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마 22:34-46)

첨부 1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마 22:34-46)

오늘 본문을 끝으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예수님과 종교 지도자들 사이에 일어났던 논쟁을 마무리하십니다. 지난 2주의 말씀을 간단히 정리하면 예수님께서는 황제에게 바치는 세금 문제를 가지고 바리새인들과 논쟁하신 것이 그 첫 번째입니다. 그리고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과 부활에 대한 논쟁을 벌어신 것이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오늘 바리새인들이 다시 나타나 예수님과 마지막 논쟁을 벌이게 됩니다. 우리가 읽었던 본문 34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쉽게 설명을 드린다면 바리새파 사람들이 다시 모여 도대체 어떤 질문을 던져야 예수님을 이길 수 있을지, 예수님의 말문을 막아버리고 코를 납작하게 누를 수 있을지를 자기들끼리 의논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이런 질문, 저런 질문 다 찾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신들의 주특기에 관한 이야기, 바로 율법에 대한 질문으로 예수님을 넘어 뜨리려 한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한 율법 교사가 대표로 나서서 예수님을 시험하여 물었습니다. 35-36절의 말씀입니다.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구약성경에 나오는 율법들 가운데 어느 계명이 가장 중요한 것이냐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오경에 나오는 수많은 율법들 가운데 그 중에서 우열을 가려서 최고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말해달라는 말입니다.

모세에 의해서 십계명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진 후 수많은 계명들이 모세 오경 안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십계명이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외에도 참으로 많은 계명들이 구약성경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계명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지키는 일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기에 율법학자들마다 하나님의 명령에 해당되는 계명들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613개의 계명이 있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중 명령계명이 248개요, 금지계명이 365개입니다.

오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물은 질문은 총 613개나 되는 계명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사실은 이전부터 율법학자들 사이에서는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 계명인지를 놓고 많은 논쟁이 있어 왔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 당시 유명한 율법학자들이 대답한 것이 남아 있었습니다. 랍비 힐렐은 수많은 율법가운데,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라는 율법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일명 우리가 알고 있는 황금률이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랍비 아키바가 가르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라는 율법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방금 전 말씀드린 율법 둘 다 귀한 계명들입니다. 그 중에 어느 것이 더 귀하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도 정의 내리지 못한 것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에 빠뜨리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바라새인들의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에 의해서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도 랍비들과 같이 대답을 한다면 예수님도 결국 랍비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하여 예수님의 신성을 쉽게 무너뜨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만약, 그들과 다른 대답을 하게 된다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향해 “당신은 왜 위대한 랍비들이 가르친 것과 다른 대답을 하는 거냐고 시비를 걸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드디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입을 열어 말씀하셨습니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방금 전 읽은 오늘 본문의 37절과 38절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새롭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태어나면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듣는 말씀입니다. 바로 신명기 6장 4-9절에 나오는, 모든 유대인들이 반드시 외우고 지켜야 하는 계명, '쉐마 이스라엘'이라는 말씀입니다.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오늘 신명기 6장 4-9절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는 정말 중요한 것을 하나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신 유일한 참 신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언제 어디서나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즉, 저와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이 사실을 날마다 가르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천년이 지난 지금도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지키고자 이 구절을 온 가족이 아침저녁으로 암송하며 자기들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기 계시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은 이 말씀을 날마다 가정에서 사업장에 자녀들에게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 가르치고 전파하고 계십니까? 정작 우리가 날마다 해야 할 중요한 것이 이것임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것을 날마다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녀들에게 학식은, 지식은 가르치려고 했지만, 정작 나 자신은 자녀들에게 성경보는 부모의 모습을, 기도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 것은 아닙니까?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면 누구나 다 아는 바로 그 구절을 인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게 무슨 뜻입니까? 유대인들에 의하면 마음은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모시고 하나님과 함께 산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네 마음을 다하고’의 뜻입니다.

