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물러서지 마시오 (히 10:32-39)

첨부 1


물러서지 마시오 (히 10:32-39)

(히 10:32) 여러분은 빛을 받은 뒤에 고난의 싸움을 많이 견디어 낸 그 처음 시절을 되새기십시오.
(히 10:33) 여러분은 때로는 모욕과 환난을 당하여, 구경거리가 되기도 하고, 그런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동반자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히 10:34) 여러분은 실상 감옥에 갇힌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고, 또한 자기 소유를 빼앗기는 일이 있어도, 그보다 더 좋고 더 영구한 재산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런 일을 기쁘게 당하였습니다.
(히 10:35) 그러므로 여러분의 확신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 확신에는 큰 상이 달려 있습니다.
(히 10:36)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나서, 그 약속해 주신 것을 받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히 10:37) e"이제 아주 조금만 있으면, 오실 분이 오실 것이요, 지체하지 않으실 것이다. (e. 합2:3, 4(70인역))
(히 10: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그가 뒤로 물러서면 나의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
(히 10:39) 우리는 뒤로 물러나서 멸망할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을 가져서 생명을 얻을 사람들입니다.

아름다운 믿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 중에 갑자기 영적 침체를 겪는 분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믿어 구원의 감격에 충만하여 예배시간마다 빠지지 않고 나와 눈물을 흘리며 은혜를 많이 받던 새신자가 갑자기 교회에 나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하여 진리의 확신에 차 있던 성도가 어느날부터 방황하고 있습니다.  교회생활에 적극적이고 열심이 있던 분이 어느날 의욕을 상실하고 주저앉아 있습니다. 전도에 힘쓰고 사명감에 불타 맡겨진 일을 능력있게 감당하던 분이 어느날 갑자기 무력감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습니다.  바로 영적 침체 빠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낙심자가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자리에도 낙심에 사로잡혀 방황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갑자기 왜 이런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되는 것일까요?  열정을 잃어버리고 영적 생활에 방황을 하며 무기력하게 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신의 사명을 명확하게 알지 못하면 쉽게 침체에 빠질 수 있습니다. 사명감이 없이 되는대로 살기 때문에 쉽게 갈등에 사로잡히고 은사와 능력이 소멸된채 무기력에 빠집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사명에 대한 확신이 분명해야 합니다.
  
또 세상의 쾌락의 종이 될 때 신앙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믿음을 소유하고 구원의 감격에 어쩔줄 몰라하다가도 어느날 갑자기 주변의 사람들이 부유하게 사는 것,  편하게 세상의 일락을 즐기며 사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세상의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기면 자신의 처지가 불쌍해 보이기 시작하고 우울함에 사로잡히며 신세타령이나 하고 영적 침체를 만나게 됩니다. 
  
또한 악한 영에게 굴복하면 영적 침체를 겪습니다. 죄에 빠지고 하나님을 멀리하기 시작하면 사단이 슬그머니 마음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의식구조를 형성합니다. 그래서 불평과 원망, 시기와 비난 같은 일을 일삼게 만듭니다. 구원의 기쁨과 은혜에 대한 감동은 이미 사라진지 오랩니다. 매사에 짜증이 나고 쉽게 피곤합니다. 신앙생활을 감격과 감동, 감사로 인해 자원하는 마음과 기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감과 체면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으로 바뀝니다.

어느날 사단이 바겐세일을 시작하였답니다. 걱정 두려움, 욕심, 슬픔, 교만 등을 진열하여 마구 세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쪽에 '이것은 세일하지 않음'하고 써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되어 왜 그것은 세일하지 않소? 하였더니 "이것은 세일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쉽게 팔려나가기 때문이오. 이것은 내가 자주 사용하여 효과를 가장 많이 본 것이랍니다." "그게 도대체 무엇이오?" "낙심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단이 낙심을 가지고 들어오면 그 때부터 아름다운 꿈도 사라집니다. 비전도 사라집니다. 의욕이 사라집니다. 열정이 사라집니다. 기쁨도 능력도 감사도 다 사라집니다. 뒤로 물러서다가 다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1. 뒤로 물러서면 멸망합니다.(39)
  
오늘 읽은 성경에 보면 뒤로 물러서면 이라는 단어가 반복하여 나옵니다. 특히 39절에는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라고 강하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기 좋은 말로 삼 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말합니다. 신앙생활에는 맞지 않는 말입니다.  후퇴는 곧 패배를 의미합니다. 일보후퇴하다가 이보, 삼보, 십보 계속 후퇴하게 됩니다. 그 사이에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배수의 진을 치고 싸워야 합니다. 후퇴는 용납할 수 없다는 정신으로 전진만을 해야합니다. 오늘 말씀 39절은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뒤로 물러가면 침체에 빠지고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러나다보면 은혜를 다 쏟고 좋은 선물을 다 빼앗기고 그 마지막은 오직 멸망뿐입니다. 
  
