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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르시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신 하나님 (창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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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시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신 하나님 (창 15:1-7)

지난 주 월요일 롯데에서 30여년 넘게 근무하다 정년 퇴직한 박집사님께서 교역자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겠다고 포천 이동 갈비집에 가자고 했습니다. 먼 길이고 비가 오는 날이었지만 기쁜 마음으로 따라 갔습니다. 산정호수에 가니 눈이 많이 왔습니다. 산정호수에 갔다 이동 갈비집을 가는데 길거리에 몇 군데 원조 갈비라는 간판이 보였습니다. 

전국 어디나 가면 원조집 간판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원조 할머니 낙지센터, 원조 할머니 보쌈, 원조 할머니 묵집, 원조 할머니 냉면, 원조 할머니 쭈꾸미, 원조 할머니 감자탕, 원조 할머니 호두과자 등 어디 가나 볼 수 있지요. 짝퉁이 아니고 모조품이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자기 집이 진짜라는 이야기입니다. 

박집사님이 포천에도 진짜 원조 할머니 이동갈비가 있으니 그곳에서 식사를 하자고 하여 그 집에 가서 갈비를 먹고 왔습니다. 원조라 뭔가 맛이 다르긴 다른 것 같았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원조는 누구이겠습니까? 

오늘 성경 6절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최초의 사람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핵임이고 복음의 뿌리입니다. 

의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둘째는 인간의 윤리적 의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해 주시는 칭의입니다. 

여기서 의롭다고 한 것은 아브라함이 도덕적으로 의롭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도덕적으로는 그렇게 의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내를 누이라고 두 번이나 속이고 권력자에게 주었습니다. 이런 행위를 의롭다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중에 해외여행 갔는데 강도가 칼을 들이대면서 아내를 빼앗아 가려고 하면 자신만 살겠다고 내 누이라고 데려가 살으라고 말할 사람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자기 살기 위해 아내를 권력자에게 준 사람입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말입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할 때 아버지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조카를 아들처럼 생각하고 떠나지 못했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하자 하갈을 첩으로 얻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 853개 문화권 중 16%만이 일부일처제를 규정하고 있을 뿐, 나머지 84%는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있는데 하갈을 첩으로 둔 것이 뭐 죄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 문화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우길 수 있지만 아담에게 하나님의 하와 한 사람만 만들어 주셨습니다. 일부다처는 동생을 아벨을 죽이고 하나님을 떠난 가인의 후예, 라멕에서 시작되었습니다(창4:19). 

말라기 2장 15절에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찌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찌니라”

도덕적으로 하나님의 의에 미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 오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칭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 칭해주시는 것입니다. 도덕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관계성에 의해 정죄하지 않고 법정적으로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신분적으로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이 사랑으로 덮어서 불쌍히 여기시고 그것을 의롭다하시면 의로 보아주신 것입니다. 

무엇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습니까? 믿음으로입니다. 누구를 믿은 것입니까? 여호와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였다는 말입니다. 이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새 시대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최초의 히브리인이 되면서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가 된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인류의 3대 조상이 나옵니다. 첫 조상은 아담입니다. 둘째 조상은 홍수 심판 후 새 시대의 첫 조상이 된 노아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첫 조상이 된 아브라함입니다. 언약 백성의 첫 조상이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룰 영원한 나라의 첫 조상,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결국 아담도 범죄하여 그 가계에 원죄의 씨를 심어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노아도 홍수를 통하여 구원받았지만 결국 술취하여 자식들을 저주하고 그의 후손이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의 징계를 받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가계를 새롭게 변혁시키는 주인공이 되어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켰습니다. 대대로 우상을 섬기는 문화 속에서 짐승처럼 살 텐데 이제 완전히 변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왕자처럼 복받는 인생을 살게 하는 새 민족, 새 나라,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성취하는 씨앗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 받은 믿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믿음입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로 약속을 믿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2절 한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아들 낳을 수 없으니 자기의 종을 아들 삼겠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셨습니다(창11:27-12:9). 

