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마 3:13-17)

첨부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마 3:13-17)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사람의 제일 되는 본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만물을 통치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인류의 심판자이시고 절대주권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에 가장 대표적인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의 모델입니다. 본문 17절을 보십시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은 마치 왕의 즉위식과 같습니다.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것만 보아도 이 사건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의 어떤 모습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일까요? 예수님과 세례요한의 모습을 살펴보며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1. 요한에게 세례 받으려고 하심 (= 예수님의 겸손과 순종) 

13절=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이 때’는 인기 절정의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회개를 선포하며 세례를 베풀고 있을 때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요한의 말씀을 들으러 그에게로 나왔고, 감동을 받았고, 요한이 베푸는 세례를 달게 받고 있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약 30세의 청년이었고, 그는 이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려는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직접 행하는 세례를 받기 위해 갈릴리로부터 요단강까지 가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지극한 겸손을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죄 없으신 몸으로 죄인과 동일하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 것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 순종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예수님으로 인해 기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먼 길을 찾아온 예수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분이십니다. 갈릴리 나사렛에서부터 요단 건너편 베다니까지 직접 찾아가신 것을 보면 주님께서 얼마나 겸손한 분이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겸손을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입니까? 주님은 세례요한의 증거대로 그가 신들메 풀기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그것은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다음이라고 믿고 있는 모세조차도 예수님에 비하면 사환에 불과하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히 3:5).

그렇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자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직접 그 먼 길을 오실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오히려 사환 부르듯이 요한을 불러 세례받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예수님은 친히 갈릴리에서 베다니까지 그 먼 길을 걸어 세례요한에게 나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수님의 겸손을 기뻐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수세 사건에 담긴 의미는 깊고 풍부하여 한마디로 설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특히 주님의 행동에는 주님의 사역을 위한 필요 외에도 세례요한을 위한 배려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왔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은 직접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심으로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제기했던 요한에 대한 의심을 제거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를 위해 그 먼 길을 걸어오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주님을 기뻐하셨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 레오날드 번스타인의 지휘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되었습니다. 이윽고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되자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수많은 악기 중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악기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번스타인은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제2바이올린입니다.” 

제1바이올린을 훌륭하게 연주하는 사람과 똑같은 열의를 가지고 제2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을 구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플루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1연주자는 많지만 그와 함께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어 줄 제2연주자는 너무나 적습니다. 

만약 아무도 제2연주자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아름다운 음악이란 영원히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1등, 최고, 주인공만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쫓는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은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한국이 반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인재를 키우고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일에 인색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하루 빨리 이러한 미숙하고도 유치한 태도에서 벗어나 주님과 같은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어느 대학의 졸업식장에서 한 원로 과학자가 후배들을 향해 “여러분은 내 어깨를 밟고 세계로 웅비하라”는 연설을 함으로써 장내를 숙연하게 만든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나를 드러내기 위해 이웃을 짓밟는 자가 아니라 이웃을 세우기 위해 오히려 자신의 어깨를 내어주는 사람입니다. 이런 성도야 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입니다. 


2.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하겠습니다”고 함 (= 요한의 겸손) 

14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본절은 세례요한이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말리며 드린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매우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이 베풀었던 세례는 죄 없으신 예수님이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요한이 주님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토록 인기가 많았던 요한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봅시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요한을 존경하며 혹시 메시야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요한 앞에 머리를 숙이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자기 앞에 갑자기 예수님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요한이 말려 이르되··· ” 이 말 속에는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서 구체적인 자세를 취했고 그것을 요한이 적극적인 행동으로 가로막았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여기 동사가 미완료시제로 쓰인 것을 보아 세례를 받으려는 예수님의 태도와 그것을 가로막으려는 요한의 저지가 몇 차례 반복되었음을 암시합니다.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 요한의 겸손한 마음과 행동이 돋보이는 장면입니다. 비록 요한이 위대한 선지자이고 모든 백성들이 존경하는 하나님의 사자이었지만 그에게는 그리스도를 세례줄 자격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라 할지라도 그도 죄인일 뿐입니다. 날 때부터 성령충만한 사람이지만 여전히 성령의 부으심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고, 자기 앞에 불쑥 나타나신 그리스도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의 부족을 아뢰었던 것입니다.

장로교의 창시자인 존 칼빈은 생전에 남긴 업적도 대단했지만 세상을 떠날 때도 큰 영적 교훈을 남기고 갔습니다. 칼빈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장로교회를 창립하자 그의 영향을 받은 존 낙스는 스코틀랜드로 건너가서 장로교회를 세웠고 다른 많은 지도자들도 유럽 각지로 흩어져 개혁교회들을 세웠습니다.  

칼빈이 죽을 때 남겼던 유언은 지금도 유명한 일화로 전해지고 있습니다.바로 “내 무덤에 묘비를 세우지 말고 내 무덤의 흔적이 없도록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그의 유지를 따라 지금도 제네바에 가면 칼빈의 무덤에는 이름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단지 그를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 아쉬운 나머지 무덤 위에 ‘J. C’라고 이름 약자만 새겨놓았습니다. 

