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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지혜를 빌리고 이어라! (엡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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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빌리고 이어라! (엡 6:1-4)

: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 성도들의 가정에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이 땅에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배우 윤여정씨가 있습니다.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어머니역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입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기자가 그에게 “윤여정 씨에게 어머니란, 아버지란, 형제란, 가족이란 어떤 존재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윤여정씨는 그가 오래전 만나서 들었던 화가 천경자 선생의 말을 인용하여 ‘핏줄은 아픈 거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처음에는) 그게 무슨 뜻인가, 핏줄이 뭐가 아프나 그랬는데, 지금은 제가 나이 들어서 생각해 보니까 그렇게 이제 아픈 존재겠죠, 서로.”라고 합니다. 

‘핏줄은 아픈 것’이란 말이 제게는 이렇게 들렸습니다. 가족이란 잘 해주려고 하니 힘이 모자라서 아프고, 마음은 있는데 못 해주니 아프고, 다른 사람 같으면 도망칠 수 있으련만 도망칠 수도 없으니 아프고, 이를 악물고 도망을 쳐도 못내 떨쳐버릴 수 없으니 아프고, 서로 찌르며 괴로워하지만 아프다고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니 그래서 더 아픈 것이 가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래서 아프지만, 그 아픔을 참을 수 있고 견딜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족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돌보아야 할 자식들이 없었다면 그렇게 억척스럽게 살아갈 이유가 없는 아버지들이 많습니다. 몇 번이고 생명을 포기하고 싶었을 때에도 어린 새끼를 위하여 구차스러워도 참았다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직장에서 모욕을 당하는 것 같아서 속이 쓰리고 아파도 자식들을 위하여 견뎠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실패한 인생이라고 자책하며 세상을 등지려는 순간 아버지의 힘없는 어께가 더 안쓰럽게 보여서 살아야 하겠다는 용기를 갖은 아들도 있습니다. 자기를 닮아 속 썩이는 딸을 기르면서 비로소 어머니의 눈물을 기억하고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며 한 없이 울었다는 딸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한편으로 가족이라는 짐을 지고, 한편으로는 가족이라는 덤으로 사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이 있기에 상처를 주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상처를 싸매주는 가족의 정을 도탑게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은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자식이 부모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버이 역시 그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치유가 필요합니다. 역시 주님의 말씀 안에서 회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여야 합니다. 

이제, 먼저 다루어야 하였을 부모 공경에 대한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명령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I. 명령
  
오늘 말씀은 자녀 된 이들에게 무엇을 명령하고 있습니까?

1절 말씀입니다.
: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이 말씀은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자녀가 아닌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 자식을 낳지 않아서 부모가 되지 못한 사람이 있지만, 부모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이 땅에 있다는 것 자체가 누구의 자식이라는 말입니다. 행여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의 얼굴을 모른다고 해도 자식이 아닌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순종하다[uJpakouvw/휘파쿠오]’는 말은 낮은 자리에서 아랫사람으로 ‘아래에서 듣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경청하는 것입니다. 

1.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명령입니다.

성경은 자녀 된 이들은 그 부모에게 순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순종이 경청이라는 것을 유의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마음으로부터 존경하지 않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에 없는 일을 하는 것은 억지로 하는 복종일지언정 존경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존경하기 위해서 조건을 들먹이면 곤란합니다. 부모가 자신에게 무엇을 해주었느냐 안 주었느냐를 따지기 시작하면 존경은 불가능합니다. 이해관계를 따져서 부모가 존경받을 가치가 있기 때문에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존경하여야 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여야 할 이유를 굳이 들라면 그 분들에게서 받은 은혜 때문 입니다. 그 은혜 때문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옛날, 어느 임금님이 행차하셨습니다. 임금님의 행차는 백성들에게 그 보다 더 좋은 볼거리가 없는 장관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한 할머니가 꼭 한번 이 행차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자리에 누워 거동이 불편한지라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할머니는 아들에게 부탁합니다. 

“얘야, 나 말이다 임금님의 행차를 한번 보았으면 좋겠구나.”

효자 아들은 아무 망설임도 없이 어머니를 업고 길을 걸어서 임금님이 행차하시는 데까지 왔습니다. 어머니를 아기 업듯이 단단히 받쳐 업고서, 어떻게든 임금님을 가까이 볼 수 있도록 애썼습니다. 임금님이 지나가다가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멈춰라! 어떻게 된 사연이냐?”

“어머니가 임금님을 뵙고 싶다 하셔서 제가 모셔왔습니다.”

임금님은 효자 아들을 칭찬하고 상을 후하게 주었습니다. 

