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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을 당할 때 (빌 1: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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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당할 때 (빌 1:12-24)

본문 내용입니다. 바울은 시위대 안에 갇혔습니다. 바울은 매인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매이지 않았습니다. 시위대 안에서는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믿는 자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시위대 밖에서는 두 가지 이유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나왔습니다. 

한 종류의 사람들은 “바울 사도가 열심히 복음을 전하다가 갇혔으니 이제 우리라도 복음을 전하자”라고 하며 선한 뜻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한 종류의 사람들은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면 이 때 복음을 전해서 우리가 주도권을 잡자”라고 하며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선한 뜻을 가진 자들도 사용하셨고 시기심으로 불순한 동기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사용하셔서 복음이 확산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사실 때문에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고난을 당할 때”입니다. 바울이 옥에 갇힌 것은 분명 바울에게는 고난이었습니다. 지금도 옥에 갇히는 것은 큰 고난인데 그 당시에는 환경도 좋지 않았고 인권도 보장되지 않는 시대였으니 얼마나 큰 고난이었겠습니까? 

오늘 설교는 그런 고난 속에 있으면서 믿음의 반응을 보인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에 고난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도 나름대로의 고난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자기 백성을 겸손하게 만드시기 때문에 때마다 적당한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바울 안에는 그리스도가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반응은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반응이었습니다. 우리는 고난에 반응하는 바울을 보면서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의 모범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고난에 반응해야 하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전 11:1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우리 그리스도인은 고난 중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요?

1. 전체적인 시야를 가지라. 
   
저는 장기를 아주 조금 둘 줄 압니다. 장기를 둘 때 고수는 작은 것을 희생해서 왕을 잡습니다. 왕을 잡기 위해서는 다른 것의 희생이 아깝지 않습니다. 다른 것의 희생이 아깝지 않은 이유는 전체를 보는 시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수들은 작은 것 잡아 먹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큰 것을 놓치고 결국 왕을 먹혀서 장기에서 지고 맙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야가 없기 때문입니다.
   
12절에 보니 바울은 옥에 갇혔지만 옥에 갇힌 자신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만 본 것이 아닙니다. 자신은 옥에 있으나 오히려 복음이 전파 되어 진전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17절에 보면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밖에서는 바울에게 괴로움을 더해주기 위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전체적인 시각으로 그들의 행동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18절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가 전파되기 때문에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고백합니다.
   
25절을 보면 비록 바울은 자신이 옥에 갇히기는 했으나 빌립보 교우들의 믿음은 더욱 진보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고난 역시 전화위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걸 롬 8:28에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표현했습니다.
   
어느 날, 한 집사가 담임목사에게 기도부탁을 했습니다. “목사님! 이번에 우리 딸이 사법시험을 봤는데 떨어지게 기도해 주세요!” 

목사님이 너무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집사님! 왜 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합니까?” 집사님이 대답했습니다. “고것이 공부를 잘해서 너무 기고만장해요. 그러면 콧대가 높아 시집을 못갈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고시에서 떨어져 인생이 무엇인지도 알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만약 그런 이유라면 한 번쯤은 떨어지는 것도 괜찮습니다. 아니 떨어지는 것이 더욱 유익입니다. 그 집사님은 전체를 볼 수 있는 시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죽이고 망하게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살리고 흥하게 만드는 경우가 더 많은 것입니다.
   
어느 농부에게 노새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노새가 물 없는 마른 우물 속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그 노새를 구해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고심하던 농부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노새는 이미 늙었고, 마른 우물도 메우려 했으니 노새를 고생하지 않고 빨리 죽도록 도와주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웃들과 함께 마른 우물 속에 흙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노새에게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입니다. 

그런데 우물 안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노새는 쏟아지는 흙을 신속하게 털어내고는 발로 그 흙을 다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흙이 부어지면 부어질수록 노새는 점점 위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노새는 우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언뜻 보면 우물에 흙을 쏟아 붓는 것이 노새에게는 분명히 위기상황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기회가 있습니다. 전체적인 시야는 그걸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길게 봐야 합니다. 지금 힘든 것만 보면 안 됩니다. 길게 보면 지금 당하는 고난이 약이 되고 거름이 되어 내 인생을 더 건강하게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울은 전체적인 시야를 가졌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전체적인 시야를 갖기를 바랍니다.


