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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인도하는 인간관계 (마 5: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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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인도하는 인간관계 (마 5:14-16)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자신을 쥐라고 생각하는 망상에 사로잡힌 청년이 정신병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병원 출입문에서 발이 땅에 달라붙어 버렸는지 밖으로 나가려고 하질 않는 것입니다. 의사가 이상해서 이유를 물었답니다. "왜 그러고 서 계시오?" 그러자 청년은 앞을 가리키면서 "바로 저기 고양이가 있어요."라고 벌벌 떨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의사가 "하지만, 당신은 이제 쥐가 아니라는 걸 아셨지 않소?"라고 말하자 청년은 "그건 틀림없습니다만 고양이 쪽에서는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마음 탐구'의 저자 Gary R. Collins은 가족치료의 영역 가운데 80%가 "자존감의 치유"의 영역이라고 말합니다. 자기존중은 정신건강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고 자존감의 문제는 인간의 모든 문제와 같다고 말합니다.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자신을 대통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통령처럼 살아갑니다. 자신을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기꾼처럼 삽니다. 자신을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부자처럼 살고 자신을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멍청이처럼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우리 성도님들과 저를 누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4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너희는 제자들이고 오늘날로 말하면 성도님들과 저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둠의 자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못난이가 아닙니다. 우리는 멍청이가 아닙니다. 우리는 실패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가난한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열등감에 빠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뭐라고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까? “세상의 빛입니다.” 

같이 한 번 따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옆 사람과 인사합시다. “집사님은 세상의 빛이십니다.”“성도님은 세상의 빛이십니다.” 

빛이란 어둠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빛은 사물을 분간하게 하는 것입니다. 빛은 생물에게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빛은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빛은 따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어두움을 몰아내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따뜻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옳고 그름을 분간하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빛이 된 우리는 어둠의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1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궁극적으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야 합니다. 빛은 어둠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어둠의 사람들 즉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인간관계”로 잡았습니다. 빛된 우리는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사는데 우리가 어떻게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인간관계를 가지고 살 수 있겠습니까?

1. 우리는 만나는 사람을 하나님께 인도하려면 대인관계 지수(NQ)를 높여야 합니다.

우리끼리의 올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 어둠에 다가가야 합니다. 그래야 어둠의 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존재로 만들었습니까? 14절 말씀은 현대어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즉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밤에 불을 밝혀 둔 언덕 위의 마을과 같다(마 5:14)"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를 빛으로 만든 이유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동네를 다 비추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등불을 켜서 등경위에 두지 않고 곡식을 되는 말 아래 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말 속만 비추다 꺼져버리는 것입니다. 방안을 비추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 아래 숨어 빛끼리만 놀면 결국 빛이 존재하는 의미가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로 말하면 다른 사람은 비추지 못하는 폐쇄적인 인간관계를 말합니다. 끼리끼리 인간관계입니다. 패거리 인간관계입니다. 집안도 못 비취는 폐쇄적인 인간관계를 가지면 안 됩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믿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께 인도하려면 우리끼리만 인간관계의 성을 쌓고 친교단체로 우리가 안주해서는 안됩니다. 인간관계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자신에게서 가족, 가족에서 친척, 친척에서 친한 친구, 친한 친구에게서 사업동료와 이웃사람들, 아는 사람들, 관심을 가져주어야 할 사람들,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 원수에게 까지 점점 확대해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예수님께서 친히 병든 사람, 세리와 창기같은 소외된 사람, 죄인 취급하는 사람,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하는 사람을 찾아가 그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대인관계의 벽을 부수어 버려야 합니다. 나와 고향이 다르다고, 나와 학력이 다르다고, 나와 피부가 다르다고, 나와 생활 수준이 다르다고, 나와 성이 다르다고, 나와 이해관계가 맞지 않는다고 벽을 쌓고 관계를 단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관계는 기생관계에서 공생관계로 그것을 넘어 희생관계로 발전해야 합니다. 희생을 넘어 영생관계로 확대되어야 합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있느냐"(요 1:46)고 말한 나다나엘처럼 편협한 편견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집단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가지면 대인관계는 영생관계로 갈 수가 없습니다. 편견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냐야 합니다. 

