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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삶 (엡 5: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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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삶 (엡 5:18-21)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엡5: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엡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엡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 가운데 일부입니다. 행19:28 말씀과 같이, 그 당시 에베소에는 풍요의 여신 아데미를 섬기는 신전이 있었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수시로 아데미 신전에 올라가, 자신들의 풍요로운 삶을 기원했습니다. 

당시의 이방종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나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신전에 올라가 제사할 때, 완전히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과 접촉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술에 취하고 나면, 그 뒤를 이어서 온갖 방탕한 일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왔습니다. 사람들은 술에 취해서 고성방가를 일삼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술에 취해서 거친 말을 하며, 서로 간에 원망하며 다투는 일도 다반사였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배경에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엡5:18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도는 이교도들처럼 술 취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리신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우리는 이 명령에 거역할 수 없습니다. “예!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에 온전히 순종할 따름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이는 현재 명령형입니다. 과거에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았더라도, 오늘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매순간마다 계속해서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는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술 취하는 것과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을 서로 대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술 취했을 때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았을 때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술 취하면, 술이 그 사람을 지배합니다. 성령 충만의 원리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으면, 성령님이 우리를 다스리시고 지배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님이 우리의 삶을 온전히 주관하십니다.  

예컨대 눅4:1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성령님의 충만함을 입으셔서 성령님에게 이끌리셨습니다. 막1:12 말씀을 보면, 이를 좀더 강하게 표현해서 예수님이 성령님에게 몰아내심을 받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곧이어 오늘 본문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은 삶을 세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늘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읍시다. 그리해서 우리 모두 성령님에게 이끌리어, 날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원합니다. 


1. 성령님은 우리에게 새 노래를 심어주십니다. 

엡5: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을 때, 그 결과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첫째 현상은 무엇입니까? 산을 옮길 만큼 큰 믿음이 우리에게 생기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천사의 말로 방언을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성령 충만의 첫째 결과는 성령님이 우리에게 새 노래를 심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에,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우리에게 새 노래를 부르게 하십니다. 본문의 말씀을 따라서, 이 사실을 차례대로 살펴봅니다. 

첫째,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입니다. 이것들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은 사람이 부르는 “새 노래”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으면,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입술에 “새 노래,” 곧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심어주십니다.  

여기에 나오는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 이 세 가지 용어를 우리가 억지로 구분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 드리는 시가 곧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며, 또한 이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부르는 신령한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새 노래”라는 용어가 모두 아홉 번 사용되었습니다. 시편에 여섯 번, 이사야서에 한 번,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두 번 사용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새 노래”는 언제나 구원받은 성도들에 의해서만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신령치 못한 노래들, 방탕한 노래들을 즐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아, 성령님이 우리에게 심어주신 새 노래, 곧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늘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기를 바랍니다. 

둘째, “서로 화답하며”입니다. 우리는 새 노래로 서로 화답해야 합니다. 여기서의 “서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 곧 구속함을 얻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말하자면 성도들은 새 노래로 서로 화답하면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기억합시다.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새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불신자들이 들으라고 새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새 노래를 부르는 것은 오직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는 찬양이 전도용으로 사용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노래하라는 말씀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따라서 찬양을 불신자에게 들려주어서 전도하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부르는 새 노래가 불신자들의 관심을 끌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곧 바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찬양은 성도들 사이에 서로 화답하면서, 오로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셋째, “너희의 마음으로”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으로 새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우리가 새 노래를 부르는 것은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지 못한 사람이 부르는 노래는 입술로만 부르는 노래일 뿐입니다. 

찬양은 마음으로 부르는 것이지 입술로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렁찬 목소리나 아름다운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음악적으로는 완벽할는지 몰라도, 그것이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지 못한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이면 하나님은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암5:23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우리의 입술로만 부르는 노래를 결코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읍시다. 그리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늘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새 노래를 하나님에게 올려드리기를 바랍니다.  

넷째, “주께”입니다. 물론 우리는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간에 화답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아 우리의 마음으로 부르는 새 노래를 궁극적으로 받으셔야 할 분은 누구이십니까? 오직 한 분 우리 주 하나님이십니다.   

찬양은 우리 자신의 만족을 꾀하기 위해서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의 목적은 우리 자신이 인기를 얻기 위한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찬양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혼자서 찬양을 하든지, 성가대의 일원으로 찬양을 부르든지, 온 회중이 다함께 찬양을 드리든지 간에, 우리의 시선은 오직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새 노래를 기쁘게 받으셔야 할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노래하며 찬송하며”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새 노래를 하나님에게 올려드리는 방법이 두 가지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노래는 육성으로 부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여기에 나오는 찬송의 본 뜻은 악기를 이용해서 찬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하5:13 말씀을 보면, 솔로몬 왕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식을 거행했습니다. 그 때 육성으로 노래하는 자들이 있었고, 악기를 사용하여 찬송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성령 충만한 마음으로 드리는 노래와 찬송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도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아,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우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합시다. 그리함으로서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릴 때마다, 늘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2,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하십니다. 

