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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언어에 담긴 영적 능력 (롬 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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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담긴 영적 능력 (롬 10:9-13)


‘오프라 윈프리’라고 하는 미국의 흑인 여자 방송인이 있습니다.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미국에서 ‘최고의 영향력 있는 여자’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인기 방송인으로 미국 갑부가 되었고 방송국도 소유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선거 때도 그녀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입었습니다. 그만큼 영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빈민 흑인촌에서 미혼모 딸로 태어났습니다. 밑바닥 인생을 살았고 13살 때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해서 충격을 받고 14살에 가출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미숙아를 출산한 아픔이 있고, 20대에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이었고, 돈 하나도 없는, 사실 외모를 보면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미인 기준으로 보면 별로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아주 잘 쓰는 단어가 있습니다. “So what?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 나는 나야! 누가 뭐래?” 그녀는 자기 속에 있는 자기를 발견하고 인정하는 말을 하기 시작했고 “두고 봐! 내가 이 어두운 과거가 있어도 무엇이나 성취할 거야.” 그 말대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 가운데 사람이 유일하게 입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있는 모든 생각을 입으로 말해서 다른 사람에게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물론 동물들도 자기표현의 소리를 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 표현에 불과합니다. 말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같습니다. 말이 얼마나 귀중한가 성경에 “하나님이 곧 말씀이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하나님과 인간이 관계를 갖는 유일한 수단이 말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 머릿속에 있는 모든 생각을 하나님께 말로 전하는 것입니다. 찬송은 그 말에다 감정을 섞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설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말로서 여러분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말에 말 한마디 잘하면 천 냥 빚도 갚는다는 말이 있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입으로 말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기독교의 핵심적인 교리가 구원이라는 것인데 오늘 말씀에는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혹시 여러분 가운데서 내가 결혼했는지 안했는지 잘 모르겠다 하시는 분 손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다른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내가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잘 모르겠다 하시는 분 계십니까? 이것은 똑같은 것입니다. “내가 결혼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나는 하나님께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입으로 분명하게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 대답이 분명치 않으면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목적으로 교회를 나오는지, 예수를 믿는 것인지 안 믿는 것인지 항상 분명치 않고 ‘저 사람은 교회 뭐 하러 다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러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오늘 성경말씀에는 “네 입으로 말하라. 시인하라. 고백하라.” 그러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가 나의 구주가 되는 것을 고백하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마음에 믿는 그 믿음을 입으로 말하면 바로 그것이 구원의 조건이 되는 교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내가 지금 어떤 영적 수준에 와 있는 것인지 여러분 마음속으로 대답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내가 죄인이라는 슬픈 고백을 간절히 가져봤는가? 그런데 그 모든 죄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씻어졌다는 사죄의 은혜를 내가 느끼는가? 마지막 심판의 날에 나는 하나님의 날에 영생을 얻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어지는가? 사도신경이 자신의 마음에 조금도 의심 없이 고백되는가? 하나님은 나의 마지막 시간까지 절대 지켜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가?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과의 대화는 간절한 느낌이 존재하는가? 

설교를 들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내 마음에 내린다는 체험을 가져봤는가? 다른 사람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구원의 길로 인도할 마음이 내게 소유되었는가? 원수를 위해서도 기도드리는가? 내가 주님께 필요한 부분을 모두 다 드릴 수 있다는 마음의 각오가 있는가? 어떤 경우를 만나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다고 결심이 되었는가? 예수를 믿는 기쁨이 이 세상이 주는 어떤 기쁨보다도 귀하다는 체험을 하고 있는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할 영적 능력이 있는가? 내가 승리한 부분이 내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고 보는가? 이렇게 믿으시면 “아멘”하십시오. 우리가 때마다 사용하는 교회 언어 “주여” “아멘” “할렐루야” 그래서 하는 것입니다. 

저는 임종 환자들을 많이 찾아갑니다. 그러면 환자가 아무리 아파하고 아무리 귀찮아해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가 다 씻어주신 사죄의 능력을 믿으십니까? 대답을 하십시오.” 상대는 죽어가는 순간이기 때문에 아픕니다. “목사가 죽는 사람을 이렇게 귀찮게 구나?” “귀찮게 굴어야 합니다. 이제 당신도 나도 죽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영생의 나라를 믿으십니까? 대답하십시오. 모두다 부활할 텐데 당신도 부활할 것을 믿으십니까? 지금 세례 받으시겠습니까? 받는다고 고백하십시오.” “네.” 그러면 세례 줍니다. 

