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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칠 것 (잠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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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칠 것 (잠 1:7-9)


오늘 본문은 구약성경의 <잠언>서 전체의 가르침의 요약이며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 말은 잠언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말이며 그 안에 참으로 많은 진리를 품고 있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단지 솔로몬 왕 시대의 삶의 지혜이거나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필요한 교훈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모든 시대의 모든 이들이 따라야 할 신앙적 삶의 원리가 농축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우선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경외한다는 것은 일단 두려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은 종이 주인에 대해서 갖는 두려움이나 백성이 폭군에 대하여 갖는 공포심 같은 두려움이 아닙니다. 자녀가 부모에 대하여 갖는 공경심과 같은 것입니다. 즉 사랑과 신뢰와 존경이 합쳐진 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절대자로서의 하나님의 자리를 인정하고,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며 순종하는 마음과 삶의 자세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바른 신앙으로 응답한다는 말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유의 창조자이시며 주권자로 믿고 고백한다면 그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말입니다. 지식은 인간이 삶을 보다 인간적으로, 보다 효율적으로, 보다 의미 있게, 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주는 힘입니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지식을 생산해내며 또 계속해서 지식을 넓혀가고 이미 얻은 지식을 더 세밀하며 정교하게 발전시켜갑니다. 그것이 인간과 다른 모든 피조물들 사이의 차이입니다. 정확한 지식을 더 많이 습득하고 더 빨리 삶에 적용하고 활용하는 사람이 보다 행복한 삶을 살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도 생기는 것입니다. 

지식에는 주체가 있고 그 대상이 있습니다. 지식의 주체는 우리 인간이고 지식의 대상은 눈에 보이는 세상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세상과 그 안에 존재하고 발생하는 모든 일들입니다. 역사, 가치, 윤리 같은 것들도 다 포함됩니다. 그런데 존재하고 발생하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아래 있으며 그의 주권에 속한 것이라고 우리가 믿는다면 하나님과 그의 뜻을 알지 못한 채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지식들이 다 참된 지식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의 도리를 바르게 아는 길인 것입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뜻을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스스로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무한한 차이 때문입니다. 그 무한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부분적이긴 하지만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또 보여주시는 그 하나님을 우리로 하여금 보게 해주시는 계시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은혜를 자기를 경외하는 이들에게 베푸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서 그가 지으신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것은 당연한 말입니다. 

만유의 창조자이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순종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지식의 길은 없기 때문입니다. 다 알고 나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써 다 알게 되는 것이 신앙세계의 원리입니다. 믿기 위해서 먼저 아는 것이 아니라, 알기 위해서 먼저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식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의 근본”이 아니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지식”은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은 그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 아닙니다. 참 지식은 사물을 바르게 판단하고 행동과 삶을 바르게 이끌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공부는 잘 하는데 맹꽁이처럼 행동한다면 지식이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사물을 바르게 판단하고 바르게 행동하며 바른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며 이끄시는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하는데 “근본”이라는 말은 “시작”, “원리”, “기초”, “출발점”, “첫 번째 단계”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이는, 즉 다른 말로 하면 믿음이 없이는, 아무리 많은 세상의 지식을 쌓아도 결코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정보의 홍수시대입니다. 그러나 지혜에 있어서는 가뭄의 시대입니다. 현대인은 정보습득능력은 뛰어납니다. 그러나 진정 지혜 있는 사람을 만나기는 힘듭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식이 어떤 사실에 대한 단순한 정보라면 지혜는 그 지식을 삶에 적용하여 삶을 의미 있고 윤택하게 하는 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은 지식은 자기 생각대로 늘릴 수 있을지 몰라도 참된 지혜를 쌓기는 어렵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만이 그들이 얻은 지식이 진정한 지혜가 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며 사랑하고 신뢰하며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구체적인 길은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선조들이나 예언자들을 통해서 주신 모든 법과 교훈을 마음을 다해 따르고 지키는 것입니다. 그 말씀 속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으로 하여금 복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주시는 지혜와 훈계가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한다면 지혜로운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그 말씀에 귀 기울여서 열심히 배우고 깨달은 대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말씀 안에 들어있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고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싫어하며 결과적으로 하나님과 멀어지는 자는 참으로 미련한 자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배우지 않고 그가 지으신 세상의 이치와 인생의 도리를 다 알 것처럼 자만하고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여기며 사는 자가 가장 미련한 자라고 경고하는 것이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하는 말입니다. 

