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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을 우러러 보라 (창 1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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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우러러 보라 (창 15:1-11)

비전(Vision)이란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까? ‘새우리말큰사전’은 “시력, 시각, 통찰력, 투시력, 공상, 몽상, 환영”이라고 하였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사용한 말을 그대로 사용하려고 하니, 정확한 의미를 드러낼 수가 없습니다. 가장 근접한 정의라고 하면 ‘미래상, 미래의 전망, 꿈, 이상’ 그런 말입니다. 

비전이란 한 사람이 다른 누구를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는 비록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지만, 하늘 보좌에 앉아계시는 하나님,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다시 하나님의 눈으로 또 나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지으실 때에 목적하신 것,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보다 큰 뜻을 가지고 미래를 전망하고 꿈을 가질 때에 바로 그것을 비전이라고 합니다. 

“땅을 본 사람, 별을 본 사람”이라는 글이 있어 보았습니다. 전쟁 중에 미국의 동부에서 군인인 남편을 따라서 서부의 캘리포니아 사막 끝까지 온 어떤 신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개척시대의 서부의 생활여건은 아무리 좋아도 원시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가 오는 것을 말렸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과 함께 있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이 얻을 수 있었던 집은 인디언 마을 근처의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이었습니다. 낮에는 나무 그늘에서도 온도가 40도가 넘었습니다. 바람은 쉴 새 없이 불었으며 어느 곳이든 먼지와 모래가 수북이 쌓였습니다. 하루하루가 길고 지루하기만 했습니다. 이웃이라야 인디언뿐이었고 그들은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작전 명령을 받고 2주 동안 사막 깊숙이 들어가는 바람에 외로움은 날로 더 하였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어머니에게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편지를 썼습니다. 얼마 후 두 줄짜리 답장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이 감옥 창살을 통해 바깥을 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땅을 보고, 다른 사람은 별을 보았단다.” 아내는 편지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마침내 무슨 뜻인지 깨닫고는 자신이 몹시도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별을 바라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는 인디언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인디언들에게 옷감 짜는 법, 도자기 굽는 법 등을 배웠습니다. 

인디언들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생활에 친숙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사막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에게 책을 보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선인장과 유카와 여호수아나무를 연구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막은 황량하고 쓸쓸한 곳에서 아름답고 기묘한 곳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여인은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책까지 펴냈습니다. 이 여인을 둘러싼 환경이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사막도 인디언들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이 여인이 마음을 바꾸자 세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바꾸니 운명도 따라 바뀌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사람은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방향이 결정되고, 우리의 행동이 달라지고, 나아가 우리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들 사람은 할 수 없어도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척 스윈돌 목사님의 글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비전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그것은 믿음으로 알을 낳고 희망으로 유지되며, 상상으로 빛이 나고 열정으로 강화된다. 그것은 보는 것보다 더 위대하고 꿈보다 더 깊고, 아이디어보다 더 큰 것이다”라고 합니다. 

최초로 비전을 가진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비전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바라보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외치셨습니다. 창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도 참으로 아름답고 좋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루 보시기에 좋았다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풍성한 사랑과 은혜를 누리라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가진 사람을 창조하여 그 아름다운 동산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인간을 만드시고 당신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고 우리도 비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비전을 세우고 가지는 것도 좋지만, 하나님의 시각으로 나를 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비전을 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어떤 비전이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비전입니다. 

잠29:18에서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묵시라고 하였지만 히브리어 ‘하존’이라는 말은 ‘환상, 이상 비전’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번역한 KJV에서는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 but he that keepeth the law, happy is he.”라고 했습니다. “비전이 없으면 백성들이 방자히 행한다”고 하셨습니다. “방자히 행한다”는 “날 뛰다”, “풀어지다” 금송아지 우상 앞에서 날 뛰고 풀어진 것을 “방자히 행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사람들에게 꿈과 이상이 없다면 방자하게 됩니다. 우리들 앞에 환난과 고난이 닥쳐올 때에, 꿈과 이상이 없다면 그냥 망하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자포자기하게 됩니다. 꿈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습니까? 그는 인생 전부를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세상에 방자하게 행하는 사람, 그는 꿈과 이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꿈과 이상과 포부가 있습니까? 아직도 성취해야 하는 목표가 있고, 가야할 길이 남아 있습니까? 그런 사람만이 세상을 이길 수 있고, 이 세상을 사람 살만한 사회로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많은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꿈과 이상, 비전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이루실 그 그림을 찢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비전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넘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하나님이 꿈꾸시는 나라를 이루어갑니다. 우리의 꿈과 이상은 별과 같습니다. 비전을 인생의 길잡이로 삼아야 합니다. 

