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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헛된 수고와 분복 (전도서 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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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수고와 분복 (전도서 5:10-20)

전도서는 고대의 지혜로운 왕 솔로몬이 후대의 사람들을 위해 쓴 지혜서로 알려집니다.   누군가 사람들에게 지혜를 전하고 인생을 논하며 충고하려 들면, 사람들은 그 사람이 가진 풍부한 경험과 그가 가진 지식 등을 기대합니다.   별볼일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충고를 하면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것이 현대인들의 병이다.  

인생을 많이 살아 본 사람이, 많이 배워 본 사람이, 많은 것을 가지고 누려 본 사람이 ‘그런 것들은 다 별 것 아니다’ 하면 권위가 있어 보이지만 가져보고 누려보지 못한 사람이 마치 인생을 다 살아본 것처럼 말하면 도통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디에서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스승을 찾아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요즘 전도서의 말씀을 통해 그런 경험이 많은 스승으로부터 지혜를 얻고 있습니다.   

전도서를 기록한 사람은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지혜로운 사람이었고, 학문의 많은 열심과 업적을 나타내기도 했고, 재물을 모으는 일과 사업을 경영하는 일에는 이 사람을 따라올만한 사람이 없었으며, 인간의 쾌락을 논하려고 하더라도 이 사람보다 더 화려하고 원 없이 쾌락을 경험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고 소유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왕의 신분으로 절대권력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렸던 권력자이기도 했습니다.   

이만하면 그의 인생 경험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인생 황혼기의 고백에 귀를 기울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꼭 우리가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스스로 경험해 보고서야 뒤늦게 깨닫지 않아도 이런 지혜로운 스승이 전해주는 말씀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는 것도 지혜로운 자세입니다.   

전도자는 인간사의 모든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거기에는 사람의 수고, 지혜, 재물, 의로움, 존귀와 쾌락, 젊음과 생명 등 인간사에 있는 모든 것들을 총 망라되어있습니다.  

그렇다고 전도자가 이 모든 것들이 무조건 무가치한 것이라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땀 흘려 일함으로써 무언가를 이루어 낼 수 있고, 지혜를 가지고 남보다 빠르고 쉽게 성공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의로움은 불의함보다 고상하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한 본성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무지함,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것이 곧 닥친다는 것과,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불확실성 앞에서 사람의 지혜와 수고, 권력과 재물들은 그 가치를 잃고 맙니다. 그래서 해 아래 사는 인간이 무엇을 얻고자 수고하는 모든 일은 죽음이라는 문제 앞에 아무런 힘을 나타낼 수 없기에 결국 인간의 모든 노력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된 수고로 끝이 나고 만다는 것이 전도자의 탄식입니다.    

한편으로 전도자는 죽음 앞에서 인생은 허무한 존재이니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즐기라는 충고를 합니다.  그렇다고 전도자가 인간사가 다 그렇고 그런 것이고 늙으면 모든 것이 허무하게 여겨지니 ‘노세 노세 젊어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하는 염세적 쾌락주의자는 아닙니다. 사는 날 동안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며 살되 그 즐거움이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선물임을 알고 우리에게 수고의 보람과 땀의 열매를 기쁨으로 맛보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분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이 참으로 지혜로운 삶의 자세라고 교훈합니다.   

모든 사람의 마지막에는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심판이 따를 것이니 살아 있는 날 동안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도록 시간과 물질과 재능 그리고 그 외 모든 것들을 맡겨주신 하나님의 심판을 염두에 두고 오늘을 의미 있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야말로 인생을 참으로 행복하고 보람 있게 사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이 전도서의 가르침입니다.  

이 진리를 모르거나 무시하면서 오로지 자기 욕망과 열심을 따라 살던 사람은 결국 마지막 순간에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되다’ 고 탄식하지만,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고 따르는 사람은 매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감사함으로 받아 즐겁게 살고, 또 마지막 심판의 자리에 섰을 때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후회함이 없는 삶을 살았노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전도서 전반에 걸쳐 상반된 인생의 모습이 대조되어 나오는데 그 중에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헛된 수고를 하면서 사는 인생과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받아 누리는 인생 즉 자기의 분복을 받은 사람의 찾아보게 됩니다.

