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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순교자의 설교(4) (행 7:4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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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의 설교(4) (행 7:44-53)

편견(prejudice)이란? 공정하지 못하고 한 쪽으로 치우친 사고(思考)나 견해를 말한다. 어떤 집단이나 그 집단에 속한 개인들에 대한 근거없는 부정적 태도(attitude). 즉 사실적인 근거 없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 선입견에 의해 형성된다. (예) 서울 사람들은 이기적이다, 최씨들은 고집이 세다. 유대인은 돈만 안다 등. 

편견과 비슷한 개념의 용어가 있는데 “고정관념(stereotype)”이란 말이다. 이 고정관념은 편견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고정관념은 다음 세가지의 특징을 갖고 있다. 

(1) 지나친 일반화(overgeneralization) - 대부분의 고정관념은 한 두 사람(혹은 사례)의 행태를 보고 듣고 형성된 것으로, 각 개인의 차이를 무시하고 한 집단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서 본다. 

(2) 부정확하다(inaccuracy) 

(3) 잘 변하지 않는다(resistance to change) - 자신의 고정관념과 다른 정보를 들어도 한번 형성된 고정관념은 잘 바뀌지 않는다.

고정관념과 편견의 대표적인 사람들이 유대인이다. 유대인들은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가?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는 선민사상이고 둘째는 성전주의 셋째는 율법주의 사상이다. 

이와 같은 사상들은 불필요한 우월 의식을 갖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과 민족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와 같은 편견의 첫 번째 희생자가 바로 스데반 집사였다.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 관념과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는가에 대하여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스데반 집사는 초기 예루살렘교회의 충성된 성도였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가난한 성도들을 돌보는 봉사를 잘 감당했을 뿐 아니라, 복음 전도의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유대인의 회당에서 전도하였다. 

그는 자신이 헬라파 유대인이었기에 특별히 헬라 지역에서 온 유대인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의 회당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스데반을 산헤드린 공회에 고발하였다. 이유는 그들의 편견에서 비롯된 것들, 곧 그들이 소중히 신처럼 모시는 “성전과 율법을 모독하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 대하여 적대적 감정을 가지고 있던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신속히 재판정을 개설하고 스데반 집사를 피고로 세웠다. 재판장인 대제사장 가야바가 스데반 집사에게 물었다. “이것이 사실이냐?”(행 7:1). 사실로 확인만 되면 엄중한 처벌을 내릴 기세로 추궁하였다. 

스데반 집사에게 변론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 자리에는 유대의 모든 공회원들과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다 모여 있었다. 일개 평민에 불과한 스데반 집사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누가는 스데반 집사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행 6: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스데반 집사는 먼저 유대인들의 존경과 자랑거리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하여 증거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요셉에 대하여,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세에 대하여 증거하였다. 이어서 오늘 본문에서는 성막과 성전에 대하여 변론하면서 역시 유대 역사 가운데 중요한 인물인 여호수아와 다윗, 솔로몬에 대하여 증거하였다. 스데반 집사의 이 유명한 변론, 설교가 되어버린 이 변론은 전체적으로 3가지 주제로 요약될 수 있다. (구약주석가 스탠리 토우센트 참고).


1.하나님의 계획 안에는 발전과 변화가 있다

스데반 집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부분적으로 보지 않고 전체적으로 보았다. 그가 발견하고 깨달은 사실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는 발전과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 특히 이스라엘을 돌보심에 있어서 창조적이고 혁신적이시다. 스데반 집사는 이 사상을 다섯 개의 요점으로 전개했다.

1)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2-8)
창 12:1 ...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메소보다미아라는 이방에서 약속의 땅으로 부르시고,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조상이 될 12명의 손자들을 주셨다.

2)요셉을 구원자로 세우심(9-16)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가족의 구원자로 삼으셨다. 그리고 애굽으로의 이주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번성할 수 있는 환경 가운데 살게 하셨다. 그곳에서 그들은 하늘의 별 같이 번성하게 되었다. 

3)모세와 출애굽(17-43)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일어나서 강대해진 이스라엘 민족을 핍박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 후손인 모세를 세우셔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삼으셨다. 80세의 모세가 자기 민족을 이끌고 애굽을 탈출하였다. 

4)성막 세움(44-45)
44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그가 본 그 양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성막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만남의 장소였다. 레위 지파 중에서 제사장을 삼고 광야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리고 여호수아에 의해 약속의 땅으로 이동하여 가지고 들어갔다.

45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5)성전 건축(46-50)
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다윗은 성전 건축에 대한 열망은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는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를 해 놓았다. 그리고 아들 솔로몬에 의해 성전이 건축되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징표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사시는 집 자체는 아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솔로몬까지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 하나님이 하신 일 중에는 혁신과 변화가 있었다. 그렇다면 스데반 집사의 변론의 요점은 분명하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역사에 이렇게 많은 변화를 일으키셨다면, 유대인들이 붙잡고 있는 “율법과 성전”으로 그쳐질 것인가?

스데반 집사의 주장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 과정은 성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하여 발전되고 변화되어져 왔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율법과 성전을 넘어서 율법의 마침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친히 그리스도께서 성전되신 것을 증거한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였고 지금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2.하나님의 축복은 이스라엘 땅과 성전에 국한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 조상들이 받은 가장 큰 은혜는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땅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스데반은 네 가지 예를 들고 있다. 