그는 셈의 후예입니다(창11:10) 아버지는 데라입니다. 아브라함은 이곳에서 부름을 받았습니다(행7:2-3) 그 때 하나님은 3중 포기를 하라고 합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쉬운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야 떠났습니다. 조카와 재산 문제가 생겨 결국 조카를 떠났습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과 조직을 만드는 패러다임 파괴의 전략"이라는 책을 쓴 로버트 크리겔(Robert Kriegel)과 데이비드 브랜트(David Brandt)는 변화를 하기 위해서는 4가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첫째가 두려움, 둘째 무력감, 셋째 타성, 넷째 자신의 이해와는 무관하다는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손쉽게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행동설계의 힘을 기록한 ‘스위치(칩 히스, 댄 히스 저)에서는 코끼리 비유를 통해 성공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법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기수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성은 부정적인 면을 보기 좋아하기 때문에 '밝은 점', 긍정적인 면을 보게 하고 모호성을 없애고 명료하게 단순화하라는 것입니다. 

슈퍼마켓에서 맛을 테스트하고 음식을 사게 만들 때 32가지를 놓아두면 소비자는 선택의 고민으로 8가지 때보다 더 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코끼리에게 동기를 부여하라는 것입니다. 이성과 달리 감정의 영역은 설득으로 변화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코끼리는 자기 정당화의 전문가여서 담배가 건강에 해로운 줄 알면서도 끊지 못한다고 합니다. 코끼리가 걷게 하기 위해서는 보고 느끼게 하여야한다는 것입니다. 

세차장에서 세차할 때 두 그룹으로 나누어 고객 카드를 나눠 주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8개 칸에 모두 도장을 채우면 무료 1회 세차권이 주었습니다. 둘째 그룹에는 이미 2개를 찍어준 10회 세차권을 주었습니다. 두 그룹의 고객들이 달성해야 하는 '목표'는 동일했지만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시작하는 그룹과 이미 목표의 20퍼센트를 달성한 그룹입니다. 

몇 개월 후, 여덟 칸짜리 카드를 받은 고객 가운데 무료 세차권을 얻은 사람은 19퍼센트에 불과한 반면, 열 칸짜리카드를 받은 고객 가운데 무료 세차권을 얻은 사람은 34퍼센트였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그룹이 10개 칸을 모두 채우는 속도가 더 빨랐다고 합니다. 행동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한 가지 방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이미 목표 지점에 더 가까워져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셋째는 지도를 통해 가는 길을 구체화하라고 말합니다. 코넬 대학에서 식품 및 브랜드 연구소를 운영하는 브라이언 원싱크는 극장 앞에서 공짜로 음료수 한 병과 맛없는 팝콘 한 통을 제공하였습니다. 조건은 영화 관람 후 잠깐 남아서 구내매점에 관한 설문조사에 응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관객 중 일부는 중형 용기에 담긴 공짜 팝콘을 받았고, 일부는 대형 용기를 받았습니다. 

실험은 "더 큰 통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먹게 될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연구 결과는 지역과 영화의 종류와 상관없이 큰 그릇에 먹는 사람들이 더 많이 먹었다고 합니다. 팝콘을 덜 먹게 만들고 싶으면 작은 용기를 제공하면 된다고 합니다. 종종 사람의 문제처럼 보이는 것이 실상은 상황의 문제라고 합니다. 상황을 바꾸어주면 사람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황을 바꾸어 아브라함을 떠나게 하고 약속을 해 주어 동기를 부여해 주었습니다. 3중 약속을 해 주십니다. 첫째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어 주겠다고 말씀합니다. 둘째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너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70대 후반이 되었습니다. 아마 결혼한 지 적어도 60년은 지났을 것입니다. 이제 인간적으로 아이 낳을 때가 지났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생각할 때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계산할 때 이성적으로 추리할 때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4-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늘의 별을 보게 하며 다시 상기해 줍니다. 무엇을 상기해 주는 것입니까? 약속입니다. 이미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약속했던 3가지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실언하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언약하시고 그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창15:7; 창22:16-18) 

바다의 모래 같고 하늘의 별과 같으리라는 것입니다. 이 후손은 갈3:16절에서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3:16)" 예수님은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 주십니까?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8:56)"

아브라함을 신비하게도 이것을 바라보고 즐거워하였다는 것입니다. 로마서에서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4장 18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4:18-22)” 

아브라함의 믿음을 크게 세 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절망적인 상황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100세가 되어 자기 몸은 아들을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일이 꼭 과학적, 합리적, 이성적으로만 되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지금도 57살에 아이를 낳는다고 말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령 출산이 만 57세의 여성입니다. 작년에 쌍둥이를 출산했습니다. 70살에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말하면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2008년에는 70세 인도 할머니가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남편은 77세라고 합니다. 정식 기네스북에는 루마니아 할머니로 66세에 아이를 낳은 것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한 여인이 아이를 69명이나 낳았다면 믿지 않을 것입니다. 

