 사양합니다. “선배님, 저는 교회 안 갈 겁니다. 제가 아는 교회는 목사와 장로가 싸움이 났던데 그런 교회는 제가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자 선배는 후배에게 우리가 흔히 듣는 말, 아니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을 이렇게 했습니다. “아, 이 사람아. 우리가 예수님 보고 다니지, 교회를 사람 보고 다니는 것 아니잖아?” 그러자 후배는 이렇게 말합니다. 

“선배님, 그러면 선배님은 학교가 건물이 좋고 교훈이 좋으면 좋은 학교로 여겨 그 학교를 선택하겠습니까? 학생들도 중요하고 학교 분위기도 좋아야 선택하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말하며 후배는 끝까지 선배의 전도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이 후배는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감사원장을 지낸 모 변호사입니다. 그런 그가 기독교인이 된 것은 변호사로 일하며 무료로 변호할 수밖에 없었던 훌륭한 기독교인들을 만나고서부터였다고 합니다. 그들의 삶과 태도를 보며 “아,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도 있구나.” 하고 깨달아 그때부터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교회의 문을 막고 있는 사람 중에는 소위 예수를 믿고, 교회를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는 사람들 중에 오히려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닌 악취를 풍김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 문턱까지 왔다가 코를 틀어막고 인상을 쓰며 돌아서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 개인뿐이겠습니까? 

교회가 문제가 생기고 시끄러워지고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오히려 교회가 전도를 막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하트마 간디를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교회 문 앞에서 쫓아낸 기독교인들, 이 변호사가 목격한 다투고 싸우는 교회가 바로 여기 해당됩니다. 이런 기독교인들은 교회의 선한 영향력을 훼방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교회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교회답지 못한 교회입니다.

❚영향력

오늘은 <그리스도의 향기> 네 번째 시간으로 <영향력>(影響力)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이 ‘영향력’이라는 주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영향력을 끼치는 그리스도인과 전혀 끼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 두 가지 종류로 나누어지기 때문입니다.

어제 토요일 새벽기도회 시간에 큐티 교재인 <생명의 삶>을 통해 사도행전 말씀을 묵상하다가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사도행전 24장 말씀을 묵상했는데 5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이 말은 사도 바울을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큰 소요가 일어나 로마 군대에 체포됩니다. 로마 총독 벨릭스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되는데 이때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을 고발하기 위해 더둘로라는 변호사를 대동하고 재판정에 나옵니다. 이 더둘로가 사도 바울이 죄가 있다고 고발하는 대목이 바로 이 5절 말씀인데 더둘로는 바울이 두 가지 죄를 지은 죄인이라고 고발합니다. 첫째는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들에게 소요를 일으키는 정치적으로도 아주 위험한 인물이다. 둘째로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종교적으로도 위험한 죄인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명명백백한 죄를 지은 바울을 처벌해주시오 하는 말인데 이 고발 내용 중 우리의 흥미를 끄는 말이 하나 나옵니다. 바로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는 말입니다. 개역개정판 성경에는 ‘전염병’이라고 번역했지만 옛날에 읽던 개역한글판에는 ‘염병’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염병 아시지요? 지금은 이런 욕 잘 안 쓰지만 옛날에는 누구 보고 “이런 염병할 놈”이라고 부르면 아주 큰 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염병’이 뭘까요? 장질부사라고도 부르던 장티푸스, 아주 무서운 전염병입니다. 즉 “이런 염병할 놈”이란 이 장티푸스에 걸려 죽을 놈이라는 뜻이니 얼마나 큰 욕입니까? 이 염병이 바로 ‘전염병’이라는 뜻입니다.

즉, 더둘로 변호사는 지금 사도 바울이 ‘염병’ 즉 ‘전염병’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하필이면 바울 보고 ‘전염병’이라고 불렀겠습니까? 그것은 바울의 영향력이 그만큼 컸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가는 데마다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고, 바울이 설교하고 바울이 전도할 때마다 엄청난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얼마나 몸서리 쳐지도록 긴장했겠습니까? “어떻게 이 바울이라는 놈은 가는 데마다 이렇게 엄청난 일을 벌이나?” 싶었겠지요. 그래서 지금 바울 보고 ‘전염병 같은 놈’이라고 욕한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전염병 같이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이단의 괴수라고 고발한 것이지요.