이 소문이 퍼지자 다른 마을의 아주 못돼 먹기로 소문난 불효자가 배가 아팠습니다. 그래서 안가겠다는 제 어머니를 강제로 업고, 임금님이 행차하실 길목에 가서 떡하니 서 있었습니다. 역시나 임금님이 이 모습을 보고 흐뭇해 하셨습니다.

“이 근방에는 효자도 많구나. 기특한 일이로고. 너는 무슨 사연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왔느냐?”

불효자는 효자의 말을 그대로 흉내 내어 아뢰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동네사람들이 일러바쳤습니다. 

“아닙니다, 임금님. 저놈은 효자를 흉내를 내는 것뿐입니다.”

그 말은 들은 임금님을 껄껄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흉내라도 좋아. 효도를 흉내 내는 것은 좋으니라.”

그리고 불효자에게도 상을 후하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라에 효가 권장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일은 흉내라도 내어야 합니다.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명령이라면 더욱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진심으로 순종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모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부모에게 순종하여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모에게 순종하여야 할 이유를 무엇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까?

  
II. 이유
  
오늘 말씀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을 명령할 뿐만 아니라, 그 이유까지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1절 말씀입니다.

: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여야 할 첫 번째 이유는 ‘이것이 옳으니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옳으니라’는 말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1. 이것이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사람의 도리에 대하여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때도 없습니다. 사람마다 주관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사람이라면 반드시 하여야 할 일이라고 꼽을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도리입니다. 인간의 도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이나 현재를 불문하고 그래도 지켜야 할 내용입니다. 그 중에서 하나가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지난해 10월 2일 밤,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최전방 22사단 GOP(일반전초) 소초 병영생활관의 문을 노크한 북한 병사가 있었습니다. 일명 노크 귀순으로 온 국민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북한을 탈출한 그는 서너 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북한 감시병을 피하느라 이틀 밤낮 동안 걷고 또 걸었습니다. 북한군 초소 7개를 피해 철책을 넘은 뒤 바로 옆 우리 측 초소로 갔지만 우리 군인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전기 철책을 넘은 뒤 250m 떨어진 우리 경비대 생활관 문을 두드렸지만 역시 반응이 없었습니다. 다시 30m을 이동해 소초 생활관 문을 두드렸더니 비로소 문이 열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노크 귀순’의 내용입니다.

그가 우리 관계기관에서 5개월여 조사를 받으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고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게 된 이유는 ‘10㎝ 간격으로 지뢰가 깔려 있다’는 지뢰밭을 무사히 통과한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처음 교회에 가서 보게 된 성경에 대하여 느낀 점이 특별합니다. 그는 성경에 대하여 “부모를 공경하고 도적질하지 말라 등 북한에서도 평소 옳다고 생각하는 내용들이 그대로 담겨 있어요.”라고 합니다. 성경이 전혀 다른 책이 아니라 평소 옳다고 생각하는 내용들을 그대로 담고 있어서 믿을 만 하였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북한에서나 남한에서나 인간이라면 마땅히 하여야 할 인간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노릇을 하기 위하여,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부모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오늘 말씀은 우리가 부모님께 순종하여야 할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2절 말씀입니다.

: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부모님께 순종하여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이자 하나님의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 성경 출애굽기의 십계명에서 이미 기록한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20:12 말씀입니다.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에게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말씀에 포함되었습니다. 십계명 중에서 다섯 번째 계명입니다. 여기에서 ‘계명[ejntolh/엔톨레]’은 ‘권위 있는 규정’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의 권위에 의하여 내려진 규정입니다. 부모님께 순종하여야 할 이유는 분명합니다. 


2. 이것이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도리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에는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가 있습니다. 비록 인간이 타락하였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고 지역이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인간에게 남아 있는 본성입니다. 그래서 종교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대부분의 같은 인간의 도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가치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도리를 뛰어넘어서 하나님의 명령으로 지시된 것이 계명입니다. 계명은 인간의 도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계명은 반드시 복종하여야 할 인간의 도리입니다. 

우리는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을 하나님의 계명으로 받아야 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엄숙한 명령입니다.
  