엡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으면,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이는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기 바랍니다. 그리해서 성령님이 이끄시는 대로,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오늘 본문 20절은 성령 충만의 결과로 나타나는 감사의 삶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따라서, 감사의 원리를 네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살펴봅니다. 

첫째, “범사에”입니다. 

오직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은 사람만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은 사람만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기 때문입니다. 

욥1:21 말씀처럼, 욥은 하나님이 주실 때도 감사했습니다. 반면에 욥은 하나님이 거두어 가실 때도 역시 감사했습니다. 이와 같이 욥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그가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는 달리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지 않은 사람은 범사에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마음이 교만해서, 자기가 항상 더 많은 것을 누려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지 않은 사람은 범사에 불평하며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이 감사하지 않는 것은 환경의 문제가 아닙니다. 감사할 일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둘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요14:13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예수님이 친히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것이 됩니다. 

히2:12에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문맥상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하반부에서, 예수님은 그 자신이 친히 교회 중에서, 곧 성도들이 모인 곳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송할 때,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서 그 자신이 친히 하나님을 찬송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행하시는 중보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때도,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시게 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이 드리는 감사를 기쁘게 받으십니다. 


셋째, “항상”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으면,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아울러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으면, 우리는 항상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는 때와 관련해서, 성경에는 세 종류의 감사가 등장합니다.  

먼저 은혜를 받고 난 후에 드리는 감사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의 나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이에 따라 그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에게 돌아와서 예수님의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이와 같이 은혜를 받고 난 후에, 비로소 감사를 드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에 비해 은혜를 받기 전에 미리 드리는 감사도 있습니다. 대하20:21 말씀을 보면, 유다 왕 여호사밧이 전쟁에 나가기 앞서,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드리게 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던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들이 미리 드리는 감사를 받으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 결과 유다 백성들은 싸우지도 않고,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베푸실 은혜를 바라보면서, 먼저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항상 드리는 감사가 있습니다. 단6:10 말씀을 보면, 다니엘이 곤경에 처했지만 그는 이전에 하던 대로 변함없이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상황과는 전연 관계없이, 하나님은 항상 감사를 받으셔야 할 분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의 경우에서, 은혜를 받고 난 후에 드리는 감사는 가장 기본적인 수준입니다. 은혜를 받기 전에 미리 드리는 감사는 조금 더 영적으로 성숙한 수준입니다. 그러나 가장 높은 수준의 감사는 항상 드리는 감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수준은 어떠합니까? 우리 모두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읍시다. 그리해서 우리도 다니엘과 같이, 우리의 형편이나 처지와는 상관없이 항상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넷째.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을 가리켜 아버지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이시며, 그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습니다. 롬8:16 말씀처럼, 성령님이 그 사실을 증언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까? 약1:17 말씀처럼,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드리는 감사를 받으셔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우리가 사람들에게서 좋은 선물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쓰임을 받은 도구에 불과합니다. 우리에게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실제로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에게 궁극적인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감사의 원리가 무엇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첫째,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넷째,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읍시다. 그리해서 우리 모두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우리가 드리는 감사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피차에 복종하게 하십니다. 

엡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성령 충만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안으로는 새 노래가 넘쳐흐르게 됩니다. 둘째로, 위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로, 옆으로는 피차에 복종하게 됩니다. 그러면 피차 복종하는 삶에 대해서, 말씀을 따라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입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성령님으로 충만한 사람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갑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본을 보여주셨습니까? 

빌2:6∼7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그리해서 성령 충만한 사람은 늘 자신을 낮추며, 즐겨 다른 사람들에게 복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다음은 “피차 복종하라”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모두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성도들로 이루어진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는 지체들이 되었습니다. 

우리 몸에는 여러 지체들이 있습니다. 우리 몸의 지체들은 결코 서로 다투지 않습니다. 이들은 언제나 피차 복종합니다. 이 원리는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는 결코 다투지 말고, 피차에 복종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 각자가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다른 지체에게서 섬김만 받으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 단 한 사람에게서만 섬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 모두가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피차 복종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섬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수많은 사람의 섬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자연히 우리 모두가 든든히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아,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골로새서는 성령 충만에 대해서 이와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골로새서의 말씀을 통해서 성령 충만한 삶의 비결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골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는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며 삽시다. 이와 같은 순종과 결단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삶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금년의 상반기가 지나가고, 이제 금년의 하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읍시다. 그리해서 이제부터는 새 노래로 찬양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피차에 복종함으로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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