“비전이란 무엇입니까”라는 좋은 글이 있습니다. 

“고아가 자라서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한다는 것은 비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에게서 버림을 받고서 외국에 팔려나간 고아가 그 나라에서 총리가 되는 것이 바로 비전이라 생각합니다. 흑인들의 민생이 조금 더 나아지는 것은 비전이 아닐 것입니다. 노예로 팔려온 백인의 나라에서 흑인 대통령이 나오는 것이 바로 비전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하와이에다가 별장을 짓고 오고 가는 것은 비전이 아닙니다. 그 돈을 내가 쓰지 않고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내 놓는 것이 비전입니다. 

비전은 황당무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전은 미쳤다는 소리를 듣고 꿈 깨란 소리를 듣는 것이랍니다. 이유는 나의 비전이던 나라의 비전이던 세상의 비전이던 비전이라는 것은 단 한 번도 없던 일이어야 하기 때문이죠. 당신이 오늘도 이상한 꿈 때문에 그 비전 때문에 가슴이 뛰고, 피가 솟구치고, 안 먹어도 힘이 솟고 막 웃으면서 혹은 막 울면서 달려 나아가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 믿음의 조상인 아브람에게 환상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 이 말씀을 새번역에서는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네가 받을 보상이 매우 크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지켜주시는 방패가 되어주시고, 아브람에게 큰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에 아브람에게는 자식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방 사람 출신으로 진실하고 성실한 종인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2-3절입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아브람이 당대의 갑부인데, 재산을 물려주고 가문을 이어갈 자식이 없고 집에서 자라난 종을 상속자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프고 암울한 일이었습니다. 

전에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가면 복을 주신다고 하셨고,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창12:1-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가나안으로 들어온 지 10년이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나이 85세가 되었는데도 자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분명히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은 상속자가 될 수 없고, 반드시 아브람에게서 태어날 자가 상속자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아브람이 장막에 있을 때에 환상 중에 나타나셨는데, 아브람을 이끌어 어두운 천막에서 밖으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5절입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5)고 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장차 아브람의 후손들이 하늘의 별들처럼 많아진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민족이 된다, 이것은 육신적인 자손만을 말하여 아브람으로 이루어지는 후손들이 많아진다는 말씀도 되지만, 영적인 자손들, 하나님을 믿음으로 예배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자손들이 많아진다는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낙심하고 있는 아브람을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람을 사랑하시기에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이 한번 사랑하기로 작정하셨으면 끝까지 사랑하시고, 선택하신 사람은 하나님이 이끌고 가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시작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붙잡아주시고, 마지막 하나님 앞에 세워주시는 분도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는 사랑에 있습니다. 

바라봄의 법칙이 있습니다. 꿈의 사람은 별을 바라봅니다. 높이 바라봅니다. 멀리 바라봅니다. 현실만 탓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브람은 다시 찾아와주신 하나님, 이대로 가다보면 낙심할 수 있었는데, 하나님은 여전히 아브람의 하나님이셨습니다. 내가 혹 하나님을 잊은 적이 있지만, 하나님은 한 순간도 나를 떠나지 않고 나와 함께 동행하시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전에도 하나님을 믿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브람은 모든 일에 하나님의 주되심(Lordship)을 고백하였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마음에 들려고 힘을 썼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은혜 베풀어주시고, 우리는 은혜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없어도 잘 살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내가 무엇이기에 자식을 낳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으니 자식을 낳았습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도 사도바울과 같이 고백해야 합니다. 고전15:10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무엇 조금 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하였습니다. 내가 잘 나서 한 것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이 힘주셔서 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하십시다. 

