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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효, 우선순위를 바꿉시다 (신 5:16, 엡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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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 우선순위를 바꿉시다 (신 5:16, 엡 6:1-3)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미국에서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 날로 정하게 된 유래는 이렇습니다.
신앙이 독실한 ‘안나’라는 소녀는 돌아가신 자기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하여 매년 추모일이 있는 주일에 교인들에게 카네이션을 선물로 나눠주었습니다.
카네이션 꽃 한 송이는 모든 교우들에게 돌아가신 분을 뜻 깊게 추모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것이 동기가 되어 그 후로 미국 국회에서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 주일로 결정하였고, 이 사실은 곧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5월 8일을 어버이 날로 정해 어버이 은혜를 기리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일어난 일이었지요?
늙으신 부모님을 뒷바라지하기 싫다고 효도 관광이란 명목으로 비행기에 태워 제주도에 갔다 버렸습니다.
왜 제주도냐 하면, 육지에다 버리면 찾아오거든요. 
그래서 아예 못 찾아오도록 바다 건너에다 갔다 버렸어요. 
제주도 경찰 당국에서 이 노인에게 집을 찾아드리려고 주소와 가족 사항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이 입을 꽉 다물고 대답을 하지 않는 거예요.

그 이유는 혹시라도, 만의 하나라도 자식들의 이름에 먹칠이라도 할까봐, 자식들의 입장을 곤란하게 할까봐 얘기를 안했다는 거지요.
자식은 늙은 부모를 버렸는데 늙은 부모는 그 처지에서도 자식을 생각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사랑으로 살아왔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분주하고 번잡하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부모님을 생각해봅시다.

스토트라는 학자는 “모든 문명은 부모의 권위에 대한 인식을 안정된 사회의 필수 조건으로 간주해왔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한 문명의 건강성은 그 사회가 부모의 권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부모를 공경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로 그 문명의 수명은 길고, 부모를 거역하고 그 권위를 무시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로 그 문명은 곧 소멸한다는 것입니다.
성경도 말세의 현상 중의 하나가 ‘부모를 거역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딤후3:1-2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1. 패역무도한 사람들이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효도하며 살고 싶어합니다.

평생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무엇이든 반대로 하던 청개구리에게 엄마 개구리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시신을 산에 묻지 말고, 냇가에 묻어달라고 유언하였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이 죽은 후에도 반대로 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청개구리는 엄마가 죽자, 평생 엄마 말씀을 듣지 않고 속만 썩여 드린 것이 후회가 되어 마지막 부탁은 그대로 지켰습니다. 
그래서 비만 오면 어머니의 무덤이 물에 떠내려 갈까봐 개굴개굴 운다는 것이 아닙니까?
이 우화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모든 사람에게 효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2. 그러면 왜 효도를 못할까요?

제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실천이 되지 않습니까? 
마치 효도하지 않으려고 결심한 것처럼 왜 효도하지 못하고 살아갑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가 없어서 못 한다고 말합니다. 

첫째, 돈이 없어 효도를 못한다고 합니다. 
돈만 많으면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을 사드리고, 여행도 보내 드리고, 못사는 형제들에게 듬뿍 나눠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얇은 월급봉투로 아이들의 학원비 내고, 보험료 내고, 할부금 들어가고, 여기저기 쓸 데에 쓰고 나면 다음 월급날 기다리기가 벅차다는 것입니다. 
사업이 잘 되거나, 월급을 많이 받거나, 아이들의 공부를 마치거나, 집이나 하나 장만하면 본격적으로 효도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때가 되면 부모님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둘째, 시간이 없어 효도를 못한다고 합니다. 
시간만 있으면 자주 찾아뵐 텐데 일주일 내내 직장에서 시달리고, 휴일에 좀 쉬려고 하면 아이들이 놀러가자고 졸라대고, 이런저런 이유로 부모님을 찾아뵐 시간이 없습니다. 
사업을 하다보면 쉴 사이가 어디 있습니까? 
약속 한 번 어기면 돈보다 더 큰 신용을 잃습니다.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 부모님을 자주 찾아뵈려고 하는데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습니다. 
열심히 벌어 한숨을 돌리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효도하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부모님은 이미 찾아갈 수 없는 곳에 게십니다.
돈과 시간이 없어서 못합니다.

3. 그러나 따져보면, 돈과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부모님을 생각하는 관심이 없을 뿐입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돈이 없어서도 아니고, 시간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내 자식과 내 살림살이에 몰두하다보니 부모님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돈도 내 자식과 내 살림살이를 우선으로 하다 보니 부모님을 위해 쓸 돈이 없는 것입니다. 
시간도 내 자식을 위하여, 그리고 내 할 일 하다 보니 부모님을 위해 쓸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아니라.’고 이 말을 부정할 수 있습니까? 
효도하려면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어야 합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지 않는 이상 절대로 우리는 부모님께 효도할 수 없습니다.

