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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약속이 있는 첫 계명 (엡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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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이 있는 첫 계명 (엡 6:1-3)


예로부터 한국을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했고,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도“한국은‘孝’로 인해 장차 인류에 공헌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바가 있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효도(孝道)는 성경의 핵심 생활강령입니다. 십계명 가운데 제 5계명이 효의 계명입니다. 십계명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제1~4계명은 인간이 하나님께 대하여 행할 생활강령입니다. 제5~10계명은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행할 생활강령입니다. 

이 인간에 대한 생활강령 중 첫 번째가 살인하지 말라도 아닙니다. 간음하지 말라도 아닙니다. 도둑질하지 말라도 아닙니다.“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인 효도의 계명입니다. 그래서 본문 2절 말씀에“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첫 계명이라는 것은 인간에 대하여 행할 생활강령의 첫 번째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핵심 생활강령인 효도의 문화가 우리나라의 전통이었습니다. 오늘날 그런 나라에 경제적, 정치적 위기보다 더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회의 기반을 흔들어 놓는 탈 권위의 위기입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가정과 학교, 직장을 비롯해 교회마저도 권위가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탈 권위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최근 실시한 어느 설문조사에서 미혼여성의 97%가 결혼하면 부모를 모시지 않겠노라고 응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젊은 세대들은 이“효”를 마치 고루한 구시대적 사고로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제는 부모 자신이 노후 보험을 준비하든지 국가가 책임을 지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이것을 소위 복지라고 말하는데, 노인 복지가 가장 잘되어 있다고 하는 스웨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관계의 파괴라고 합니다. 복지가 잘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복지만이 최선의 방책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지는 최선의 방책이 아니라 최후의 수단입니다. 우리에게서“孝”라는 성경의 핵심강령과 우리의 전통이 사라진다면 모든 기초가 흔들리는 위기가 올 것입니다. 기초가 부실한 건물은 붕괴될 수밖에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1. 부모의 권위가 무너진 까닭은 무엇일까요?

부모의 권위가 무너진 이유에 대하여 디모데후서 3:1에 말씀하시기를“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라고 했습니다.“말세에 고통하는”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학자들의 해석을 인용하면 이렇습니다.“고통”이라는 용어의 헬라어 원어로“칼레포이”입니다. 칼레포이란 위험한 맹수를 만나거나 바다에서 폭풍을 만났을 때를 묘사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또한 고대 헬라문언에는 주로 귀신들린 안타까운 사실을 표현할 때 쓰는 용어가“칼레포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28에는“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몹시 사나워”를“칼레포이”라는 용어로 기록했습니다. 본문인 디모데후서 3:1에는“고통”으로 번역이 되었지만 마태복음 8:28에는“사나워”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본문인“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디모데후서 3:1)라는 말씀의“자기를 사랑”하는 이기적인 삶은 귀신에게 사로잡힌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또한“자기를 사랑”하는 이기적 삶은 위험한 맹수를 만나거나 바다에서 폭풍을 만난 배처럼 파멸을 자초하는 어리석음입니다. 이처럼 망조(亡兆)가 든 시대가 바로 지금의 시대입니다. 

지금 우리사회의 풍조를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나라의 최고 지도자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특정인의 경우이기는 하지만 초등학교 교사가 어린아이들에게 대통령을 조롱하며 욕하도록 가르치는 경우도 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권위도 무너지다 못해 짓밟히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권위도 예외는 아닙니다. 