사람을 통해 시험이 오고 실망과 큰 상처를 받아도 뒤로 물러나서는 절대 안됩니다. 세상을 통해 유혹이 오고 그것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뒤로 물러나서는 절대 안됩니다. 마귀가 직접 우리를 공격하여 두렵게 하고 근심을 안겨주어도, 우리 자신의 허물과 약점을 열거하며 물고 늘어지며 공격하여도 한 발자국이라도 뒤로 물러서서는 안됩니다. 무서운 핍박이 와도, 너무 힘들어 쉬고 싶어도, 비난의 말이 화살처럼 날라와도 절대 복음의 진리와 사명을 놓아 버리고 뒷걸음질하면 끝장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앞으로 전진하려고 온 힘을 다 쏟아야 합니다. 성도에게는 전진만이 있습니다. 결코 물러서지 마십시오. 

신약성경에 데마라는 인물이 세 번 등장합니다. 골로새서 4:14에 '사랑하는 의사 누가와 데마도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데마는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골로새서를 쓸 당시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때 데마는 누가와 함께 바울을 위하여 자원하여 감옥에까지 들어가 도왔습니다. 바울의 바로 곁에서 신실하게 바울을 도왔던 바울의 동역자 데마가 디모데후서 4장에 또 등장합니다. (딤후 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고,'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말년에 기록한 편지입니다. 그 무렵 데마는 환락의 도시 데살로니가로 떠나고 바울곁에 없었습니다. 전도하러 떠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역을 감당하러 떠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여 떠났습니다. 죄의 열락을 즐기며 살고 싶어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을 버린 것이입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성경 어디에도 데마가 다시 회개하고 돌아왔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뒤로 물러가면 멸망합니다. 
  
반면에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가 시도한 일차 선교여행에 따라갔다가 어린 나이에 너무 고생이 되니까 견디지 못하고 밤빌리아에서 혼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뒤로 물러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끝나지 않고 바울과 바나바가 2차 전도 여행을 떠날 때 다시 도전합니다. 

그렇게 계속 앞으로 나아간 마가 요한은 초대교회의 훌륭한 사역자가 됩니다. 바울의 말년에까지 바울과 동역합니다. 딤후 4장에서 말년에 바울은 데모데에게 (딤후 4:11)

'그대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십시오. 그 사람은 나의 일에 요긴한 사람입니다.' 마가는 또한 바울이 죽은 후에 베드로와도 동역했습니다. 마가복음을 기록했습니다. 철없는 어린 소년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다보니 예수님께 크게 사랑받고 위대하게 쓰임받았습니다. 여러분, 물러서고 싶은 유혹을 이기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2. 뒤로 물러서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38)
  
우리가 뒷걸음치며 물러서면 기뻐하는 이는 사단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의도대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새 생명을 얻은 사람, 믿음이 잘 성장하는 사람,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사람, 사명감에 불타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낙심을 안겨주어 주저않히는 것을 사단은 사명으로 알고 덤벼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비난이나 위협앞에 굴복하고 시험이나 유혹앞에 굴복하며 사람이나 고난때문에 굴복하고 주저않는다면 사단은 목적을 달성했다고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물러나면 근심하십니다. 안타까와하십니다.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큰 은혜를 주었는데, 좋은 선물을 주었는데 다 잊고 그깟 일에 낙심하고 실망하여 뒤로 물러나고 있느냐?  내가 너를 향해 얼마나 큰 기대를 품고 있는데 그리고 상상할 수 없이 큰 일을 너를 통해 이루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여기서 포기한단 말이냐?" 하시며 탄식하십니다. 
  
아울러 하나님은 다시 일어나라고 격려하십니다. 잠간 판단력이 흐려져서 주저앉았더라도 힘을 내고 일어나 다시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고전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여러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뒤로 물러서지 말고 앞으로 전진하셔야 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위에서 부르신 상을 바라보고 더 성숙한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더욱 충성된 일군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며 더 가까이 다가가셔야 합니다. 

