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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에 대한 지식(2) (시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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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대한 지식(2) (시 23:2)     
 
<공황장애> 라는 정신질환이 있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나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예측할 수 없는 순간이나 또는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극심한 불안 상태가 나타나는 장애로써 갑자기 공포에 휩싸이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는 사이 몸도 약해지고 지식도 성격도, 지혜도 그대로 정지하고 마는 무서운 질환입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절박하게 되고, 결국은 인격파탄으로 갑니다. 폭행자가 되기도 하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기도 하며 성격도 아주 고약해지는 장애입니다. 

이것이 심각한 것은 보편적인 질병의 증상이 아니라 특별한 장애라는 것입니다. 장애와 질병은 다릅니다. 질병이라는 것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병입니다. 이 진행의 과정에서 더 악화되어 죽을 수도 있는가하면 상태가 양호하게 진행되어서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계속 진행 중에 있을 때를 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병이 어느 정도에서 멈추어버려서 그 부분을 고치기가 어려워진 것을 장애라고 합니다. 이렇듯 <공황장애> 라고 하면 상당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장애에 빠진 사람이 무려 인구의 5%가 될 정도로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 

공황 장애에 빠진 사람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첫째는 무슨 특별한 병이 있는 것도 아닌데 호흡이 가빠지고 숨쉬기가 힘들어집니다. 두 번째는 맥박이 제멋대로 뜁니다. 정상인의 맥박 수는 1분에 70회-80회 정도가 정상이라고 하는데 이 사람은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세 번째는 어지러워서 휘청거립니다. 당장 졸도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네 번째는 식은땀을 자주 흘립니다. 

다섯 번째는 숨이 가쁘면서 가슴 부위에 통증이 오고 불쾌감을 느낍니다. 여섯 번째는 딴 세상에 온 듯 하거나 자신이 달라진 것 같은 비현실감에 빠집니다. 일곱 번째는 속이 울렁거리고 먹었던 것을 토할 지경이 됩니다. 여덟 번째는 손발과 온몸이 떨립니다. 아홉 번째는 손발이 저리다가 여기저기가 마비되는 것을 느낍니다. 열 번째는 누군가가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아서 곧 질식할 듯 괴로워합니다. 

열한 번째는 얼굴이 화끈거리며 오한이 납니다. 열두 번째는 죽을 것 같은 공포감에 휩싸입니다. 열세 번째는 미쳐버리거나 자제력을 잃어버릴 것 같은 공포감에 빠집니다. 이상 열세가지 증상 중에 네 가지 이상의 증상만 있어도 스스로 의심해보라고 합니다. 공황장애는 의학적으로도 참 어렵다고 합니다. 우선은 원인도 모릅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학설도 없다고 합니다. 다만 증상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이게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자, 그런데 여러분, 때로는 의학적으로 어려운 이러저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신학적으로만 얻을 수 있는 답이 있단 말입니다. 공황장애를 신학적으로 이해해보면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날 때 생기는 불안감으로부터 오는 증상” 이 바로 공황장애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떠나 내 스스로 욕심대로 살려고 할 때 마냥 자유일 것 같지만 여기에서 공황장애가 오는 것입니다. 내 지식에 의존하려고 하고, 내 돈에 의지하려고합니다. 내가 사놓은 토지에, 내 명예, 내 권세, 내가 그 동안 나름대로 쌓아 온 기반을 믿고 삽니다. 그런 것을 하나님으로 여기고 삽니다. 그것들이 평생 편히 쉴만한 안식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들이 자기의 인생을 푸른 풀밭으로 인도해 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모든 것을 걸고 삽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들이 정말 영원히 믿을만합니까? 인생에 늘 불안한 것들입니다.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깨닫게 되는 사실이 문제의 해답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 즉,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다윗은 우리의 인생을 푸른 풀밭으로, 쉴만한 물가로 만족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분명히 밝힙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라는 다윗의 고백이 우리가 가져야 할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인간은 하나님을 떠날 때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요, 하나님이 없는 삶이 그 자체가 공허할 뿐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족한 것들을 채워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내 욕심을 따라 채워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내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말장난이 아닙니다.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다가 많이 시험 들고 하나님을 떠나는 이유가 이것을 오해해서입니다. 올바로 알아야합니다. 

