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린이주일] 예수님의 어린 시절 (눅 2:40-52)

첨부 1


예수님의 어린 시절 (눅 2:40-52)

여러분 이런 말 들어보셨죠? 무자식이 상팔자다. 모르는 분 없을 거예요. 가지 많은 나무가 바람 잘 날 없다. 잘 아시죠? 요즘은 뭐 나봐야 둘 셋이지만 예전엔 7남매 10남매씩 낳다보면 별별 자녀들이 사고치고 많죠. 큰 애가 사고 안치면 막내가 치고, 그래서 바람 잘 날이 없는 거예요. 자녀들을 키우가 쉽지 않죠. 낳기도 힘들지만 키우기도 쉽지 않아요. 그런데 어려운건 내 뜻대로 안되는거예요. 좀 반듯하게 자라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아이 하나 키우는데 돈이 얼마들까. 낳아서 대학 졸업까지 시키는데 보통 3억든데요. 그러니까 둘 키우면 6억이예요. 윤복영권사님 남매가 모두 7남매인가요? 7남매면 얼마든거예요. 20억이 든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자녀만 잘 키워놓으면 재벌이 되는거예요. 거기에서 도움 받는게 아니라 그만한 걸 여러분이 투자할 능력이 된다는 거예요. 자녀를 잘 키운다는건 이미 성공한 분들이다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돈 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훌륭한 인물이 되고 올바른 삶을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게 우리 고민인거예요. 특별히 이 사회 현실이 이 학교 교육이라는 것이 인격 교육이 아니예요.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입시 위주의 교육이예요. 누가 명문대학에 더 많이 붙이느냐 거기에 목적이 있다는 거예요. 지식 위주의 교육이예요. 그러다 보니 아이의 심령도 강팍해요. 공부 잘하는 애들은 인정 받지만 조금 공부가 떨어지는 애들은 학교에서 열등감을 느껴요. 자꾸 뒤로 밀려날 수 밖에 없어요. 이러니까 이게 참 안타까움이 있는거예요. 

오늘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야 되냐. 물론 여러분들 대부분은 자녀들이 이미 다 커서 출가한 분들이 많고 그럴꺼예요.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 손자손녀가 또 있잖아요. 정말 손자손녀들을 어떻게 하면 잘 키울 수 있을까? 우리는 그 비결을 성경에서 찾아야 되요. 성경이 말씀해 주는 교육관 성경이 말씀해주는 자녀교육, 우리가 그것을 우리 마음에 담아야 될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물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탄생기사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그것도 어린 시절은 오직 누가복음에서만 나옵니다. 그러니까 누가복음이 참 귀한거예요. 예수님 오늘 열 두 살 때 무슨 일을 하셨는지 오늘 성경에 소개되잖아요. 다른 복음서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어요. 그러니 누가복음이 너무 귀한 거예요. 자 예수님은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내셨을까? 우리가 그것을 생각하면서 자녀 양육의 지혜를 배우면 좋겠어요. 

자 먼저 우리가 성경 40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실까요. 아이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아이가 자라간다는 것은 육체적인 성장 지혜가 충만하다는 것은 지적인 성장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다는 것은 영적인 성장을 의미해요.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성장하고, 지적으로 성장하고, 영적으로 성장하신 분이다. 이걸 여러분이 생가하시면 되시면 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는 예수님의 아주 유아기 어린 아기 때에 모습을 우리에게 비춰주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이 좀 성장해서 열 두 살이 되었을 때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처음 여행을 떠났어요. 그 얘기를 우리에게 소개해주고 있는 거죠.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의 중요한 3대절기 뭐죠?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이 세 가지 절기 때에는 온 가족이 예루살렘으로 절기를 지키로 올라갔어요. 그게 유대인들의 경건예식이에요. 

그런데 예루살렘 올라갈 때 그냥 올라가는게 아니예요. 일가친척이 같이 올라가요. 또 마을 사람들이 떼를 지어올라가 갑니다. 한 이삼십명, 삼사십명이 올라가면 강도가 무섭지 않아요. 도둑이 무섭지 않아요. 그래서 안전 때문에 같이 올라갑니다. 같이 쭉 올라가서 일주일동안 절기를 지키고 예배를 드리고 또 같이 내려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일주일이 다 지나고 그렇게 내려오는데 예수님이 안보이는거예요. 마리아와 요셉이 보니까 왜, 아이들이 많으니까 저 중에 있겠지 생각 했는데 하루가 지났는데 보니까 없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걱정이 돼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어요. 

