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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행복한 가정 만들기 (골 3: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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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 만들기 (골 3:18-21)


어떤 사람이 한 호텔에 묵게 되었습니다. 푹 쉴 생각에 최고급 호텔에 가장 경치가 좋은 방을 예약했습니다. 체크인을 하고 예약된 방에 짐을 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지배인이 찾아와서는 이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저희 호텔을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집에서처럼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인사를 받은 이 손님이 갑자기 풀던 짐을 다시 싸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퇴실을 하는 것입니다. 
지배인이 놀라서 물었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 손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집이 골치가 아파서 집을 피해 쉬려고 왔는데 집에서처럼 쉬라니요...!”

그렇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에게 집은 쉬고 싶은 곳이 아니라 피하고 싶은 곳이 되고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는데, 정작 그 가정에서 행복을 찾아보기 힘이 듭니다. 결혼 초 잠깐의 행복은 있었지만 갈수록 그 행복이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많은 가정들에서 행복이 무너지고 있을까요? 한 마디로 행복의 출처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잘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오늘 본문에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부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부모와 자녀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고, 부모는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해 보면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족 간의 관계를 올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부의 관계를 올바로 세우고, 또한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올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가족 한 사람 한 사람 사이의 관계가 올바로 세워질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조건이 아무리 완벽해도 가족 간의 관계가 금이 가 있다면 그 가정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한자어로 ‘가정’이라는 말을 집 ‘家’와 뜰 ‘庭’으로 표기합니다. 여기서 家라는 말은 가정을 이루는 외적인 요소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가족 한 사람 한 사람과 가족들의 삶의 한경을 말합니다. 영어로는 house 에 해당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庭이라는 말은 가정을 이루는 내적인 요소를 말합니다. 말하자면 가족들 사이의 관계를 말합니다. 영어로는 home에 해당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가정의 행복을 가정의 외적인 요소에서 찾으려 합니다. 그래서 남편은 돈 잘 벌어오고 아내는 살림 잘하고 아이들은 공부 잘하면 행복한 가정이 될 줄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정이 살림이 넉넉해 져서 좋은 집, 좋은 환경에서 살면 더욱 행복한 가정이 될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된 가정의 행복은 가정의 내적인 요소에서 옵니다. 가족들 사이의 돈독한 관계 안에서 행복한 가정이 오는 것입니다. 비록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 세상적으로 내세울 것이 없어도, 가정의 살림 형편이 보잘 것 없어도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며 친밀한 관계를 이룰 때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인 것입니다.

그러면 가족들이 좋은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을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 감사

오늘 본문을 보면 “주 안에서”라는 말씀이 두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관계가 다 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주 안에서 올바르게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 역시 주 안에서 올바르게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우선 가족들 사이의 관계가 “주 안에서” 세워져야 합니다. 부부 관계가 주 안에서 세워져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가 “주 안에서”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부부가 만나고 교제하고 결혼하여 한 몸을 이루게 된 것, 다 하나님의 역사였다는 점입니다. 부모에게 소중한 자녀들을 주시고 양육하게 하신 것, 다 하나님의 역사였다는 점입니다. 자녀에게 귀한 부모를 주시고 그 사랑을 받게 하신 것, 다 하나님의 역사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부부의 관계가 주 안에서 세워지려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런 아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런 남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주 안에서 세워지려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런 부모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런 자녀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럴 때 가족들 사이의 모든 관계가 “주 안에서” 세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행복한 가정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렉스]라는 감동적인 책이 있습니다. 시각과 자폐의 복합장애를 가진 렉스라는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 캐슬린이 전하는 위대한 모성의 눈물겨운 이야기입니다.

캐슬린 루이스는 프랑스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다가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와 결혼을 하고 아들 렉스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렉스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자폐아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걸음마를 시작해야 할 나이에 걷지도 못했고 말도하지 못했습니다. 딱딱한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날마다 어두운 자기만의 세상으로 깊이 빠져들어 갔습니다. 견디다 못한 캐슬린은 신경쇠약 직전까지 내몰렸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왜 저와 이 어리고 천진난만한 아이에게 큰 고통을 주셨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캐슬린은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자기에게 보내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입으로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이 아이를 제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고백 이후 더욱 눈물겨운 사랑의 양육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을 놀라게 할 기적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비 오는 어느 날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베토벤의 음악을 들려주었습니다. 렉스는 강열하게 반응을 보였습니다. 캐슬린은 렉스가 남달리 음악적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었습니다. 2살이 되던 생일날 아버지가 전자피아노를 선물로 사주었습니다. 이 전자 피아노 앞에 앉은 렉스는 놀라운 선율을 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세계 안에 갇혀있던 아이가 음악 세계로 뛰쳐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국 CBS TV를 비롯해 매스컴의 주목을 받으면서 일약 스타가 되었고, 전 세계를 감동시켰습니다.

그리고 6살 되던 어느 날 드디어 렉스는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토록 엄마 캐슬린이 듣고 싶어 하던 말을 떠듬거리며 하는 것입니다. “사랑해 엄마!” 캐슬린은 가슴 벅찬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외쳤습니다. “하나님 이 아이를 제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의 행복은 가족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비록 지금은 남편이 문제가 있어도,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남편이 변화될 것이고, 아내가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부모님이 원망스러워도, 자녀들이 속을 썩여도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부모님이 달라질 것이고, 자녀들이 변하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 가정의 행복이 있습니다.

