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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힐링(Healing) (출 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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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Healing) (출 3:10-14)


요즘 현대인들은 건강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말 중에 힐링(healing)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힐링(healing)은 ‘치유, 고침, 치료’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 방송국에서는 이 단어를 이용하여 ‘힐링 캠프’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힐링이라고 해서 의학 프로그램은 아닙니다. 이 프로그램은 사회 유명인을 초대해 그들의 솔직한 심정과 삶을 대화로서 들어보는 일종의 토크 쇼입니다. 이처럼 요즘 사람들에게 자주 오르내리는 힐링이란 말이 ‘치유, 고침, 치료’의 뜻을 가지고 있지만 약물이나 현대 의학을 통한 치유보다는 자연적이고 친환경적인 것들을 통한 치유의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환경, 음식 그리고 속 깊고 솔직한 대화를 통한 마음의 치유와 회복 등에 힐링이란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출애굽기 3장에는 모세가 호렙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에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집트에서 고통 받고 압제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하지만 모세는 이런 중차대한 사명 앞에서 주저하고 머뭇거리며 급기야 거부하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그를 설득하십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하나님과 모세 사이에 사명에 대한 거부와 설득이 대화의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대화를 통해 앞에서 언급한 힐링(healing)이란 의미를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11절에서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모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의문형 문장입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이 문장은 두 가지 뜻을 담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와 같은 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자신이 누구이며 어떠한 사람인지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 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세의 경우는 두 번째입니다. 모세는 이미 자신이 누구인지, 어떠한 사람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즉 스스로에 대한 자기 평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와 같이 표현하고 있는 것은 사명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기 위함이고 그 거부감의 중심에 있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표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어 아는 것처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태어났지만 노예가 아닌 공주의 아들로 입양되어 이집트 왕자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성장하여 히브리 민족 의식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자기 동족을 위한다고 했던 일이 살인이라는 폭력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 일로 모세는 도망자가 되었고 광야에서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출애굽이란 중차대한 사명을 받았을 때는 이미 그의 나이가 80세가 다 된 늙은 노인이었습니다. 

모세는 요셉 이후로 이집트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사람입니다. 이집트의 왕자라는 신분으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그만한 힘과 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집트의 왕자라는 신분을 가지고 행했던 첫 번째 일은 살인이라는 폭력이었습니다. 

우리는 안중근 의사를 기억합니다. 그가 비록 그 당시 일본인들에게는 정부 요인을 죽인 암살자요 테러범이었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독립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내던진 독립 운동가로 평가되는 데 반하여 모세의 자국민을 생각하여 우발적으로 벌인 사건은 그를 이스라엘과 이집트 그 어느 곳에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행동으로 살인자라는 낙인만이 남겨져 결국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모세는 이집트 왕궁의 화려한 삶을 뒤로 하고 살인자, 도망자, 미디안 광야의 늙은 목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삶을 산 모세는 자신을 어떻게 평가했을까요? 아마도 실패와 좌절 그리고 노년의 나이에서 오는 무기력함으로 가득 채워진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모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평가를 하나님께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이 말은 모세의 당연하고도 솔직한 자기 고백입니다. 

이처럼 실패와 좌절 그리고 무기력함으로 가득한 자기 평가를 내어놓고 있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12절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내가 누구이기에~’가 모세가 자기 자신에게 내린 평가라면 12절의 말씀인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살인자요 도망자이며 실패와 좌절의 삶을 살아온 늙고 무기력한 자가 바로 나이다’라는 자기 평가에서 이제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에 더 이상 살인자나 도망자 인생의 실패자가 아니다’라는 새로운 자기 평가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세를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시는 말씀은 지금까지 그의 삶을 지배하고 있던 실패와 좌절 그리고 무기력함을 일시에, 그리고 한방에 날려버리는 힐링의 말씀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모세는 하나님께 이렇게 질문합니다. 13절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이 본문의 말씀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너를 보낸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가?’ 여기서 13절에 나오는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로힘’입니다. ‘엘로힘’은 ‘신(God)’으로 번역되는 보통 명사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많은 하나님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너를 보낸 하나님은 누구이며 그의 이름은 무엇인가?’ 라고 질문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세는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질문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앞의 질문 ‘내가 누구이기에~’와 관련이 있습니다. 즉 앞의 질문이 모세 자신의 평가라면 두 번째 질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내리는 평가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에 대하여 동일한 평가를 내리고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살인자요 도망자이며 인생의 실패자인데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에 대하여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모세가 살인자도 아니며 도망자도 아니고 인생의 실패자도 아니면서 반대로 이집트의 왕자로 또는 성공한 사람 그리고 능력 있는 자가 되어 그들에게 나타나 자신은 하나님이 보내셨고 이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려고 한다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의 지나온 과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의구심과 회의감을 느끼게 만드는 삶이었습니다. 더욱이 이제 그는 80세가 다 된 노인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이처럼 ‘그의 이름이 무엇인가’라는 문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세에 대한 평가가 들어 있습니다. 즉 ‘너 같은 살인자 도망자 인생의 실패자요 늙고 힘없는 무기력한 사람을 누가? 도대체 어느 신이 구원자로 보냈는가?’라는 것입니다. 이런 모세의 염려는 기우가 아닙니다. 누구나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을 주십니다. 14절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스스로 있는 자’를 히브리어에서 직역하면 ‘나는 나이다’ 번역되고 영어 번역에서도 ‘I AM WHO I AM’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것에 의존하여 존재하지 않습니다. 달과 같이 태양의 빛을 받아 밝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빛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선이 있기 때문에 악이 있고 음이 있기에 양이 있는 그런 것 같이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이 곧 현실이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에는 아무런 간격도 없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 인간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타인이 있어야 나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한 가정에서 남편으로 또는 아내나 자식으로 그리고 사회 속에서 친구로 직장 동료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한자에서 사람 인(人)의 형상이 다른 인간과 함께 등을 맞대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에 타인에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타인의 시선과 생각 그리고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세는 주어진 사명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시선과 생각 그리고 평가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세에게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인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냈기에 그들의 평가 기준으로 너를 바라보아 그들을 대하지 말고, 너에 대한 하나님의 시선과 생각 그리고 평가 속에서 그들을 대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확신과 믿음을 주는 것은 너의 지나온 삶이나 너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이제부터 너를 통해 역사하시는 스스로 있는 자인 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타인에게 사로잡혀 있는 모세를 자신의 이름인 ‘스스로 있는 자’를 통해 하나님께 사로잡힌 사람으로 힐링(healing)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혹 모세처럼 평가 있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다’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타인에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사로잡혀 있는 사람입니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야 기분 좋고,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생각하여 타인의 시선에 목말라하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됩니다. 또 다른 한편의 사람들은 타인의 평가와 시선에 과도한 집착을 보여 세상과 담을 쌓고 결국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죄를 짓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힐링(healing)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깊은 대화 속에서 이루어짐을 믿으시길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힐링(healing)되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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