10절부터 17절까지의 내용은 인간의 헛된 수고에 대한 탄식입니다.   여기에는 삶의 기쁨이나 보람, 감사와 즐거움이 없고 오직 불만족과 불안 그리고 아쉬움과 허무함뿐입니다.   본문 말씀을 쉽게 풀어 번역한 내용을 읽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모으기에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만족함이 없고, 부자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가 이미 벌은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며 살고 있으니 이것이 헛되다.   재산이 많아지면 그만큼 먹는 사람도 늘고 씀씀이도 커지니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가진 사람은 다만 눈요기만 할 뿐이니 무슨 소용이 있는가?    

가난한 노동자는 많이 먹든 적게 먹든 잠을 편하게 잘 수 있지만, 재산이 많은 사람은 많이 가졌기 때문에 잠을 편히 이루지 못한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비참한 일을 보았는데, 그렇게 아끼던 재산이 그 임자에게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이다. 어떤 사람은 재난을 만나서 그 재산을 다 잃는가 하면, 자식을 낳지만 그 자식에게 아무 것도 남겨줄 것이 없게 되기도 한다.   

내가 또 한 가지 비참한 일을 보았는데, 사람이 모태에서 벌거숭이로 나와 돌아갈 때에도 벌거숭이로 돌아간다. 사람이 나올 때처럼 그대로 맨 몸으로 돌아가니 갈 때에는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한다. 수고해서 얻은 것을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하니 이처럼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를 해봐야 그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겠느냐?  그러니 평생 어둠 속에서 먹고 지내며 온갖 고생과 울분과 질병에 시달리며 살 뿐이다.’

바로 여기에 인간의 비참함과 허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공수래공수거 인생임을 깨닫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동분서주하며 여유가 없이 살아갑니다. 그리고는 어느 날 예측하지 못한 재난을 만나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잃고 좌절감에 빠집니다. 차라리 가진 것이 적으면 편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는데, 가진 것이 많기에 그것을 관리하느라 염려가 되어 편안한 잠을 누리지 못하기도 합니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질병으로 인해 평생 모은 것을 치료비로 다 털어버려야 하며, 정작 죽음이 찾아왔을 때는 가진 것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고 두고 떠나면서 자신이 피땀 흘려 모아놓은 재물을 누가 제대로 관리하기나 할는지 알지도 못하고 갈 수 밖에 없으니 이것 또한 바람을 잡는 헛된 일입니다(2:18-21).   이런 것을 생각하니 전도자는 인간의 모든 일들이 허무하다고 고백합니다.   

자기 딴에는 남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자부했는데, 그래서 남보다 더 빨리 출세와 성공가도를 달려왔으며 재산도 좀 모았다고 생각했는데 인간사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모든 것들이 부질없는 수고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이것이 어디 재물을 모으는 일에만 해당되는 것이겠습니까?  사람들은 물질을 모으는 일에 집착하는 것만큼 자식들에게 거는 기대도 또한 끝이 없습니다. 자식에 대한 지나친 애정과 기대가 과도한 집착이 되어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자식의 행보에 걸고 사는 가련한 삶도 있습니다.    

내 자녀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나는 내 부모님께 어떤 자식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까?   나는 부모의 베풂과 사랑에 얼마나 감사하며 보답하는 자식입니까?   나의 자녀가 나와는 다를 것이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부모에게 제대로 효를 다하지 못하는 나하고는 달리 내 자녀는 내가 쏟아 부은 정성에 보답하는 자식이 되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내가 못다 이룬 인생의 한을 내 자녀가 풀어줄 것이라고 그토록 걸었던 기대가 무너지는 날, 이제 나는 삶의 의미가 없다고 탄식하면서 허무한 인생을 비관하지 않기 바랍니다. 