그런데 예루살렘과 갈릴리 나사렛은 거리가 멀잖아요. 어마어마한 거리예요. 우리가 성지순례 가보면. 다시 올라왔단 말이예요. 그래서 어디 가서 찾았을까? 여러분 열 두 살 자리가 없어지면 어디가서 찾아야 되요? 요즘으로 말한다면 놀이터나 pc방, 게임방, 노래방으로 찾아갔을거예요. 거기 안계셔. 예수님이. 그래서 이상하다 어디갔나하고 가봤더니 예루살렘 성전에 계신 거예요. 거기서 예수님이 또 율법교사들과 막 토론을 하고 대화를 하는데 그 지혜가 아주 놀라울 정도로 성숙해 있었어요. 그걸 보고 놀랐어요. 아니 박사들과 대화를 하는데 하나도 밀리지가 않아요. 

아 예수님이 정말 지혜롭게 성장하고 계신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가 가서 야 어떻게 말도 안하고 여기 와 있느냐? 네 아버지와 온 가족이 걱정하지 않았느냐! 라고 이야기합니다. 아직 어린 소년 예수님이니까 아마 꾸지람 비슷하게 말씀하셨겠죠.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주셨어요. 자 오늘 성경 49절 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아멘.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이게 무슨 이야기예요?

이것은 예수님의 자의식 속에 본인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메시아라는 자의식이 생겨나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어요. 여러분 이걸 주목하셔야 되요. 내 아버지, 구약에서도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는데는 딱 14군데 밖에 없어요.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건 아주 신약에서 특별한 겁니다. 그리고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음속에 본인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메시아이심을 깨달아가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자 예수님은 바로 이렇게 이미 하나님과의 교제를 갖기 시작했고 또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이것은 바로 영적인 성장을 의미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 본문을 다시 생각해보면 갈릴리 나사렛에서 멀리 끝에 있는 예루살렘까지 성지순례를 올라갈 정도로 이미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건강해지셨다. 육체적으로 성장을 이루고 계셨어요. 또 율법학자들이나 교사들하고 토론을 할 정도로 지혜가 지적으로 성장하고 계셨고 또 사람들고 스스럼 없이 이야기할 정도로 인격적으로 사회적으로 성장하고 계셨다는거예요. 

요즘 아이들 너무 소심하면, 어디에 갖다 놓으면 스마트 폰으로 게임만하고 있지 누구하고 얘기할 줄을 몰라요.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말할 줄을 몰라요. 그런데 예수님은 처음 보는 사람들하고 훌륭하게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는 거예요. 이것은 예수님의 인격성과 사회성을 의미하는거예요.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영적교제를 이미 이루고 계셨다는 겁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 52절 말씀이예요.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그래서 이 모습 속에는 예수님이 네 가지 성장의 모습이 다 소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자녀를 바르게 키우려면 누구처럼, 예수님처럼 키워야 되요. 우리 자녀가 예수님처럼 성장해 간다면 그것처럼 아름다운게 없어요. 그래서 우리 부모들은 그런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우리 자녀들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오늘 예수님의 균형 잡힌 모습 이 네 가지를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첫째 예수님은 육체적인 성장을 이루고 계셨다. 그래서 “키가 자라가며”,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 지고” 건강이라는거 매우 중요하죠. 그래서 부모들의 제 일의 소원은 뭐예요. 우리 아이가 좀 건강하게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거 중요해요. 물론 영혼이 중요하지만, 그 영혼을 감싸고 있는 육체가 강건해야 돼요. 아무리 아이가 뛰어나고 재능이 많아도 건강하지 않으면 그 꽃을 피울 수가 없어요. 우리가 여러분 신앙생활이 그렇잖아요. 건강해야지 봉사도 할 수 있고, 찬양도 할 수 있고, 기도도 할 수 있지 건강이 따라주지 않으면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건강관리를 잘 해야 되요. 왜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니까. 

자 우리 고린도전서 6장 19절 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예요. 그래서 우리 몸의 순결, 거룩함을 가져야 된다. 

여러분 옆에 분들에 이렇게 인사합시다. “당신은 위대한 성전입니다.” 함부로 때리지 마세요. 거룩한 몸입니다. 왜?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임재해계시기 때문에 나는 거룩한 성전이다. 그러니까 내 몸을 잘 관리해야 되요. 내 몸을 학대하면 안 돼요. 

