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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네 부모를 즐겁고 기쁘게 하라 (잠 23: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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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부모를 즐겁고 기쁘게 하라 (잠 23:22-25)

인간에게는 자신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만들어준 주체로서 무조건적으로 공경하고 순종하여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 이 주체가 없었다면 인간은 그 누구도 이 세상 존재할 수 없고 또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바로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나를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인도하시며,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시며 우리를 돌보십니다. 또한 부모님도 사랑과 헌신으로 양육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영적인 아버지 되신 하나님과 육신의 부모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고 공경하고 잘 섬겨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부모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자꾸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꾸 잊어버리는 습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도, 부모님의 은혜도 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도적으로 자꾸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버이의 은혜를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잊어버립니다. 그러므로 다시 기억하기 위해서 어버이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절기로만 생각하지 마시고 잊어버렸던 영적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부모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는 주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 공경은 신앙인이나 불신앙인을 떠나 인간 됨됨이의 기본이며, 인간이라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도리이며 인간관계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부모공경을 인간의 도리 그 이상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모공경을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출 20:12절 말씀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엡 6:2-3절에도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십계명 가운데 제 5계명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5계명은 인간에 대한 계명 중에 첫 번째입니다. 첫 계명이라는 것은 가장 소중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첫 계명이라는 것은 최우선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들을 보면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있으면 반대로 “네 자식을 사랑하라”는 계명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말은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일은 굳이 계명으로 정하지 않아도 모든 부모들이 다 자식을 정말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부모의 본능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이성으로, 도덕적으로, 혹은 강제적인 명령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랑입니다. 

하지만 자식들이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자식들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부모 공경을 계명으로 주신 것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자녀 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부모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공경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계명이요, 엄한 명령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부모님을 어떻게 공경해야 되겠습니까? 오늘 본문 25절에서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즐거울, 즐겁게, 기쁘게”라는 단어가 5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짧은 구절에서 5번이나 나오는 것은 부모공경의 가장 중요한 방법이 부모님을 즐겁고 기쁘게 하는 것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혜의 왕이었던 솔로몬이 기록한 본문 말씀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부모님께 어떻게 기쁨과 즐거움을 드릴 수 있는지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부모님께 기쁨과 즐거움을 드리려면 부모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경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22절에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청종’이라는 말은 “듣는다, 따른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부모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그 말씀에 온순하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엡 6:1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골 3:20절에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순종한다는 것은 부모의 존재와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가장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를 존중하고 권위를 인정하는 자녀는 부모를 경히 여기지 않습니다. 

“경히 여기다”는 말은 “경홀히”의 준말인데, “신중하지 않고 소홀히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할 때 ‘공경하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카베드’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의 뜻은 “가치 있게 여기다. 존귀하다. 영광스럽다. 무겁다”의 뜻입니다. 따라서 “경히 여기지 말라”는 말씀은 “부모를 가치있게 여기고 귀중하게 여기며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어버이 주일을 만든 미국의 제 28대 윌슨 대통령의 이야기입니다.

윌슨은 미국의 어느 시골에서 홀로된 어머니와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낮에는 양계를 하고, 밤에는 삯바느질을 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뒷바라지 했습니다. 아들도 어머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졸업식에 어머니도 당연히 참석을 해야 하지만 자기의 누추한 모습 때문에 아들이 민망해 할까 걱정이 되어 아들에게 급한 일이 생겨서 못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울면서 어머니가 참석하지 않은 졸업식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면서 꼭 참석해 달라고 했습니다.  

울며 매달리는 아들을 뿌리칠 수가 없어서 어머니는 가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드디어 졸업식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전 학생들을 대표해서 멋있는 연설을 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진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되었습니다. 많은 박수를 받으며 그는 단상에서 내려 왔습니다. 

그리고는 한쪽 구석에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기를 바라는 듯이 앉아 있는 그의 어머니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그의 어머니 앞에 서서는 자기 목에 걸려 있는 금메달을 벗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그의 어머니의 목에 걸어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어머님이 아니셨으면 제가 어떻게 오늘의 이 영광을 누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면서 모든 공을 어머니에게 돌렸습니다. 이후에 윌슨은 미국의 제 28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은혜를 기억하며 1914년에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날로 제정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늙으신 부모가 자녀들에게 가장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를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부모를 쓸모없다고 생각합니다. 귀찮게 여깁니다. 무시합니다. 

사람이 늙으면 힘이 약해집니다. 곧 지식의 힘, 육체의 힘, 경제적 능력이 없어집니다. 

부모가 젊고, 능력 있고, 경제력, 도움이 되면 자녀가 부모를 경히 여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늙게 되면 외모, 언어, 능력, 경제, 범사에 작아집니다. 도움은커녕 오히려 귀찮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구세대라 해서 무시할 존재가 아닙니다. 부모는 무지하고 무능력하다고 해서 절대로 경시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부모님의 존재가치를 인정하라고 합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은 부모에게 거역하는 성도가 없기를 바랍니다.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부모를 자랑스럽게 여기므로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는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부모님은 자녀들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살 때 즐거움과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본문 24절에는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잠 23:15-16을 보세요.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부모가 무엇으로 인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느낀다고 하였습니까? 그것은 자녀들이 의인이요, 지혜로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혜가 제일인데 어디에서 지혜를 얻습니까? 잠언 기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잠 1:7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잠 9:10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했습니다. 

