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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세우는 교회 (눅 11: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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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세우는 교회 (눅 11:23-28) 
 
교회 확장이나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개인의 능력 있는 영적생활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예배할 때마다 믿음을 가지고 나갈 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결단이요 모험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드리는 결단을 하였고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믿음은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입니다. 그러므로 모험하는 믿음이 없으면 교회 부흥이나 하나님의 큰 역사는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항상 미래를 바라보게 하고,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도록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위하여 큰일을 성취하시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데 그 교회에 일꾼들이 미래를 보지 못하고 믿음이 없다면 그 하나님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꿈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꿈은 믿음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꿈이 있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 있다는 말과 같고, 꿈이 없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정확하고 분명하게 꿈과 비전의 사람은 누구인가를 히11:1~3에 말씀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교회부흥은 눈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축복을 받고 사는 삶은 눈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비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그림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얼마나 모이는 것에 따라 부흥이나 성장이 주도되는 것이 아니라 모인 사람들 중에 믿음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인 사람의 수와 믿음 있는 사람의 수를 계산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러므로 성장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교회 일꾼들이 산을 움직일 수 있는 믿음을 갖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교회의 미래를 바라보고 그 비전을 이룰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 성장을 주도하는 교회의 리더들이 모두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들이 믿음이 없으면 교회에 큰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성장과 부흥은 믿음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절대적인 믿음이 교회를 부흥시키고 새롭게 하며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교회 부흥이나 성장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으면 부흥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탁월한 교회로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으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믿음의 교회,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믿음으로 사는 참된 신자가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행동하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봉사하며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통해 교회는 모험을 하고 도전을 하고 새로운 일들을 창조적으로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교회에 참된 신앙인이 되기 위해 희생하고 노력하는 성도들이 늘어가고 있다면 그 교회는 엄청난 변화와 함께 큰 부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이 다루고 있는 메시지가 그 내용입니다. 빈집의 비유로 알려져 있는 본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귀신이 들렸다가 귀신이 나감으로 깨끗해졌습니다. 이 귀신이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머물 곳을 찾지 못하자 다시 전에 머물던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예전의 집은 청소를 깨끗이 해놓은 집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쫓겨나지 않기 위해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자리를 잡고 함께 거합니다. 오히려 귀신의 상태는 처음 빈집에 머무를 때 보다 더욱 악하고 더 심각해졌습니다. 일곱 귀신이 들렸기에 예전보다 더 포악해지고 더 더럽게 되어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비유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려는 의도는 무엇입니까? 깨끗이 청소한 빈집이 주제가 아닙니다. 교회를 깨끗하게 하라든지 자신을 깨끗하게 비우라는 것이 주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빈집으로 있게 되면 위험부담이 있을 뿐 아니라 채우지 못하고 있는 공허한 유령의 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담하고 예쁘게 돌로 지은 별장이 있는데 주인이 살지 않아서 오랫동안 비워져 있고 주인이 자주 오지 않으니까 지나가든 거지도 자고가고 개들도 실례를 하고 쓰레기가 널려있고 잡초가 우거져 있게 되면 아름다운 별장이 아니라 범죄의 소굴 같은 쓰레기 집으로 변해버릴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신자의 영혼 상태로 적용을 하면 이렇습니다. 예수 믿기 전의 상태는 우리의 영혼이 세상 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예수를 믿음으로 깨끗하게 영혼을 청소했습니다. 더러웠던 죄를 씻고 세상의 육정과 세속을 따르는 생각들을 깨끗하게 청소를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될 것은 세상 것은 없어졌지만 아직도 내 영혼은 비어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상태를 가리켜 ‘영혼의 빈집’이라고 말합니다. 깨끗하게 청소는 되었지만 아직도 그 집은 비어있는 상태 그대로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과 저의 영혼의 집에 예수 그리스도가 왕 노릇 하지 못하고, 우리의 마음과 삶을 주관하지 못하며, 성령으로 우리마음이 충만해 있지 못하다면 우리의 영혼은 여전히 비어있는 공허한 집인 것입니다. 물론 회개를 통해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믿음의 일차적인 길입니다. 그러나 회개했다고 해서 영혼의 집에 무엇이 채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문에 항상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아십니까? 회개하라 해놓고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계속적인 보충이 필요함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한 번 은혜 받은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번 기도했다고 해서 충만하게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빈집을 채우는 것은 날마다 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회개가 우리의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죄로부터 돌이키게 만드는 사건이라면 믿으라는 것은 죄에서 돌아선 다음에 내가 새롭게 받아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회개란 더러운 집을 청소하는 일이라면 믿는 것이란 빈집에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는 일입니다. 회개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것이라면 믿는 것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것입니다. 