최재천교수의 “다윈지능”라는 책을 보면 19세기 러시아 여인 피요드르 바실리에프의 부인은 27번 임신으로(1725-65년) 두 쌍둥이(16), 세쌍둥이(7) 네 쌍둥이(4) 등을 포함하여 평생 69명을 출산했다고 합니다. 한 남자가 888명이나 아이를 낳았다면 믿지 않을 것입니다. 같은 책을 보면 피로 굶주린 이스마엘이라는 별명을 가진 18세기 모로코의 황제 물레이 이스마일은 부인과 첩들을 통해 888명의 아들딸을 낳았답니다. 60년간 무려 매년 15명의 자식을 낳은 것입니다. 현실 세계에는 이성적으로 불가능한 것같은 것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는 자신의 몸의 상황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도저히 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어 의심치도 않았습니다(20). 오히려 견고해지는 믿음(20)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셋째, 능히 이룰 줄로 확신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21) 아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실제 행위가 포함된 확신 있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수학적 확률도 자기 암시도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천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사는 것입니다. 내 죄가 십자가에서 용서되었다는 사실을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부활한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을 의롭다 칭해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확신하고 요단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확신하고 뱀을 잡는 것입니다. 확신하고 나아만처럼 요단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나를 확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믿음을 가진 믿음의 조상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차피 믿고 사는 것 아브라함처럼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것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것을 능히 이룰 줄로 확신하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믿음의 질이 인생의 질을 결정합니다. 아브라함이 남겨준 가장 고귀한 유산은 질 좋은 믿음의 유산입니다. 우리가 후손에게 남겨줄 유산 중에 가장 귀중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도 한 가정의 믿음의 조상이 되어 믿음의 유산을 남겨주어야 합니다. 한 사람 믿음의 유산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6.25 때 고아가 되어 미군 하우스보이로 일했진 미 백악관에서 닉슨대통령, 포드대통령, 카터대통령 등 세분 대통령의 안보비서관으로 근무한 임종덕 장로님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6.25 때 독립운동가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를 공산군이 반동문자라고 총살을 시키고 장작 위에 시체를 얹어 놓고 기름을 부어 불살랐다고 합니다. 그것을 눈으로 목격하였다고 합니다. 서울역에서 고아원에서 탈출한 동생들 29명과 함께 거지 생활을 했는데 나중에 129명이 되었답니다. 24명이 먹지 못하고 질병으로 죽었는데 소매치기와 도둑질을 해서라도 먹어야 했답니다. 서울역에서 미군 차 뒷 트렁크가 열린 것을 보고 가방 하나를 훔쳐 도망가다 미군 헌병들에게 붙잡혔답니다. 서툰 영어로 자신이 절도를 하지 않으면 자신이 데리고 있는 고아들이 굶어 죽는다고 말했는데 그 광경을 유심히 보고 있던 장군이 자기 숙소의 하우스보이로 일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가 바로 미국 5공군 사령관 스티브 도마스 화이트 중장이었답니다. 

화이트 장군은 임종덕을 데리고 약 1년 동안 유심히 관찰한 후 어느 날 임종덕에게 "너는 오늘부터 내 아들이 되었다"며 양자로 입적을 시켰답니다. 그 양아버지가 임종덕에게 믿음을 물려 준 것입니다. 그는 예수를 믿고 하바드대학교에 들어갔고 박사가 된 것입니다. 이날 임종덕의 박사 학위식에 참석한 임종덕의 양부모는 감격을 억제하지 못해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소매치기와 절도로 전락한 전쟁고아를 자신에게 맡겨 오늘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참석하게 한 하나님의 섭리에 화이트 장군은 계속 감사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날 학위식에는 화이트 장군의 가까운 동료 장성들이 대거 참석해서 자신의 아들처럼 임종덕을 껴안고 박사 학위를 뜨겁게 축하해 주었는데, 하바드대학 개교 이래 그야말로 최고의 "별들의 잔치"가 되었다고 합니다. 믿음이 만든 기적입니다. 네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서울에 올라와 거지생활을 하다 미군 하우스 보이가 된 신호범 미국 상원의원도 훌륭한 믿음의 양부모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5번이나 상원의원을 지냈고 한국인으로서는 가장 높은 자리인 상원부의장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자신이 박사가 되고 상원 부의장이 된 것은 믿음의 유산을 남겨준 양아버지 레이 폴(Ray paull)이 그를 입양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아인 자신을 “트럭에서 건져 올린 손은 주님의 손이었고 나를 안아 준 양아버지의 포옹은 하나님의 사랑이었다”고 회상합니다. 양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셋이 있는데도 믿음의 유산을 남겨주었고 기도로 길렀다고 합니다. 