그렇다면 계명은 오래 된 명령이기만 한 것입니까? 단지 인간의 도리로써 우리가 복종하여야 할 말씀이기만 한 것입니까? 우리는 에베소서 5장과 6장에서 아주 중요한 인간관계에 대하여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아내와 남편의 관계입니다(엡 5:22-33). 그리고 바로 자녀와 부모의 관계입니다(엡 6:1-4). 그리고 사용자와 고용자의 관계입니다(엡 6:5-9). 그런데 이 모든 관계를 한마디로 설명하는 말씀이 에베소서 5:21 말씀입니다.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관계입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관계입니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도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관계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것이 모든 관계의 기초입니다. 모든 관계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복종하는 관계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손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써 마땅히 하여야 할 도리이지만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으로 주어졌지만 타락한 인간에게는 그것을 지킬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율법을 다 지킴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만한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5:18 말씀입니다.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오직 성령의 충만하심을 통하여 아내와 남편이 서로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할 수 있습니다. 역시 성령의 충만을 통하여 자식과 부모가 서로에게 주신 말씀에 복종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에서도 성령 충만을 통하여 서로 복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자식이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도 역시 성령의 충만을 통하여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의 도리이기에 지켜야 할 일이요, 계명이기에 반드시 하여야 할 일이지만, 이것은 성령 충만을 통하여서만 온전히 이룰 수 있습니다.


3. 이것이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은사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충만을 통하여 우리는 인간의 도리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또한 지킬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 받은 성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은사란 ‘은혜로 사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은혜로 사는 것이 성도에게 주신 은사이자, 성령 충만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성령 충만은, 지혜와 지식과 믿음과 신유와 방언과 같은, 성령의 다양한 나타남을 경험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성령 충만은 아내와 남편이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은 자녀와 부모가 서로 공경하고 양육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생활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가정생활을 위해서도 성령 충만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가족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도리를 넘어서 하나님의 계명이기에, 하나님의 계명을 넘어서 성령의 인도하심이기에 부모님께 순종하고 공경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이 부모에게 순종하여야 할 것을 인간의 도리로, 하나님의 계명으로, 성령의 은사로 명령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III. 목적
  
오늘 말씀은 부모에게 순종하여야 할 이유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이루게 될 목적이 무엇인지도 가르쳐주십니다.

3절 말씀입니다.
: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부모에게 순종하여야 하는 것은 이로써 네가 잘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잘[eucf/유]’이라는 말은 ‘훌륭하다’, ‘번영하고 형통하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것은 행복이라는 말로 표현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1.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아주 흔하게 하였던 말이 생각납니다. 그것은 말끝마다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공부 안 하는 자식에게 공부를 시키면서도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라고 하셨습니다. 잘못한 아이를 꾸짖으면서도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라고 하셨습니다. 부모님은 자식이 진정으로 행복하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자식이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은 바로 자식이 행복하게 되는 길입니다.

이것은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신명기 10:13 말씀입니다.

(신 10:13)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행복을 위하여 부모님께 순종하고 공경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여야 할 목적은 자녀의 행복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목적이 있습니다. 다시 3절 말씀입니다.

: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번에 보아야 할 말씀은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장수한다는 말은 글자 그대로 ‘오래 산다’[makrocrovnio"/마크로크로니오스]는 말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순종하여 행복하게 오래 사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래 살면 얼마나 오래 살 수 있겠습니까? 100년을 살면 오래 사는 것입니까? 1,000년을 살면 오래 사는 것입니까? 인간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오래 사는 방법은 자식을 남기는 것입니다. 자식을 통하여 자신을 이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전혀 닮지 않은 자식을 세상에 남기는 것은 자신이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꼭 닮은 자식을 세상에 남겨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아들에게 계승되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입니다. 개인은 오래 살 수 없지만 후손을 통하여 이 땅에 남는 것입니다. 자신은 죽어도 자신의 뜻을 이어갈 수 있는 후손을 남기는 것이 인간의 종족의 본능이었습니다. 위대한 신앙은 믿음을 자식에게 계승시키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순종하여 할 중요한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2. 믿음의 계승을 위해서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순종하여야 할 가장 중요한 내용은 부모의 신앙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자신의 신앙을 잘 가꾸어서 자식들이 이어갈 수 있는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위대한 가문을 만드는 것은 부모가 훌륭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자식이 부모님께 순종하여 그 믿음을 계승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를 위하여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4)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단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심한 세대 차이를 겪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식이 부모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자식들에게 계승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순종하여야 할 것은 자식 덕을 보고 호강하기 위하여 공경을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계승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나간 세대에게서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지혜를 물려주어야 합니다. 특히 신앙인들은 부모의 신앙을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돈이나 명예보다도 믿음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자식은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도리요, 하나님의 계명이요, 성령의 은사입니다.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신앙을 계승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자식은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는 자신의 믿음을 이어가는 자녀로 길러야 합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자신의 신앙을 아름답게 가꾸고 훌륭하게 물려주는 신앙의 명문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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