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네 사막에 내 비를 주리라 (사 35:1-10)

첨부 1


네 사막에 내 비를 주리라 (사 35:1-10)


살아가다 보면 종종 사막과 같은 곳을 걸어가는 것같을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할이지 모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릅니다. 무엇을 하여야 할지 모릅니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것같은 망막함이 있습니다.
이럴 때 소천의 시가 떠오릅니다.
<해는 떠오르기 위해 있는 것이지> 라는 시의 한 부분입니다.

미련을 두지말고 
잡음에 귀 기우리지 말고
안된다고 물고 늘어지는 것들이 
도처에서 잡아채지만

저만치서 소망의 등대가 비추이고 있는데
왜그리 멀겋게 허둥대고만 있는가  

가다가 지치면 쉬어라
울다가 지치면 웃어라

그래,
해는 떠오르기 위해 있는 것이지

사막은 정말 살기 힘든 곳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사막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에 한 달 있는 동안에 5명이 집을 한 채 빌려서 같이 생활하였습니다. 그 때 차를 몰고 엔게디 근처를 달리는 데 종려 농장이 펼쳐졌습니다. 마침 종려 열매를 추수하고 있었습니다. 종려 추수하는 장면을 보고 싶어서 농장에 들어 갔습니다.
크레인을 놓고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종려 열매를 따고 있었습니다. 한 송이를 두 사람이 멜 정도로 컸습니다. 한 송이에 10만원 정도 된다는 것입니다. 

두 정탐꾼이 포도 한 송이를 메고 왔다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데 포도가 아니라 종려일 것이라고 이스라엘에서는 알려져 있습니다. 두 사람이 멜 정도의 포도 한 송이는 지구 역사상 없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없습니다.
주인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수많은 관광객이 우리 농장 옆을 지나가지요. 그러나 우리 농장에 들른 관광객은 당신들뿐이요.”
그리고 라면 한 상자정도되는 대추 야자 열매를 주었습니다. 한 달동안 5명이 싫컷 먹었습니다. 나와 주인과 이런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종려 나무가 몇 수 인가요?”
“1000수 정도이지요.”
“한 나무에서 일년에 얼마나 수확하나요?”
“한 나무에서 100만원 가량 벌고 있지요.”
“일년 수입이 10억원 정도되는 군요. 그런데 이 사막에 비가 오나요??
“일년 내내 비가 오지 않지요.”
“그러면 물은 어디서 끌어 오나요?”
“엔게디에서 파이프로 연결시켜 끌고 오지요. 일년내내 햇빛이 비치고 밑에 물을 충분히 공급하니까 물도 많고 일조량도 많아서 당도가 높아서 꿀같이 단 종려가 되지요. 사막에 물만 있으면 최고의 땅이지요.”

그렇습니다.
사막에 물만 있으면 최고로 달콤한 결실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까 하나님께 사막에 물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최고의 축복을 선포하고 있는 셈입니다. 최고에 최상을 더하는 셈입니다. 은쟁반에 금사과입니다. 당신은 사막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사막과 같은 생활이란 어떤 생활일가요?

1. 변화가 심한 생활

사막의 특징은 변화가 심합니다. 낮에는 강철을 녹일 듯이 뜨겁습니다. 그러나 밤이면 영하의 기온으로 내려가서 얼음이 어는 곳이 사막입니다. 나는 이스라엘 광야에서 자 본 적이 있습니다.
낮에 사막 체험을 시험하였습니다. 자동차에 에어컨을 틀고 앉아 있었습니다. 밖에 철판을 내놓았습니다. 조금 후 나가 철판에 달걀을 깨뜨려 흘렸습니다. 후라이가 되었습니다. 결딜 수 없이 뜨거운 햇빛이었습니다. 밤에는 조그만 물기가 있어도 얼어 붙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막은 변화가 많습니다.