1)아브라함, 요셉, 모세.
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곳은 어디인가? 아브라함은 메소보다미아에서 부르심을 받았고, 요셉은 애굽에서 총리가 되었고,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 노릇하다가 부름을 받았다. 

2)율법 자체는 이스라엘 땅 밖에서 받았다.
십계명과 율법을 받은 곳이 어디인가? 이스라엘 땅이 아니다. 출애굽하고 난 후 시내 광야에서 율법을 받았다. 

3)장막은 사막에 세워졌다. 
장막이 세워진 곳은 어디인가? 역시 이스라엘 땅이 아니다. 장막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광야에 있을 때 세웠다. 그리고 여호수아에 의해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 가지고 들어왔다(45절). 

4)성전도 하나님을 제한할 수 없다(49절)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성경이,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다”라고 선포하는데 성전이 어떻게 하나님의 처소가 되겠는가? 솔로몬이 성전 봉헌식 때 이렇게 기도했다.

왕상 8: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스데반 집사가 이런 사례들을 인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가 성전이나 유대 땅에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조상들이 이방에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성전이나 이스라엘 땅에 갇혀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 세계 가운데서 역사하시고 나타나신다.


3.과거의 이스라엘은 항상 하나님의 계획과 선지자들에 대하여 배반하여 왔다(51-53)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이것은 스데반 설교의 결정적인 확신이며 주된 요점이다. 이것은 마치 편견과 고정 관념에 사로 잡힌 강퍅한 공회원들의 심령을 향하여 내리치는 해머질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마치 핵폭탄과 같은 강한 펀치를 공회원에게 날리는 것과 같다. 

너희는 너희 조상과 꼭 같다. 너희는 항상 성령을 거스른다. 이 주제는 이 메시지 전체를 통해 보여지지만 몇 가지 뚜렷한 것들이 있다. 

1)아브라함
아브라함이 메소보다미아에서 약속의 땅으로 바로 가지 않고 하란에서 머물렀던 것(2-4)

2)형들의 시기
형들의 시기로 말미암아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갔던 것(9).

3)모세를 거부함
고통당하는 동족을 도우려고 했으나 동족에 의해 거부당함(23-29, 13, 35-36)

4)광야에서 
광야에서 끊임 없는 불평과 불순종 그리고 우상숭배. 그리고 약속의 땅에서 불순종, 우상숭배(39-43)

5)성전의 중심을 잃음(48-50)
진정한 회개와 참된 예배의 장소가 아닌 형식적인 예배, 종교 행위의 장소로 전락해 버렸다. 실제로 성전은 예배와 기도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의 집은 아니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크게 분노하셨던 한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셨을 때 성전에서 이뤄지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 분개하셨다. 

요 2: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스데반은 유대인들이 성전을 하나님의 지상의 처소로, 마치 유대의 올림푸스 산처럼 여긴다는 점을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하나님은 더 이상 사람의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거룩한 장소인 성전에서 조차 훼손되고 있었던 것이다. 성전을 모독한 것은 스데반이 아니고 실제로는 스데반을 고소한 유대인들과 유대교의 지도자들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최대의 불순종은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것이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스데반 집사는 역사적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인물들과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은례를 베푸셨던 것과 항상 성령을 거스르며 불순종했던 유대인들의 죄를 고발하였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잘못된 고정 관념과 편견 때문이었다. 


교훈과 적용

1.복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한다.
스데반 집사의 마음을 뜨겁게 했던 원인은 바로 복음이다. 구약의 율법의 완성으로 오신 분, 눈에 보이는 성전이 아닌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되심을 깨달았을 때 그의 심장은 고동을 쳤고, 맥박은 뛰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오해하고, 왜곡하고 있다. 복음에 대한 무지가 드러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들이 기복주의, 신비주의, 은사주의, 세속화 현상이다. 대학 진학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 버리고, 사업과 건강의 방편이라면 성전과 율법만 붙잡고 있는 유대교인들과 같다. 껍데기만 남아 있느 것이다. 편견을 버리고 복음에 대하여 바르게 알고 있어야 한다.

2.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해야 한다. 
항상 성령을 거스렸던 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일에 저항하고 대적하는 이유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둔감하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 자기 경험, 자기 지식의 벽을 깨뜨려야 한다. 

3.담대함과 용기 있는 자세
스데반 집사님과 같이 공회원들 앞에서도 조금의 흔들림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실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스데반 집사가 용기 있는 사람이란 뜻이 아니고 스데반 집사의 심령을 지배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충만할 때 담대할 수 있는 것이다. 

12제자들도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령께서 임하신 후 그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였다.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그리고 예루살렘과 유대의 울타리를 넘어서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었다. 자신의 울타리를 뛰어 넘자. 불신 가족에게로, 이웃에게로, 다른 나라 다른 민족에게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복음을 잃어버리고 화려한 교회당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스도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교회의 조직, 이익에만 급급한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 없는 건물에 불과하다. 

성전 정결 사건

요 2: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바로 성전되시며, 바로 그분이 율법의 마침이 되신 분이시다.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출 때 우리도 스데반 집사님과 같은 열정으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담대하게 증거하며 자랑하며 승리의 삶을 살게 될 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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