자식들에 대한 절망으로 그렇게 탄식하는 날이 이르기 전에 먼저 나를 세상에 나오게 해주신 내 부모 섬기기를 다하고,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여러분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준비하는 지혜자로 살기 바랍니다.    

돌아갈 곳을 예상하며 사는 인생이 참 지혜자입니다. 돌아갈 날이 이르기 전에 포기할 것을 속히 포기하고 영원한 것을 준비하는 사람이 진정 지혜자입니다. 18절에서 20절의 말씀은 그렇다면 인생의 허무함을 탄식하지 않을 수 있는 복된 삶이 무엇인가를 말씀합니다.    

우리의 일생이 덧없고 짧은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허락하신 것이니 세상에서 애쓰고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깨달은 전도자는 이것이 곧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분복이라고 하였습니다.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부와 재산을 주셔서 누리게 하시며, 땀 흘려 수고한 대가로 얻은 것을 기쁨으로 누리는 그것이 분복이니 곧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선물은 그것이 크든 적든 개의치 않고 감사함으로 받을 때 더 큰 기쁨과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필요한 분량의 선물을 허락하시니 그것을 받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아 누리며 선한 일에 사용할 때 그에게 복이 됩니다.   

세상의 기준은 부유해야 행복하고, 권세가 높아야 행복하고, 번영해야 행복하고, 음식을 폭식할 수 있어야 행복하고, 코가 삐뚤어지게 마음껏 술 취할 수 있어야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미 가진 소유로 인해 감사하고, 환난 중에 구원받음을 기뻐하며, 영혼이 보존된 것 때문에 행복합니다.성령의 인도하심과 기도 응답으로 인해 감사하고 행복해 합니다.   이것이 분복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만족을 얻으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내가 남보다 더 가졌다는 것으로 행복을 느끼다가, 주위에 나보다 더 가진 사람을 보면서 금방 위축되고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욕심에는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닮아 주께서 살아가신 삶을 모습을 따라 사는 것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나의 삶을 주님과 비교해 봅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은 하늘의 영광스런 보좌를 사양하시고 척박한 땅, 비천한 장소로 찾아오셨습니다.  아기의 모습으로 오실 때부터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주님의 삶은 철저하게 자기를 낮추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니 우리 그리스도인이 예수님과 비교된 삶을 살다 보면, 지금의 내 삶이 얼마나 만족스럽고,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명색이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내게 '행복'을 선물로 주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신앙이면 불신자와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지금 내가 소유하고, 누리고 있는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선물로 주셨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들을 감사하고 그것을 기쁨으로 누리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나에게 주어진 복, 분복입니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덕을 보면서 대충대충 살거나 게으르게 살지는 않습니다.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땀 흘려 얻은 것이 크든 작든 하나님이 주신 수고의 열매로 알고 기쁘게 받아 누리는 삶을 삽니다.   

만일 부귀공명이 내 인생 최대 최고의 목표라면 구태여 교회 나오거나 예수를 믿지 않아도 가능합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도 부자로 살고 권력을 누리며 상류층 행세를 하면서 건강하게 장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하늘의 해와 달을 주시고 비와 바람을 주시는 것처럼, 세상 모든 사람이 땀 흘려 수고한 열매를 공평하게 먹게 하십니다. 어떤 이에게는 남들이 보기에 부러워할 만한 재물과 장수하는 복을 주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신자뿐 아니라 불신자에게도 동일한 은총을 베푸십니다.  

이왕에 예수 믿으려면 대충 믿으려 하지 말고 잘 믿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예수께서 모든 믿는 이들의 본이 되셨던 것처럼, 믿는 자들이 주님을 닮아 세상의 본이 되는 삶을 삽시다! 교회에 나와 부자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받아 건강한 물질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이미 받은 은혜를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그 길을 찾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인간의 짧은 지혜의 한계를 인정하고 지금 주신 것들을 감사와 기쁨으로 누리면서 그것들을 공급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삽시다.