2. 사명에 헌신하라. 
   
바울의 사명은 복음 전파입니다. 그 사명은 바울만의 사명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사명입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저 사람을 주님에게로 인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그 사람을 인도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 따라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 마음에 자꾸만 감동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감동 말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찾아가면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고 그래서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12,13절을 보면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는 순간에도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바울 때문에 복음이 온 시위대에 속한 군인들과 로마의 고관대작들에게까지 전파되어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로마의 가장 심장부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울을 통해서 담대하게 전파되어지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시위대 안에서 군인과 함께 쇠사슬에 매였습니다. 쇠사슬 한쪽에는 바울이 묶여 있고 다른 쪽에는 군인이 묶여있었습니다. 군인들은 4교대 혹은 6교대로 바울과 함께 사슬에 묶여서 바울을 감시했습니다. 바울은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다른 죄수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바울에게 이렇게 물었을 것입니다. “당신은 무슨 죄를 짓고 이곳에 왔소?” “나는 복음 때문에 이곳에 왔습니다.”, “복음이 뭐요?” 그러면 바울은 복음을 설교했을 것입니다.
   
그 때 로마의 법정에서 재판 받는 바울의 모습을 눈여겨본 많은 귀족들이 바울을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영접하여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결국 바울로부터 이 복음을 들은 고관들이 가정에 가서 이야기하고, 친구에게 전하고 해서 전파된 복음이 로마의 황궁과 도시 전체로 퍼져나갔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이렇게 시위대와 로마의 고관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진 결과, 주후 64년경에는 이미 네로황제의 삼촌과 친척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합니다. 또한 기독교인들을 많이 순교케 한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에는 그 어머니와 딸들이 기독교인이었고, 그의 신하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이었다고 합니다.
   
빌 4:22에 보면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마지막 문안 인사를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거기 보면 로마의 황제 가이사의 집 사람들이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었으며 그들도 빌립보 교우들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바울은 감옥 안에서도 복음 전파의 사명에 헌신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옥에 있든지 옥 밖에 있든지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환경이 좋든지 나쁘든지, 인생에 고난이 있든지 없든지 전도의 사명에 헌신해야 합니다.
   
[암, 너 잘못 걸렸어]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사랑의 교회 이재명 집사님이 쓴 책입니다. 

이 분은 30여년 평범하게 예수를 믿고 살아온 분입니다. 어느 날 폐암 3기 진단을 받게 됩니다. 갑자기 인생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 후 50여 차례 항암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그 절망의 순간에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50여 차례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그 고통의 순간에도 하루에 두 번씩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로운 사명을 깨닫게 했습니다. 바로 복음 전하는 사명입니다. 그래서 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암 환자와 가족들 60여명이 예수 믿고 주께 돌아오게 됐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살인마 지존파를 전도해서 회개하고 예수 믿게 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하나님께서 암도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 암 환자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됐습니다.
   
이분은 고난이 찾아오기 전에는 평범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자신만을 위해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겪으면서 달라졌습니다. 자신의 인생의 목적이 전도하는 일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전도하는 일에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전도는 어명입니다. 행복한 전도 세미나에서 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셨던 김두식 목사님은 “전도는 어명이다”라고 말합니다. 어명은 임금님의 명령입니다. 어명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가장 먼저 ‘하나님이 이 사람에게 전도하라고 만나게 하셨지’라고 생각하고 전도하기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전도해야 합니다. 고난 중에도 전도의 사명에 헌신하기를 바랍니다.


3. 행복을 빼앗기지 말라. 
   
18절에 보니 바울은 옥에 갇힌 상황 속에서도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옥에서도 행복을 선택하고 행복하게 옥 생활을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옥에 갇혔다면 그는 기뻐하기보다 원망하고 불평하며 기쁨 없이 옥 생활을 할 텐데 바울은 오히려 기뻐하고 기뻐합니다.
   