충청도 사람에 대한 편견 중에 말이 느리다는 편견이 있습니다. 정말로 그렇습니까? 사람이 죽을 때 서울말 사람 “돌아가셨습니다.”라고 합니다. 경상도 사람은 “돌아가셨다 아임니꺼.” 전라도 사람은 “죽어 버렸어라.” 충청도 사람은 뭐라합니까? “갔슈!” 서울 사람은 “잠시 실례하겠습니다.”라고 하는데 경상도는 “내 좀 보이소.” 전라도 사람은 “아따 잠깐만 보더라고.” 충청도는 뭐라고 합니까? “좀 봐유!”서울 사람이 “괜찮습니다.”를 경상도 사람은 “아니라예.” 전라도 사람은 “됐어라.”합니다. 충청도 사람은 뭐라고 합니까? “됐슈!” 간단하고 빠릅니다. 

선글라스를 쓰고 사람을 보면 안됩니다. 사람이 가까이 하는 기준을 심리학자들이 일반적으로 4가지 조건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1)근접(proximity) (2)유사성(simlarity) (3)보상(rewardingness) 그리고 (4)외모(physical attractivess)입니다. 영생의 관계는 이런 담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인간관계 지수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쉘러(Lyle C. Schaller)가 ‘많은 사람들이 왜 교회에 오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10년 간 연구한 자료가 있습니다. 연구 결과 교회출석 동기가 홍보 2%, 계획된 전도방문 6%, 목사님의 권유 6%, 친구와 친지 86%였습니다. 

하나님께 인도하는 인간관계를 가지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가 답이 나와 있습니다. 교회에 오게된 동기에 대한 자료도 나와 있습니다. 스스로 자원 3~8%, 교회 프로그램 4~10%, 목회자에 대한 호감 10~20%, 방문 전도 10~25%, 교회학교 영향 3~6%, 친구나 친척의 인도 60~90%였다고 합니다. 

미국 교회성장 연구소에서 연구한 보고서도 비슷한 자료를 내 놓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왜 교회로 나오게 되었는지?” 연구한 자료입니다. 특별한 필요 1-2%, 걸어서2-3%, 담임목사 5-6%, 방문 1-2%, 주일학교 4-5%, 전도대회 0.5%, 교회 프로그램 2-3%, 친구나 친척 75-90%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빛의 역할을 잘 하기 위해서는 대인관계를 지능을 높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좋은 만남을 가지는 능력을 높여야 합니다. 원만한 대인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끌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끌리는 사람은 대인관계 지능이 높다고 합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고 경영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CEO가 될 수 있는 최고의 덕목으로 '대인지능'을 꼽았답니다. 인간관계를 잘 맺고 인맥관리를 잘 해야 직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인관계 지능은 하버드대 교육심리학과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 교수가 주창한 인간의 8가지 지능 중 하나로 다른 사람의 감정과 표정, 몸짓, 음성, 행동을 변별하는 역량으로 이것들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자신을 전달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실제로 지능지수나 학교시절의 성적이 인생에서의 성공을 예언하는 정도는 20%정도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Gibbs). 대인관계 지능이 인생의 행복과 성공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 MBA 과정에서 유수 기업 CEO들을 상대로 '성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전자는 응답자의 85퍼센트가 '원만한 인간관계 및 다른 사람과의 공감 능력'을 꼽았습니다. 하버드대학교의 위건(A.E.Wiggan) 박사는 직장, 가정, 사회생활 등 각 분야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전문지식이 모자라 실패한 사람들은 불과 15%밖에 안 되었습니다. 나머지 85%의 사람들은 모두다 인간관계를 잘못했기 때문에 인생에 실패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미국의 카네기재단에서도 5년 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 1만 명을 대상으로 '성공비결'이 무엇이었는지를 질문 했는데, 85%의 사람들이 다양한 사람들과 골고루 인간관계를 잘했기 때문에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빛으로 어둠이 있는 곳에 찾아가야 합니다.