요즘 사회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이 말은‘귀족은 귀족다워야 한다’는 프랑스어 속담에서 유래한 것으로,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도자가 되려면 그 지위와 신분에 걸 맞는 책임과 의무를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뜻으로 서양에서는 귀족이나 상류층 인사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덕목”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속한 사회의 지도층 사람들에게는 일반인들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합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처럼, 한 나라가 바로 서고 발전하는 것은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자기절제와 희생, 솔선수범의 기본덕목을 갖추고 행동할 때 가능하며, 이런 ‘노블레스 오블리제’정신이 보일 때 소위 상류층 인사들이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고 사회의 질서가 원만하게 유지됩니다.

여러분 기억하실 것입니다. 몇년 전 미국의 세계 제2위 부자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이 전 재산 440억 달러의 85%인 370억 달러어치 주식을 자선단체에 내놓기로 했으며, 그 기부금의 80%가 넘는 300억 달러를 빌 게이츠 회장 부부가 만든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주기로 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사상 최대의 기부금도 놀랍지만 그 거액을 내놓은 그의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이 세계인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버핏이 그 돈을 사회에 내놓으면서 ‘돈을 많이 모으는 것도 어렵지만 그 돈을 믿고 기부할만한 책임 있는 곳을 찾기도 힘들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돈을 빌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부를 사회에 돌려 줄 책임이 있고 또 최선의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것을 인생철학으로 삼고 있는 빌 게이츠 역시 자신의 500억 달러 재산 가운데 1000만 달러만 자녀들에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사회 사업에 내놓겠다고 말했는데, 이제 버핏이 그의 재산을 빌 게이츠 재단에 기부함으로 세계 1,2위 갑부들의 사회사업 합병은 엄청난 영향력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그 인터넷 신문 기사를 읽고 댓글을 달아 놓은 우리 나라 사람들의 반응들 가운데 웃음이 나오게 하는 재미있는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줄 곳이 없으면 나에게 주지’ 하는 공짜 심리와,  ‘기부금 내면 세금 공제 혜택을 받으니 내겠지.  그 돈만 해도 엄청나 금액이지’,‘우리 나라 모 갑부는 뭐하고 있는가?’하는 질타의 내용들입니다.    

‘돈을 많이 벌기도 어렵지만 그 돈을 사회를 위해 책임 있게 잘 사용할 사람 찾는 것도 어렵다’는 버핏의 말에서 진정한 부자의 정신을 엿보게 됩니다.   버핏 회장이나 빌 게이츠 회장이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불신자들 가운데도 건전한 재물관을 가진 건강한 부자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돈이 많다고 기부금을 쉽게 낼 수 있겠습니까?   나도 부자가 되면 그 사람들처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때 가서가 아니라 지금 내가 가진 작은 것으로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그때 가서도 할 수 있습니다.  땀 흘려 모은 재산으로 자신만을 위하여 사치하고 과도하게 호의호식하지 않고 검소하게 살면서 그 전부를 다시 사회로 돌려주겠다는 그의 선언을 들으면서, 그렇다면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주인 되심을 믿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 아닌가?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은 왕족인데, 귀족의 자녀답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실하게 땀 흘리지 않고 쉽게 얻으려는 공짜 심리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부를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마음도 아닌 지금 현재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인가 발견하여 기쁨과 감사로 누릴 줄 알고, 또 작은 것부터 이웃과 나누는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이 주신 분복을 누리는 지혜자입니다.

우리는 이런 지혜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한 사도 바울에게서 배웁니다.   누구보다도 많이 배웠고, 많이 가졌으며, 좋은 가문과 혈통을 배경으로 하던 그는 주님을 만난 이후로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가난함과 부유함, 배고픔과 배부름의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감사하며 자족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배우게 됩니다. 오늘 성찬식에 동참하는 우리는 자신의 생명과 몸을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금년도 교회 표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교회’입니다. 지나온 반년 동안 어떻게 주님을 본받아 살아오셨습니까?  남은 반년 동안도 주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면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분복을 기쁨으로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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