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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사밧에게 길을 묻다 (대하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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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사밧에게 길을 묻다 (대하 17:1-9)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침략을 막으려고 국방을 튼튼하게 하였다. 그는 요새화된 유다의 모든 성읍에 군대를 배치하였고, 유다 전국과 그의 아버지 아사가 정복한 에브라임 여러 성읍에 수비대를 배치하였다. 여호사밧이 왕이 되면서부터, 그의 조상 다윗이 걸어 간 그 길을 따랐으므로, 주님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계셨다. 여호사밧은 바알 신들을 찾지 아니하고, 다만 그의 아버지가 섬긴 하나님을 찾으며, 그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고, 이스라엘 사람의 행위를 따르지 않았으므로, 주님께서는 여호사밧이 다스리는 나라를 굳건하게 해주셨다. 온 유다 백성이 여호사밧에게 선물을 바치니, 그의 부귀와 영광이 대단하였다. 

그는 오직 주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살기로 다짐하고, 유다에서 산당과 아세라 목상을 없애 버렸다. 그는 왕이 된 지 삼 년째 되는 해에, 지도자들인 벤하일과 오바댜와 스가랴와 느다넬과 미가야를 유다 여러 성읍에 보내어, 백성을 가르치게 하였다. 그들과 함께 레위 사람들, 곧 스마야와 느다냐와 스바댜와 아사헬과 스미라못과 여호나단과 아도니야와 도비야와 도바도니야, 이런 레위 사람들을 보내고, 또 그들과 함께 제사장 엘리사마와 여호람을 보냈다. 그들은 주님의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 전국을 돌면서 백성을 가르쳤다. 그들은 유다의 모든 성읍을 다 돌면서 백성을 가르쳤다.]

• 초심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우수 절기를 지나면서 우리 마음도 부드럽게 풀렸으면 참 좋겠습니다. 눈이 녹아 길이 조금 질척거리기는 했어도, 눈석임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에 절로 봄빛이 배어드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역사의 또 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서 세상이 크게 바뀌지는 않지만 그래도 새로운 대통령을 통해 우리나라가 조금 더 따뜻하고 평화롭고 활기차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통치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나라는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나뉘었습니다. 성전과 궁전을 짓는 일에 필요한 재원과 인력을 충당하기 위해 부과했던 과중한 세금과 강제노역이 결국 분단이라는 비극을 낳았던 것입니다. 남왕국은 다윗 가문의 혈통이 이어졌지만, 북왕국은 계속되는 정변으로 정권이 바뀌곤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남왕국의 한 시기에만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성경의 역사서를 읽다 보면 한 가지 사실에 주목하게 됩니다. 통치 초기에 예언자들의 충언을 귀담아 들으면서 선정을 베풀던 왕들도 어느 정도 권력에 맛을 들이게 되면 너나할 것 없이 하늘의 소리에 귀를 닫아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예언자들을 통해 들려오는 쓴 소리를 싫어하는 순간 그들은 한결같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여호사밧 왕의 아버지인 아사 왕도 그랬습니다. 그는 초기에는 아사랴 예언자의 충언을 기꺼이 받아들여 선정을 베풀었지만, 나중에 등장하여 왕의 통치를 꾸짖었던 하나냐 선지자는 감옥에 가둬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언자의 말에 귀를 닫으면서 그는 백성들을 학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초심을 잃었던 것입니다.

‘초심을 잃지 말라’는 말은 진부하게 들립니다만 우리가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될 말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 받았습니다(계2:4). 도대체 어떻게 해야 첫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요? 자꾸만 자기 마음을 주님께 비끌어 매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타고르의 <기탄잘리>를 읽다가 감동했습니다. 

“나는 잠시 동안이나마 당신 옆에 앉을 은총을 구합니다. 지금 하던 일은 뒷날 마치겠습니다./당신의 얼굴 모습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면 내 가슴은 안식도 휴식도 없고, 나의 일은 가없는 고통의 바닷속 끝없는 고통이 됩니다./오늘 여름은 산들거리고 속삭이며 내 창가에 왔고 벌들은 꽃덤불 정원에서 부지런히 시를 읊습니다./지금은 말없이 당신과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이 조용하며 넘치는 안일 속에서 생명의 헌사를 노래할 시간입니다.”

하던 일을 잠시 미루어두고 주님 곁에 앉는 사람, 조용하며 넘치는 안일 속에서 생명의 헌사를 노래하는 사람이라야 초심을 잃지 않습니다.

• 민주적 통치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될 여호사밧 왕은 비교적 초심을 잃지 않은 왕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왕 가운데 하나입니다. 무엇보다도 국방을 튼튼히 한 왕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그는 각지에 있는 성을 요새화하고, 거기에 수비대를 배치했습니다. 늘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기로 작정하고, 또 그렇게 노력했습니다. 성서 기자는 “주님께서는 여호사밧이 다스리는 나라를 굳건하게 해주셨다”(17:5)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백성들의 신망을 얻었습니다. 그 덕분에 나라가 강성해졌습니다. 블레셋과 아라비아 사람들이 조공을 바쳤고, 왕은 곳곳에 양곡 저장소를 마련해 식량을 비축해두었습니다.

여호사밧은 백성들을 아무 생각이 없는 수동적 존재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함께 수행해야 할 파트너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관리들을 보내 백성들에게 국정에 대해 설명하게 했고, 레위 사람들을 보내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일방적으로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백성들에게 동의를 구했습니다. 또 가리산지리산 흩어지기 쉬운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로 통합하려 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절대왕정 시기에 민주주의적 원리를 통치에 적용했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소통을 중시했던 왕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아브라함을 두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늘 흠모합니다. 소돔을 향해 가시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앞으로 하려고 하는 일을, 어찌 아브라함에게 숨기랴?”(창18:17).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경륜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종이 아니라 친구라고 부르셨습니다(요15:15). 하나님의 뜻을 함께 나눈 사이이기 때문입니다.

