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둘째 유혹으로부터 승리 (눅 4:5)

첨부 1


둘째 유혹으로부터 승리 (눅 4:5)

상하이 데일리 신문에 의할 것 같으면, 요즘 중국에서는 부자들의 이혼율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참으로 황당한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최근에 중국정부는 집값 투기를 막기 위해 양도세 부과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새로운 주택 정책에 의할 것 같으면, 앞으로 주택을 팔 때 신규분양이 아닌 주택이나 1가구 2주택에 대해 거래 차익의 20%를 개인 소득세로 과세하게 됩니다.

그래서 상하이 등 중국 주요 도시 혼인 등기처에 세금 부과에 대비해 미리 이혼을 해두려는 부부들이 사뭇 많아진 것입니다. 상하이 자베이구에서는 지난 주 하루 평균 53쌍의 부부가 이혼 서류를 제출했다고 합니다. 양도세 부과를 피하러 허위 이혼 서류를 제출한 것입니다. 이혼 수속을 밟은 후 각자의 명의로 집을 한 채씩 나눠 가지고 있다가 얼마 후 그것을 팔면 20%의 세금 납부를 피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재결합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혼수속을 담당하는 한 공무원은 허위 이혼을 하려는 사람들을 향해 이런 우스운 조언을 깃들이고 있습니다. “남편들이 이 기회에 진짜로 이혼을 하고 애인과 결혼할 수도 있으니 주의하라.”

재산을 위해 이혼을 악용하는 중국인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갖게 됩니다. “도대체 재산이 무엇이길래 가정이라는 소중한 가치마저 저토록 악용한다는 말인가? 그토록 소중한 결혼 서약의 개념을 헌신짝처럼 버린다는 말인가?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 중 하나가 가정이 아닌가? 그리고 진정 지켜내려고 힘써야 한다면, 신성한 결혼 서약이 아닌가?”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첫째 유혹이 실패로 돌아가자 유혹자 마귀는 예수님을 데리고 높은 산 위로 올라갔습니다. 아마도 그 장소는 레바논이나 피스가 (Pisga) 혹은 예루살렘에서부터 가까운 어느 산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산 위에 올라서자 마귀는 예수님 앞에서 세상의 모든 왕국을 펼쳐 보였습니다. 그런 광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귀가 어떤 비법을 사용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사실 마귀가 예수님을 데리고 올라간 곳은 세상 모든 왕국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높은 산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40일 동안 금식기도 하셨던 그 광야 주변엔 그토록 높은 산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볼 것 같으면, 마귀는 자신의 능력을 행사하여 예수께서 환상 가운데 세상 모든 왕국을 볼 수 있도록 했던 모양입니다.

사실 마귀는 크고 놀라운 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말세에 나타나는 적그리스도는 희한한 기적 행사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며 세상을 미혹한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런데 간혹 믿는 자들 중에서도 마귀와 적그리스도의 사자들이 행하는 희한한 일에 현혹되어 올바른 믿음에서 떠나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곤 합니다. 그들이 성령의 능력과 마귀의 능력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희한한 능력이 나타나면 그 모든 것이 성령의 능력으로 비롯된 것이라는 그릇된 생각을 갖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향은 은사 체험을 강조하는 자들에게 자주 나타나는데, 이들이야말로 마귀가 삼키려고 노리고 있는 가장 손쉬운 먹잇감입니다.

마귀는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여 예수님 앞에 천하 만국을 펼쳐 보이며 이렇게 자랑스럽게 말했다고 하지요.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마귀가 예수님께 넘겨주겠다고 했던 것은 세상의 모든 왕국과 그 안에 속한 모든 정부와 행정구역까지 포함합니다. 또한 마귀가 예수님께 넘겨주겠다고 했던 것은 천하 만국의 모든 영광이었습니다. 곧, 부귀와 영화와 온갖 휘황찬란한 모든 것이 속했습니다. 이렇게 볼 것 같으면, 마귀는 굉장한 제안을 예수께 제시했고, 그 어느 것 하나도 쉽게 거절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6절에 기록된 마귀의 말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물론 마귀는 세상의 권세를 잡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반역을 시도했다가 실패하여 이 세상으로 쫓겨나 이 세상 권세를 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것이 마귀의 것은 아닙니다. 마귀에게 그 모든 것을 주고 말고 할 수 있는 권한은 없습니다. 사실 하늘과 이 세상 권세 모두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쥐고 있는 권세 역시도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노라면, 마귀가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 하시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귀는 세상의 모든 권세가 마지 자신의 것인 양 예수님 앞에서 거짓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속한 것도 아닌데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둘러대는 것을 보노라면, 마귀는 그의 이름대로 유혹하는 자, 거짓말로 속이는 자임이 분명합니다.

마귀는 하나님께 속한 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거짓말 하면서 예수께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마귀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예수님께 넘겨주는 조건으로 한 가지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잠시 마귀가 예수님께 요구한 조건을 잠시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YLT, KJV, NIV 번역을 차례로 적어보면 이렇습니다:

(YLT) 네가 나에게 무릎을 꿇기만 하면 ? - 이 모든 것이 네 것이 되리라 
(KJV) 그러므로 네가 나에게 경배하면 모든 것이 너의 것이 되리라
(NIV) 그러므로 만약 네가 나를 예배하면, 이 모든 것이 네 것이 되리라

이 구절의 핵심은 “절하다” 또는 “경배하다”라는 동사에 있습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로 “προσκυνε’ω” (pros-koo-neh’-o)이고, 그것의 정의는 아래와 같습니다.