여러분. 내가 말을 안듣는다고 나를 굶기고 이러지 마세요. 잘 먹어야 되요. 운동도 하셔야 되요. 그렇죠? 특별히 자녀들의 건강을 위해서 관심을 기울이셔야 돼요. 요즘 아이들은 너무 비만이 많이 오더라구요. 운동을 안하고 먹기만 하고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으니까. 그래서 아이들을 자꾸 부모와 함께 산책도 하고 등산도하고 운동도 하고 이게 너무 필요한 거예요. 

자 두 번째로 중요한 성장이 지적인 성장이예요. 여러분 예수님은 지혜가 자라갔다. 그 지혜 이전에 지식이 자라갔다는 의미로 보셔도 됩니다. 예수님도 세상 지식에 대한 공부도 하셨을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 모든 언어나 모든 것을 보면 사람들을 능가할 수 있는 거예요. 우리 아이들도 세상 학문 공부해야 해요. 세상 지식 공부해야 해요. 공부 안하면 남에게 뒤지니까!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안돼요. 우리 아이들이 제일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알아야 돼요. 또 성경 말씀 하나님 말씀을 배울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배울 때 그 아이가 지성적인 아이가 되고 지혜로운 아이가 될 수 있어요. 잠언 1장 7절에 보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이라고 했어요.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최고예요. 

여러분 거기서부터 지혜를 얻게 돼요. 또 모든 진리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예요. 여러분 우리가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것 너무 중요하지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교회학교에 와서 선생님에게 성경을 배워요.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하나님 말씀을 배우는 것이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도 여러분 알다시피 초등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고 흑인 해방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어요. 링컨 대통령의 전기를 기록한 한 전기 작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링컨은 위대한 지도자가 될 만한 어떤 조건도 갖추지 못했다. 다만 하나님은 그에게 두 가지를 주셨다. 첫째는 가난이고 둘째는 신앙의 어머니이다.’ 링컨의 그 어린 시절의 가난함이 그로 하여금 위대한 인물이 되게 했습니다. 두 번째 신앙의 어머니가 그로 하여금 위대한 인물이 되게 했습니다.

링컨은 그의 친구인 빌리 헌던이라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보게 나는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성경을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면서 성장했다네. 지금도 내 마음 속에는 통나무집에서 어머니가 성경을 읽고 기도하던 소리가 내 마음 속에 고동치고 있다네.’ 

여러분 아이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것 이것이 너무너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이들 지식 성장에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언젠가 신문에서 보니까, 어느 교단에서는 교회에서 성경 대회를 하고 노회에서 성경 퀴즈 대회를 하고 총회에서 성경 퀴즈 대회를 해서 어마어마한 상품을 주는 거예요. 거기서 일등을 하면 대학 등록금도 주고 큰 상을 주는 것입니다.

거기에 6년 동안 일등을 하는 아이가 있어요. 그 아이가 제일 좋은 대학교 들어갔어요. 기자가 와서 물었습니다. ‘아니 너는 성경만 공부하다가 어떻게 그렇게 명문 대학에 들어갔니?’ ‘성경 공부하다보니까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고 성경을 암송하다보니까 이해력이 생겼어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가장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한 예가 되겠지만 아이들이 성경을 배우는 것은 너무너무 중요해요. 그래서 우리 부모님들이 시험기간만 되면 중등부가 다 울상이 되고 고등부가 울상이 됩니다. 아이들이 한 반이 다 안 나와요. 내일이 시험이라 학원을 갔대요. 자 여러분!! 이래서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시험이라고 해서 아이들이 교회학교 다 빠진다는 것은 뭔가 잘못된 거예요. 우리가 평소에 열심히 하더라도 주일에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먼저 예배드리는 것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구세군 창설자 윌리엄 부스의 부인은 이런 말을 했어요. ‘한 어린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은 세계를 구하는 첫 걸음이다.’ 우리 아이 하나를 하나님 말씀을 잘 가르치면 세계를 구원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탄보다 앞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아이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어지지 않으면 그 빈 자리에 사탄이 와서 거짓의 씨앗을! 죄악의 씨앗을 심어 놓는 다는 것입니다. 거기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 있으면 죄의 씨앗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자녀들을 지혜롭게 하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상영되었던 유명한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여러분은 웬만하면 다 아실거예요?! 2차 대전 때 유대인들이 포로수용소에서 고통 받던 내용이 이 쉰들러 리스트에 기록되어 있지요. 거기 보면 몇 가지 끔찍한 장면이 나옵니다.