왜 그렇게 하는가? 성경에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영혼은 구원받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32절에서 33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말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영향이 있는 것을 의학적으로 판명이 됩니다. 우리 신경조직 가운데는 중추신경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사람의 모든 생각을 몸 전체에 전달하는 조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내가 “아! 피곤하다.” 이렇게 말하면 ‘야! 주인이 피곤하시단다. 다 피곤하도록 준비해라.’ 그래서 늘어집니다. 그러나 “기분 좋다.”라고 말하면 ‘주인이 기분 좋으시단다. 다 기분 좋을 준비해라.’ 온 몸 전체에 전달해서 내 모든 세포 기능이 나로 하여금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부지런히 한다는 것입니다. “아! 내일 주일이니까 교회 가야지.” ‘야! 주인이 내일 교회 간단다. 교회 갈 준비해라.’ 준비하면 됩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 봐야 알지.” 그러면 ‘내일 아침 일어나 봐야 안단다. 그때까지 편히 쉬어라.’ 일본에서 베스트셀러 “뇌의 혁명” 생각하는 대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한국에 왜 그렇게 망하는 사람이 많은가? 자식들보고 하도 망할 자식이라고 말을 해서 그렇습니다. 나를 향해서나, 남을 향해서 해주는 말은 영향이 아주 큽니다. 언어에 담긴 영적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도 나를 믿어주고 인정해주고 말을 해야 내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있습니다. 

로버트슐러 목사의 역사는 ‘Positive Thinking’이라는 단어 하나입니다. “긍정적인 생각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그래서 그분이 실천했고 그렇게 되었지 않습니까? 그 사람의 생각과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장래가 결정됩니다. ‘Negative Thinking’에 사로잡힌 사람이 성공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머리 자체에서 그는 성공 못할 것이라고 자기가 자기를 낙오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에 “내 입술로 내 환경에 고난을 불러오지 말 것이며 나의 입술로 형제에게 실망을 주지 말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잘돼라, 잘돼라.” 하면 잘됩니다. 망하라고 말하면 자기도 망하고 그도 망합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십시오. 왜 하나님의 종들이 그렇게 열심히 축복 안수 기도를 해주었습니까? 그 받은 사람은 다 그대로 되었지 않습니까? 제가 어제 새벽에도 이야기했습니다. 사무엘이 왕이 될 사람 하나 골랐는데 이새의 집에 가서 일곱 형제가 있는데 다 “불합격! 이제 아들이 더 없느냐?” “막내가 있는데 소년입니다. 양치고 있습니다.” “그 아이를 데려오라.” 그래서 하나님의 종이 무릎을 꿇게 하고 다윗에게 한 손을 얹고 한 손은 하늘을 향하여 안수 축복기도를 해주었더니 성경말씀에 “그 이후로 다윗이 신에 감동된지라.” 잘되라고 축복하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저는 교인들이 좋은 일이 있을 때 늘 감사기도를 빼놓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되라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사람들이 또 잊어버립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저 가정은 아직 거처할 아파트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돌본다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아파트를 하나 주시옵소서.” 구체적으로 기도하고 “저 가정에는 자동차도 하나 없나이다. 다른 가정과 같이 자동차를 하나 주셔서 행복하게 이동할 수 있게 해주소서.” 그렇게 기도해준 사람은 반드시 집 사거나 자동차 사면 거기 와서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그것을 기도제목으로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입으로 말하는 대로 됩니다. 오늘 분명히 나와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왜 사람들은 사람 앞에서 입으로 시인하는 일에 인색한가? 장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불신앙의 상황을 미리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이제 세례 받으십시오.” “아닙니다. 아직 세례 받을 때 안 되었습니다.” 왜 거절하는지 아십니까? 세례 받고 죄 짓는 것보다 세례 안 받고 죄짓는 것이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장래 있을지 모르는 불신앙의 상황을 지금 세례 받고 나서 괜히 죄 지으면 더 크지 않습니까? “집사가 되었으니 교회 봉사 좀 하십시오.” “아직 아닙니다. 집사가 된 다음에 죄 지으면 더 욕먹어요.” 그런 불신앙의 사고가 머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이제 저도 세례 받아야지요. 나도 집사가 되어 봉사해야지.”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목사로서 어디 가서든지 목사의 신분을 감추고 사람 앞에서 야릇하게 굴면 그 사람은 목사의 직을 떠나게 됩니다. 대한항공을 많이 타서 제가 타면 압니다. 거기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아무 소리 안했습니다. 목사라는 말도 안하고 그냥 내 자리에 가서 앉아있을 뿐입니다. 사무장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목사님! 어디 가세요?” “나를 어떻게 알아요?” “다 압니다.” 그래서 저는 비행기 타고도 포도주 한잔 마셨다가는 큰일 납니다. 