바람도 많습니다. 한번 바람이 불면 막히는 것이 없으니까 요란하게 폭풍처럼 불어 닥칩니다. 그래서 모래산이 이 곳 저 곳으로 옮겨 다니기에 금방 길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지형이 수시로 바뀝니다. 어제의 평지가 오늘은 모래산이 됩니다. 어제의 길이 오늘은 장벽이 됩니다. 변화가 많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사막과 같은 삶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할이지 모르는 때가 사막 생활을 할 때입니다. 방향이 속도보다 중요한 데 방향을 잃어 버린 때가 사막에 서있을 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닐 때에는 분명한 방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 다니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방향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방향인 사람이 바로 두목입니다. 졸개들은 자기 방향이 없습니다. 두목이 가는 곳이 자기들의 방향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제자들 모두가 도망갔습니다. 이 때부터 사막같은 생활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 찌 무엇을 하여야 할지 모르는 사막 생활이었습니다. 각각 다 자기 갈 곳으로 흩어졌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모두가 다시 모였습니다. 그리고 오직 복음 전하는 방향이 잡혔습니다. 죽기까지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갑자기 변화가 심한 사막 생활 한 복판에 있을 때가 있습니다. 사막은 변화가 많은 곳입니다. 혹시 지금 그렇지는 않은가요?

육체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배부를 때에는 음식이 많아서 배가 터질 듯이 먹는 것같지만 음식이 없을 때에는 며칠이고 굶어야 합니다. 1억을 벌 때가 있는 가 하면 돈을 얻으러 이 집 저 집 다닐 때가 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사막 생활이 있습니다.
기분이 좋았다가 기분이 우울하여 지는 때가 빈번합니다. 해가 났다 비가 왔다 그런 생활을 합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하늘을 나를 것같은 데 기분이 안 좋을 때에는 벼락을 치는 듯이 우울합니다. 말 한 마디에 용기가 솟을 때가 있고, 말 한 마디에 기분이 가라앉아 잠을 자지 못 하고, 밥을 먹지 못 할 때가 있습니다.
사막같은 정신상태입니다.

어느 남자가 벤츠를 샀습니다. 2억원짜리 자동차입니다. 보험에 아직 들기도 전에 아내가 타고 나갔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죽었습니다. 그 남자는 헤헤 대고 웃다가 엉엉 울다가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남자가 말했습니다.
“원수같은 아내가 죽어서 웃는 것이고 자동차 생각나면 아까워서 울고 있습니다.”
사막같은 생활입니다. 종잡을 수 없습니다.

영적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승리감에 도취되었을 때에는 엘리야처럼 혼자서 이방 바알 선지자 400명을 혼자서도 죽일 능력이 나옵니다. 그러나 한번 좌절하고 나니까 광야로 도망가서 나무 밑에 누워 한탄합니다. 사막으로 도망가서 사막같은 말을 합니다.
“하나님! 죽기에 넉넉 하오니 내 생명 거두워 주옵소서.”
사막과 같은 삶입니다.

사람들을 만나 보면 이렇게 안정되지 못 하고 불안한 사막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혹시 사막과 같은 변화 무쌍한 삶이 당신의 삶은 아닌가요? 사막은 변화가 심합니다.

2. 열매가 없는 생활

사막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나무도 풀도 자라지 못 하는 곳에 무슨 열매가 있을 가요? 나무도 없고 물도 없는 곳에 열매가 있을 수 없습니다. 도무지 되는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사막의 생활입니다.
이리 뛰고 저리 일하는 것같은 데 열매가 없습니다. 소득이 없습니다. 결실이 없습니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학 1;6)

되는 일이 없습니다. 베드로와 같이 밤새도록 수고하였는 데 잡은 것이 없습니다. 사막에는 씨를 뿌려도 결실이 되지 않습니다. 땀은 있는 데 열매는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사막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는 가요?

탈무드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랍비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랍비님! 나는 하는 일마다 되는 것이 없습니다. 우산 장사를 시작하였더니 가뭄이 시작되었습니다. 수영복 장사를 시작하였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선풍기 장사를 시작하였더니 냉해가 왔습니다. 옷 장사를 시작하였더니 날씨가 갑자기 따뜻하여졌습니다. 장의사를 개업하였더니 사람이 죽지 않습니다. 하는 일마다 안 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 가요? 먹고 살 수가 없어요.”
랍비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음식점을 하세요. 최소한 굶지는 않을 거예요.”