그런데 저는 이 말이 참 귀하게 느껴집니다. 분명 유대 종교지도자들이나 변호사 더둘로는 지금 바울을 욕하고 있지요? 바울을 전염병 같은 놈이라고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욕과 고발을 통해 오히려 우리는 사도 바울의 위대함과 그의 놀라운 영향력을 느끼며 더욱 바울을 존경하게 되지 않습니까? 분명 욕인데 그 욕이 오히려 바울을 더 인정해주는 말이 되고 바울을 더욱 드높여주니 놀랍지 않습니까? 바울에게는 또 하나의 별명이 있었습니다. 바로 ‘미친 놈’입니다. ‘전염병 같은 놈’ ‘미친 놈’ 주로 바울의 별명은 ‘놈’ 자가 들어가네요? 사도행전 26:24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이번에는 사도 바울이 유대의 왕인 아그립바와 새로 부임한 총독 베스도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됩니다. 이번에도 바울이 담대하게 그들 앞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니까 총독 베스도가 바울에게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바울아, 너 미쳤냐? 네가 하는 말을 들으니 너무 공부를 많이 해서 미쳤나보다”라고 말입니다. 한 마디로 바울에게 ‘미친 놈’이라고 부른 것이지요.

우리는 이 ‘미친 놈’이라는 욕을 통해서도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이게 욕이 아니구나.” 하고 말입니다. 이건 욕이 아니라 오히려 바울을 인정한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에 미친 사람이고 예수에게 미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살겠습니까? 복음에 미치고 예수님에게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바울처럼 살고 바울처럼 행하겠습니까?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우리 또한 적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특히 안 믿는 사람들에게 이 말 한 번은 들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친 놈’ 소리 말입니다. “저 사람 예수에 미친 사람이야” 하고 말입니다. 적어도 ‘광신도’ 소리 한 번 들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미친 놈, 광신도’ 소리가 욕으로 들리십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를 인정해주는 말입니다. ‘전염병 같은 놈’ 소리가 욕으로 들리십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가는 데마다 끼치는 놀랍고 선한 영향력을 인정해주는 말인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마귀 사탄은 우리가 별 볼 일 없는 그리스도인일 때는 절대 건드리지 않습니다. “쟤는 가만 내버려둬도 별로 영양가가 없다. 아무 영향력도 못 미치고 그저 교회 왔다 갔다 하는 수준, 겨우 자기 하나 예수 믿는 성도다.” 하면 절대 우리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쟤는 가만 두면 안 되겠다. 자꾸 믿음이 자라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쳐서 우리에게 위협이 된다” 싶으면 우리를 건드리고 시험하고 넘어뜨리려 들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안티 기독교에서 우리를 향해 ‘기독교’가 아니라 뭐라고 부릅니까? ‘개독교’입니다. ‘목사’가 아니라 ‘먹사’고 ‘집사’가 아니라 ‘잡사’입니다. 참 듣기 싫은 욕입니다. 그러나 저는 한편으로 다른 생각도 해봅니다. “아직은 기독교가 영향력이 있나 보다.” 만약 기독교가 정말 별 볼 일도 없고 힘도 영향력도 없어져서 가만 내버려둬도 힘을 못 쓰게 된다면 그들은 더 이상 우리를 욕하지도 건드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기를 쓰고 욕하는 것을 보면 아직은 우리 교회와 기독교가 살아있기는 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저 사람 전염병 같은 사람이다”라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가는 곳마다 “저 교회, 참 전염병 같다.” 소리 들어야 합니다. 우리 효자교회가 포항시내와 전국에서 “저 교회는 성도들이 다 아주 미쳤어. 저 교회는 정말 전염병 같은 교회야.”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살아있는 교회요 희망이 있는 교회입니다. 왜요? 우리 교회가 영향력을 끼치고, 우리 효자교회 성도들이 가는 데마다 영향력을 미친다는 증거 아닙니까?

❚영향력을 끼치려면?

자, 그러면 우리 성도들이, 또 우리 교회가 이렇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인 에베소서 5장으로 들어가 봅니다. 여기에는 왜 우리가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끼칠 수 있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부터 봅시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1절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존경하고 본받으려면 그분을 닮아가야 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을 본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기 원하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야 합니다.