제가 20여 년 전 공주에서 목회를 하던 교회에 공주사대 영어교육과 교수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때는 승용차가 귀했을 때였습니다. 그 교수님이 어느 날 승용차를 구입했다고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그때, 교수님이 하는 말이 기억납니다. “목사님 제가 차를 산 것은 돈이 있어서 산 것이 아니라, 스쿨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려니까 자존심이 상하고 더러워서 차를 샀습니다. 학생들이 자기 강의를 들을 때는 ‘교수님, 교수님’하지만 그 학기가 끝나고 나면 같은 스쿨버스 안에서도 모른척하며 의자에 앉아 온갖 잡담을 하고 있고, 교수인 나는 그 제자 앞에 서서 출퇴근을 합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빚을 내어 승용차를 구입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학생들이 졸업 후 지금 중고등학교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스승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고는 폐륜아적 사고로 귀신에게 사로잡힌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귀신의 영에게 사로잡혀 고통하는 이 세대에 부모님에 대해서는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했습니까? 디모데후서 3:1에 말씀하시기를“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낳으시고 기르신 부모님의 권위마저 인정하지 않고 부모를 거역한다는 것입니다. 인륜의 첫 계명 정면으로 거역하고 있습니다. 원인이 무엇입니까? 귀신의 영들에게 사로잡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신문에 난 기사입니다. 육남매를 키운 부모가 있었습니다. 자녀들을 모두 고등교육까지 시켰고, 자식들은 모두 넉넉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자식 가운데는 큰 부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딸은 딸이라고 모시지 않으려 하고, 며느리들은 서로 미루면서 모시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 자식 집에 며칠, 저 자식 집에 며칠씩 떠돌아다니던 노부부는 정릉 골짜기에서 약을 먹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2006년 4월 27일자 국민일보에 <노인 학대, 아들이 주범>이라는 제목과‘저택에 사는 아들과 비닐하우스에서 구걸하며 사는 노모’라는 부제의 기사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급속한 고령화 추세 속에 갈수록 심각해지는 노인학대의 주범이 아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전국 17개 노인 학대 예방센터에 접수된 학대 신고 2329건을 분석한 결과, 아들이 가해자인 경우가 1182건(58%)로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다음으로 며느리 458건(19.7%), 딸 268건(11.5%), 배우자 154건(6.6%), 사위 23건(1.0%) 등의 순이었다. 

특히 전남 노인학대예방센터에 접수된 사례 중에는 아들은 별장 같은 저택에 살면서 노모는 아들에게 내쫓겨 비닐하우에 살며 구걸로 연명하는 경우마저 있었다고 복지부는 밝혔다. 센터측은 아들에게 부양의무를 하도록 여러 차례 중재했지만 아들은 “나는 동명이인이다. 호적상 아들이 아니다.”라는 등의 거짓말로 부양을 거부했다. 심지어 그 아들은 어머니에게 지급되는 경로연금과 교통비를 자신의 통장으로 받아쓰고 있었다. 센터측은 어머니를 아들과 세대를 분리해 연금을 직접 탈수 있게 하고, 양로 시설에 위탁하는 한편 아들을 노인복지법상 노인 학대 혐의로 고발했다.”
노인학대의 주범이“아들이 가해자인 경우가 1182건(58%)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며느리 458건(19.7%), 딸 268건(11.5%)”라는 기가 막힌 세대 속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뉴스보도에, 한국의 독거노인 수가 120만 명이라고 하며, 독거노인들의 자살률이 10만 명 중 81명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는 독거노인들의 자살률이 10만 명 중 14명이고, 일본은 17명인데, 한국은 81명이라는 충격적인 뉴스였습니다. 한국의 노인문제가 매우 심각한 것임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그런데 이런 독거노인들 중 상당수가 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많은 독거노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 만큼 자녀들이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디모데후서 3:1에는 귀신에게 사로잡힌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2.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의 특성은 무엇일까요?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이 특성입니다.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많지 않으며, 시간이 가면 다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입니다. 

사무엘하 18:32~33에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진한 사랑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으려는 폐륜아 압살롬을 사랑하는 아버지 다윗의 심정을 기록한 것입니다.“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다윗에게는 여러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아들들 가운데 셋째아들 압살롬은 머리가 길고 용모가 아름다워서 많은 이스라엘의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압살롬이 어느 날 부왕 다윗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고자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 다윗은 아들을 피해 도망을 쳤습니다. 다윗이 힘이 없어서 도망을 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수하에는 훌륭한 용사들이 많이 있었고, 다윗은 어떤 전쟁이세도 진적이 없었습니다. 아들의 군대를 얼마든지 이길 수 있었지만 그 반역자가 아들이었기 때문에 피하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때 다윗의 수하에 있던 여러 장수들은 그런 다윗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압살롬과 전쟁을 해서 승리를 쟁취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장수들에게도“내 아들 압살롬을 해치지 말아라, 죽이지 말아라.”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아비를 죽이고 나라를 빼앗으려는 아들에 대해 차라리 나라를 포기할지언정 아들을 죽이지는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반역을 일으켰던 압살롬의 군사들이 패하고, 압살롬도 죽었습니다. 전령들이 왕에게 승전 보고를 하려고 왕 앞에 나아갔으나 오직 다윗의 관심은 아들 압살롬의 생사여부였습니다. 