스코틀랜드의 어느 작은 시골 교회에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그의 사역을 통해 아무런 열매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장로들에 의해 강제로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섬겼던 마을은 까다로운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차가웠고 진리에 대해 적대적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섬겼던 기간 동안 회심을 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목사님은 그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설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사건을 기억하고 목회사역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배 중 헌금 쟁반이 돌려지고 있을 때, 한 어린 소년이 쟁반을 바닥에 놓고는 일어서서 그 쟁반 위로 올라섰습니다. "얘야 왜 그러니?" 하자 그 소년은 "목사님의 설교에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그런데 드릴 돈이 없어서 저 자신을 고스란히 하나님께 드리고 싶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쟁반 위에 올라섰던 그 소년은 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간 최초의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보비 모팻입니다. 보비 모펫은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아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 작은 교회에서, 그리고 인정받지 못했던 그 목사님의 충성스러운 사역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마 여러분중에도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사역을 하나 별로 결실을 보지 못하는 이가 있을지 모릅니다. 계속 신실한 믿음을 유지하십시오!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당신을 강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십시오(고후 4:1,7).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결실을 맺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3. 뒤로 물러서지 않으려면 확신을 붙잡아야 합니다.(35)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확신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구원받은 것에 대해 정말일까? 하는 의심도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의심스럽고 교회생활에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여러 이유로 확신이 사라지고 흔들립니다. 보이지 않는 세력이 우리안에서 역사하여 마음을 흔듭니다. 믿음을 흔듭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확신을 버리지 말하야 할 것을 당부합니다.(35)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확신을 붙들고 나아가면 큰 상이 있다고 약속하십니다. 큰 상을 받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인내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모두가 지쳐서 이제는 더 못하겠다고 포기하는데도 참고 끝까지 훈련을 하는 선수가 메달을 땁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은 낙심하고 놓아 버릴때에도 끈질기게 믿음을 붙잡고 확신에 거하며 시련을 인내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큰 상을 약속하십니다. 
  
확신을 꼭 붙잡는다는 것은 손에서 빠져나가는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을 뜻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믿음이 사라지려고 할 때에도 다시 말슴을 펼쳐서 하나님의 약속을 살펴보고 묵상하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씨름해야 합니다. 
  
유명한 무디선생이 한번은 자기의 사역의 성과가 너무도 미미한 것에 낙심하여 서재에 앉아 있었습니다. 때마침 그의 친구가 찾아와서 낙심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무디는 자기가 일한 성과가 너무 작아 낙심했다고 친구에게 설명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자네 노아의 생애에 대하여 공부해 본 적이 있는가?"하고 물었습니다. 무디가 "아니, 그의 생애에 대하여 특별히 공부한 일은 없는걸."하자 친구는 무디에게 노아에 대하여 공부해 보라고 권하였습니다.
  
무디는 친구가 간 뒤에 구약을 펴 들고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느라 여러 해 동안 온갖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받았으나 끝까지 실망하지 않고 견딘 것을 읽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방주가 완성되었을 때 노아의 가족 말고는 오직 짐승들만이 방주에 오를 수 있었던 부분을 읽으며 크게 깨닫고 외쳤습니다. "아, 나의 조급함이 이리도 어리석은 것임을!" 무디는 그 자리에서 다시는 낙심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엎드려 하나님께 새로운 용기를 주십사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침울함은 사라지고 새 힘이 솟아났습니다.

비록 눈앞에 당장 성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면 주님을 위하여 끝까지 일해야 합니다.  특히 사단이 가져다주는 조급함을 경계하고 여러분이 생각하고 기대하는대로 되지 않을 때에도 물러서지 말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차적으로 편지를 받는 수신자인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절대 뒤로 물러나지 말것을 권면했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핍박으로 인해 각지로 흩어져서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믿는다는 한 가지 이유로 고난을 많이 당했습니다.  

때로는 모욕과 환란을 당하였습니다.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수치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습니다. 자기의 소유를 송두리채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있어 소망은 예수님이 속히 오셔서 영원한 천국으로 데려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곧 오리라고 기대했던 예수님의 재림은 마냥 지체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낙심하는 사람, 신앙생활을 포기하려는 사람도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향해 히브리서를 보내어 본문 말씀을 통해 격려하고 위로하며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많이 만납니다. 수많은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1세기를 살면서 믿음 생활하던  믿음의 선배들이 당한 정도로 어렵지는 않지 않습니까?  마음만 굳게 먹으면 얼마든지 인내하고 물러서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잘했다고 주님께 칭찬을 듣고 큰 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조금만 더 참고 물러서지 말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담대한 마음으로 확신을 굳게 붙들고 비전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나아갑시다. 큰 은혜와 고귀한 축복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나아갑시다. 여러분 모두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침체를 극복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상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