여러분이 친구들과 모여서 재미난 파티를 합니다. 술 먹고 신나게 놉니다. 그런데 교회 집사인 것을 감추고 요상 야릇하게 하면 그 사람은 언제인가 집사직을 떠나게 됩니다. 내 입으로 내 신앙을 어떻게 시인하느냐 따라서 그 사람이 그대로 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고백하니까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끄러워하면 나도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끄러워하리라.” 오늘 성경말씀에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주님을 시인하고 발표하는 사람은 부끄러울 것 같아도 오히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잠언 29장 25절에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한 자는 안전하리라.” 그러니까 오늘 우리들이 이렇게 목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된 것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영적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따라서 입으로 시인하면서 살라는 말입니다. 만약 그것을 감추고 공적으로 숨기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인정하지 않고 그런 사람과 일하기 싫어하십니다. 

“너 아니어도 얼마든지 일할 사람 많다.” 여러분! 가톨릭교회는 신부님도 수녀님도 복장으로 성직자를 구별하잖아요? 개신교회도 개신교 성직자들을 그렇게 하라고 하면 저는 100퍼센트 순종하겠습니다. 나만 혼자 그러면 유난 떤다고 하고 어쩌고 그러니까 그렇지 그게 얼마나 좋습니까? 제가 그것 때문에 불편하게 되는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내가 당할 수 있는 많은 시험거리를 미리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시편 여러 곳에 “너희는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우리 찬송가에는 “만입이 내게 있다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 무슨 말인지 모르시죠? 영어지만 어원이 아람어입니다. “Abra, 이루어진다.” “Cadabra, 네 말대로, 혹은 내가 말한 대로” “Abracadabra, 내 말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믿으라.”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중세기 때 열병 치료에 하던 주문 용어가 되었습니다. 열병이 의학적으로 치료가 안 되는데 “아브라카다브라!” 주문을 외우면 병이 나았습니다. 

“내 말대로 될 거야. 이루어질 거야.” 그러니까 그것을 보고 마법사들이 “어? 저거 무슨 말이야? 저 말대로 하니까 병이 낫잖아? 저 말을 우리가 쓰자.” 그래서 이것이 마법사들이 자기네들 마술을 사용하는데 이용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아브라카다브라!” 우리나라 말로 “수리수리 마수리!”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태복음에서 베드로가 사람들 앞에서 주를 시인하지 아니하고 부인하고 나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기억합니다. “너도 예수와 한 당이야.” 거기 보면 여러 가지 말이 나옵니다. “비자, 계집종, 노예 신분” 대단치 않은 사람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런 어떤 사람이 와서 베드로의 얼굴을 기억하고 “너도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지금 예수님은 재판받고 있습니다.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창피해졌지 않습니까? “나는 네가 무슨 말하는지 모르겠다.” “무슨 소리냐? 너는 갈릴리 악센트를 쓰는데! 여기는 예루살렘인데 그래도 속일 거냐?”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 사람과 나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이것이 죄가 되어 베드로는 평생 첫닭이 울 때 일어나서 회개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만약 그때 베드로가 “맞다. 내가 예수의 제자다. 예수님이 무슨 죄를 지었느냐? 예수는 메시야다. 