평양 산정현 교회에서 주기철 목사님을 섬기시던 유계준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장로님은 열심히 교회를 섬기느냐고 그의 자손들에게 별다른 재산을 남겨 주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유산을 자손들에게 물려주었답니다. 

유장로님의 8남매 중 아들과 사위는 모두 장로님으로 장남은 국립의료원 원장, 사위는 이한빈 부총리, 둘째는 부산의대 학장, 셋째는 부산에서 병원장, 넷째는 유기천 서울대 총장, 다섯째는 시카고 시립병원 근무, 여섯째는 캘리포니아에서 병원장, 장녀는 용산 누가 병원 원장, 차녀는 뉴욕 생화학 연구원 재직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에 자손들의 수가 129명에 이르고 있는데 그들 가운데 80%가 의료계에 종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믿음으로 가정의 문화와 후손들의 문화를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 가정의 역사를 새롭게 만드는 믿음의 조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불러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새 시대를 여는 믿음의 조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사람은 변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한 번 약속한 것 끝까지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언약에 신실하시고 실언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포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의 과정 속에서 어떤 위기를 만나면 그럴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의 방패이고 너의 상급이라는 것입니다. 이후에라는 말이 무슨 말씀입니까? 소돔과 고모라에 사는 조카 롯이 4개국 연합국에 의하여 침략을 당했습니다. 

14장 12절을 보십시오. 롯은 사로잡혀갔고 그 재물은 빼앗겼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이 318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롯을 빼앗아 오고 재물과 사람들을 다 찾아 왔습니다. 아브라함이 두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언제 그들이 다시 쳐들어올지 모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두려워 말라합니다. 누가 방패가 됩니까? 우리 하나님이 방패가 된다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이기고 그들이 답례금을 주었습니다. 그 때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을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그들에게 받지 않아도 내가 상급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이 상급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무슨 말씀입니까? 선택하고 부르신 하나님은 결코 너를 버리지 않고 하나님이 지켜 주시고 하나님이 너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희망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십시오. 아브라함 때에 출애굽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그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 역시 반드시 성취됩니다. 

문제는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성취되기까지는 400년, 70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요셉에게 꿈을 보여 주었습니다. 바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이 필요했습니다. 사람이 쉽게 포기하는 것은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믿는 사람들은 기다림이 있어야 합니다. 재림의 약속 기다려야 합니다.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주신 우리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 지기 까지는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원은 반드시 이루십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3)"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오늘날도 언약의 말씀을 통하여 기업에 대한 소원을 주십니다. 개인에 대하여 교회에 대하여 나라에 대하여 소원을 주십니다. 그러면 그 소원 붙들고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잠깐 환란이 있다고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3-4)"

한 때 영국에서 '의회의 아버지' '현존하는 최대의 영국인'이라고 불리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2개월 먼저 태어난 조산아였습니다. 부모가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군인이 되길 원했습니다. 중학교 때 3년이나 진급을 못했습니다. 영어에 늘 낙제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77세에 영국 수상을 지내었으며 노벨 문학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2차 대전 중 위대한 국가 지도자로 활동하였습니다. 미국 의회의 결의로 명예 미국 시민이 되기도 한 사람입니다. 

1965년 1월 24일 런던에서 죽었을 때 그의 장례식은 왕족 이외에는 금세기 최초로 국장으로 거행되었으며,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조사를 보낸 사람입니다. 윈스턴 처칠입니다. 이분이 영국의 명문대학인 옥스퍼스대학 졸업식에서 축사를 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처칠은 우레 같은 박수를 받아가며 위엄있게 연단에 걸어 나와서 천천히 모자를 벗어놓고 청중을 바라보았답니다. 청중은 숨소리를 죽이며 그의 말을 기다렸는데 그는 큰 소리로 "포기하지 말라(DON'T GIVE UP)" 이것이 그의 첫마디였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처칠은 천천히 청중석을 둘러보았답니다. 사람들은 조용히 그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처칠은 목청을 가다듬고 다시 소리쳤답니다. "포기하지 말라!" 그러고는 그는 위엄으로 가득찬 동작으로 연단을 걸어나갔다고 합니다. 

