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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나니아와 삽비라 (행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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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니아와 삽비라 (행 5:1-11)  

 
미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고등학생 4명이 연휴를 맞이하여 해변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재미있게 놀다보니 어느덧 연휴 기간이 다 지났습니다.
내일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아름다운 해변을 두고 가기엔 너무나 아쉽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꾀를 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타이어가 펑크나 도저히 올 수가 없어서 불가피하게 결석을 하게 되었다고 핑계를 대기로 하고 하루를 더 놀다갔습니다.

다음날 담임선생님은 결석한 4명의 학생을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그 학생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사실은 자동차 바퀴 때문이었다.’고 둘려댔습니다.
지혜로운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며 종이를 내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어제 수업시간에 우리는 간단한 시험을 보았는데 (퀴즈라고 하지요) 너희도 간단한 시험을 보면 좋겠군.’ 각자 답을 써서 내길 바란다.
그 문제는 이렇습니다. 
“너희들이 타고 온 차량의 어느 바퀴가 펑크가 났느냐?”
그 문제를 받은 학생들은 얼마나 난감했겠습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어느 바퀴가 펑크 났다고 약속할 걸.......

사람도 속일 수 없는데,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을 속이려 하다가 죽어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입니다.
그 이름들의 뜻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아나니아’는 구약에 흔한 이름인 ‘하나냐’와 같은 이름인데, 그 뜻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입니다. 
그리고 ‘삽비라’는 ‘아름답다’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보석인 ‘사파이어’가 바로 ‘삽비라’와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아름답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이름대로 살지 못하고, 사도들 발 앞에서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이런 말씀은 성경에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성경에 기록된 것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비극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1. 이 비극은 ‘속임’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본문 3절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절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9절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우리가 거짓말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모르지만, 거짓말이 참극의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거짓말 안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라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거짓말은 ‘인생비극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민족의 지도자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우리 민족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 장난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 꿈에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

우리가 거짓말을 할 때 내 앞에 있는 사람만 속인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내 위에 있는 하나님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사람인 베드로만 속이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거짓말이란 사람 사이의 거짓말만이 아니라 동시에 사람 위에 있는 하나님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네가 나를 속이려고 하는구나.”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을 속인다.’고 지적합니다.
3절 “네가 성령을 속이고” 
4절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9절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말에 신용이 있는 사람이 됩시다. 
이집트에 있을 때 사업하는 사람들과 교제를 적지 않게 했습니다.
똑같은 사업 환경인데 어떤 사람은 사업에 성공하고 어떤 사람은 성공하지 못할까요? 
사업에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바로 ‘신용’이더라고요.
손해 보더라도, 아니 감옥에 가더라도 신용 지키는 사람은 결국 사업에 성공하더라고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넘어갈 사실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려고 할 때, 나는 지금 사람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속이기까지 하면서, 소유를 팔아 베드로에게 내놓아야 했나요? 
그것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하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으려는 욕구 때문입니다.
성경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을 팔아 바치겠다는 동기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문의 전후 문맥을 통하여 그 동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이야기를 행4:36-37절의 바나바의 헌신과 대조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영어번역으로 보면 ‘But'이라는 접속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But there was another man"
행4:37절에 의하면,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바나바’라는 이름은 사도들이 붙여준 별명으로서 그 뜻은 ‘권위자’(권고하고 위로하는 자) 입니다.
바나바는 기쁨으로 자기 재산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 진실한 헌신의 행위가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이 되고, 격려가 되고, 기쁨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아까운 줄 모르고 주님께 바칠 수가 있을까?”
“저 바나바의 헌신을 받으시고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실까?”
“저의 헌신의 땀방울이 저럴진대, 하나님 앞에서 받을 면류관의 보석들은 얼마나 영롱할까?”
바나바는 초대교회 성도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부러움과 존경을 샀을 것입니다.
이런 바나바에 대한 사람들의 칭찬이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엉뚱하게 자극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욱 의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칭찬을 기쁨으로 알아야 합니다.
사람 앞에 잘 보이려고 사람에게 이름을 내고 싶어서 사람들로부터 칭찬받고 싶어서 하는 행위들은 그것이 아무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되어진다하더라도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마6:2에서 주님도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남을 섬기려고 하는 성도들이 가장 조심하고, 주의해야할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하나님을 향하던 순수한 눈길이 사람을 향하는 탐욕스러운 눈길로 변하는 것은 참으로 일 순간의 일입니다.
사역자들이 때때로 두려움을 느끼면서 반성해야 하는 것도 “이거 철저하게 헌신도 못하면서 예수 팔아 사람들의 박수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점입니다.