첫 번째 장면은 한 독일 장교가 아침에 자고 일어났어요. 하품을 하면서 창문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창문에 보니까 한 포로 여자가 짐을 들고 앞을 걸어가고 있었어요. 그것을 보고 빙그레 웃더니 자기가 가진 장총을 가지고 창문을 열고 그 여자를 조준하더니 쏴 버렸어요. 여자가 짐을 가지고 가다가 쓰러져 버렸어요. 그리고 빙그레 웃고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하는 거예요. 사람의 생명을 파리 생명처럼도 안 여기는 거예요. 유대인의 생명이라는 것은 생명도 아닌거예요. 그런 시대였어요.

또 어떤 일이 소개됩니다. 이 독일군 사병 하나가 자기가 키우던 닭이 한 마리 있었는데 알을 매일 먹었나 보죠?! 그런데 그 닭이 없어져 버렸어요. 그러니까 유대인 포로들을 집합을 시켰어요. ‘너희 중에 누가 내 닭을 훔쳐 간 놈 나오라.’고했어요. 그런데 누가 나옵니까?! 안 나오니까 본보기로 맨 앞에 있는 사람을 총을 쏴서 죽였어요. 빨리 나오라고 안 나오면 다 죽인다는 거예요. 두 번째 사람을 정해서 조준을 합니다. 공포에 떨면서 아무도 나올 수도 없어요. 내가 범인이라도 나올 수가 없어요. 무서워서 어떻게 나올 수가 있겠어요. 

그런데 한 어린 소년이 뚜벅 뚜벅 걸어 나왔어요. ‘네가 훔쳤지?’ ‘전 아니예요.’ ‘그럼 누가 훔쳤는지 네가 봤구나? 누구야? 누가 훔쳤지? 네가 알고 있어?’ ‘예 제가 알고 있어요.’ ‘그럼 빨리 말해봐.’ 이 소년이 손가락으로 성가대 석 쪽을 가리켰어요. 어떤 사람을 가리켰어요. 그러더니 이 독일군 사병이 총을 거두었어요. 그리고는 다 해산을 시켰어요. 소년은 누구를 가리켰을까요? 이미 첫 번째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을 가리켰어요. ‘저 사람이 훔치는 것을 내가 봤다는 거예요.’ 죽은 사람은 말을 못하니까. 이미 죽었으니까. 어떻게 됐어요? 모든 사람이 다 살아났어요. 그 아이의 지혜 때문에. 그 유대인 소년의 지혜가 그 많은 어른들을 살릴 수 있었어요. 이 지혜라는 것은 책에 안 나와요.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한 아이들에게서 나오는 지혜라는 거예요. 성경은 우리를 지혜롭게 한다는 거예요. 이 지적인 성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룰 수 있다는 거예요.

자 우리 자막에 시편 19편 7절 말씀을 한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아멘! 여기 지혜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업의 길이 있고 직장 생활의 승리의 길이 있고 성공의 길이 성경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업이 잘 안되십니까? 오늘부터 성경을 꼭 읽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길이 있어요. 

자 세 번째 성장은 인격적 성장, 사회적 성장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예수님은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인정받는 분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스스럼 없이 대화하고 사람들을 사귀고 그래서 예수님은 세간에 가서는 세리들과 사귀고 때로는 창녀들과 대화도 나누시고 또 아주 귀족의 신분들과도 대화를 나누고 사귀시니까 예수님의 인간 관계의 폭은 굉장히 넓습니다.

만약에 사람이 인격적인 성장 사회적인 성장이 안 되면 고립됩니다. 자기 혼자의 세계 속에 갇혀 삽니다. 이것이 문제죠. 여러분 예수님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훌륭하고 건강한 성장을 이룩하셨다는 것이죠. 또 어떤 공동체 속에서나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트러블 메이커’ 자기가 받은 상처를 남에게 돌려줍니다. 그래서 계속 비판하고 정죄하고 판단합니다. 이것이 트러블 메이커입니다. 이것은 인격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미국에 가서 박사 학위를 받아 왔답니다. 5개 국어를 유창하게 합니다. 그리고 돌아왔습니다. 이 사람은 이제 뭔가 중요한 대기업이든 국가 부처든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박사 학위가 아주 특별한 학위를 받아 가지고 왔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이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 있다가 죽었어요. 왜 죽었는지 아세요? 자기 집 앞에 슈퍼마켓이 있습니다. 거기 무엇을 사려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빨간 불이 켜져 있는데 걸어갔어요. 차가 와서 그냥 쳐서 죽었어요. 