모든 참된 지혜와 훈계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혼자 다 안다는 듯이 그 어떤 권면이나 그 누구의 조언에도 귀를 막고 사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경건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지혜를 많이 깨달아 안 사람들의 훈계와 경고에 대해 귀를 닫는 것은 미련한 짓입니다. 더군다나 자식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해서 진심으로 자녀들을 위해 주는 부모의 가르침을 외면하거나 소홀히 하는 자는 참으로 불쌍한 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본문 8절의 말입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그런데 여기서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한 것은 자녀들이 듣고 지킬 것의 우선순위에 있어서 부모가 주는 훈계와 법이 하나님의 지혜와 훈계에 앞선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비의 훈계와 어미의 법은 부모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라기보다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부터 얻은 것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오는 훈계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서 터득한 법도를 가리키는 것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그 훈계를 들으며 그 법을 지키라는 것은 “바른 길을 가라”는 부모의 간곡한 권고입니다. 그 길이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확신하며 자녀에게 당부하는 복된 인생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부모의 권고를 받아들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말씀 속에 들어있는 지혜를 따르는 삶의 길을 가면 그 삶이 반드시 아름답고 보배로울 것이라고 솔로몬은 단언하며 결론짓습니다. 본문 9절을 봅니다: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머리의 아름다운 관”과 “목의 금 사슬”은 그것들로 장식된 사람을 고귀하게 보이고 아름답게 보이게 합니다. 성공한 삶, 존귀함을 받는 인생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부모의 훈계와 법을 잘 듣고 지켜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지혜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 얻는 결과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권력으로 쟁취하여 쓸 수 있는 관도 아니고 돈으로 사서 걸 수 있는 목걸이도 아닙니다. 여기서의 “머리의 아름다운 관”과 “목의 금 사슬”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바른 믿음의 삶으로 이런 고귀함과 우아함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잠언 속에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얻는 수많은 삶의 지혜들이 들어있습니다. 당장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과 상황에 곧바로 적용하고 실천해야 할 지혜와 법도와 훈계들로 가득합니다. 왜 이 지혜의 가르침들을 모르고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행하여 패가망신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말씀들이 넘쳐납니다. 솔로몬 자신이 “내 아들아!” 하는 말을 반복하며 그 숱한 잠언을 들려주었듯이 모름지기 하나님의 백성은 그 자녀들에게 성경의 잠언을 잘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그 잠언이 담고 있는 귀한 교훈들을 먼저 잘 이해하고 실천하며 또 자녀들에게도 평생 그 지혜로운 삶의 길을 가도록 안내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 된 부모의 도리이며 의무일 것입니다. 자녀들은 믿음 안에서 삶의 경험이 풍부하고 거기서 얻은 지혜가 많은 부모들의 훈계와 법을 잘 듣고 지켜 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부모를 두었다는 것은 크나큰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위해 바친 그 긴 세월과 그 한이 없는 사랑과 희생을 돌아보며 깨닫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부모님의 그 사랑과 희생에 대한 깨달음과 감사가 그 동안 소홀했다고 느낀다면 미처 다하지 못한 효도를 여한 없이 다하겠다는 다짐과 실천이 있는 앞으로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나 건강하실 때 못한 효도는 두고두고 뼈아픈 후회로 남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부모님들은 자녀에게 주 안에서, 말씀 안에서 했어야 할 신앙교육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셨다면 이제부터라도 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이미 머리들이 다 크고 심지어 허옇게 세기까지 하는 자식들에게 무슨 교육을 하겠느냐고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린아이처럼 앞에 앉혀놓고 훈계는 못하더라도 날마다 새벽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마다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말씀 안에 주어진 지혜를 따라 살게 해주시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는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부모들의 자녀들을 위한 끝나지 않을 도리일 것입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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