늘 하나님의 뜻을 조회하며 살았지만 여호사밧이라고 해서 흠 없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도 우리처럼 실수도 하고,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합니다. 그는 북왕국의 왕인 아합 가문과 혼인의 유대를 맺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시리아와의 전쟁에 휘말려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의 위대함은 예언자의 쓴 소리에 귀를 닫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하나니의 아들인 선견자 예후가 찾아와 왕의 경거망동을 준엄하게 꾸짖습니다. 그의 반응이 어떠한지는 알 수 없지만 이후에 그가 보인 행적을 보면 그가 예언자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음성을 외면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는 직접 민정을 살피기 위해 산간지역까지 두루 찾아다니기도 했습니다. 측근에 있는 사람들의 단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지 않고 바닥의 소리를 경청하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인내천人乃天’이라는 말을 잘 압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천대받는 사람들의 소리야말로 하늘의 소리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천대받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선한 사람은 아닙니다. 사는 동안 입었던 모욕과 상처로 인해 더 완고하고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들도 있습니다. 민중이 곧 선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백성의 지도자로 세움을 입은 이들이 그들 곁에 다가서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다면 하늘의 뜻을 저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호사밧의 태도는 모든 통치자들이 본받을 만합니다. 

• 분수 지키기

그는 자기 통치 지경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 요새화된 성읍마다 재판관을 세우고는 엄중하게 일렀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재판을 하지 말고, 삼가 조심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재판을 하라고 말입니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일이 한 순간이라도 그대들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하시오. 주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불의하지도 않으시며, 치우침도 없으시며, 뇌물을 받지도 않으시니, 재판할 때에 삼가 조심하여 하도록 하시오.”(대하19:7)

여호사밧은 철저히 분권형 통치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든 문제는 아마랴 대제사장이 최종 권위를 가지고 결정을 내리고, 왕에게 속한 모든 문제는 스바댜가 최종 권위를 가지고 결정을 내리도록 했습니다. 당연한 일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분수를 지키지 않기에 하나님의 눈 밖에 난 이들이 많습니다. 후대의 웃시야 임금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그는 주님의 성전 안에 있는 분향단에다가 분향을 하려고 들어가다가 제사장들의 제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감히 자기 앞을 가로막는 제사장들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 순간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습니다. 그는 남은 생을 나환자로 살아야 했습니다(대하26:19). 이런 비극적인 사건을 보도하기에 앞서서 성서 기자는 웃시야 임금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웃시야 왕은 힘이 세어지면서 교만하게 되더니, 드디어 악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대하26:16)

강성해지는 게 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는 일마다 잘 되는 게 오히려 화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이룬 성취에 도취한 이들은 교만의 독을 마시게 됩니다. 교만은 악을 낳게 마련입니다. 그리스어로 교만을 뜻하는 ‘휘브리스’(hybris)는 늘 분노를 뜻하는 ‘네메시스’(nemesis)와 짝을 이루어 등장합니다. 이것은 교만은 신의 분노를 사고 재앙을 초래하는 악임을 보여줍니다. 교만을 의미하는 라틴어 수페르비아(superbia)는 자기 자신을 높이 둔다는 뜻입니다. 자신을 실제 상태보다 더 높인다는 말입니다(신원하,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 Ivp, p. 33ff 참고). 그는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높이는 이들은 다른 이들을 무시하게 마련입니다. 이런 마음과 태도를 하나님이 좋게 보실 리가 없습니다.

• 브라가 골짜기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의 뜻 앞에 엎드릴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시련의 순간에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모압과 암몬 연합군이 엔게디로 쳐들어왔을 때, 여호사밧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절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우리를 치러 온 저 큰 대군을 대적할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고, 어찌할 바도 알지 못하고, 이렇게 주님만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대하20:12) 그때 레위 사람인 야하시엘에게 주님의 영이 내렸습니다. 주님은 그를 통해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셨습니다. 

“적군이 아무리 많다 하여도, 너희들은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아라. 이 전쟁은 너희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맡아 하는 것이다.”(대하20:15)

여호사밧은 이 말씀을 굳게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두려움이 찬양으로 바뀐 순간 전쟁의 승패는 이미 결정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여호사밧은 백성들과 의논한 후 노래하는 사람들을 뽑아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하게 했습니다. 결과는 짐작하시는 바와 같습니다. 여호사밧은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사람들은 승리를 거둔 그곳을 ‘브라가' 골짜기라고 불렀습니다. 브라가는 ‘찬양’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을 읽다가 제 눈길을 끈 것은 여호사밧이 노래하는 사람을 뽑기 전에 ‘백성들과 의논’ 했다는 구절입니다. 여호사밧의 통치가 성공적이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백성들을 신뢰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뢰처럼 강한 국력이 없습니다. 

국민을 섬기기 위해 택함을 입은 이들이 웃시야의 길이 아니라 여호사밧의 길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은 또 다시 국민들의 몫입니다. 당리당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두렵고 떨림으로 받들 때 이 나라는 든든히 서 갈 것입니다. 사순절 순례 여정 두 번째 주일을 지나면서 하나님에 대한 첫 사랑의 마음을 회복하시길 빕니다. 제 아무리 분주해도 잠시 멈춰 서서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시간을 마련하시길 빕니다. 자기를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교만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조화를 이룰 줄 아는 새 사람으로 거듭나시길 빕니다. 삶에서 맞닥뜨리는 온갖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주님의 인자하심과 은총을 찬미하십시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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