6절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너무나 유명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하나님만 믿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믿음을 기쁘게 보시고, 하나님을 대하는 합당한 자세로 보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감당하게 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었는데, 그 믿음을 아브람의 의로 여겨주셨습니다. 믿음이란 자기 부정입니다. 단순히 어떤 사실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고 그 분 안에 나의 모든 것을 던져 넣었습니다. 약속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약속해주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의로 여기신다는 말은 법률적인 용어입니다. 6절의 말씀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는 말은 “그러므로 이 일을 그에게 의로 정하였다”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용모를 보거나, 행위를 보시고 의롭다 하시지 않습니다. 

믿음만 보셨습니다. “하나님만 믿습니다. 예, 저는 하나님뿐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르신다고 하시면 죽어야 합니다. 하나님만 믿습니다. 하나님이 저의 전부이십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저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고백합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 희생하시고 포기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을 인색하신 분으로 깎아내리지 말고, 하나님은 나의 죄를 용서해주시지 않을거야 하고 지레 짐작하고 낙심하지 마시고, 좋으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죄가 없으신 아들 하나님을 이 땅에 내려 보내주시고, 십자가에 대신 심판받게 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내 공로로 하나님을 만족시키지 말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바로 그 믿음, 하나님만을 신뢰한 그 의지를 의롭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실은 알고 보니 그렇게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그 믿음도 하나님이 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습니다. 내가 믿은 것 같은데, 하나님이 믿게 해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 시간 좋으신 하나님, 꿈과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를 통하여 큰 일을 이루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어느 날 배 한 척이 항구에 정박한 채 출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선장은 난간에 올라가서 안개가 걷히기를 턱을 고이고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안개가 걷힐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잘 생기신 한 신사가 오더니 “나는 영국에서 온 사람인데, 캐나다의 퀘벡에 가서 토요일 부흥회를 인도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 배가 오늘 떠나야만 합니다. 선장님, 지금 출발시키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선장이 가만히 보면서 ‘이 사람이 돌았나? 보기엔 외모는 아주 훌륭한 사람 같은데 말하는 것을 보니 완전히 이상한 사람 같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당신 눈에는 이 안개가 안 보입니까? 이렇게 안개가 짙게 끼었는데, 어떻게 배를 출항시킨단 말이오”라고 하였습니다. 그 신사가 말합니다. “예, 안개가 보여요. 그러나 나는 안개 저 건너편에 안개를 움직이는 하나님의 손도 보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손이 안 보입니까?” 

선장이 허허 웃으면서 ‘이 사람 미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는데, 그 신사가 강제로 팔을 끌면서 선실로 데리고 들어가며 말했습니다. “나는 57년 동안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과 매일 기도하며 만나온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 내가 기도하면 안개가 걷히니까 선장님과 함께 기도하러 가십시다.” 그래서 선장은 강제로 선실에 끌려 내려갔는데 하라는 기도는 하지 않고, 믿음 없는 말만 하였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안개가 자욱하여 보이는 것은 다 안개뿐인데 어디에 하나님이 보입니까?” 선장은 지극히 상식적인 말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죠지 뮬러 목사님은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제가 영국에서 궤백으로 부흥회를 인도하러 가는데 배가 움직이지 않으면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없고 말씀을 전할 수 없습니다. 이 안개를 사라지게 하여 주십시오” 간절히 기도하고는 일어나더니 선장에게 말합니다. “이제 출항하십시다.” “기도한다고 안개가 걷힙니까?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시오” 

그 때 죠지 뮬러는 선장에게 말합니다. “창문을 열어보세요.” 선장이 창문을 여는 순간 짧은 시간이었는데, 안개가 완전히 사라지고 햇빛이 쨍쨍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선장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장 눈에는 안개만 보였지만, 죠지 뮬러의 눈에는 안개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이 보였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이런 역사입니다. 이 세상을 다 이성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만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기적을 바라고 신앙생활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만 바라보고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여러분, 우리 아버지는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바라보십시오. 하늘의 별을 보기 위해서는 어두운 천막에서 나와야 합니다. 부정적인 시각을 버리고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십시오. 무수한 별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하나님만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 하나님이 나의 꿈이요, 비전이라고 선포하시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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