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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정한 회개 (마 21: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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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회개 (마 21:18-22)

열왕기하 22장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엄밀히 말하자면 남유다)의 마지막 개혁군주로 요시야 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북이스라엘이 기원전 722년에 당시 세계강국이자 세계의 패권을 지고 있던 제국,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 당하게 되자 남유다만이 홀로 남게 됩니다. 그리고 앗시리아는 남유다마저 집어 삼키려고 여러 차례 공격합니다. 이때 남유다의 왕이 바로 히스기야 왕입니다. 그리고 히스기야 다음으로 그의 아들 므낫세가 55년간 남유다를 통치하다가 노환으로 죽고, 그의 아들 아몬이 왕이 되지만 약 2년 정도 왕으로 있다가 반역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그리고 남유다 백성들이 왕을 살해한 세력들을 몰아낸 뒤, 다시 아몬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게 되는데, 그가 바로 요시아 왕입니다. 성경은 이 요시아 왕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디다요 보스갓 아다야의 딸이더라 
2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요시야가 왕이 된 후, 당시 중동지역의 맹주였던 앗시리아가 급격히 쇠퇴하면서 결국 기원전 608년경에 앗시리아도 멸망해 버립니다. 사실 요시아 왕이 개혁군주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알고 보면 이런 국제정세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바로 앗시리아의 쇠퇴 속에서 남유다의 봄을 맞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앗시리아의 멸망 이후 바로 등장하게 된 바벨론 제국에 의해 남유다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원전 586년 경에 멸망하게 됩니다. 

어째거나 남유다의 요시아 왕은 앗시리아가 멸망해 가고 있고, 바빌론의 세력과 간섭이 아직 유대 땅에 미치지 못한 때에 남유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개혁을 추진한 왕이 되었습니다. 당시 요시야 왕이 개혁한 것은 요시야 왕의 할아버지 므낫세 왕이 저질렀던 온갖 이방종교의식과 우상숭배를 철폐하는 것이었습니다. 열왕기하 23장에 그 개혁의 내용이 아주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일부만 읽어보겠습니다. 

4 왕이 대제사장 힐기야와 모든 부제사장들과 문을 지킨 자들에게 명령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그것들의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하고 
5 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 주위의 산당들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달과 별 떼와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 
6 또 여호와의 성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 거기에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 
7 또 여호와의 성전 가운데 남창의 집을 헐었으니 그 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였더라 

요시야 왕은 참으로 엄청난 개혁을 이룩했습니다. 그는 모든 이방예배를 없앴고, 모든 우상을 다 태워버렸으며, 나쁜 풍습을 다 없애버렸습니다. 우상 신들을 섬기는 산당들을 다 허물어버렸고, 그런 산당에 있는 제사장들을 모두 제단 위에서 죽여 버렸습니다. 

그래서 요시아 왕 때 개혁이 다 완성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시는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숭배에 빠져들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섬길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한 예언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요시야 왕이 행하는 모든 개혁을 다 지켜보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개혁이 사신 우상을 무너뜨리고, 이방예배와 이방풍습을 없애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말해 겉으로 들어나 있는 모양만을 바꾼다고 해서 참다운 개혁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로 예레미야였습니다. 

요시야 왕의 개혁으로 인해 우상들을 섬기는 산당들은 없어지고, 우상들의 제단은 분명히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수많은 제물을 바치고, 온갖 향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겉모습으로는 매우 정상적이고 평온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켜보는 예레미야는 뭔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뭔가 아직도 잘못된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예레미야 7장 21-26절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제물과 번제물의 고기를 아울러 먹으라
22 사실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령하지 아니하고 
23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24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신들의 악한 마음의 꾀와 완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 얼굴을 향하지 아니하였으며 
25 너희 조상들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었으나
26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조상들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제사와 제물은 넘쳐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참된 회개와 올바른 삶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끊임없이 제사를 드리고, 수많은 제물을 바치기는 하는데 그것이 그들의 삶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사를 많이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지는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예레미야 9장에 나옵니다. 일부분만 읽어 드리겠습니다. 

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활을 당김 같이 그들의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하며 그들이 이 땅에서 강성하나 진실하지 아니하고 악에서 악으로 진행하며 또 나를 알지 못하느니라
4 너희는 각기 이웃을 조심하며 어떤 형제든지 믿지 말라 형제마다 완전히 속이며 이웃마다 다니며 비방함이라 
5 그들은 각기 이웃을 속이며 진실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혀로 거짓말하기를 가르치며 악을 행하기에 지치거늘 
6 네가 사는 곳이 속이는 일 가운데 있도다 그들은 속이는 일로 말미암아 나를 알기를 싫어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유다 백성들이 예배는 많이 드리지만 그들의 삶은 거짓으로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레미야는 개혁이라는 것이 산당을 때려 부수고, 성전에 모여 제물을 많이 바치면 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형식적인 율법준수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순종하고, 진실된 삶으로 신앙을 나타내야 하는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요시야 왕의 개혁은 그가 전장에서 40세의 나이로 죽음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요시야 왕이 죽고 나서 네 사람의 왕이 더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의 죽음 이후 남왕국 유다는 바벨론 포로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요시야 왕 죽음 이후 23년이라는 기간 4명의 왕이 남유다를 다스리지만 남유다의 백성들은 피폐해질 때로 피폐해졌습니다. 왕으로 오르는 자마다, 백성들에게 무거운 노역을 지우고, 불의한 이익을 지우게 하고,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고, 백성을 억압하고 착취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힘도 없으면서 지배국인 바벨론으로부터 독립하겠다고 설쳐 대다가 결국 바벨론 왕에 의해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땅은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들 속에서 예레미야는 한 가지 환상을 보게 됩니다. 성전 앞에 광주리 두 개가 있었습니다. 한 개의 광주리에는 아주 잘 익은, 맛있어 보이는 무화과 열매가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광주리에는 너무 나빠서 먹을 수 없는 아주 나쁜 무화과가 담겨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두 개의 광주리를 보고 있는데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물으셨습니다. 예레미야 24장의 말씀입니다.