사실 바울은 그 때 보통 옥생활이 아니라 죽음을 기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바울은 행복을 빼앗기지 않고 기뻐했습니다. 로마에 가시면 관광 명소 가운데 세 분수 성당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바울 사도가 순교 당하던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앞 바울이 순교 당하는 장면이 나오는 그림이 있다고 합니다. 그 그림을 보면 참혹하답니다. 바울 사도의 순교 당하는 그림은 바울을 묶어놓고 무릎을 꿇게 하고 뒤에서 목을 친 게 아니라 앞에서 머리를 잡아당기고 도끼로 쳤습니다. 그러니까 이 머리가 쓸려나가서 세 번 튀었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튈 때마다 물줄기가 분수처럼 마른 땅에서 별안간 솟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 이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 자리에 기념 예배당을 짓고 세 분수 성당이라고 지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죽음을 기다리면서도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인간적으로 보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행복을 빼앗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빌립보서를 다른 말로 희락의 복음, 기쁨의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그런 상황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보통 사람들과 가치관이 달랐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현실보다 복음 전파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해도 자신의 현실에 문제가 있다면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하게 되고 결국은 기쁨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의 현실문제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전파였던 것입니다.
   
둘째는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성령은 희락의 영이십니다. 롬 14:17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령 안에서 희락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괴롭든지 기쁘든지 합니다. 자기 죄 때문에 괴롭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괴롭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괴롭습니다. 반대로 기쁩니다. 어려워도 기쁘고 부족해도 기쁩니다. 현실을 뛰어넘는 기쁨이 생깁니다.
   
셋째는 보통 사람들과 시각이 달랐습니다. 어떤 회사에서 세일즈맨들의 능률이 오르지 않아 사장이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사장은 귀퉁이에 까만 점 하나를 찍은 흰 수건을 세일즈맨들에게 펼쳐 보이면서 “무엇이 보이느냐?”고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들은 “까만 점이 보인다”고 대답 했였습니다. 사장은 “자세히 보십시오. 다른 것은 보이지 않습니까?”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까만 점밖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때 사장이 말하기를 “여러분! 까만 점은 이 구석에 하나밖에 없는데 왜 이 넓은 흰 바탕은 볼 줄 모릅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관점과 긍정적인 관점입니다.
   
부정적인 관점은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열 가지 중에 좋은 것이 아홉 가지가 있고, 좋지 않은 것이 한 가지가 있을 때, 그 좋지 않은 한 가지를 물고 늘어집니다. 그리고 그 좋지 않은 한 가지에 목숨 걸고 난리를 칩니다. 아홉 가지의 장점을 가지고 있어도 아홉 가지의 장점은 보지도 않고 한가지의 단점을 물고 늘어집니다.
   
반면에 긍정적인 사람은 열 가지 중에 좋은 것은 한 가지이고 좋지 않은 것이 아홉 가지일 때도 좋은 것 한 가지를 보며 좋아합니다. 비록 아홉 가지의 단점이 보여도 한가지의 장점을 보며 칭찬해 주고 격려해 줍니다. 바울은 믿음 안에서 절대 긍정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감옥도 바울의 행복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행복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내가 행복을 선택하면 행복해지고 불행을 선택하면 불행해집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든지 긍정을 선택하고 행복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고난 중에 있어도 절대 행복을 빼앗기지 말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라(20절). 
   
바울은 20절에서 위대한 고백을 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하나니”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런 현실 속에서도 자신이 어떻게 하면 감옥에서 나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고 주님이 존귀하게 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신앙입니다.
   
바울은 고전 10:31에서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바울은 이 말씀대로 감옥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해야 합니다. 창 1:27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어 이 지구상에 두신 이유는 세상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동물의 왕국에 보면 짐승들이 오줌을 싸서 영역표시를 합니다. 고대 왕들도 영역표시를 했습니다. 그들이 영역 표시를 하는 방법은 자기가 다스리는 지역에 왕의 형상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이 땅이 나의 땅이다”라는 영역 표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땅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만드신 이유가 일종의 영역표시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하나니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세워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해야 합니다. 고후 2:15과 고후 3:3에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서 주님의 향기를 맡고 주님의 편지를 읽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달라스 신학교가 파산위기 때 들판의 소를 팔아서 돈을 보내달라고 기도해서 응답 받은 헨리 아이언 사이드 박사에게 신앙적인 큰 영향력을 끼친 분은 그가 어릴 때 아르바이트를 했던 구둣방 주인입니다. 그 구둣방 주인은 헨리 아이언 사이드에게 “얘야,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구두를 만드는 것이 아니란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구두를 만든단다.”라고 말했습니다. 헨리 아이언 사이드 박사는 그 말에 영향을 받아서 평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하느냐 중요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일을 무슨 목적을 가지고 하느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원망하고 불평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를 바랍니다.


