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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명자의 설득의 원칙 (느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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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자의 설득의 원칙 (느헤미야 2장) 
 
  
하나님께는 뜻과 섭리와 경륜이 있고,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려는 사명자는 자신은 물론 타인도 설득을 해야 합니다. 구약의 인물 중에 탁월한 지도자인 느헤미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설득의 원칙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정몽주 설득

고려 우왕 14년인 1338년, 요동 정벌을 위해 출정했던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回軍)을 한 뒤, 우왕과 최영을 추방하고 정치적 실권을 장악했으며, 창왕과 공양왕을 차례대로 왕위에 올린 뒤, 끌어들일 사람은 끌어들이고 문제의 소지가 있는 사람은 숙청(=제거)했습니다. 

이 때, 신하와 백성의 신임을 얻고 있는 정몽주를 중심으로 반대세력이 뭉치고 있었는데, 이성계는 그를 설득하고 싶어도 특별한 대안이 없었습니다. 그 때,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정몽주를 설득해 보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방원은 정몽주에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라.’는

 ‘하여가(何如歌)’를 보냈습니다. 

이 시조에는 혁명의 대의명분이 없기 때문에, 20대중반의 젊은이가 종 1품 문화시중을 지낸 50대 중반의 선비를 설득할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정몽주는 이에 대해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는 

단심가(丹心歌)로 대답한 뒤 선죽교에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조선의 정치 이념은 성리학이고, 정몽주는 성리학의 대가였기 때문에 이성계가 그를 설득했다면 조선의 역사는 훨씬 더 발전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위해 느헤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느헤미야의 설득

바벨론은 남조유다를 멸망시키고 왕족을 포함한 많은 유다백성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예언대로 파사의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망시킨 후, 유다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라고 선언하고, 유다백성을 고국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스룹바벨의 인도 아래 유다로 돌아와서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했고, 에스라를 통해서 말씀운동을 하였으나 성벽이 무너진 채로 방치돼 있어, 유다도 성전예배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왕의 술 맡은 관원인 느헤미야는 그 소식을 듣자 음식을 끊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약 4개월을 기도한 후에 느헤미야서 2장의 사건이 벌어진것입니다.

1] 왕을 설득했습니다. 왕과 왕비가 함께 있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왕이 느헤미야에게 포도주를 달라고 하자 그가 왕에게 포도주를 바쳤습니다. 그 무렵에는 왕의 앞에 나갈 때 신하의 불결한 입김이나 표정이 왕의 건강이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손으로 입을 가리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통해서 신하는 자신의 불편함으로 인해 왕을 불편하게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슬픔이 가득 찬 표정을 들키고 말았습니다. 

왕이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고 말하자 느헤미야는 크게 두려워하면서도,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타서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여기서 느헤미야의 놀라운 지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차로 귀환한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다가 정치적인 문제가 되자 왕은 『이제 너희는 명령을 전하여 그 사람들에게 공사를 그치게 하여 그 성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고 내가 다시 조서 내리기를 기다리라.』(에스라4장21절)

하며 공사를 정식으로 중단한 상태였습니다. 만약 느헤미야가 같은 이유로 왕에게 말했다면 정치적인 어려움에 빠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유대인들과 아닥사스다왕도 조상의 묘지를 소중히 여기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목적은 예루살렘성벽을 건축하는 것일지라도 방향을 다르게 보고하는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고, 옳은 일이기 때문에 상황을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일 때, 더욱 지혜롭게 행동 하시기를 바랍니다. 느헤미야서를 묵상하다 저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느헤미야의 믿음을 만났습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와 유다 중간의 총독에게 조서로 ① 성전 곁에 있는 성의 문짝과 ② 성벽과 ③ 자신이 살 집을 만드는데 필요한 나무까지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묵상하면서 깨달은 사실은 <그 상황에서 자신이 살아갈 집까지 있어야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었겠다.>는 확신입니다. 

결국, 느헤미야는 스스로의 믿음과 기도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들을 성취하기 위한 일에 왕을 설득해서 구하지도 않은 군대 장관과 마병의 호위까지 받으며 사명지로 올 수 있었습니다.

2] 일꾼을 설득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해 3일이 지난 후, 밤에 예루살렘을 시찰했습니다, 골짜기의 샘을 지나 거름 문으로 가면서 성벽의 상태를 조사했더니 들은대로 성벽은 무너져 있었고, 성문은 불에 타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샘 문과 왕의 연못을 갔지만, 느헤미야가 탄 짐승이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서 마치 의사가 환자를 자세히 살피듯 성벽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폈습니다. 이때까지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명하신 일을 유다사람들이나 제사장들이나 귀족들이나 관리들이나 일을 맡아서 할 사람들 중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다가, 철저하게 현장을 조사한 후 그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고 말한 뒤 아닥사스다 왕에게 허락을 받았던 사연과 모든 재료를 준비한 과정을 말했고, 그러자 그들은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 선한 일을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성전이 재건되었고 에스라를 통해서 금식성회를 시작한 뒤 14년 정도 말씀운동을 해도 효과가 없었던 그 때에, 느헤미야는 무너진 채로 있는 성벽을 건축해야 한다고 하며 그동안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 일을 간증하면서 설득함으로 모든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먼저 성벽재건 전략을 구상하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간증하며 설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함께 해야 합니다. 혼자는 빠르고 간편하지만 결국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서 우리가 설득당해야 할 때는 설득 당합시다. 그것이 교회든, 가정이든, 직장이든, 학교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설득당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심는대로 거두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복음7장12절)

3] 반대자도 설득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의 청을 들어주자 산발랏과 도비야가 근심했습니다. (9절) 예루살렘성벽 재건을 위해서 사람들이 뭉치자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이 업신여기고 비웃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너희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냐,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고 하며 정치적으로 느헤미야를 함정에 빠뜨릴 방향을 언급하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종파로 개종한 바벨론 사람으로서 사마리아의 통치자라는 설(說)이 있는 산발랏은 자신의 세력과 지역 유지들의 연합된 세력으로 계속해서 억압했습니다. 도비야도 암몬 사람이므로 이방인이고, 게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반대자에 대해서 느헤미야는『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20절)고 단호하게 차단했습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와 같은 의인이거나 영성의 소유자가 아니므로 함부로 말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때는 단호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가 어렵게 된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하고, 우리 자신의 잘못된 생각으로 판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명자여!

예수님의 설득의 법칙은 십자가입니다. 우리도 (우리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는)『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12장24절)는 말씀처럼 썩어져야 합니다. 

느헤미야 역시 자신의 안정된 위치를 잃어버릴 수 있었음에도 예수님 정신으로 사명을 위해서 기도하고, 주장하여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사명을 분명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에게 때로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설득의 길로 나가게 하옵소서. 
주여! 주님의 일을 향하여 갈 때 협력자를 설득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주여! 반대자와는 선을 그을 줄 아는 지혜도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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