자 여러분!! 이런 지식이 무엇이 필요합니까? 박사 학위가 10개인들 무엇이 필요합니까?! 공중도덕도 지킬 줄 모르는데요. 

인격적인 성장, 사회적인 성장은 바로 상식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업의 도덕을 준수하고 질서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이것이 건강한 아이들이 되는 거예요. 공부를 잘해도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면 고립된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되고 결국 사회에서 패배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거예요. 

좀 미안한 얘기지만 명문 대학 나와서도 어려움 당하는 사람들 많아요. 왜요? 그 사회적 성장이 부족해요.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니까 회사에 들어가면 그만 두고 들어가면 그만 두고!! 어울릴 수가 없는 거예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 아이들과 자꾸 어울리고 부딪치는 것 이것이 인격적 성장에 아주 중요한 거예요.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영적인 성장을 일으켰어요. 자녀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이 영적인 성장이예요.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거예요. 여러분 영혼이 구원받고 생명 얻는 것처럼 귀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세상적으로 아주 성공하고 출세해도 그가 예수를 모르고 구원받지 못했다면 그의 가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것은 이 땅에 잠시와 마찬가지인 거예요. 영원한삶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특별히 오늘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영적인 성장을 누리는 두 가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예배입니다. 

오늘 49절에 읽었던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는 그 말씀을 한 신학자는 이렇게 주석했습니다.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하는 것은 내 인생에 가장 필요한 우선순위 임을 모르셨습니까? 다시 말하면 왜 예수님이 성전에 가셨을까? 예배하러 가셨습니다. 예배드리러 가는 성전에 머물기를 즐겨하셨다는 것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을 우선순위로 둘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인 것입니다. 학교 가는 것도 중요하고 운동하는 것도 중요하고 다 중요한데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을 우선시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건 부모가 보여줘야 해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에요. 사업이 중요하고 직장이 중요해도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이 여러분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해요. 옆에 분들에게 물어보세요. 예배가 당신의 우선순위가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예배드리는 사람은 생명을 걸고 예배드리는 거예요. 이것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해요. 그래야 인생의 희망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 하나님을 뒤전으로 미뤄놓으면 안되요. 예배가 우선이다. 

두 번째 예수님의 영적 성장의 모습은 순종입니다. 우리 성경 51절 말씀 읽어볼까요?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아멘.

예수님은 나사렛에 가셔서 그 부모님께 순종해서 받들었다. 이게 중요해요. 예수님은 순종을 배우셨어요. 부모에게 순종하고 하나님께 순종했어요. 우리 아이들에게 순종을 가르치셔야 해요. 예수님의 생애는 순종으로 가득 차있어요. 십자가를 지는 것도 순종이고, 그는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요한이 내가 어떻게 당신에게 세례를 받습니까? 괜찮다. 나에게 세례를 주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순종의 세례를 받고 나니까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어요. 우리가 순종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문화 속에서 청년들의 문화 속에서 불순종의 문화가 싹트고 있어요. 부모의 말에 순종하면 그거 바보 멍청이야. 앞에서는 하는 것 같아도 뒤에서 하지 말아야지. 거부의 문화 저항의 문화가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선생님 말을 잘 들어요. 안 들어요? 안 들어요. 선생님 말씀 잘 들으면 왕따 당한데요. 직장에 가서 직장인들이 상사 말 잘 안 들어요. 앞에서는 듣는 척 해도 뒤에서는 욕해요. 그게 무슨 자랑스러운 거라고 잘못된 거예요. 우린 가정에서는 부모님께 순종하기를 배워야 해요. 직장에 가면 상사들에게 순종하기를 배워야 해요. 교회에 오면 영적 지도자에게 순종하기를 배워야 해요. 나아가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영적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교회의 문화속에서도 자꾸 저항과 거부의 문화가 있어요. 모든지 말하면 저항하려고 하고 거부하려고 하고 불순종하려고 하고 잘못된 거예요. 직장에서도 자꾸 직장 상사에게 순종하면 왕따 당한데요. 그런 왕따는 괜찮아요. 어떤 책에 보니까 왕따를 이렇게 설명했더라고요. 왕따란 무엇인가? 왕을 따르는 사람이 왕따래요. 우리의 왕되신 주님을 따르면 그거 흠 없는 거예요. 