오늘 다윗의 고백이 이것입니다. 내가 원해서 필요로 하기 이전에 나를 정말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미 베풀어 주셔서 나로 하여금 전혀 문제없이 누리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요, 그것이 우리가 누려야 할 만족이라는 얼마나 고차원적인 신앙의 고백인지모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에 대한 가장 올바른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구체적인 다윗의 고백을 보겠습니다. 그가 경험했고, 그가 깨달은 진리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먼저는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채찍으로 때리거나 광야로 데리고 가서 굶기기 위해서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가장 좋은 풀밭이 있는 곳, 가장 좋은 물이 흐르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풍성한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풍성한 삶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생각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지금 세상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살만합니다. 아무리 없다 해도 누릴 것은 적당히 누리며 삽니다. 그런데도 왜 만족하며 살지를 못합니까? 그 속에도 부족함이 있고, 더 가지려는 자들이 있으며, 빼앗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기에 무슨 만족이 있겠습니까? 

인생의 만족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지속하고 누리며 사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유혹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시련을 이기며 살아가게 만드는 모든 힘이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신앙고백은 올바른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위대한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여기에 진정한 만족함이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다윗이 고백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오늘 시편23편에 등장하는 양이라는 동물은 수영을 못합니다. 물에 빠지면 온 몸을 감싸고 있는 긴 털이 스펀지 역할을 해서 몸을 깊숙이 물속으로 잡아당기기 때문에 양은 흐르는 물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자에게 중요한 것은 풀을 다 뜯은 양들이 언제쯤 물을 마셔야할지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리 물 마실 곳을 찾아서 흐르는 물을 마실 수 없는 양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최선의 배려를 해야 합니다. 세차게 흐르는 개울가로 끌고 가서 억지로 마시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양들의 약점을 무시하고 목자 마음대로 우격다짐으로 몰고 가지 않습니다. 

자, 그런데 양들은 목이 마름에도 불구하고 왜 흐르는 물을 마시지 못하는 것입니까? 물을 마시다가 빠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것이 양의 기질입니다. 이러한 양에 대한 목자의 인도는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목자는 흐르는 물을 막기 위해서 돌멩이와 흙을 가져다가 작은 댐을 쌓습니다. 그리고는 세차게 흐르는 물줄기를 약하게 하여 양들로 불안한 마음을 없애고 평안한 맘으로 물을 마시게 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쉴만한 물가” 는 히브리 원문에는 “잔잔한 물가” 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물을 두려워하는 양의 약점을 아는 목자가 양을 물 가운데로 몰아가지 않고 물가로 인도하여 양들이 스스로 가까이 나아와 마시도록 만들어 줍니다. 이것이 바로 양을 인도하는 목자의 방법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향하신 인도하심이 바로 그와 같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있는 사람이 생의 만족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클] 이라는 사람이 현대인의 고장 난 심리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삶에 대한 하루살이 적 태도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하루만 생각합니다. 순간만 생각하여 미래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죽든 살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지 생각하지 않고 한 순간만 생각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병든 상태라고 말합니다. 또 한 가지는 운명적 태도입니다. 일단 운명에 맡겨버립니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 어쩌면 긍정적인 것도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또 한 가지는 자신의 자유와 책임에서 도피하려고 합니다. 기피 적이며 기회주의적입니다. 자기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의 덕에 삽니다. 남에게 책임을 돌리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병입니다. 네 번째는 자신을 우상화하는 것입니다.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자존심이라고 하는 것, 그것 고칠 수 없는 병입니다. 자존심 하나 때문에 망칩니다. 

오늘과 내일을 다 망치는 잘못 된 자존심을 볼 때에 자기 우상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병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문제를 만들고 해결하지 못하고 평생을 살다가 그렇게 가버리고 맙니다. 이게 고장 난 현대인의 심리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하나님에 대해 바로 아는,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필요합니다. 오늘 다윗의 고백을 기억하십시오.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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