"포기하지 말라" 그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포로로 잡혀서도 포기하지 않고 탈출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한 때 포기하고 싶은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상원 의원에 출마하여 낙선하였을 때라고 합니다.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두문불출했다고 합니다. 사람을 만나기도 두려웠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창가에 서있던 그는 우연히 벽돌공이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아 거대한 담벼락을 완성하는 것을 보았답니다. 

그 때 윈스턴 처칠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고 합니다.“인생은 벽돌을 한장 한장 쌓아올리는 작업이다. 인생 여정을 여기에서 포기할 수는 없다” 용기를 얻은 처칠은 다시 정치에 뛰어들어 수상직에 올라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자랑'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 우리 하나님이 계십니다. 비록 나는 쓰러지고 넘어질 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8:25)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9)"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중도에 포기 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중도에 포기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신에게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이룰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어 공부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업에 성공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봉사할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위해 일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를 잉태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네 몸에서 상속자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5절 보십시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하십니까? 우리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런 일을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능력만 의지하면 쉽게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어떤 것이라도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못하지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으로 우리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나는 무능력하고 나의 힘으로는 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능력으로 하면 새 힘이 생기고 불가능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고목나무에 생기가 돌게 되고 꽃이 피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십시오. 자신의 능력으로 할 때는 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결코 포기하지 않고 일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자기 능력으로 민족을 위해 일하려고 할 때 결국 살인자가 되어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니까 아무 힘이 없는 지팡이를 들고 홍해를 가르고 반석을 쳐 물이 나오게 하고 그 패역한 백성들의 원망을 다 들으면서도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고 갑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물맷돌 다섯 개입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면 골리앗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모세의 지팡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면 기적의 지팡이로 사용되어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물을 내는 기적을 일으키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어린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5000명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를 거두는 기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무식하고 사회적인 지위도 없고 물질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세계를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요셉 목동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니까 에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 무능한 자에게 하나님의 힘을 주어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내 힘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여호와의 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승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면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사 40:29-31)“

나는 못하지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가면 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하다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 있을 수 있습니다. 전도하다가, 기도하다가, 사업하다가, 공부하다가, 교제하다가, 가정 생활하다가 중도에 포기할 수 있습니다. 새벽 기도회를 하여야겠다고 작정해 놓고도 조금만 피곤하면 포기해 버립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며 신앙생활 잘 해야겠다고 결심하고도 조금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은 일이 생기면 포기해 버립니다. 연초에 다짐하고 다짐하지만 작심삼일이 되어 버립니다. 공부하는 학생도 연초에 거대한 꿈을 가지고 참고서를 사놓지만 한 달이 다 가지 못해 포기해 버립니다. 

올해는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운동기구도 사고 헬스 회원권도 마련하고 수영장 회원권도 마련하지만 며칠 나가고 뭐 집에서 "걸어 다니도 되지, 교회 열심히 다니면 되지" 하고 포기해 버립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중도에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 전쟁의 사령관으로 파견된 맥아더 장군 그는 웨스트 포인트 사관학교에 두 번이나 낙방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세 번째 응시하여 합격하였습니다. 

요즈음 인기 있는 해리포터는 무려 12개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하였습니다. 만약 그가 11번째 포기해버렸다면 어쩌면 그 책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1백편이 넘는 서부 소설을 써서 미국 의회로부터 작가로서는 최초로 특별 메달은 받은 루이스 라모르는 첫 원고를 출판하기 위해 무려 350번을 거절당하였습니다. 토마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기 까지는 무려 2천번의 실패를 했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경제지 포브스의 발행인이 된 말콤 포브스는 프린스톤 대학 시절 학교 신문기자 시험에 탈락한 사람이고 세계적인 대중 가수 엘비스 프레스리는 음악적인 미래가 없다고 트럭 운전수로 돌아가라고 해고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인의 특징 중의 하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잠 24:1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후 4:8-9)"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확실한 보장의 말씀을 해주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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