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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라.(5. 영원하신 하나님) (신 33: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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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라.(5. 영원하신 하나님) (신 33:26-29)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을 주장했습니다. 불가지론이란 인간은 신을 인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은 인간의 감각이나 이성을 초월하는 존재이므로 인간의 능력으로는 감히 신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칸트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에 대하여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신앙은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신을 믿는 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대상을 믿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통해서 자기를 계시하셨지만 범죄로 인해 마음이 어두운 인간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인간의 이성(理性) 역시 죄로 인해 어두워진 상태이므로 이성(理性)에 근거하는 철학이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의 영적 무능에 대하여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2,23)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능력으로 알 수 없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방법은 하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간들에게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을 특별히 선택하셔서 성령으로 감동시키시고 그들에게 계시를 주셔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책이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는 사람은 반드시 성경을 상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하나님의 영원하심에 관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영원하신 하나님”으로 계시하셨습니다. 신명기 33장 27절에 보니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고 하였고, 이사야 40장 28절에는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라고 했습니다. 영원하심은 곧 시간적인 관점에서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는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난 날이 있고 이 세상을 하직할 날이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대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보통 팔, 구백 세를 살았습니다. 므두셀라 같은 사람은 969세를 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다 죽었습니다. 

오늘날은 공중보건과 의술의 발달로 과거에 비해서 사람의 수명이 늘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수명이 길다는 일본의 경우도 평균 수명이 83세를 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우리나라는 81세로 나와 있습니다.) 인간을 비롯해서 모든 동식물이 다 유한한 생명을 누릴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십니다. 곧 시작과 끝이 없으십니다. 천사들과 인간들, 그 외에 모든 동식물과 무생물이 다 지음 받은 존재지만,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계시는 분이십니다. 곧 자존자(自存者)이십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양 무리를 칠 때였습니다. 하루는 양 무리를 이끌고 호렙산 근처로 갔다가 한 가지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그것은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타서 사그라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모세가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하며 그 나무 가까이 다가가는데,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부르셨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니, 말씀하시기를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자손을 해방시킬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때 모세가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라는 성호는 곧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우연히 있는 것이 아니고 존재의 원인이 있습니다. 진화론은 자연발생을 주장하지만 그것은 비과학적인 생각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광활한 우주와 무수한 동식물과 미생물이 저절로 생겨났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입니까?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인이 없으십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버트란트 럿셀은 말하기를 “만약에 모든 것이 원인이 있어서 존재한다면, 하나님을 있게 만든 원인도 있을 것이 아닌가?”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원인이 없이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만물이 시작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시작이 없으십니다.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계십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영원성이야말로 하나님과 피조물을 구별 짓는 기본적인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신들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사단은 하와에게 다가와서 “너희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피조물은 결코 하나님처럼 될 수 없습니다. 실과 하나를 따먹어서 하나님처럼 되는 법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피조물은 어디까지나 피조물이지 창조주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지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원하지 못한 존재는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인들은 단군(檀君)을 조상으로 삼습니다. 단군은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서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무턱대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여길 것은 아닙니다. 신화 가운데는 상당히 타당한 근거를 갖고 있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옛 사람들은 조상들의 이야기를 신화의 형식으로 남기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들이 위대한 조상의 후예라는 사실을 과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단군을 역사적 인물로 간주한다고 해서 그리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교정이나 공원 등지에 세워놓은 단군상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서 세운 교육용이 아니라 단군을 신으로 숭배하는 종교 집단의 소행이기 때문입니다. 소위 단군교(檀君敎)라는 것이 있는데, 그 종교 집단이 애국심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단군상을 전국 도처에 세우고 단군교의 세력을 확장하려는 것입니다. 단군교에서는 단군을 신으로 섬깁니다. 그러나 단군세기에 의하면 단군 왕검은 기원전 2333년에 개국하여 93년 왕위에 있었고 130세까지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같은 내용을 사실로 인정하더라도 단군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단군교의 사상을 경계하는 이유는, 아무리 훌륭한 조상이라도 그를 신으로 숭배하는 것은 이치상 합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본을 비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역대 천황들을 신격화하고 숭배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일본 사람들은 역사의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성경적인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민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일본이 천황을 신으로 숭배하는 한 이웃 나라들과 평화롭게 지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단군교의 주장 역시 본질적으로 볼 때는 일본인들의 주장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 속수무책인 인간은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남겼더라도 신으로 추앙하면 안 됩니다. 사라들이 신으로 인정한다고 해서 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하지 못한 존재는 절대로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하면, 하나님의 영원하심은 우리 인간이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일깨워줍니다. 진시황은 중국 천하를 통일하고 나자 늙거나 죽지 않고 오래 오래 살면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서복이라는 도사를 시켜서 동남동녀 삼천을 데리고 동해에 있다는 삼신산에 가서 불로초를 구해오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서복은 떠난 후 무소식이었고, 진시황은 병이 들어 오십 세의 나이에 죽고 말았습니다. 천하를 통일했으면 무엇합니까? 몇 년 전에 진시황의 무덤이 발굴되었는데 그 규모와 그 안에 부장된 유물의 규모가 정말 엄청났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거창한 무덤을 만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 무덤과 유물들은 그가 죽음 앞에서 무력한 인생임을 증명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시편 90편에서 이같이 기도했습니다.