대인관계 지능의 핵심 요소는 

첫째, 다른 사람의 기분, 감정, 관점에 대해 민감하고 이해하는 "타인 이해"입니다. 타인의 느낌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없으며, 또래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타인이 감추고 있는 욕망이나 의도까지 읽어내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대인관계 지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타인이해에 탁월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인사만 잘해도 대인관계 지수는 높아집니다.

둘째, 타인과 어울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친구라고 할 정도로 모든 사람과 잘 어울렸습니다. 내가 바보가 될 때 친구가 보인다는 말처럼 어울리는 데는 자기 낮아짐과 공명이 필요합니다. 하나도 같지 않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인데 "다른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공감능력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셋째, 사람들 사이에서 지도력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리더쉽" 입니다. 
대인지능이 높은 사람은 남을 잘 이해하며 누구와도 쉽게 교류합니다. 대인관계 지능의 최고 소유자이신 예수님은 대인관계 지능을 높이는 방법에 대하여 아주 간단하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2. 우리는 만나는 사람을 하나님께 인도하려면 우리의 도덕 지수(MQ)를 높여야 합니다.

빛은 모든 사람을 비추기 위해 드러내야 하는데(15,16) 무엇을 드러내야 합니까? 16절을 보십시오. 우리의 착한 행실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엡 5:8-9)" 믿지 않은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려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드러내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을 때 먼저 믿는 사람들의 행실을 보고 교회에 나옵니다. 

현재 우리나라 신앙인 중 믿음은 가지고 있지만 10명 중 1명은 교회 출석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위 ‘가나안 교인’이라고 합니다. ‘안나가 교인’입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조사하여 발표한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의식조사'에 의하면 교회에 나가지 않는 이유가 목회자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19.6%), 성도들이 배타적이고 이기적이기 때문에(17.7%), 헌금을 강요해서(17.6%), 시간이 없어서(15.8%) 등이었다고 합니다. 교회에 다니다 나가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시험 들어 나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조지 바나라는 리서치 센터에 의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도덕성에 있어서 불신자보다 40% 이상 격차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적어도 40% 쯤 앞서가야 우리가 세상의 빛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의 '2012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의식조사'에 따르면 비종교인의 개신교 신뢰도는 18.9%로, 천주교의 26.2%, 불교의 23.5%에 비해 현저하게 낮게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여집사님이 남편을 전도하기 위해 애를 썼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의 생활과 집안 생활이 너무 다른 아내를 보고 남편은 교회 나가기를 거절했답니다. 교회 열심낸다고 아이들 밥도 챙겨 주지 않고 자신이 집에 들어오면 성경만 보고 있는 아내가 실었답니다. 집사님이 남편에게 함께 천국에 가자고 하면 남편은 한 마디로 잘랐답니다. "지금도 당신이랑 사는 게 지겨운데, 죽어서도 당신이랑 같이 살자고? 내가 미쳤어! 난 교회 안 가."

가슴에 못을 박는 남편의 말에도 꾸욱 참고 복음을 전하던 김 집사가 어느 날 성경을 읽다말고 남편에게 뛰어갔답니다."여보,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여기 성경을 보면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22: 30)'라고 씌어 있잖아요. 천국 가서 저랑 같이 살지 않아도 되요. 다른 여자 천사들이랑 같이 놀면 되잖아요."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벧전 2:12)” 

현각스님이 있습니다. 본명은 폴입니다. 바울입니다. 1964년 미국 뉴저지에서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예일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과 하버드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1999년 자신의 출가 사연을 적은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출간해 대중적으로 큰 인기을 얻는 사람입니다. 