목숨과 뜻을 한다는 말은 내 영혼을 바쳐, 내 모든 생각과 정신이 온전히 하나님만 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어떤 면에서는 세상을 더 소중히 여기고 하는 두 갈래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드린 절대적인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가라하시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갈 수 있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한계나 조건이 있을 수가 없으며 우리의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이것이 첫째 계명이라는 것에 대해 어느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말씀입니다. 율법을 아무리 많이 아는 율법학자들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그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끝나도 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거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셨습니다. 39절과 40절의 말씀입니다.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 구절은 레위기 19장 18절에 나와 있는 말씀입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그런데 여러분!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구약을 읽거나 유대인 랍비들의 가르침을 모아놓은 책, 그 어디를 봐도 위 두 개의 가르침을 한 군데에 모아놓은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그 누구도, 그가 아무리 위대한 랍비라 하더라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동격으로 본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두 가지를 동등하게 놓았을 뿐만 아니라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그 중요성에 있어서 “같다”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 계명만 말씀하셔도 되는데 두 가지 계명을 말씀하셨고, 더구나 그 두 가지 계명이 같다고 말씀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렇게 질문을 던진 바리새파 사람들이 율법은 다 지킨다고 큰소리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큰소리쳤지만 그것을 이웃사랑으로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로는 큰소리쳤지만 그것을 삶으로, 행함으로 이웃들에게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굳이 너희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것을 이웃사랑으로 나타내라고, 그것은 같은 것이라고, 또한 그것이 이웃사랑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결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곧 이웃사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은 같은 것입니다. 바로 그래서 예수님의 이 말씀을 곁에서 직접 들은 사도 요한은 후에 “사랑의 사도”라고 불리면서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해도 이상히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에 머물러 있습니다.” (요한일서 3:13-14)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것인데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바로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약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살아 있으나 죽은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입술에 불평과 원망이 가득하여 입술로 범죄하는 자들은 결코 구원받는 자들이 아닙니다. 입술로만 말하고 행함이 없는 신앙생활은 결코 구원받는 자의 믿음이 아닙니다. 날마다 처절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영적 사투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오늘날 이민교회를 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정작 교회는 나와 있으면서 구원받지 못한 분들이 너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그리워서 나오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한인회 모임에 나가면 됩니다. 잘 차려진 음식을 먹고자 교회에 온다면 차라리 잔치집을 찾아 다니는 것이 더 나을지 모릅니다.

요한일서 3장 17-18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 머물겠습니까? 자녀 된 이 여러분, 우리는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형편이 어려운 형제자매를 돕는 것으로 나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물을 갖고 있으면서, 형제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 머물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이나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 (요한일서 4:19-21)

그리고 이것을 주님의 동생 야고보는 야고보서 2장 14-17절에 이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대의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계명 하나하나에 대해서는 잘 알고, 그것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계명 하나하나를 지킬 뿐만 아니라 삶 전체를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율법이 성취되어야 함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40절 말씀의 뜻입니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결국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한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도 말과 혀로만이 아니라 행동과 진실함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특히 어려움을 당한 이웃을 향한 행동과 진실함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인 동시에 구원받았다라는 증거를 가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구원받은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까? 정말 구원받으셨습니까? 죽어 하나님 나라, 천국에 들어갈 자신이 분명히 있으십니까? 무조건 큰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천국가는 것입니까? 내가 장로요, 권사요, 집사이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천국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행동으로 실천하는 믿음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성경읽는 모습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우리가 구원받은 자임을 드러내길 바랍니다. 아직까지도 만약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못한 분이 있다면, 아직까지도 내가 구원받았는지에 대한 믿음이 없는 분이 여기 계시다면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 앞에 솔직히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구원해 달라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해서 천국을 나의 기업으로 얻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죽어 천국가야지 죽어 지옥가면 안 됩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구원받았다고 착각하고 계시지 말고, 내가 구원받았음을 날마다 삶속에서 나타내 보일 수 있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