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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 가지 자랑 (약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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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자랑 (약 1:9-11)

지난 시간에는 시험에 대해서 인내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인내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이 그를 온전하게 만들어 가시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조금 동떨어지는 것같은 본문입니다. 오늘 자랑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1. 먼저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낮다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갖은 것도 없고 높은 위치와 명예도 없는 초라한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맨톤이라는 학자는 이 낮음, 초라함을 말하면서 이는 주님을 위해서 살려고 하다가 그가 당하는 초라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적당히 아부하면서 시류에 따르면 적당히 부자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종종 목회자가 아주 부유한 삶을 사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지금도 개척을 하면서 내일 쌀이 없어서 걱정하고, 간난 아이의 우유를 살 돈이 없어서 우는 목회자와 사모님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배운 것이 없습니다. 남보다 더 많이 배웠지만 그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남보기에 비천한 것과 가난일 수가 있습니다.

그들이 왜 그래야만 합니까?

같이 공부한 친구들이 다 출세한 것은 아니지만 대개 그 나이가 되면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데 6.25직후의 이야기 같은 일이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오직 주님을 위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오늘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초라함속에서도 높음을 자랑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의 존재가 얼마나 귀하고 높은가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성도라는 이름을 주신 것, 흑암의 권세아래 살던 자를 주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고 구속하심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기의 신분이 고귀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로 감히 인간의 생각으로 측량할 수 없는 높은 지위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대단한 긍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는 지금 자기가 초라하여도 자기의 신분을 자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고생하는 목회자 그 신분과 사명에 긍지를 느끼지 못하면 그는 그 순간 매우 불행한 자가 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사명과 직분, 그리고 구원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알고 그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이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음을 자랑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것 이것이 우리의 최고의 자랑인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영광을 자랑해야 합니다. "내가 구원받았다, 난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자랑입니다. 내가 얼마나 귀하고 높은가를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영광을 누리십시오. 

물질적인 가난 때문에 늘 마음속에 󰡒나는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졌다.󰡓 󰡒나는 아무 쓸데없이 버려진 인생이다.󰡓라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습니까? 그러면 자신은 높은 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주셨고,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가난하다고 자학하십니까? 아닙니다. 천하보다도 더 귀중한 한 영혼입니다. 천사보다도 더 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저와 여러분은 높은 사람입니다. 


2. 또 한가지는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했습니다.

부요한 이들은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요가 우리에게 주는 시험은 교만입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쉽게 교만해집니다. 사람을 쉽게 괄시하고 형제를 판단할 때 돈을 기준으로 해서 판단합니다. 그러나 교만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험을 당할 때 부요한 사람은 자기도 낮아질 것을 늘 생각하고 사탄이 나를 공격할 약한 부분이 없는가를 겸손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부한 자들은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인생을 다시 조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영원히 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처럼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 라고 고백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한 형제도 신앙이 매우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부한 사람은 앞의 내용과 비교해서 상당히 가진 것이 많고 아울러 여러 가지 면에서 풍족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낮아졌다는 것이 자기가 낮아진 것이 아닙니다. 보통 물질이 많으면 낮아지기가 어렵습니다. 극히 드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물질을 의지하기가 쉽습니다. 심방을 다녀보면 대개 넉넉한 생활을 하는 사람치고 그 신앙에 간절함이나 헌신의 결단이 많은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지금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으니 늘 습관에 따라 나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의 표현은 낮아졌다는 것은 그 표현이 수동태입니다. 어떤 것이 그가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낮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올바른 믿음이, 하나님이 그를 그렇게 낮게 했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자기가 낮아질 수 있는 것은 바로 다음의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무슨 지혜입니까? 바로 물질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입니다. 
우리가 지혜를 말할 때 지혜는 하나님의 견해입니다. 

이는 10절하반절과 11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물질에 대한 순간성입니다. 물질의 순간성을 말하면서 꽃과 풀에 비유했습니다.
이 풀과 꽃은 인생의 무상함에도 비유되는 표현인데, 여하튼 풀을 봅시다. 그 풀이 한창일 때는 파란 녹색을 뛰면서 얼마나 싱싱한 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푸름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꽃을 봅시다. 꽃은 아름다움의 상징입니다. 그 향기가 얼마나 좋습니까?
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러나 그 꽃이 지면 아주 추합니다 바닥에 떨어져 색이 바랜 꽃은 아주 추합니다.

부한 자도 이와같이 시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질과 영화도 순간적이라는 것을 안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겸손한 마음을 자랑하라고 했습니다. 물질이 넉넉한 성도는 그가 물질을 자랑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그에게 물질의 순간성을 알고 하나님의 영원함을 알고 인간의 보잘 것 없는 고백을 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두가지 자랑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물질과 사회적이 지위가 초라한 자, 특히 주님을 위해서 살면서도 현재 비천한 자는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신분, 성도, 구속의 백성이 된 것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아물러 물질이 넉넉한 성도는 물질의 무상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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