이분이 서울 지하철을 탔답니다. 그곳에서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고 자신이 가는 길을 너무나 걱정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할렐루야, 할렐루야'하는 소리가 들렸답니다. 그분이 스님 앞에 서더니 얼굴을 보고 '미국 아저씨, 코 큰 미국 아저씨! 왜 안 믿어, 왜 안 믿어'하더라는 것입니다. 충격받았답니다. 그 사람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그 목이 걱정될 정도였답니다. 그래서 한 마디 했답니다.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안 믿어' 나는 열심인데 나의 행위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하나님께 나가는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도덕성이 높아지면 우리가 결코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정직한 저울이 있는 가게에 사람이 모입니다. 요즈음 갑의 횡포라고 폭로된 기업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매스컴을 통해 보고 있지 않습니까? 

닉슨이 미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것은 통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윤리성 때문입니다. 엔론을 필두로 월드컴, 아서앤더슨, 제록스, 타이코, 시티은행, JP모건 등 거대 기업들이 왜 줄줄이 무너졌습니까? 도덕지수가 중요합니다. 

미국 컬럼비아 대 경영대학원이 세계 1500명의 최고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21세기형 최고 경영자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에 대해 설문 조사한 적이 있었답니다. 거기에 88%가 꼽은 첫 번째 항목은 ‘윤리성’이었다고 합니다. 다른 연구기관이 미 전역의 평사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85% 정도의 응답자가 자신의 리더에게서 가장 원하는 것은‘정직성’과‘윤리성’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성공한 사람 2천 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추출된 것이 "정직"이었다고 합니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는 '정직한 사람이 손해보고, 정직한 사람은 경쟁력이 없고, 정직한 사람은 무능력하고, 정지한 사람은 출세할 수 없다'는 생각이 사회 통념으로 보편화되어 있지만 도덕지수가 높은 사람이 결국 존경받고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욥8:6)"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가 초등학생 300명을 대상으로 아이들의 도덕지수를 측정하고, 도덕지수가 높은 아이와 평균적인 아이들이 어떻게 다른가를 실험한 내용을 보았습니다. 12명의 아이를 선발하여 어린이들의 눈을 가리게 하고 표적물 맞히기 게임을 시켰습니다. 사람들은 다 떠나고 몰래 카메라만 작동하였습니다. 

도덕성에 대한 실험이었습니다. 6명의 아이들은 도덕성 지수가 높은 아이들이었고, 나머지 6명의 학생들은 평균 점수의 아이들이었습니다. 도덕성 지수가 높은 아이들은 눈가리개를 걷지 않고 그대로 표적물을 향해서 다트를 던졌습니다. 그러나 도덕성이 평균치인 아이들은 남몰래 반칙을 했습니다. 도덕지수가 높은 아이들이 집중력도 높고, 또래관계도 좋은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반면에 부정행위를 했던 아이들은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경향이 더 많고, 공격성도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도덕성이 높은 아이는 비관적이기보다는 낙관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있으며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도 높게 나타났습니다. 

도덕성이 높을수록, 똑같은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고, 노력에 의해서 앞으로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곽교수는 도덕성 지수가 높았던 아이들이 수능점수에서나 사회생활에서나 모든 면에서 더 큰 성취를 이루거나 행복함을 느끼게 되고, '도덕적이면 손해 볼 수 있다!'라는 통념은 잘못된 관념이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도덕지수가 높은 아이가 경쟁력이 높고 행복지수가 높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잠11:11)" 우리는 말로만 아니라 우리의 의로의 행실로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사람을 살아야 합니다. 나 때문에, 내 가정 때문에, 내 사업 때문에, 내 교회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3. 우리는 만나는 사람을 하나님께 인도하려면 비전지수(VQ)를 높여야 합니다.

우리가 대인관계를 가지면서 얼마나 하나님께 인도하는데 목표를 두고 관계를 갖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빛의 자녀로 착한 행실을 하며 살아가려도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착한 행실을 하고 사는 목적이 분명합니다. 나 잘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부자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명예를 드러내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권세를 얻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왜 착하게 삽니까? 