여러분 ‘솔로몬의 지혜’에 대하여 알고 계시지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솔로몬은 그 지혜 때문에 평생 ‘부와 영광’을 얻은 왕입니다.(왕상3장)
지혜란 무엇이지요?
지혜란 ‘머리가 좋다’거나 ‘지식이 많다’라는 말과 다르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지혜란 무엇인가?
지혜란 ‘하나님의 뜻에 민감한 태도’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뜻이 아니에요! 
사람의 입장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뜻에 민감한 태도입니다. 
그 지혜로 축복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에 민감함으로 큰 축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2. 이 비극은 좋은 신앙의 반려자가 없었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1절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2절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9절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성경은 아나니아가 하나님을 속이는 일에 그 아내와 함께 공모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많은 회중 앞에서 하나님께 자기의 땅을 팔아드리겠다고 서약함으로써 교인들로부터 크게 칭찬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그 땅을 팔아 돈을 쥐고 보니 그 액수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래서 생각이 달라진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돈을 모두 바칠 필요가 있겠는가?’
‘이 돈은 어떻게 벌은 돈인데.......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고 벌은 돈인데.......’
‘마음이 중요한 거지, 물질의 액수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할 테니까 조금 떼어 놓는 것은 하나님이 이해하실 거야.’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고 했는데 내가 이 공동체의 모든 짐을 짊어질 필요가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부부간에 많은 대화를 나눴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부부간에 머리를 맞대고 주님의 영광과 선한 일을 위하여 의논하고 힘을 다하는 부부가 나옵니다.
또 악을 도모하고 타락을 위하여 짝을 맞춘 부부도 나옵니다.
전자의 좋은 예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입니다.
행18:2절, 딤후4:19절에 의하면 이 부부는 바울사도를 도와서 고린도교회를 세우는데 힘과 정성을 다 쏟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힘들고 고된 복음 전도의 길이지만 이 부부를 생각하면서 늘 감동받고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 한번 생각해봅시다.
설령 남편인 아나니아가 욕심이 생겨서 몇 푼을 감추려고 한다 해도 그 아내 삽비라가 좋은 신앙의 반려자였다면 그런 비극은 당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여보, 무슨 말씀이세요? 하나님이 보시고 계시는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약속대로 하세요!”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들을 굶겨 죽이겠습니까? 믿음으로 드리세요!”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얼마나 기쁘시게 받으시겠어요. 처음 먹은 마음대로 하세요. 용기를 내세요!”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랑하는 부부 여러분!
여러분은 함께 타락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함께 그리스도를 닮아갑니까?
여러분은 더불어 불신앙적이 되어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더불어 신앙적이 되어가고 있습니까?
“여보! 오늘 몸도 찌뿌듯한데 하루 쉬었으면 좋겠어. 교회는 다음 주일에 나가면 되지 않겠어?”
그러면 아내가 부엌에서 “생각대로 하세요. 나도 할 일이 많은데 하루 빠지지 뭐.....”
“아직 머리 손질도 못했는데........”

이렇게 되면 여러분은 함께 불신앙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함께 타락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아내가 부엌에서 “어서 일어나세요. 이 복된 날을 빼먹을 작정이세요. 애들이 보고 배워요. 어서 일어나세요.”
이렇게 되면 여러분은 함께 신앙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함께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함께 인생 성공자가 되어갑니다.

창2:18절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부부는 돕는 배필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육체적인 유익도 주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는 물질적인 유익도 주어야 합니다.
또 남편과 아내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유익도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남편을 신앙적으로 유익하게 합니까? 여러분은 아내를 신앙적으로 유익하게 합니까?

3. 이 비극은 회개할 기회를 거절했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이 문제를 놓고 며칠 밤낮을 고민했을 것입니다.
고민하는 순간마다 마음 뒤 쪽에서 성령께서 ‘이래서는 안 된다.’라고 권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회개할 기회를 거절합니다.
이제 회개할 마지막 기회가 왔습니다. 
베드로는 3절에서 이렇게 책망합니다.

3절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어쩌면 이것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지 모릅니다.
그때 아나니아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십시오.”라고 회개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이런 비극을 당하게 된 것은 처음부터 의도된 징계가 아니라 회개의 기회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지옥은 죄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고, 회개의 기회를 거절했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두 종류의 죄인일 뿐입니다.

① 자기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구원받은 죄인과
② 자기 자신의 죄를 회개치 않은 멸망 받을 죄인입니다. 
다 죄인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에게 내일도 회개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맙시다.
회개의 문은 영원히 열려 있는 문이 아닙니다.
닫히지 않는 회개의문, 지옥이 없는 천당, 형벌이 없는 죄의 용서는 말장난일 뿐 진실은 아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진정으로 복음이 되려면, 회개의 문이 닫힐 때가 있어야 합니다.
천당은 지옥이 있어야 참 의미가 있습니다.
죄의 용서는 형벌이 있어야 비로소 가치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비극을 당한 것은 회개의 기회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비극을 당한 것은

① 속임 때문에
② 좋은 신앙의 반려자가 없기 때문에
③ 회개의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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