(누군가를 향한) 존경의 의미에서 (그의) 손에 입을 맞추다 (to kiss the hand to (towards) one, in token of reverence)

(동양 사람들이 주로 사용했던 방법으로써 누군가에게) 깊은 존경심을 표시하기 위해 (그 존재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기 머리를 땅바닥에 박다 
(among the Orientals, esp. the Persians, to fall upon the knees and touch the ground with the 
forehead as an expression of profound reverence)

(성경에서 주로 언급된 것으로써)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무릎을 꿇다, 혹은 예배의 자세를 취하다
(in the NT by kneeling or prostration to do homage (to one) or make obeisance, whether in order
 to express respect or to make supplication) (used of homage shown to God, to Christ)

결론적으로 볼 것 같으면, “절하다”는 말은 곧 “경배하다,” “예배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곧, 마귀는 예수님께 세상의 모든 권세를 건네줄 테이니 자신을 주인 혹은 하나님으로 인정하라고 요구했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께서 마귀 앞에서 무릎을 꿇으신다면 그것은 곧 예수께서 마귀를 주인 혹은 하나님으로 인정하겠다는 의미였습니다.

“내게 절하면…” 성경을 보노라면, 선한 천사와 타락한 천사의 차이점은 너무나 확연하게 다릅니다. 선한 천사는 어느 누구에게도 경배의 대상이 되려고 시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타락한 천사는 남들로부터 경배의 대상이 되길 원합니다. 하지만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계 19:9-10)

사실 바로 이것이 천사장 루시퍼가 천상에서 타락하게 된 동기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보좌에 앉고 싶었습니다. 그는 다른 천사들로부터 경배의 대상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적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그의 반역은 실패하여 하나님의 영광에서 이 땅으로 쫓겨나기에 이르렀습니다.

“(네가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마귀는 세상 모든 권세의 열쇠를 지금 당장 예수께 넘겨주겠다고 제안합니다. 너무나도 큰 제안입니다. 어떤 광고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너무나 쉽지요?” 예수께서 마귀 앞에서 두 번도 아니고 단 한 번만 무릎 꿇으면 너무나 큰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거부하기 너무나 쉽고 달콤하기만 합니다.

“네가 내게 절하면...” 마귀는 예수께 이렇게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자 않았습니다. “네가 나에게 경배하면...” 하지만 그는 이렇게 돌려서 말했지요. “네가 나의 앞에서 단지 무릎을 꿇기만 하면...” 우리를 시험할 때, 마귀는 아주 간사하고 교활한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그는 언어의 달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간과해서는 아니 됩니다.

때로는 우리에게도 부귀와 영화를 잡을 수 있는 너무나 쉬운 방법이 다가오곤 합니다. 조건이 너무나 쉽습니다. 딱 한 번만 양심의 가책을 참아내면 됩니다. 그것이면 모든 게 끝이 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 기회가 다가올 때,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얻기 위해 신앙의 양심을 팔아야 할까요? 유혹자 마귀 앞에 무릎 꿇어야 할까요?

바로 이러한 달콤한 유혹이 다가올 때 예수께서 유혹자 마귀에게 던졌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예수께서 마귀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8절) 유혹의 시간에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달콤한 유혹을 단칼에 격파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매우 분명하고 단호한 입장을 취해야 할 때가 있는데, 예배에 관해서 더욱 그러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에서 다른 모든 것은 양보하더라도 예배만큼은 결코 양보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지음 받은 이유가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께 찬양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지음 받은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목적을 양보하며 살아간다면, 과연 우리에게 남은 것이 무엇일까요? 이 땅에서 삶을 살아가는 동안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힘들어도, 결코 양보해서는 아니 되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예배하겠노라 결단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메시지 성경(The Message Bible)은 8절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예수께서는 마귀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셨다. “네 주 너의 하나님, 유일하신 네 주 하나님만 예배하라. 확고부동한 자세로 오직 그분만 섬기라. 
(Jesus refused, again backing his refusal with Deuteronomy: “Worship the Lord your God and only
 the Lord your God. Serve him with absolute single-heartedness.)”

그렇습니다. 우리의 경배 대상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 무릎을 꿇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권위 아래 머물러 있습니다. 하나님 이외엔 그 어느 누구나 경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유혹을 이기는 비밀은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 말씀으로 살아가면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둘째 유혹을 이겨내는 비밀은 바로 “주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분만 섬기겠다는 결단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오늘 말씀을 매듭 짓고자 합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아.” 그때 아브라함은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은 다음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길을 떠나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외아들까지 기꺼이 번제로 드리겠다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려 힘썼던 아브라함을 기쁘게 보시고 그에게 다음과 같은 축복을 들려주셨습니다.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창 22:6-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연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왕국과, 모든 영광과, 모든 부와 또한 모든 영화를 위하여 마귀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손에 키스를 해야 할까요? 아니면 아브라함처럼, 우리 역시도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까지라도 기꺼이 번제로 드리며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힘쓰며 살아갈까요?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이상호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