우리 여기 열두 명의 사도들 모두 예수의 제자이다. 어쩔래?”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이 “하하하! 베드로! 내 제자들! 그렇지, 내 제자들이 있었지? 맞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확실한 고백을 주저하면 정말 못할 곤란할 일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 가톨릭교회에서 고해성사 제도가 무엇입니까? 어떤 죄가 있어도 신부님 앞에서 자신의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한 죄는 그 자리에서 죄를 사합니다. 언어에 담긴 영적 능력을 그냥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교자들을 존경하는 것은 그들의 생명이 버려지는 사죄의 현장에서 “나는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확실하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아니라고 한마디 말하면 생명 보존이 보장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절대 그 말 한마디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순교 당해 죽은 것입니다. 크리스찬의 간증이 입에 없는 사람은 정말 부끄러운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비겁하거나 존경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신분을 될 수 있는 대로 가리면서 아주 요상 야릇하게 행동하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은 간첩이거나 사기꾼 가능성이 많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부끄럽거나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는 것이 감추어져야 될 일이라면 오늘부터 그것을 집어치우고 사는 것이 더 사람답습니다. 

저는 고학을 하느라고 모든 학교를 야학을 하며 살았습니다. 대학원도 5시에서 9시에 끝납니다. 그런데 한국의 유명 대학들이 그 시절에 “학창시절이 그리운 자여! 학교로 다시 돌아오라.” 그래서 연구 과정을 만들어서 다시 학교로 불러들여서 학창 시절이 그리운 사회 성공자들이 다 대학원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저희 반에도 청와대 고위층, 기업 사장들, 연예인, 방송인들이 있었고 저만 전도사였습니다. 나이도 제일 어렸습니다. 그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이미 성공했는데 학창시절이 그리워서 모교에 다시 와서 어떤 과목 하나를 들으면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9시에 끝나니까 저녁 식사들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한 반이니까 저도 함께 가야하지 않습니까? 저는 나이도 어리고 직업이 뭐냐고 물었을 때 전도사라고 밝혔기 때문에 사람들이 장난감같이 가지고 논단 말입니다. 밥 먹으려면 저녁 먹고 또 술 마신단 말입니다. 그런데 식사 때이니까 저는 기도를 드리지 않습니까? 

혼자 기도하고 있으니까 옆에 계신 분이 “아니, 전도사! 혼자만 하나님께 축복받으려고 조용히 남모르게 기도를 하는 거야? 큰소리로 대표기도를 해?” “그래요? 그러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때는 이때다 하고 큰소리로 “하나님 아버지! 이 죄 많은 무죄한 자를 다 진리의 빛을 보게 하시고 예수 믿고 구원 받게 해주십시오.” ‘내가 이 사람들을 또 볼 거야?’ 예수 믿고 회개하라고 기도한 다음에 “다음 일요일 되면 가까운 교회에 나가서 다 예배드리십시오.” 그러면 또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할렐루야 아멘!” “이상한 느낌이에요.” 그래서 제가 알아봤더니 거기 동급생 60퍼센트가 집사들인 겁니다. 모두가 교회를 나갔습니다. 살살 감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술이 만취가 되었는데 거기 나오는 분들 중에는 이름만 되면 알 만한 사람도 나왔습니다. “전도사님! 나 큰일 났습니다. 전도사님이 기도를 한번 해주면 이 일이 해결될 거 같아서 전도사님을 내가 한번 모실게요.” “그래요.” 보건사회부 높은 직에 있던 분입니다. “뭐예요?” “우리 집 사람이 지금 고려 병원에 입원했는데 아무래도 죽을 거 같아. 전도사님이 가서 기도 좀 해줘.” “그래요? 갑시다.” 밤 11시에 저녁 먹고 다함께 고려병원에 갔습니다. 

남편은 술이 만취가 되었는데 그 부인 놓고 그 병원에 입원할 것도 아니고 병원 떠나가라고 큰 소리로 안수 기도를 “하나님! 이 가정이 이 병이 나아야 예수 믿고 구원 받게 되어 있으니까 하나님이 기적을 좀 나타내 주시옵소서.” 거뜬히 낫고 가정 모두 저한테 와서 우리 다 예수 믿게 되었다고 간증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를 지금 생각합니다. 만약 전도사 아닌 척 하고 같이 술 마시고 놀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집사들이 금방 알 것입니다. “저거 가짜야! 가짜 전도사야! 그렇게 하려면 전도사 하지 마라.” 틀림없이 비난 받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운명의 시간이 되었을 때 옆에 있는 한 강도가 입으로 시인했습니다. “당신은 메시야요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해주소서.” 말 한마디 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구원되었지 않습니까? 예수를 구주로 믿으시면 모두 다 함께 “아멘”하십시다.

  
「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성경말씀 “입으로 시인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그래서 오늘 모두 입으로 시인했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 구원받고 영생을 누리는 틀림없는 주님의 제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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