5. 초월적인 삶을 살라(21-24절). 
   
바울은 감옥에서 환경에 대해서 초월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서도 초월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21-24절에 보니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초월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초월적인 삶이 살려면 문제를 좀 멀리 놓고 보아야 합니다. 문제를 멀리 놓고 보면 문제보다 더 많은 좋은 점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아빠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아들의 방 옆을 지나가다가 방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고, 아들의 침대가 잘 정돈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방으로 들어가자 침대 위에 봉투 하나가 있었는데, 편지 봉투에 “아빠에게!”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읽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편지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빠! 저는 지금 아주 안타깝고 슬픈 심정으로 이 편지를 써요. 요새 저에게 새로 여자 친구가 생겼는데 그 여자 친구와 함께 지금 멀리 떠나려고 해요. 왜냐하면 아빠 엄마가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그녀를 향한 저의 열정을 억누를 수 없어요. 그녀는 피어싱을 하고, 문신을 하고, 몸에 꽉 끼는 복장을 하고 다니고,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지만 좋은 여자에요.
   
아빠! 그런데 제가 그녀와 도망치는 것은 단지 열정 때문만은 아니에요. 지금 그녀는 임신을 했어요. 그녀는 우리가 아주 행복할 거라고 말했어요. 그녀는 숲 속에 작은 이동식 주택을 가지고 있고, 이번 겨울을 지낼 수 있는 땔감도 듬뿍 마련해 두었어요. 앞으로 아이들도 많이 낳아서 잘 키우자고 서로 약속했어요.
   
그녀는 마약이 진짜 나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저의 눈을 열어주었어요. 우리는 마약을 재배하며 그것을 찾는 다른 사람에게 팔며 살 거예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그녀를 위해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하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할 거예요. 지금 그녀는 많이 아프지만 앞으로는 더 건강해질 거예요.
   
아빠!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저는 지금 15살이에요. 그리고 저 자신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를 알고 있어요. 언젠가 저의 아이들을 데리고 아빠를 방문할게요. 그때까지 잘 계셔요. 사랑해요. 아빠의 아들.
   
(추신) 아빠, 위에서 말한 내용 중에 어떤 것도 사실이 아니에요. 저는 지금 친구의 집에 있을 거예요. 제가 위 편지를 쓴 것은 아빠가 저의 성적표만 보고 야단칠 것 같아서 그랬어요. 인생에서 성적이 나쁜 것보다 더욱 나쁜 것이 있는 것을 지혜로운 아빠는 잘 아시지요? 저의 성적표가 지금 책상 가운데 서랍 안에 있어요. 아빠! 지금 제 편지 보고 화나지 않으셨으면 저에게 전화주세요. 그러면 바로 집으로 갈게요.”
   
그 아빠는 아들의 편지를 받고 정말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인생은 한 번의 성적표가 결정하는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달았고 자기 아들에게 성적만큼 중요한 믿음의 여유와 유머감각이 있는 것을 알고 마음이 풀어졌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해서 곧 그 아들은 집으로 돌아왔고, 아들은 아빠의 용서를 바탕으로 더욱 분발해서 그 다음 시험에는 그때까지 시험 중에서 최고의 성적을 냈습니다.
   
살면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만 보지 마십시오. 어떤 문제를 볼 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전체적인 시야를 가지고 보십시오. 그러면 눈앞에 있는 어려움을 초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떤 현실도 초월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죽음도 초월할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고난과 문제는 나를 달련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정금 같이 될 것을 알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풀어주실 수 있는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또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그리스도를 본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자신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고난 중에 바울과 같은 반응을 보입시다.
   
고난 중에 1. 전체적인 시야를 가집시다. 2. 사명에 헌신합시다. 3. 행복을 빼앗기지 맙시다. 4.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합시다. 5. 초월적인 삶을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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