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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호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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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호 6:1-3)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치기도 하고, 찢기도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지 못하고, 죄를 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우리를 쳤다가도 싸매 주고, 찢었다가도, 도로 낫게 해주신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독일도 오랫동안 분단국가였다. 그러다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은 통일 국가가 되었다. 그 배후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믿음이 독실한 한 성도가 있었다. 그 날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으면서, 깊이 묵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는 말씀이 있었다. (마17:20中)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그는 이 말씀을 읽는 가운데, 많은 은혜를 받았다. 

“예수님은 신실한 분이다! 이 말씀을 믿음으로 붙들면,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 주실 것이다.” 이런 확신이, 그의 마음에 찾아왔다. 그래서 그는 기도로, 많은 준비를 하고, 베를린 장벽으로 뛰어갔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성을 질렀을 때,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담대하게 외쳤다. 

“무너져라!” 아무리 힘껏 소리쳐도, 베를린 장벽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이상하다. 왜 무너지지 않을까?” 그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 말씀을 펴놓고 기도하며, 깊이 묵상했다. 그러자 깨달음이 왔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기를 “만일 너희에게…”라고 했다. 

‘네가’라며, 한 사람을 말하지 않고, 복수로 ‘너희가’라고 했다. “아하, 내가 혼자서 소리쳤기에, 안 되었구나!” 그는 기도하면서, 뜻을 같이 할 수 있는, 믿음의 동료들을 모았다. 그리고 함께 기도로써, 단단히 준비하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베를린 장벽으로 달려가, 큰 소리로 ‘무너져라!’ 소리 질렀다. 

이번에는 당연히 무너질 줄 알았다. 그런데도 베를린 장벽은 끄떡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서있었다. 집에 돌아와, 또 다시 말씀을 펴놓고 기도했다. “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지 않았나요? 우리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도 못해서 그런가요?” 그에게 다시, 깨달음이 왔다. 
예수님이 “당장 옮길 것이요”라고 말씀하지 않았다. “옮겨질 것이요.” 미래형을 써서 말씀했기에, 그는 무릎을 쳤다. “그렇구나. 때와 기한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구나! 우리는 그때를 바라보면서, 간절히 기도하면 되는구나!” 

그때부터 조국의 조속한 통일을 위해, 베를린 장벽이 속히 무너지기를 바라면서, 더불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번져나갔다. 동서독을 막론하고, 베를린 장벽이 속히 무너지기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저버리지 않았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나는데, 그다지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1989년 11월 9일,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려 주셨다. 그래서 독일은, 통일국가가 되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난 뒤에, 독일을 비롯해서, 월남, 예멘, 등등의 여러 나라들이 분단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통일국가가 되었다. 지구상에 우리나라만, 남북으로 분단된, 유일한 국가로 남아있지만, 우리 민족이 회개하는 기도를, 저버리지 않고, 통일국가를 허락해 주실 것이다. 그래서 백두산에서부터 한라산까지, 이 땅에 평화가 넘치게 하실 것이다. 
한강과 대동강에, 번영의 물결이, 넘쳐나게 하실 것이다. 이제 6·25사변 63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6.25사변이 왜 일어났고,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1. 우리가 죄를 범했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치셨다(1中).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 바르게 깨우치기 위해서, 사랑의 매를 든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잘 섬길 때,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다스렸다. 나라에 평화가 임했다. 이웃나라들은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쳤다. 그러나 이방여인들을 아내로 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하나님을 멀리했다. 이방의 신들을 섬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솔로몬을 쳐서, 그를 대적하는 무리들이, 사방에서 일어나게 했다. 솔로몬이 죽고 난 뒤에, 나라가 둘로 쪼개졌다. 하나님이 나라를 찢었다. 북방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둘을 만들었다. 하나는 북쪽의 단에 두고, 하나는 남쪽에 있는, 벧엘에 두었다. 
그리고 백성들로 하여금, 금송아지를 섬기게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할 때 하나님은 앗수르를 들어, 이스라엘을 심판했다. 이스라엘이 망했다. 남방 유다도, 므낫세, 아몬 등등의 왕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하고, 바알을 위한 신당을 만들었다.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다.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했다. 그때 하나님은 바벨론을 들어, 남방 유다를 쳤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언약을 기억하고, 남방 유다를 완전히 멸하지는 않았다. 바벨론에 70년간 포로로 끌려가서 고생한 뒤에,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이스라엘로 되돌아오게 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참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섬기지 못하고, 이방의 신을 섬기고 우상을 숭배할 때, 사랑의 매로 징계하신다. 우리 민족도 마찬가지다. 한때 우리나라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만큼, 경건한 도성이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많았던 도성이었다. 

그런데 왜 북녘 땅에, 사탄의 앞잡이라고 하는, 공산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나? 이 민족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했기 때문이다. 1938년 9월 9일, 평양 서문밖 교회에서, 장로교 총회가 열렸다. 그때 무엇을 가결했는가? 
“신사참배는 우상숭배의 죄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애국적인 하나의 국가의식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솔선수범해서 신사에 참배하자!” 그것을 총회에서 결의했다. 그리고 목사들과 장로들이, 그 즉시 신사에 가서 참배를 했다. 물론 그때 우리가 잘 아는, 주기철 목사님은, 그 자리에 없었다. 