또 잠 23:17절에도 이렇게 말합니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부모님을 즐겁고 기쁘게 해드리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부모가 즐겁고 기뻐할 것입니다. 

믿음의 부모님의 소망은 자녀들이 세상에서 권세와 풍요로운 재물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자녀가 참된 지혜를 소유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원합니다. 세상의 부모들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출세와 관계없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간혹 성도들 가운데서도 학교공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생활을 소홀히 여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참된 성도라면 솔로몬이 기대하는 것처럼 자녀들이 참된 지혜를 알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 보람을 얻고 기쁨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자녀는 부모님에게 기쁨이 됩니다. 그러나 불신앙의 자녀는 부모님에게 눈물과 한숨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모든 자녀들이 믿음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부모님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드리는 방법은 자녀들이 부모를 자식들이 온 마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26절에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두 가지가 나옵니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달라” 또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네게 달라.” 이 말씀처럼 부모가 우리 자녀들에게 원하는 것은 자식의 마음입니다. 

부모님이 연로하실 때 물질로 봉양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부모님을 즐겁게 하고,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더 소중하지 않겠습니까? 용돈 좀 드리고 나서 어떻게 우리가 효도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을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효도의 본질은 마음입니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잘 해 드린다 할지라도 마음이 멀어지면 그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부모 자식 간에 마음이 멀어지는 것보다 더 섭섭하고 외로운 것이 부모에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생활비는 꼭 꼭 보내드리면서도 마음에서 부모님을 지워 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진정한 효도는 내 마음에서 항상 부모님을 떠나보내지 않는 것입니다. 진정한 효도는 내 마음을 부모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부모님이 살아온 인생의 길을 보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거워하라는 말입니다.  

부모님이 살아온 인생의 길을 바라보십시오. 어떻게 보면 성공한 자녀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비천한 인생을 살아온 부모님도 계십니다. 그러나 그 부모님이 살아온 인생의 길을 인정해 주십시오. 

인생은 아무리 열심히 살았다 할지라도 아쉬움이 있고 후회가 있는 것입니다. 실수가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인 노아도 포도주에 취해 자식 앞에서 실수를 했습니다. 노아가 어떤 사람입니까?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요 당세에 완전한 사람이요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도 자식들 앞에서 실수를 범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왜 우리의 부모님에게는 실수가 없겠어요? 이 세상에 자녀 앞에서 완벽할 수 있는 부모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부모님의 삶에도 아쉬움이 있고 실수도 있고 후회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는 자식을 통해서 자기가 살아온 인생에 대하여 인정받고자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참 훌륭하게 살아 오셨다는 인정을 받고 싶어 하십니다.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이었던 링컨의 아버지는 구두를 수선하는 구두수선공이었습니다. 링컨 자신도 초등학교를 중퇴하였습니다. 이러한 가정의 링컨이 대통령이 되니까 귀족들이 못마땅했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처음으로 상원에 나가서 연설을 할 때, 어느 상원의원이 “당신 같이 무식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모시게 된 것이 우리의 다시없는 불행이라고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비난을 합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요, 이런 천한 사람의 아들을 우리가 대통령으로 모시게 됐다”고 하면서 구두를 벗어서 들고 “이 구두도 당신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것일지 모른다”고 빈정거렸습니다. 

그때 링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아버지를 기억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직업에 충실했고, 구두를 잘 만드는 분이셨습니다. 내가 어깨 너머로 배운바가 있으니 당신 구두가 고장 나거든 가져오시면 내가 수리해 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효도입니다. 자기의 부모를 자랑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일이 아니라면, 부모님의 직업, 부모님의 선택, 부모님의 삶, 부모님이 살아온 생에 대하여 “잘 하셨습니다. 훌륭하셨습니다. 그 하시던 일을 나는 존경합니다.”라고 인정하는 것이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부모님이 살아오신 삶을 인정해 드리고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모님들의 신앙과 삶을 본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가을의 풍년을 바라는 농부는 이른 봄부터 논밭에 나가 부지런히 씨앗을 뿌립니다. 심지 않고 거둘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복을 받아 누리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복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축복의 씨앗이 무엇입니까? 바로 오늘 말씀대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나의 부모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지금 나는 부모님에게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즐거움과 기쁨을 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근심과 염려와 슬픔과 고통만 안겨 주고 있습니까? 말로는 부모에게 효도한다고 불효자식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22년이 지났습니다. 잘 해 드리고 싶어도 이미 그분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의 기대만큼 그렇게 이 세상에 오래 계시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것이 인생이라고 모든 것이 다 지나고 난 다음에야 깨닫습니다. 

때가 지났는데 어떻게 하냐고요? 이웃의 노인들을 내 부모처럼 생각하며 섬기면 됩니다. 우리 가까이에 따스한 손길이 필요한 분이 어디 계신지 살피십시오. 그리고 섬기십시오. 바로 그 자리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가득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축복의 씨앗을 많이 심으시기 바랍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는 부모를 공경함으로 우리 모든 성도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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