여러분 비록 왕따가 되더라도 우리는 신앙대로 살아야 해요. 물론 불의에 대해서는 거부하고 저항하지만 정당한 것에 대해서는 순종해야 해요. 그런 사람이 건강한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녀들에게 영적인 신앙 그리고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할 것을 부탁하고 계십니다. 자녀에게 재산을 남겨는 거 조금 남겨주는 거예요. 지식을 남겨주는 거 좀 더 많이 남겨주는 거예요. 그러나 신앙을 남겨주는 것은 전부를 다 남겨주는 거예요. 그것에 그 아이의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너무 중요한 거예요. 

이태리 피렌체에 가면 메디치 가문이라는 아주 유명한 가문이 있습니다. 이 가문은 평범한 중상층 가문이었는데 그 조상이 은행업에 손을 대서 신뢰를 얻고 세계적인 은행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그 돈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후원했어요. 미켄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많은 예술가들을 양성해냈어요. 그런데 그 가문에서 로마 바티칸의 교황이 두 명이 나왔어요. 한 가문에 교회이 한 명 나와도 대단한 건데 그 가문이 두 명씩 교황을 만들어냈어요. 대단한 명문의 가문입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왕비가 두 명이나 탄생했어요. 그 메디치 가문에서 또 유명한 사람들이 수없이 배출됐어요. 350년 동안 그 가문은 명문 가문이었어요. 그 가정 나름의 특별한 방식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명문가문을 만드는 특별한 능력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 그 아이들 데리고 나오는 거 중요하죠. 누가복음 7장에 보면 이 나인성의 과부가 아들이 죽어서 울면서 상여를 끌고 나인성 밖으로 장례를 지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나인 성으로 가시다가 그 장면을 보셨어요. 과부의 울음을 보시고 너무 안되셔서 예수님은 그 부정한 상여에 손을 대십니다. 이 상여에 손을 댄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손을 대시고 젊은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젊은 이가 살아났다는 것 아닙니까?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녀들은 죽은 자녀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그를 예수님 그리스도와 만나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통해서 그가 회복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우선이고 또 동시에 우리 이웃의 버려진 아이들 그 아이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면 좋겠어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 어린이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전도에요. 

어른을 전도하면 20년 30년 살다가 하늘나라로 가시지만 아이를 전도하면 70년 80년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수 있어요. 사실 어린이 전도가 훨씬 귀한 거예요. 여러분 어린이 전도에도 좀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제가 서두에 중보기도할 때 말씀 드렸어요. 우리 사회의 나홀로 아동이 100명 중 23명이에요. 학교 갔다오면 보통 3시간 5시간은 아무도 부모가 없어요. 그러니까 버려진 아이들처럼 물론 학원이라도 가고 방과후 학교라도 가는 아이들은 괜찮은 아이들이지만 혼자 있는 아이들이 23명이에요. 그 아이들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가 언제냐하면 23%의 아이들이 갑자기 몸이 아플 때가 힘들데요. 병원을 혼자갈 수 없으니까. 또 그중 16%의 아이들은 먹을 것 이 없어서 배고플 때 부모가 없으니까 너무 서럽다는 거예요. 14%은 갑자기 뭐를 사야하는데 돈이 없을 때8%는 낯선 사람이 초인종을 누를 때 제일 무섭다는 거예요. 2.2%는 동생이 아파서 울 때 너무 괴롭다는 것이에요. 1.2%는 나쁜 사람에게 맞거나 돈을 빼앗겼을 때 너무 서럽다는 거예요. 우리 주변에는 나홀로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여러분 주위에도 많아요. 

또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 자라는 아이들도 너무 많고 여러분 조금만 신경을 가지고 그 아이들을 돌봐 주세요. 주일날이면 찾아가서 교회도 데리고 오세요. 좀 기도해주고 후견인이 되세요. 그것이 바로 내 손자, 자녀 키우는 것 만큼 중요한 일이에요. 그럴 때 사회가 정말 아름다워 질 수 있고 범죄가 줄 수 있고 하나님 뜻을 이룰 수 있어요. 우리 영신교회 교우들이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자녀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양육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웃에 소외된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가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