계속해서 2절 말씀 봅시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닮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두 가지 나옵니다. 예수님처럼 “사랑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또 예수님처럼 자신을 버리고 ‘희생’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우리 교회가 세상에 진정한 영향력을 끼치려면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짜로 아무 대가 없이 되는 게 아닙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사랑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저 사람들 진짜 사랑으로 행하는 사람들이다”라고 인정하고, 우리 교회를 보고 “진짜 희생하는 사람들이다”라고 인정할 때만이 우리가 진정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3절부터는 선한 영향력을 위해 해서는 안 될 금기사항들이 나옵니다. 같이 찾아봅시다.

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음행’, 이것은 성적 타락입니다.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행하지도 말고 이름조차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우리의 행실에 관한 것입니다. ‘누추함’, 이것은 두 주 전에 나눈 말씀인 품격의 반대말입니다. 천하고 수준 낮은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고 ‘어리석은 말’(불평불만, 분별 없는 말)이나 ‘희롱의 말’(남을 놀리고 비판하거나 깎아내리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대신 ‘감사하는 말’을 해라, 여기까지는 우리의 언어생활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말 말과 행실에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 없는 것처럼 보이지요? 절대 압니다. 유심히 우리 행동을 지켜봅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우리가 하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행실이나 말이 신통치 않으면 “에이, 뭐 우리 하는 짓하고 똑같이 하네? 우리 하는 말하고 똑같이 남 욕하고 비난하고 상스러운 말 하네?” 싶으면 우리를 바로 무시합니다. 깔봅니다. 반대로 좀 다르다 싶으면 은근히 우리를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은 절대 더러운 행실, 본이 되지 못하는 행실을 하지 말고, 말도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행실이 세상과 다르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 그들에게 인정받지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8~9절은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합니까? 같이 읽읍시다.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더 이상 어둠의 자녀가 아니라 빛의 자녀입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9절에 말씀한 대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 차별된 언어행실을 보여주지 못하면 우리는 더 이상 아무 영향력도 갖지 못한 무기력한 교회, 별 볼 일 없는 성도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5톤의 장미

기독교 포털사이트인 갓피플 닷컴에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조사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의 삶과 교회가 바로서면 그 영향이 사회에 미칠 것을 믿느냐?” 그랬더니 응답자 중 66.4%가 “확실히 그렇게 될 것이다”라고 응답했고 25.9%가 “아마 그럴 것이다”라고 응답했습니다. 크리스천들뿐 아니라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92.3%가 크리스천의 삶이 바뀌고 교회가 바로 서면 세상에 선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지역과 이웃을 살피고 이 시대를 책임져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어두움의 땅을 선한 영향력과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무엇을 통해서 가능할까요? 오늘 본문인 에베소서 5장은 ‘사랑으로 행’하는 것과 ‘희생’이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말씀 맺습니다. 여러분, 샤넬 No.5라는 향수 이름 다 들어보셨지요? 대표적인 프랑스산 꽃향기 향수인 ‘넘버5’는 1921년 처음 출시된 이래 90년 넘게 세계 여성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이 향수는 프랑스에서 재배되는 장미와 자스민 향을 사용하는데 장미향 1㎏을 얻으려면 장미꽃잎을 얼마나 따야 하는지 아십니까? 무려 5톤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동이 트기 전에 일일이 사람 손으로 따야만 향이 제대로 삽니다. 우리가 좋은 향기를 내기 위해서 투자하고 공을 들여야 할 것이 참 많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5톤의 ‘사랑’과 ‘희생’으로 세상을 섬기지 못하면 우리는 절대 향기를 낼 수도 영향력을 끼칠 수도 없게 됩니다. 우리가 엄청난 ‘노력’과 ‘투자’를 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아니, 오히려 우리가 향기도 못 내고 영향력도 못 끼치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선한 영향력을 방해하고 악취를 풍기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말과 자세 하나 때문에 간디가 교회 문 앞에서 쫓겨나고 다른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는 문을 가로막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 앞에서 사람들이 악취 때문에 코를 막고 돌아서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효자교회 창립 67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이 뜻 깊은 주일에 우리 효자교회가 긴 역사와 더불어 진정 아름다운 향기를 지역과 포항 전역에 낼 수 있는 교회, 선한 영향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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