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고관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를 내게 보이셨는데 
2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있더라 
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나쁜 것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 없게 나쁘니이다 하니
4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6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면 이미 바벨론으로 잡혀간 포로들은 좋은 무화과이기에 하나님께서 데려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말을 끝내 듣지 않은 시드기야 왕을 향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고로 예레미야 선지자는 요시야 왕 때부터 남유다가 멸망할 때까지 4명의 남유다 왕을 만나 예언을 하게 됩니다. 8절부터의 말씀입니다.

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 고관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나빠서 먹을 수 없는 이 나쁜 무화과 같이 버리되 
9 세상 모든 나라 가운데 흩어서 그들에게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며 또 그들에게 내가 쫓아 보낼 모든 곳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며 말 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 
10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 가운데 보내 그들이 내가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의 대신들, 예루살렘에 남은 사람들과 유다 땅에 남은 사람들 그리고 이집트 땅으로 도망간 사람들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가 없는, 나쁜 무화과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계 만국으로 쫓겨나, 모든 사람들로부터 수치와 조롱을 당하고, 비웃음과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무화과나무 이야기는 바로 예레미야서 24장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예식을 뒤집어엎는 일을 행하시고 베다니로 가셔서 하루 밤을 지내고 새벽에 성 안으로 다시 들어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시장하셨는데 마침 보니 무화과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거기에 열매가 달려 있을까 하여 가까이 가셨으나 잎사귀 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8-19절입니다.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도대체 예수님께서는 왜 그렇게 무화과나무를 말라버리게 하셨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무자비하신 분인가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 하나를 말라버리게 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오늘 본문의 말씀은 21-22절의 말씀을 오해하여 기도의 응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진정으로 회개치 않는 자들을 향하여 심판하시겠다는 엄중한 경고의 말씀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오늘 본문은 진정한 개혁인 회개의 열매를 맺지 않고 겉모양만 개혁을 부르짖고 개혁된 것처럼 행동하다가 결국 바벨론에 의해 심판을 받은 남유다처럼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한 구세주로 고백하지 않고, 겉으로만 회개한 척하고 예배 잘 드리는 척 하는 신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분명한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성전정화의식을 행하신 예수님께서 이제 자신이 바로 심판주로 임하실 것임을 말씀하시기 시작하십니다. 오늘 말씀 이후에 나오는 모든 비유와 내용을 보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까지 회개치 않는 자들에 대한 심판을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21절과 22절의 말씀이 기도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심판에 대한 내용임을 알아야 합니다. 

21절에 나오는 '이 산더러'의 표현에서 '이 산'이란 당시 로마제국의 수도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계신 예루살렘 성전과 바다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이나 멀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뜬금없이 산을 바다에 던진다는 표현을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져라'라고 말씀하신 것이겠습니까? 바로 로마제국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정학적으로 로마의 수도는 바다가 바로 내려다 보이는 산 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에게는 높은 산이라고 하면, 로마제국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져라'라는 말은 로마제국의 심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무화과 나무에게 일어난 저주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자랑하는 이스라엘이 참된 회개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반드시 심판 받을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또한 도저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철옹성과 같은 로마제국도 반드시 심판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예수님의 말씀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메시야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2000여 년 이상 나라 없이 살아야 했습니다. 또한 로마는 훗날 동서로마제국으로 분열된 후, 로마제국을 둘러싸고 있던 이민족에 의해 둘러싸여 지중해로 압박 당하듯 떠밀려 바다에 빠지듯이 멸망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분명 이 시대에는 커다란 교회 건물들도 많고, TV에서는 수많은 설교가 쏟아져 나오기에 부족한 것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과연 참된 믿음을 가지고 믿음에 합당한 행실이 있는 성도와 교회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어쩜 오늘 날 한국교회가 잎사귀는 무성한데 막상 가까이 가보면 열매는 없는 나쁜 무화과 같은 것은 아닙니까? 또한 우리 자신은 어떻습니까? 진정한 회개가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합니다. 좋은 무화과인지 아니면 나쁜 무화과 나무인지 말입니까? 그리고 돌아서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의 모습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누가 봐도 좋은 무화과 나무여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모습이 좋은 무화과가 아니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영원한 심판입니다. 이 시간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진실로 하나님께로부터 좋은 무화과라고 칭찬받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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