사무엘하 18:33은 압살롬의 죽음 소식을 들은 다윗의 마음을 기록하기를“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죽이려 했던 패륜아였지만 아들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심히 아파 통곡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본능적인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본능적인 사랑은 동물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문에 이런 기시가 있었습니다. 중국의 한 농장에서 곰의 쓸개를 이용하기 위 곰을 많이 사육하고 있었습니다. 곰의 가슴에 구멍을 뚫어 쓸개에 직접 호스를 꽂아 그곳에서 나오는 담즙을 받아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웅담은 비싸게 팔린다고 합니다.

그곳 사람들이 새끼곰 한 마리의 가슴을 뚫어 쓸개에 호스를 꽂으려 하는데, 새끼곰이 너무 괴로워합니다. 새끼곰이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하자 철창 안에 갇혀있던 어미 곰이 몸부림을 칩니다.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은 쇠 철창을 끊고 밖으로 튀어나왔습니다. 밖에 나와서는 그 새끼 곰의 발에 있는 쇠사슬을 끊으려 하는데, 끊어지질 않으니까 결국 새끼곰 끌어안고 질식시켜 죽였습니다. 그런 후 어미 곰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벽을 향해 돌진해서 머리를 몇 번이나 벽에 부딪쳐 자살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새끼 곰의 고통을 보고 그 만큼 괴로웠던 것입니다. 자기의 괴로움은 견딜 수 있지만 새끼 곰의 고통의 소리는 차마 들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동물도 가지고 있는 “모성본능”입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표현 중에“애간장이 녹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애간장”라고 히는 것은 옛말로 창자를 의미하는데“애간장이 녹는다.” 는 말의 유래가 이렇다고 합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원숭이 새끼를 한 마리를 잡아서 끌고 가는데 어미원숭이가 계속 울부짖으며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계속 뒤에서 부르짖으며 쫓아오던 어미원숭이가 갑자기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새끼원숭이를 잡아가던 사람이 뒤를 돌아보니까 그 어미원숭이가 땅바닥에 엎드러져 죽어있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오늘은 운수가 대통한 날인가보다.”하며, 그 어미원숭이까지 들쳐 업고 집으로 왔습니다. 요리를 하기 위해 어미원숭이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려하는데 창자와 간이 다 녹아서 터져 있었다고 합니다. 거기서 유래된 것이“애간장이 녹는다.”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새끼를 잡아가는 것을 보니 너무 괴로워서 내장이 다 녹은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생물학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연구를 해본 결과 실제로 신경이 예민한 동물들 중에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창자의 미세혈관이 터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마치 내장이 녹은 것처럼 보여 “애간장이 녹는다.”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2010년 3월 26일에 백령도에서 천안함 침몰로 죽은 병사들의 시신을 찾지 못한 사람이 6명이 있습니다. 시신을 찾지 못한 자식을 둔 어머니의 가슴 아픈 기사가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아들이 아직도 차가운 바다 속에 있는데, 내가 어찌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잘 수가 있겠는가 하고, 그토록 추웠던 지난겨울에도 방에 불을 피우지 않고 보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심정입니다.

이처럼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본능적인 사랑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사랑은 죽음을 각오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이유가 없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사랑을 받고 살아왔습니다. 

3.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피보다 더 진한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우리는 살아왔습니다. 이 사랑을 받은 자식 된 우리는 부모님께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자식의 도리를 가르친 것이 본문입니다.“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에베소서 6:1~2)고 하셨습니다. 공경하라는 말씀의 히브리 원어를 보면“무겁게 여기다”“무게를 두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부모의 몸무게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의 중요함, 부모님을 존중함에서, 부모님의 위치, 부모님의 역할을 무겁게, 중요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특별히“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 가운데“부모가 어떤 부모인가?”에 대해서는 성경은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얼마나 뛰어난 부모인가? 얼마나 훌륭한 부모인가? 등 부모를 공경함에 있어서“어떤 부모인가?”에 대해 성경은 아무 조건도 달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부모를 공경하라고만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부모 공경에 대하여“공경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공경하면 어떻겠니?”라고 권유하지도 않습니다. 성경은“공경하라”라는 명령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부모 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둘째,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에베소서 6:1)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자녀로서 마땅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20에“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타락한 세상, 더러운 세상의 유혹을 이긴 증거이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마귀의 유혹에서 벗어난 증거이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20에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하셨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라면, 낳으시고 기르신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겠습니까? 부모님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신앙생활은 전체가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신앙생활은 그 어떤 헌신과 봉사도, 열심도 다 가짜라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5:8에 말씀하시기를“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하셨습니다. 가족을 돌보지 아니는 사람은 불신자 보다 더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가족의 핵심인 부모님을 돌보지 아나한다면 이 사람은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불신자 보다 더 악하고 못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참 신자인가 거짓신자인가 분별하는 기준이 부모공경으로 나타남을 알 수 있습니다. 