교회에 이 말씀을 적용하면 이렇습니다. 교회가 진리에 서고 바른 교회가 되기 위하여 더럽고 추한 것을 씻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깨끗하게 해 놓았다고 해서 교회의 사명이 다 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4:23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깨끗한 교회에서 채우는 교회로 변화가 되어 강권적으로 집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교회는 비어 있으면 안 됩니다. 채워져야 합니다. 기도로 채워져야 하고(막 11:17). 말씀으로 채워져야 하고 성령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와 같이 영혼추수를 통해 하나님의 창고가 가득 차야합니다. 그래서 비우는 교회보다 채우는 교회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신령한 것으로 채우는 교회가 능력 있는 교회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해야 될 영적 충전소의 역할입니다. 

길거리의 자동차들도 기름을 통하여 움직이고 달립니다. 그러나 기름이 다하면 주유소에서 다시 기름을 공급받아야 힘 있게 활동할 수 있듯이 신앙생활도 교회를 통하여 주유소와 같이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내 영혼을 던지고 내 삶을 던져서 신뢰해야 할 분을 발견하고 그분과 더불어 맺는 인격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믿음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멘토로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그 분과의 관계를 통해 양육을 받고 그분의 삶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약한 것이 바로 멘토 신앙입니다. 주님이 나를 끌고 가고 도와주고 돌보시도록 배려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들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찬양을 부르고 기도를 합니다. 봉헌하면서 신앙고백을 합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감동을 받습니다. 이렇게 예배드리는 순간 죄를 깨닫게 되고 그 잘못을 뉘우치게 됩니다. 

내가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이 죄를 떠나야 해! 강렬한 성령의 감동이 내 마음을 붙잡기 시작할 때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눈물도 흘립니다. 새로워져야 한다고 결심을 합니다. 뉘우칩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납니다. 그만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잘못을 뉘우쳤던 그 뉘우침이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 분과의 관계를 통해서 그 분을 따라가는 삶과 연결되지를 못합니다.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한 걸음 한 걸음 주님과 함께하고 이어지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 다음 발걸음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울며 뉘우치고, 결심도 하지만 사흘도 못돼서 다시 예전의 상태로 되돌아갑니다. 

이것은 마치 개가 토했던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씻고 나서 더러운 구덩이로 다시 돌아가 그 자리에 눕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주님은 본문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순한 뉘우침, 단순히 죄에 대하여 아파하고 새롭게 살아보겠다고 결심하는 것 이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적극적으로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 되어 내 마음과 영혼과 삶을 다스리는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됩니다. 

신앙생활을 ‘관계 신앙’이라고 합니다. 주님과 깊이 있는 관계 때문에 예배가 있는 것이고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지 못한 집은 별수 없이 약령의 처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귀신들은 신자의 삶을 약탈하고,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영혼을 파괴시킵니다. 