“1)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3)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5)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 7)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8)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9)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10)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1)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12)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모세와 같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인생의 덧없음을 깨달아서 유한한 인생을 함부로 살아서 낭비하지 아니하고 지혜롭게 살려고 힘씁니다. 우리는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이 아니라 일평생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주님을 위해 충성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만이 나중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 영원한 상급으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말하기를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합니다. 그러나 수천 년 전의 예술 가운데 지금도 살아서 공연되는 것이 얼마나 됩니까? 고대 건축물이나 조각상이 남아 있지 않느냐고요? 아무리 돌과 철로 만들었더라도 이 땅의 것은 다 낡고 쇠하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다만, 사물에 따라서 소멸되는 시간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시면서 우주 만물을 운행하시고 이 세상 나라들의 흥망성쇠와 인생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사람들은 이 지구가 영원할 것처럼 생각하지만 성경은 땅이 언젠가는 불 타 없어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벧후 3:10,12).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계십니다. 이에 대하여 시편 102편 25절로 27절에는 이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25)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26)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27)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년대는 무궁하리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원하심이 성도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첫째로, 성도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영원불변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하신 언약은 하나같이 영원한 언약입니다. 창세기 9장 16절에 보면,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하신 언약이 나옵니다.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7장 7절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언약을 영원한 언약이라고 하신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불변함을 말해 줍니다. 흔히, 우리는 ‘영원’이란 단어를 ‘불변’의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언약은 영원한 약속, 불변하는 약속입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에 우리는 어떠한 시험과 핍박 앞에서도 흔들림 없는 신앙을 지켜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의 나이 일흔 다섯 살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의 처지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의 아내 사라가 잉태치 못하므로 그 때까지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의 불변함을 믿었습니다. 그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정든 고향과 친척을 떠나 가나안에 들어왔지만,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세월은 속절 없이 흐르고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은 점점 노쇠해져갔습니다. 젊어서도 자식을 잉태하지 못했는데 다 늙은 마당에 어떻게 자식을 낳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17)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18)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19)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 4:)

아브라함이 위대한 이유,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된 이유가 이 말씀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을 추호도 의심 없이 영원한 언약, 불변하는 언약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믿었더니 죽은 몸과 같았던 두 늙은이 사이에서 독자 이삭이 태어나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민수기 23장 19절에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신실함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한번 약속을 해 놓고서도 자기에게 유리하면 지키고 불리하면 어깁니다.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거의 다 약속을 어긴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만약에 사람들이 자기가 한 약속을 충실하게 지키기만 한다면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믿지 못하고 늘 의심합니다. 기도를 하고서도 응답을 의심합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질 못합니다. 야고보 선생은 말씀하기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 1:5-8)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영원하신 하나님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렇다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언약이 영원한 언약, 불변하는 언약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성도님들 역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언약하신 대로 풍성한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영원하심은 성도들이 받은 구원의 확실성을 보장해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만약에 이 땅에서 잘 사는 것이 목적이라면 구태여 하나님을 섬길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지만 부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본은 1억 2천만 중에 기독교인이 겨우 백만 명밖에 안되지만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혼의 구원을 얻기 위함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고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알기에 우리는 영혼의 구원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습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 보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신뢰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처럼 불쌍한 사람도 달리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사함 받고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의 진리를 믿지 못하고 제 스스로의 공로로 구원 얻기 위해 애쓰고 힘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불교는 개인이 도를 깨쳐서 부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부처는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지만, 부처가 못되면 끊임없이 윤회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되었다가 개가 되기도 하고, 소가 되기도 하고, 파리가 되기도 하고, 지렁이가 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부처가 되지 못하는 한 생로병사의 고통을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부처가 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래서 그들은 살아생전에 가급적이면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선을 쌓아두어서 다음번에 태어날 때는 좀 더 좋게 태어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믿음을 가질 때 이처럼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의 언약이 영원불변함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구원의 기쁨 가운데서 살아갑니다. 구원의 확실성에 대하여 성경은 이같이 말씀합니다.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31)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33)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36)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1-39)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님들, 영원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아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행복자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영원하신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심은 곧 그의 거룩하심과 전능하심을 비롯한 하나님의 모든 선하신 품성이 영원하심을 의미합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영원하심은 성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와 보호와 복 주심과 구원이 영원불변함을 의미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그 영원하신 팔이 성도님들을 영원토록 안보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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