가정의 불행은 가족들 때문에 원망하는 데에 있습니다. 왜 이런 남편을 만났는가? 왜 이런 아내와 살아야 하는가? 왜 이런 부모 밑에 태어났는가? 왜 우리 아이들은 이 모양인가? 이런 불평과 원망이 불행을 가져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족들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서로 존중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이런 명령이 나옵니다.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는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아비들에게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먼저 선결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서로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존중해야 복종할 수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우습게 보는데 어찌 복종할 수 있겠습니까? 남편도 아내를 존중해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함부로 생각하는데 어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를 존중해야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를 존중해야 노엽게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젊은 부부 이야기입니다. 아내와 남편이 툭하면 다투고 싸웁니다. 그날도 두 사람이 여행을 갔다 돌아오다가 또 티격태격 다툽니다. 남편이 길거리에 지나가는 개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빈정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봐! 저기 당신 집안 식구가 지나 가네 인사나 드리지” 평소에 늘 아내를 무시했던 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아내가 질세라 개를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시아주버니....ㅁ!”

나이든 부부 이야기입니다.  은퇴한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마음이 이렇답니다. ‘집에 두면 근심 덩어리, 데리고 나가면 짐 덩어리, 마주 앉으면 원수 덩어리, 혼자 내보내면 사고 덩어리, 며느리에게 맡기면 구박 덩어리...’

그렇습니다. 이런 부부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서로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데 금슬이 좋을 수 있을까요?
고사성어가운데 ‘상경여빈’(相敬如賓)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부간에 손님 대하듯 서로 존중함’을 뜻하는 말입니다.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에 서신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노나라 사신으로 파견되었다가 돌아오는 길에 밭에서 김을 매고 있는 한 사내를 보았습니다. 때마침 아내로 보이는 여인이 새참을 들고 사내 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여인은 사내에게 다가가 깍듯이 인사를 하고 가지고 온 새참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들어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내도 똑 같이 예를 갖추며 그것을 받았습니다.

부부 같아 보이는데 손님 대하듯 하는 이 두 사람의 사이가 무척 궁금해진 서신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나는 진나라의 대부 서신이라고 하오. 이곳을 지나다 두 사람을 보게 되었는데 어디에 사는 누구시오? " "소인 극결이라고 하고, 이 여인은 저의 아내되는 사람입니다. 보시다시피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신은 이 극결이라는 사람을 데리고 진나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극결을 천거했습니다. 그러면서 극결을 천거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극결 부부가 ‘상경여빈’ 즉 부부간에도 서로 극진히 공경하는 모습을 제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백성을 덕으로 다스릴 것이고 군주께는 물론이며 나라의 강성과 안녕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존중이 필요합니다. 부부가 서로를 존중할 때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를 마음깊이 존중할 때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족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시기 바랍니다.

3. 사랑의 헌신

오늘 본문을 보면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남편도 정말 아내를 사랑하여 괴롭게 하지 않는 일도 쉽지가 않습니다. 자녀들도 부모님께 순종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부모도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않는 일도 쉽지가 않습니다.

이렇게 하려면 사랑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남편에 대한 헌신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도 그 자체로 아내에 대한 헌신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님께 순종하는 일 역시 그 자체로 부모님께 대한 헌신입니다. 그리고 부모들이 자녀를 사랑으로 돌보는 것 또한 그 자체로 자녀들에 대한 헌신입니다.
그러면 헌신이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헌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쁨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십자가를 지시지 않으셔도 되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그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기쁨으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려면 가족들을 위해 기쁨으로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닙니다.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그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며 큰 고통을 견디셔야 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가시관도 쓰셨습니다. 창에 찔리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심한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견디기 힘든 수치도 당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려면 가족들을 위해 고통도 견뎌야 합니다. 때로는 육체적인 수고를 담당하며 큰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견디기 힘든 마음의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피하고 싶지만 끝까지 피하지 않고 그 고통을 다 겪어냅니다.
이런 가족들을 향한 헌신이 우리 가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세워 갑니다.

며칠 전 도림교회를 목회하시는 ‘정명철 목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뜻 밖에 이분이 신학교 다니다가 몇 차례 학교를 그만 두고 뛰쳐나간 일이 있었답니다. 학부를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도망 친 일이 있었답니다.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겨우 학부를 마쳤답니다. 그리고 신대원을 다니다가도 그만두겠다고 또 학교를 그만 둔 일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결국은 다시 마음잡고 돌아와서 신학 수업을 다 마치고 어엿한 목사가 되어 지금은 훌륭하게 목회를 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목사님이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준 것이 있었는데 바로 ‘어머니의 기도’였답니다. 18년 동안을 매일 아침 금식을 하시며 기도하셨답니다. 저녁마다 교회 강대 앞에서 엎드려 기도하셨답니다. 한 겨울에는 담요를 뒤집어쓰고 철야하며 기도하셨답니다.
자기가 신학수업을 다 마치고 목회를 하게 되면서, 어머님이 18년 만에 아침 식사를 하시기 시작하셨답니다. 그리고 목회를 제대로 하게 되면서, 저녁에 집에서 편히 쉬실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자신이 목회하게 된 것은 다 어머니의 헌신 때문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족들을 위한 헌신이 가족들을 세워줍니다. 가족들을 위한 헌신이 그 가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세워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정을 위해,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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