그래서 칼빈의 유언을 음미하는 사람들은 그의 무덤가에서 더 큰 은혜를 받는다고 합니다.장차 부활의 새 아침이 올 것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천들도 칼빈처럼 아름다운 영적 유산을 이 땅 위에 남기고 가야겠습니다.

선교사로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은 윌리엄 캐리는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선교사의 큰 사역을 감당한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한 사람이 캐리에게 망신과 모멸감을 주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인 공개적인 자리에서 윌리엄 캐리의 과거 낮은 신분과 경력을 들춰내며 비난하려고 말을 꺼냈습니다. “선교사님은 선교사가 되기 전에 구두를 만들었다지요?”  

그 말을 들은 캐리는 자신을 모욕 주려는 사람에게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구두를 만드는 기술자는 아니고 낡은 구두를 수선하고 깁는 정도였습니다.”  

선교사를 비난하려고 했던 사람은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히고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선교사의 과거를 알게 된 사람들은 그를 더 존경하게 됐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 세례요한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요한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겠다느니 그럴 수 없다느니 하며 옥신각신 하는 두 사람을 보시면서 흐뭇하게 미소지으셨을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요한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예수님 앞에 겸손히 자신을 낮추십시다. 우리 모두 성령의 부으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라면 누구나 요한의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런 자를 하나님은 기뻐 받으십니다. 


3. 모든 의를 이루려고 하심 (= 하나님의 의를 이루심) 

15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하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는 예수님을 향하여 하늘로부터 “내 기뻐하는 자”라고 공언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요소가 많이 있지만, 15절에 나타난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허락하라··· ” 예수님은 자신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이제는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직역하면 ‘왜냐하면 이렇게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우리에게 적합하기 때문’이 됩니다.

예수님은 무죄하시기 때문에 회개의 세례를 받을 법적 필연성은 없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세례 사역을 위임받았으므로 모든 죄인을 대표하는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하는 것이 합당했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이루기 위한 준비로서 하나님의 권위 아래 순종함으로 그에게 세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특히 본절의 ‘모든 의’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을 죄인들과 같이 낮추시는 것이며, 죄인들과의 연대성을 보이시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죄인들과 동일시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으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 자신은 죄가 없는 분으로서 세례 받을 필요가 없었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 철저히 죄인의 입장에 서신 그분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죄인 중의 하나로 세례의 자리에까지 내려가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낮추시고 헌신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의 모델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예수님의 간절한 소망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to fulfill all righteousness)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모든 계명과 규율을 지키셨습니다. 세례는 이것들 중 하나입니다.  

주님은 참 하나님이시면서 성육신하여 참 사람이 되셨습니다. 주님은 죄없는 자로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참된 순종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주님은 세례요한 보다 월등히 크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겸손히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처음에 요한이 거절하고 주저한 것은 주님이 너무나 높고 위대하고 죄 없으신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장하실 때 요한은 순종했습니다.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우리의 대답도 그러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언제나 “예,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과 요한, 두 분 모두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두 분은 모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분들입니다. 두 분의 삶은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세례 받은 후 본격적으로 타인을 위한 사역에 몰입하셨습니다. 주님의 세례 자체도 타인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기쁘게 하신 예수님을 위하여 하늘을 열어주셨고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16절).

일찍이 선지자 에스겔에게 열어 주셨던 하늘, 순교자 스데반에게 보여 주셨던 그 하늘이 예수님 눈 앞에 열렸습니다. 밧모섬의 사도 요한에게 하늘을 활짝 열어 보여 주셨던 하나님은 성령을 비둘기 같이 임하게 하심으로 예수님을 확실히 인정해주셨고 그에게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습니다.  

인간 예수, 30년간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평범한 시골 청년이었던 예수님은 이제 본격적으로 공적인 삶에 뛰어드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귀신을 내어쫓으시며, 각종 이적을 행하시고, 천국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 또한 아버지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 아들 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 눈에 의롭고 완전한 자로 인정받게 됩니다. 

우리 속에 예수님의 영을 소유하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끊임없이 아버지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예수께서 성령 충만하여 공생애 매순간마다 인도받으셨듯이 우리도 남은 생애에 계속하여 인도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인류를 위해 사랑의 제물이 되시기까지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을 누리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 충성된 일꾼으로서 사역을 마칠 때까지, 그리고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의 대상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사는 세례를 경험해 보았습니까? 주님께서 세례를 통해 자신의 희생을 보이셨던 것처럼, 여러분도 그런 삶을 살고계십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이런 자를 찾아 확정지어 주십니다. 성령으로, 은혜로, 감동으로, 뜨거운 눈물로 주님의 기쁨의 대상이 됨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의 귀에 들리도록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