오늘 여러분의 영혼은 어떤 상태입니까? 빈집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로 채워져 있는 집입니까? 여러분들은 교회에 나오는 것만으로 안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으로 활동하지 못하는 집은 빈집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기는 하지만 주님이 주인 역할을 못하는 상태에 있을 때 그 집은 쓸모가 없습니다. 그런 집은 빈집과 같은 상태이고 그런 심령은 곧 바로 사탄과 악령들의 놀이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21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강력하게 왕 노릇하시며 거룩한 영으로 내 마음과 의식을 지배하게 될 때 영혼의 집은 안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충만한 신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고후서 5:1-2 절을 보면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장막집입니다. 하늘의 집은 영원한 집이며 그곳에는 찬양의 소리, 기쁨의 축제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장막 집을 하늘의 집으로 만드는 유일한 길은 성령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성령으로 채워지면 믿음으로 행동하고 세상 것에 따라 행동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기도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것 이상으로 더 좋은 것으로 주시는 아버지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왜 기도하라는 것입니까? 무엇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까? 먹고 입고 사는 문제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성령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왜 성령입니까? 신자란 성령 충만해야만 힘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영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영적 전투를 하는 십자가 군사들입니다. 교회는 영적 전투 자를 만들어 내는 훈련장입니다. 만일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거나 영적인 충만함이 없으면 일곱 귀신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악한 영들과 귀신들의 놀이터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성령 충만하기 위해 열심 있는 신앙생활을 고집해야하는 것입니다. 

지금 사탄은 어떻게 해서라도 교회를 약화시키고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 믿음으로 자라나지 못하도록 교회라는 공동체를 깨뜨리고 무너뜨리도록 갖은 모략과 음모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악한 세상의 흐름과 죄악의 활동들은 점점 강해지고 교회 부흥이 힘들고 교회 성장이 어려운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신자와 교회가 승리하는 길은 오직 믿음으로 서로 붙잡아 주고 성령으로 하나가되어 예수 안에 붙어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 붙어 있어야지 떨어져 있으면 안 됩니다. 

사탄의 전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표범이나 사자들이 얼룩말을 사냥할 때보면 얼룩말이 함께 모여 있으면 절대공격을 못합니다. 그래서 모여 있는 공동체를 먼저 흐터 놓고 얼룩말 무리 모두를 타깃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져있는 한 마리를 타켓으로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사냥을 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전략도 이와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예수와 붙어있으면 사탄이 공격해 올 수 없고 절대로 악한 영들이 승리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으로 채워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영혼의 집을 성령의 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에 컵이 있습니다. 이 컵에 공기를 어떻게 없앨 수 있습니까?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만 가능합니다. 물을 부으면 됩니다. 만약 성령이 내 속에 충만하게 임재 하시면 주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것,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들은 내 속에서 사라질 것이며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스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나를 다스리게 하십시오. 성령이 나를 지배하게 하십시오. 성령 충만으로 사십시오. 내 마음의 집, 영혼의 집을 빈집으로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세상 장막 집으로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주님과 연합되고 성령으로 채움을 받고 적극적으로 내 몸과 내 시간과 내 물질과 내 삶을 드리십시오. 성령으로 채우십시오. 그렇기 위해서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도 이기고 귀신도 이기고 죄악도 이기고 모든 문제를 이기는 비결이 영혼의 집을 주의 능력으로 채우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의 믿음을 점검해 보십시오. 내 영혼의 집이 비어있는지 채워져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내가 얼마나 주님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며 주님의 지시에 따르고 있는지 믿음으로 자신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 모두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 모두가 탁월한 믿음으로 충만하며 성령이 일하시는 초대교회와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교회를 찾고 계시며 능력 있는 교회를 원하십니다. 세상 장막집이나 빈집으로 서 있는 교회가 아니라 능력으로 채워져 있고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 기도로 충만한 교회, 믿음으로 충만한 교회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가 그러한 교회가 된다면 하나님은 모든 축복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성도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되어야 하고 우리 교회도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믿음은 모험입니다. 믿음은 도전입니다. 믿음은 새로운 나라를 향한 꿈입니다. 믿음의 꿈을 갖고 달려가는 교회를 세우는 믿음의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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