이것이 사막생활입니다. 사막생활은 도무지 되는 일이 없습니다. 사막에서 경작되는 농산물이 없습니다. 사막에서 목축하여 기르는 가축이 없습니다. 사막은 생산이 없습니다. 되는 일이 없는 삭막한 사막 생활을 지금하고 있지는 않는가요?

3. 안정이 없는 생활 

사막은 지나만 가는 곳입니다. 아무리 오아시스가 있어도 지나만 가지 사막에 머믈러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지나는 갈망정 머므름이 없는 곳이 사막입니다.
낙타를 타고 지나갑니다. 때로는 자동차를 타고 빨리 스쳐갑니다. 집을 짓고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여기가 내가 살 곳이다.” 
이렇게 말하며 정착할 곳이 없습니다.
"이것이 내가 할 일이다.”
안정된 일이 없습니다. 직업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닥치는 대로 합니다. 사막 생활입니다.
"이 사람이 내 사람이다.”
안정된 사람이 없습니다.
방황만이 있습니다. 도무지 안정이 없습니다. 공중에 붕 떠있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4. 위험한 생활

사막은 위험한 곳입니다. 악조건에 맞는 위험한 동물들이 많습니다. 독충, 독사 전갈 그리고 불뱀이 많은 곳입니다. 보호색으로 흙색갈을 가지고 있어서 구별하기도 힘든 독충들이 득실대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광야같은 세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온갖 위험속에 둘러싸여 살고 있습니다. 사실은 하루하루 사는 것이 기적입니다.

아침에 안녕하고 나갔던 남편이 교통사고로 시신이 되어 돌아 오는 때도 있습니다. 넘치는 오염과 공해, 음식물속에 들어 있는 농약으로 따지고 보면 먹을 음식물이 없습니다.
물의 오염으로 수많은 세균을 꿀꺽꿀꺽 마시고 있습니다.
어느 남자는 아침에 면도하다가 콧털하나 뽑았는 데 파상풍 균이 들어가서 점심 때 죽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송을 부릅니다.
“험한 세상 나그네 길 나의 맘이 곤하나...”
이같이 사막같은 생활은 네가지 특징이 있는 생활입니다.

1. 변화가 심한 생활
2. 열매가 없는 생활
3. 안정이 없는 생활
4. 위험한 생활

이런 생활은 사막생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뻐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런 사막에 하나님께서 물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이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런 약속을 하였습니다.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시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7-8)

이사야 선지자는 사막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3가지 축복의 약속을 주고 있습니다.

1. 옥토 약속

이사야는 먼저 옥토의 약속을 주고 있습니다.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시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7)

뜨거운 사막이란 히브리어로 솨라브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빛나는 사막이라는 뜻으로 신기루를 말합니다. 가짜 연못입니다. 사막을 가는 나그네가 사막에서 죽었습니다. 시신을 해부하여 보니 온통 모래로 창자가 가득차 있었습니다. 사막의 신기루를 물인 줄 알고 목타는 때에 마구 집어 넣었던 것입니다.

가짜 연못이 변하여 참 연못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뜨거운 사막에 못을 주십니다. 연못이 생기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막에 하나님의 물을 쏟아 부어 주시면 연못이 생깁니다. 임시로 물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원천을 주십니다. 원천은 샘물입니다. 영원히 영원히 흐르는 물입니다. 다윗 시대에 엔게디에 물이 있었습니다. 가서 보니 사방이 사막인 데 그 곳만 원천이 있어서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다윗이 그 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 물이 지금도 흐르고 있습니다. 수천년 동안 물이 끊어지지 않고 흐르고 있습니다. 사막이라도 일단 물이 계속 흐르면 세 가지 풀이 자라게 됩니다.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이것들은 소나 양이나 염소의 양식입니다. 푸른 초장은 목축하기 좋은 땅이 됩니다. 이런 짐승들이 살면 똥도 싸고 풀이 썩어서 거름도 되어 옥토가 됩니다. 
“사막이라도 물만 있으면 옥토가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함께 하시면 사막같은 생활이라도 하나님은 금방이라도 축복의 땅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같이 갈데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에 와서 같이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흉년으로 같이 애급으로 떠났습니다. 돌아 올 때는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둘 다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게 되었습니다. 가난할 때는 같이 사는 것이 가능하였는 데 재산이 많아 지니까 같이 살기가 힘들어 졌습니다.