다섯째, 부모를 공경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말씀하기기를“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에베소서 6:2~3) 하셨습니다. 잘되고 장수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가운데 축복을 말씀하신 계명은 오직“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5계명뿐입니다. 

“잘된다”는 것은 헬라어로“유 기노마이”인데, 이는 무엇을 하든지“좋게 된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형통하게 된다. 성공하게 된다. 만족하게 된다. 행복하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효도하는 사람에게 축복하셔서 이렇게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5:16에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기를“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하셨습니다.“복을 누리리라”는 것은 형통한 복을 받아 범사에 막힘이 없이 일이 잘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중, 고등학교에서 부모공경을 가르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인물이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라고 합니다. 워싱턴은 바다를 벗 삼아 세계를 항해하는 멋진 선장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선원으로 취직해 먼 뱃길을 떠날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찾아가 작별인사를 드렸습니다. 아들과의 이별이 아쉬워 슬피 우는 어머니를 보고 워싱턴은 마음을 돌렸습니다.“어머니의 눈물과 내 꿈을 바꿀 수는 없다.” 워싱턴은 항해를 포기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아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하기를“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의 앞길이 평탄하리라.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후 어머니는 효성이 지극한 아들을 위해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훗날 이 청년은 미국이 자랑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미국의 국부(國父)로 일컫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입니다. 결국 효자 워싱턴은 ‘선장’대신 ‘대통령’이라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에게 ‘장수’와 ‘명예’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귀하게 여기셔서 복을 주시는 기준이 효도입니다. 성경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신 사람은 모두가 孝子들입니다. 노아의 아들 셈과 야벳이 그렇고, 요셉이 그렇고, 룻이 그렇고, 다윗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효성을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2:51에“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 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을 박힌 그 쓰라린 고통 속에서도 어머니를 생각하시며 어머니의 장래를 제자 요한에게 당부하셨습니다. 

잠언 1:8~9에“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하셨습니다. “아름다운 관”은 승리자에게 주는 월계관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효도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내리셔서 인생의 승리자가 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목의“금 사슬”은 신랑이 신부에게 주는 사랑과 결혼의 증표입니다. 이처럼 효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사랑과 인정받는 길입니다. 

한 불쌍한 과부가 산을 개간하여 가꾸고, 양계를 하며, 삯빨래를 해가며, 아 들을 공부시켰습니다. 그 아들은 어머니에게 보답하고자 열심히 공부하여 졸업식장에서 최우수상으로 금메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졸업식장에 참석은 하였으나 자신의 초라한 모습 때문에 아들이 부끄러워 할까봐 기둥 뒤에 숨어서 장한 아들의 졸업식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단상에 올 라가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금메달을 받은 후 기둥 뒤에 숨어있는 어머니께로 달려가서“이 모두가 어머니의 은혜입니다.”라고 감사하며 금메달을 어머니의 목에 걸어드리고 어머니를 업어드렸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아들이 훗날 미국의 대통령이 된 윌슨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랑하는 효민교회 성도 여러분! 부모님께 효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효민교회(孝民敎會)란 하나님과 부모님께 효자신자를 꿈꾸는 교회라는 뜻입니다. 효민교회라는 이름 속에 우리가 바라는 신앙생활의 목적이 담겨져 있습니다. 

효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부모님의 큰 은혜를 입은 자식의 도리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말세에 나타나는 악한 영들의 미혹을 이긴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사랑하셔서 복을 주시므로 삶의 승리자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에베소서 6:1-3) 하셨습니다. 
효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효도는 자식이 행해야 하는 옳은 일입니다.
효도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효도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조건입니다. 

부모님의 은공을 잊지 않는 참된 신앙인, 복된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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