16절 보세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나의 착한 행실을 보고 그들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행실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영접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인간관계의 목표는 선명합니다. 우리의 인간관계의 동기도 선명합니다. 궁극적으로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와 교제를 하는 사람들이, 나와 거레를 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배우는 사람들이,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게 하는 것입니다.

비전지수가 높아야 성공 확률도 높은 것입니다. 인간관계의 비전이 건강해야 합니다. 그를 사귀여 이용해 먹기 위해서 사귀면 안 됩니다. 나에게 초점을 두지 말고 상대에게 초점을 두되 그 상대가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늘 밥그릇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거지에게 세가지 소원을 들어 주겠다고 물었습니다.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거지가 대답했답니다. “제 밥그릇이 찌그러졌습니다. 새 밥그릇을 주세요” 얼마후 다시 하나님이 거지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했답니다. “금으로 된 밥그릇을 주세요” 

얼마후 또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거지가 대답했습니다. “겨울이 되니... 춥습니다.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밥통을 선물로 주세요.” 

신앙의 비전이 이런 수준에 머물면 안 됩니다. 미국에서 자수성가해서 성공한 사람들을 15년 동안 연구한 Brian Tracy는 그들이 성공한 21 가지 성공 비법을 소개했습니다. 그들은 처음 시작이 보잘 것 없었고 평균적으로 3.2번의 파산을 경험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성공한 첫 번째 이유가 꿈을 크게 가졌다고 합니다. 

65세에 사업 실패, 105달러의 사회보장연금으로 생활 연명하였으나 74세에 600여개의 체인점 사장으로 재기 성공하였고, 90세에 전 세계 80여 개국에 체인점 설립한 ‘켄터키 할아버지’ 로도 유명한 KFC의 창업자 커넬 할랜드 샌더스 할아버지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3살짜리 남동생과 어린 여동생을 스스로 돌봐야만 했답니다. 커넬이 12살 때, 그의 어머니마저 재혼을 하게 되었답니다. 40살에는 아들이 죽는 슬픔을 겪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어느날, 그 주유소를 지나가던 한 손님의 내 뱉은 "이 마을에는 먹을 것이 없어!" 라는 한 마디의 불평을 듣고 주유소에서 안 쓰는 창고에서 닭튀김 요리를 시작한 것입니다. 사업은 망했고 정신병까지 앓고 정신병 때문에 결국 사랑하던 그의 아내마저도 그를 떠나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의 나이는 65세였답니다. 절망과 낙심과 상처속에 괴로와하고 있던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들려오더라는 것입니다. 

그가 따라가 보니 조그마한 교회 예배당이었답니다. 그 예배당 앞에 어떤 한 미친 여자가 앉아서 너무나 평화롭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너 근심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를 부는 것입니다. 커넬 샌더스는 그 여자 옆에 앉아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이렇게 고백했답니다. 

“주님, 이곳에도 주님이 계시는 군요. 미친 여자가 있는 바로 이곳에도, 주님은 계시는 군요. 제가 평생 예수님 없이 돈만 벌려고 하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세요.” 

그렇게 한참 동안 울며 회개의 기도를 하다가 그는 정신병이 나았고 길거리에서 KFC라는 간판을 붙여 놓고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판매를 시작했는데 이게 불티나게 팔렸답니다. 돈이 아니라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들 생각하며 음식을 만든 것입니다. 

그는 가난하고 불쌍하고 소외된 수많은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고,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비로 수익금의 많은 부분을 사용하였답니다.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자기의 삶을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신 살아계신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였고,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어 삶의 진정한 행복과 영원의 축복을 소유하게 되기를 권고하는데 남은 인생을 살았답니다. 그는 다니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늘 이사야서 50장 15절의 말씀을 이야기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이사야 50장 15절) 

그는 사람들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들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사업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마지막까지 복음증거의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빛입니다. 빛은 어둠의 자식이 아닙니다. 빛을 드러내야 합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게 하여야 합니다. 차가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죽어가는 세상에 생명을 넣어 주어야 합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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