성경은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창 13;6)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실패보다는 성공이 더 위험하고 가난보자는 부자가 더 방탕하기가 쉽습니다. 아브라함은 같이 있으며 다투는 것보다 헤어지고 편안함이 낫다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롯에게 말했습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롯이 눈을 들어 보니 물이 넉넉하고 좋은 요단들판이 보였습니다. 롯은 요단들을 선택하고 그 곳으로 떠났습니다. 그 후를 보면 재미있는 결론을 볼 수가 있습니다.
롯이 하브라함을 떠난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동서남북에 바라보이는 땅을 모두를 그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손도 티끌같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롯은 포로유배, 재산 상실, 아내의 죽음, 딸들과 불륜의 관계등 가정은 쑥밭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이사한 땅 소알 땅은 선택할 때에는 나쁜 땅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축복의 땅이 되었습니다. 사막에 하나님이 물을 주시면 옥토가 됩니다.

2. 대로 약속

이사야는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8)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까 사막이 옥토가 되고 사람들이 많이 살다 보니 그 곳에 대로가 뚫렸습니다. 대로라는 말은 듣기만 하여도 시원합니다. 오솔길이 아닙니다. 논뚝길도 아닙니다. 큰 길입니다. 대로입니다. 사막은 길을 잃어버리기 쉬운 곳입니다. 길이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대로를 만난다는 것은 바로 생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거기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9)

대로에는 사자가 없습니다. 위험이 없습니다. 이유는 꼭 하나 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사막에 하나님이 물을 주시니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막과 같은 내 생활에 하나님이 은총의 물을 주시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 잘난 척하고 교만하면 안 됩니다.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선왕이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북방에 있는 나라들이 나를 두려워 하겠지?”
모두가 그렇다고 대답할 때 강을이라는 신하가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적들은 왕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군사들을 무서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른 말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호랑이가 여우를 잡아 먹으려고 하자 여우가 호랑이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왕으로 세우셨는 데 나를 잡아 먹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요. 만일 의심스러우면 나를 따라 와 보시오.”
그래서 호랑이가 여우를 따라갔습니다. 짐승들이 모두 도망치는 것이었습니다. 호랑이는 정말 여우가 왕인 줄 알고 도망쳤습니다. 사실은 자기를 보고 도망치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착각하고 있습니다. 왕 때문에 적들이 무서워 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들 때문에 적들이 무서워하고 있다고 바른 말을 하였습니다. 선왕은 맞다고 긍정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모시고 가면 원수 마귀는 다 떠나 도망치게 됩니다.
부산 모 교회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 장로님을 만났습니다. 일본으로 새우를 수출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사장이 부도로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장로님이 말했습니다.
“사장님! 사장님이 감옥에 가서 앉아 계시면 우리 회사는 쓰러집니다. 내가 다 뒤집어 쓰고 감옥에 가 앉아 있을 터이니 사장이 수습하시고 내가 다시 나오면 섬기겠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갔습니다. 6개월 감옥에서 살다가 나왔습니다. 그 동안 사장님이 모든 것을 잘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맙다고 하면서 조그만 새우회사 분점을 하나 내주었습니다.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지금은 그 회사 보다 장로님 회사가 더 큰 회사가 되었습니다. 큰 일을 하고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사막과 같은 생활이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시면 대로가 열립니다. 그런 은총이 임하기를 원합니다.

3. 기쁨의 즐거움의 약속

사막과 같은 생활이라도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기쁨과 즐거움의 생활이 되게 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10)
사막은 기쁨과 즐거움이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사막의 삭막함이 사라지고 기쁨과 즐거움이 이어지는 곳이 될 것이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각박한 사막같은 생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축복의 동산같이 변화되어지는 은총을 하나님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사막을 옥토로.
사막을 대로로
사막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은총이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