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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구를 위하여 사는가? (롬 1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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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사는가? (롬 14:7-9)

요즘 뉴스를 보면 날씨로 인한 피해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토네이도로 인한 피해가 많이 들립니다. 게다가 남부 지역을 비롯한 미국 전역에 홍수로 인한 피해가 상당히 크다는 뉴스를 봅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 동네도 예전과 달리 뜨거운 날씨가 계속되었습니다. 이제는 예년과 같지 않은 날씨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 환경이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토네이도나 허리케인, 지진과 쓰나미 같은 자연 재해를 입은 곳에는 언제든지 구호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9.11이 발생했을 때도 위험을 무릅쓰고 빌딩으로 들어가서 사람들을 구하다가 순직한 소방대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남을 위해 희생한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영웅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남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을 영웅이라고 정의한다면,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은 대부분 영웅 대접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어느 정도 남을 위하여 살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를 위해 삽니다.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며 살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청소년기에 들어서면 친구를 위해 살기도 하고, 이성을 위해 살기도 합니다. 

한국의 남자들은 국방의 의무가 있어서 나라를 위해 살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시기가 있습니다. 직장에 취직하면 회사를 위해 살고, 결혼을 하면 배우자와 자녀를 위해 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은 맞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와 관련된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기에 어떻게 보면 모두 나를 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나 자신만을 생각하고, 나만을 위해 인생을 사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생이란 누군가를, 그리고 무엇인가를 위해 사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사는 군인, 가정을 위해 사는 부모, 회사를 위해 사는 직장인이 있다면 그리스도인은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할까요? 

두 말 할 것도 없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삶의 목적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말하고, 행동하고, 일하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그리스도인입니까? 우리의 삶이 예수님을 위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누구를 위하여 사는가?”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 14장에 나오는 말씀은 바울이 로마 교회에서 있었던 교회 내에서의 두 가지 불화를 다루고 있는 말씀입니다. 당시 로마 교회에는 믿음이 연약한 자와 강한 자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음식 문제였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은 율법에 근거하여 부정한 고기와 혹시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을지도 모르는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음식을 깨끗하다고 하셨으며, 무슨 음식을 먹어도 내 믿음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율법주의자들이라고 채식주의자를 비난하면서 교회에 두 그룹에 생겨나게 되었고, 그 사이에 계속해서 불화가 발생했습니다. 

다른 문제는 날과 절기의 문제였습니다.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비롯한 각종 유대 절기를 신성한 것으로 생각해서 그런 날들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강한 믿음을 갖고 있던 자들은 절기의 본래 의미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고, 주일을 지킴으로 그 모든 것을 이어간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형식에 매여 있는 자들을 가리켜 믿음이 약한 자들이라고 업신여기면서 불화가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무엇을 먹으며, 언제 예배 드려야 하는지에 관한 율법적 사항에 매여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성숙하지 못한 연약한 자들이라고 생각 헸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하라고 말하면서 강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연약한 자들을 받아들일 것을 권고합니다. 그리고, 연약한 자들도 강한 자들의 자유로운 믿음 생활을 판단하지 말라고 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제 그런 것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받으신 자들을 함부로 업신여기거나 판단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서로 받아들이라고 권고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하기 힘들어도 주를 위하여 하라고 말씀합니다. 사소한 것을 갖고 괜한 시간낭비 하지 말고 주를 위하여 사는 신앙의 모습을 가지라는 권고를 합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서로 화합하라는 말입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사람은 자신의 삶의 어느 부분은 누군가를 위해 삽니다. 그래서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미운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고, 괴롭히는 사람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즘 저는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제 아내도 학교를 가고 나면 아침 8시부터 아이들이 돌아오는 오후 3시까지 저 혼자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방해하는 사람이 없고, 혼자서 책도 보고, TV도 보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으니까 참 자유롭고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혼자 식당에 가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나가기 싫으면 제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맛있는 요리도 실컷 해 먹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혼자 있게 되니까 아무것도 할 의욕이 생기지 않습니다. 밥을 먹기는 먹어야겠는데, 밥솥에 밥이 있어도 그것을 떠 먹는 것도 싫은 겁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시리얼을 사다 놓고 우유에 말아먹기를 시작했습니다. 누군가가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아니 맛 없다고 투덜거리며 먹는 사람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혼자 있으니까 요리할 기분이 들지 않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 때, 진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자로 ‘사람 인’자가 사람과 사람이 서로 기대어 서 있는 모습입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경쟁 속에서 자기를 만들어 갑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입니다. 

오늘 7절 말씀에 보면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우리 삶의 주인 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를 위해 스스로 삶과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인 되신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에는 자기가 주인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주인으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세례를 받는데, 그 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성도도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때 성도도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주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자는 주인을 위해 살아야 하고, 주인을 위해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인은 자기를 위해 살거나 죽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내가 아닌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피로 값 주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8절에서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신의 삶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고,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그들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려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만 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죽는 날까지 주를 위해 살다가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귀하여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몸을 상하게 하거나 생명을 내어 주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께 헌신하기로 결단했다고 하면서 자기의 몸과 생명을 전혀 돌보지 않고 말 그대로 몸이 부서져라 일한다고 해서 그것이 주님의 것의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께 온전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헌신하기 위해 끝까지 우리 몸을 잘 관리하고 아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요구하실 때, 아낌없이 주님을 위해 드릴 수 있는 믿음과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자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위해 살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죽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주를 위한 것이 되어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믿음의 모습도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해 모두 용납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누구를 위해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자녀나 부모님이나 국가나 회사를 위해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계십니까? 그리스도를 위하는 마음으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큰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 마음에 합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갖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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