4. 부모님께 효도하려면 삶의 우선순위를 바꿔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한 청년이 결혼한 후에 시골에 어머님만 홀로 남기고 부부가 상경했습니다. 
서울로 오기 전에 어머님께 약속을 했습니다. 
올라가서 살만한 집을 구하면 어머님을 모시러 오겠다고 말입니다. 
어머니는 며칠만 기다리면 아들이 자신을 데리러 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집을 얻어서 살림을 시작한 다음에 아들은 어머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어머님, 방을 얻긴 얻었는데 돈이 적어 단칸 월세방을 얻었습니다. 신혼인데 어머님과 같은 방에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열심히 돈 벌어서 방 두 칸짜리를 얻으면 모시러 가겠습니다.” 
아들은 열심히 일을 해서 월세 두 칸짜리 방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아들은 또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머님, 월세 사는 것이 너무 빠듯하네요. 둘이 열심히 벌어서 전세로 옮겨가야겠습니다. 모두 일하러 가면 어머님 혼자 적적하시잖아요. 시골에는 친구들도 있으니 기다리세요. 전세로 옮기면 모시러 갈게요.” 

열심히 일해서 방 두 칸짜리 집을 샀습니다. 
아직도 어머님은 시골에 계셨습니다. 
그 사이 아이들이 커갔습니다.
“아이들이 크니까 방을 따로 주어야 되겠네요. 방 세 칸짜리 집을 살 때까지 기다리세요.”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흘러서 화장실 두 개 있는 큰집으로 이사를 가려고 이삿짐을 싸는데 시골 친척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빨리 내려오라.”
우리는 자꾸 효도하는 것을 삶의 우선순위 밖으로 밀어놓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원리는 다릅니다. 
신5:16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엡6:2-3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본문을 읽다가 저의 눈이 번쩍 뜨인 내용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우선순위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께 묻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했습니까?
아니면 ‘네가 잘 되면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했지요!

오늘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면 땅에서 잘 되고,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하셨습니다.
잘 되고 나서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해도 효도해야 합니다. 
여유가 없어도 효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면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했습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더 이상 효도하는 것을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 밖으로 밀어내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순종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제는 돈이 없어서 효도하지 못한다고 말하지 마세요.
이제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효도하지 못한다고 말하지 마세요.
핑계에 불과합니다.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첫째, 급하고 중요한 일. 
둘째,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 
셋째, 급하지만 중요하지 않는 일. 
넷째, 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는 일. 
이 중에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바로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에 집중한 사람들은 미리미리 준비하기 때문에 급하고 중요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일, 효도하는 일은 당장 하지 않는다고 세무서에 벌금 내는 것도 아니고, 법원에서 재판 받는 것도 아니며, 경찰에 붙잡혀가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일만큼 인생에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어 보세요. 
여러분은 지금 충분히 부모님을 공경하며 효도할 수 있습니다. 
많은 것을 드려야만, 비싼 것을 드려야만 효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의 우선순위를 효도에 둔다면, 부모님은 그로 인해 행복해 하시며 기뻐하시고 자랑스러워하실 것입니다.

5. 그러면 성경에서는 어느 정도로 부모 공경을 강조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겠습니다.

여러분 십계명아시지요?
십계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1-4계명은 하나님께 해야 할 도리를 말씀하신 것이고, 5-10 계명은 인간에게 해야 할 도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은 인간에게 주신 계명 중 첫 번째 계명입니다.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해왔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적은 두 돌판- 하나에는 하나님에 대한 계명들이 적혀 있었고, 또 다른 하나에는 인간들에 대한 계명이 적혀 있는 것을 가지고 시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제5계명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분명히 그 내용으로 볼 때 인간에 관한 계명인데 왜 첫째 돌판, 하나님에 관한 계명을 적은 돌판에 포함되었습니까?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이렇게 해석해왔습니다.
“부모는 가정에서 하나님의 대리인이기 때문이다”
레19: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성경에서 ‘경외’라는 단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쓰이는 말인데, 어떻게 부모에게 이 단어가 쓰였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과 부모를 동등 선상에 놓을 정도 부모를 귀히 여기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23:22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신약 성경에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 외에,
골3: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딤전5: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만한 것이니라.”

6. 효도하면 어떤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까?

부모공경에 대한 계명은, 인간이 해야 할 당연한 도리임에도 불구하고 축복의 약속이 있는 첫 번째 계명입니다.
어떤 축복입니까?
본문 엡6:3절을 보십시오!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① 장수의 복입니다. 
“땅에서 장수하리라”
그래서 ‘효도는 가장 좋은 보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보, 사랑해요!’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와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이 세상에 있는 어떤 보약보다 귀한 보약입니다. 건강하기를 원하십니까? 오래 살기를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살아계신 부모님을 공경하십시오!”

② 형통의 복입니다. 
“네가 잘되고”
장수의 복에는 반드시 잘됨이 따라야 합니다.
잘됨이 없는 장수란, 복이 아니라 욕이고 괴로운 것입니다.
실제로 ‘사는 것이 지옥 같다’ ‘이런 험한 꼴을 보려고 이제까지 살았는가?’ ‘죽지 못해 산다.’라는 얘기를 어렵지 않게 듣게 되거든요.
우리 교우들은 부모를 공경함으로 장수의 복과 형통의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이제 하워드 헨드릭스의 ‘사람을 세우는 사람’에 나온 얘기를 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내가 신학교 교수라는 사실이 아이들에게 결코 감명을 주지 못했다. 내가 쓴 몇 권의 책이나 또는 내가 전 세계를 돌면서 강연하는 것에 대해 아이들이 경의를 표한 적이 없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삶의 현실에 투영되는 정도만큼만 감명을 받았다. 아버지로서 자녀들과 놀아주며 그들의 고장 난 자전거의 타이어를 고쳐주는 것이 목사로서 나의 삶에 중요한 일이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삶은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나타내 줍니다.
가정마다 효도를 세움으로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드러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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