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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하는 자들아 주 안에 서라! (빌 3: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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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자들아 주 안에 서라! (빌 3:17-4:1)


요즘 새롭게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의 고위 공직자 인선을 놓고 말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가 특정 업무 경비 사용 문제 때문에 국회 인사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김용준 총리 후보자는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되자 스스로 사퇴하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국방장관 후보자와 법무장관 후보자에 대한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국회 인사 청문회가 너무 심하게 다루는 것 같다고 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그만큼 국민들의 기대가 높아진 것 아니겠느냐고 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좀 심한 것 같지만 그래도 고위 공직자들의 삶은 바르고 또 깨끗해야 합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부모들이 한결같이 원하는 것은 자녀들이 잘 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정신을 가진 부모라면 자녀가 잘못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가 잘 되는 것은 간절히 원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잘 모르기 때문에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녀 교육 문제부터 그렇지 않습니까? 참 어렵습니다. 요즘처럼 공교육 현장이 무너진 상황에서는 더욱 어렵습니다. 야단을 치고 매를 든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조기 유학을 보내고 고액 과외를 받게 해도 별 효과가 없지 않습니까? 과연 어떻게 해야 좋습니까? 여기 아주 효과적이고 또 별로 비용도 들지 않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이란 부모가 먼저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본을 보여 주면 자녀들은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은 죽음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찾아갈 수도 없고 또 만날 수도 없는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그가 눈물로 써 보낸 편지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1차 선교 여행 때 복음을 전해서 유럽 땅에 처음으로 세운 교회입니다. 그 동안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교회가 세워진 후 아마 1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을 것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12) 삶이 끝나가고 있지만 그는 종지부를 찍지 않았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간이 흐르면 굳어지고 또 낡아지게 마련입니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기력이 떨어지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는 일어섰습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그가 분명히 말하지 않았습니까? 누가 뭐래도 그는 하나님 앞에서 푸른 청춘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힘껏 달려온 그는 비록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꺾일 줄 모르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안목으로 볼 때에 사도 바울의 헌신 때문에 인류의 역사가 바뀌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만약 그가 없었으면, 아니 복음 전파를 위한 그의 헌신이 없었으면 기독교는 오늘과 같이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는 불과 30여 년 동안에 그렇게 큰일을 감당했습니다. 그렇게 애쓰다가 이제 나이가 들어 노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만 쉴 때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완성을 선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경주가 여기서 끝날 수 없다고 외쳤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왜 그랬습니까? 그 까닭은 그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늘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이 사도가 되었다고 잊지 않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그렇습니다! 그를 불러 주시고 또 세워 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 사도 바울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언젠가 하늘 나라에 이르게 될 때를, 이 경주를 다 마치고 주님의 보좌 앞에 서게 될 그 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충성스럽게 이 경주를 달려온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려고 주님이 부르실 그 때를 바라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는 바로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표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4) 시상대 위에서 이름을 부르실 때에 대답하며 뛰어나갈 그 때까지 중단하지 않고 이 경주를 달리겠다고 그는 굳게 결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빌 3:17 상반절)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잘 살았을지라도 자기처럼 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녀들이 “나는 아빠처럼 살아야지.”라고 말할 수 있고 제자들이 “나는 스승처럼 살아야지.”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래도 자녀들이나 제자들에게 자기처럼 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빌립보 교회 안에도 그렇게 잘 살았던 사람은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가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 3:18 하반절~19) 예나 지금이나 먹는 것과 즐기는 것과 주머니를 채우는 기쁨으로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오늘도 교회의 지도자로 세우심을 받았으면서도 썩어질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도 본받을 모델이 필요한 것처럼 빌립보 교회 성도들도 보고 닮아야 할 모델이 필요했습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과감하게 “나를 본받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자신을 향한 채찍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말하는 부모가 정작 자기는 전혀 책도 읽지 않는다면 그 말이 과연 설득력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본받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헛된 것을 구하느라고 교회 안에 다툼이 생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말한 것은 아직은 믿음의 경주를 중단할 때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믿음의 경주를 달림에 있어서 마지막 테이프를 끊을 때까지 더 열심히 달려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도 주위를 둘러보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달리는 것을 중단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체로 그런 사람들은 그 동안 참 잘 달려왔습니다. 인간적인 안목으로 볼 때에 충분히 상을 받을 만한 자격도 있습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그리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정말로 많이 수고한 것도 사실입니다. 교회 안에서 어느 정도 영광을 받아도 별로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이유로도 이 믿음의 경주에 있어서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에게 그토록 큰 기쁨을 안겨 줬던 빌립보 교회 안에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닙니다. 달리는 것을 중단했기 때문에 빌립보 교회 안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눈물을 흘리며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경주를 중단하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이라고 그가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중단하지 말고 끝까지 달림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에게 나아갈 것을 간곡히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는 결코 책망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최고의 찬사를 곁들여 당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빌 4:1) 그렇습니다! 끝까지 주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설 때 비로소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결코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과연 남들에게 우리처럼 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믿음에 있어서는 우리처럼 믿으라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과 세상에 속한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끝까지 푯대를 향하여 온 힘을 다해서 달려가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앞서 가신 주님을 끝까지 따라감으로 말미암아 장차 그 주님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 노릇하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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