그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1년 뒤 1939년 12월 25일, 주기철 목사님이 시무했던, 산정현 교회가 소속된, 평양노회의 임시노회가 남문밖 교회에서 열렸다. 그 노회가 열린 목적은, 주기철 목사님을 제명 처분하기 위해서였다. 그 이유는 이렇다. 
“주기철은 자기 혼자 천당에 가려고, 교회와 양떼를 버리고, 감옥에 가서, 공짜 밥을 먹고 있으니 그는 삯군 목사요, 직무를 유기한 자이므로 제명한다!” 그리고 자기들은 신사에 참배할망정, 교회와 양떼를 지키기 위하여, 충성을 다한 복음주의자라고 했다. 그런 파렴치한 궤변이 어디 있는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945년 해방되고, 해방직후에 평북노회가 열렸다. 거기서 어느 노회원이 손을 들고, 정식으로 발의했다. “우리가 일정시대에는, 일제의 압박에 굴복해서 어쩔 수 없이, 신사에 참배하면서, 우상숭배의 죄를 지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하나님께 회개하자!” 
그러자 다른 노회원이, 정면에서 그 의견을 묵살시켜 버렸다. “왜 신사참배가 우상숭배의 죄요? 총회에서 분명히, 신사참배는 우상숭배의 죄가 아니라고, 가결했지 않소! 그저 애국적인 하나의 국가의식이라고 총회에서 가결하지 않았소?” 그러면서 회개하자는 그 의견을, 묵살시켰다. 

회개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1949년 평안도 지역에 속한, 의산노회는, 이런 결정을 내렸다. “일정시대에 총회의 결의를 무시하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감옥에 갔다 온, 출옥 성직자들은 율법주의자들이므로, 강단에 세우지 말도록 한다!” 이것을 가결해서, 산하 지교회들에게 통보를 했다. 
그러니까 신사참배를 하면서, 우상숭배를 하는 목사들은 계속 목회하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면서, 감옥에 끌려가서, 고생 당하다가 나온 목사님들은 강단에 세우지 못하도록, 가결해 버렸으니, 어찌 공의의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겠는가? 6.25와 각종 이단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한국 이단의 원조인, 김백문은 복귀론이라는 책을 썼고, 그의 제자들이 신앙촌의 박태선, 통일교의 문선명이 등장했다. 복귀론은 예수님이 지상에 오셔서, 복음은 전했는데, 십자가에서 죽으므로, 실패했다. 따라서 십자가의 실패를 누가, 복귀시켜야 한다는 내용이다. 회개하지 못해, 이단이 생겨났다. 
북녘 땅이 중심이 되어, 신사를 참배하면서 우상을 숭배할 때, 하나님은 공산주의를 들어, 그들을 심판했다. 그러나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참된 신앙을 위해, 이곳에 순교의 피를 흘리셨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남쪽의 땅을 남겨놓았다. 

2.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1上).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우리를 치신 분도 하나님이요, 찢은 분도 하나님이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싸매어 주시고, 도로 낫게 해주실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원리를 깨닫지 못했다. 남쪽에서 애굽이 쳐들어오면, 북쪽 앗수르나 바벨론에 가서, 도움을 청했다. 반대로 북쪽에서 쳐들어오면, 남쪽으로 가서 도움을 구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어찌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겠는가? 

우리민족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우리 구세주가 아니다. 주변의 강대국이, 우리를 고쳐주지 못한다. 이 민족이 살 길은 오직 하나, 여호와께 돌아오는 것이다. 돌아감이 바로, 십자가를 붙드는 것이다. 예배당이 많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나라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온전히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야 한다. 회개해야 산다. 고백이 회개가 아니다 이는 한 방법이다. 내 뜻대로 살던 생활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으로, 변화됨이 회개다. 회개는 뉘우치고, 고치는 회개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회개는, 사망의 법에서, 해방 받는 순간이다. 

회개는 불의의 세계에서, 하나님과 의의 세계로 넘어오는 것이다. 죄를 많이 범함이, 문제가 아니다. 회개하지 않음이 문제이다. 잠깐 부끄러움을 피하려다가, 영원한 부끄러움에 들어간다. 성경은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죄인이라고 한다(롬3:23). 그런데 사람이 회개하지 않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1) 나는 남들처럼, 그렇게 큰 죄를 지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의 죄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괜찮다는 생각이다. (2) 죄를 회개하면, 자신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3)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우월감 혹은 교만이다. 

(눅13:4)을 보면,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사람들이 열여덟 명이나 죽었다. 그리고 갈릴리 사람들이 총독 빌라도에게 살해당하는, 비참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들 사건을 두고, 마치 그들이 죄를 많이 지어, 그러한 변을 당했다고 수군거렸다. 
그런데 예수님은 수군거리는 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했다. “빌라도에게 죽은 사람들보다,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죽은 사람들보다, 너희가 더 낫다고, 생각하지 말라. 너희들은 그들보다, 나은 것이 없다.” 여기서 예수님은,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고 말씀했다. 

실로암 망대가 무너진 사건과, 빌라도에게 살해당한 사람들의 문제점은, 회개가 없었다. 회개하지 않아서, 망대가 무너진 사건이고, 회개하지 않아서 살해당했다. 예수님이 주시는 메시지는, 회개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거부하지 않는다는 교훈이다. 다 받아주신다. 다른 구원자를 세움이 아니다. 
어떤 분들은 죄짓고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하고, 또 그렇게 한다면, 무엇하러 회개하느냐고 말하며 그것은 위선이 아니냐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회개는 아무나 못한다. 회개는 은혜 받은 사람이 한다. 회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맛본 사람, 즉 신자들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우리는 그럴듯하게 속삭이는, 사단의 꾐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회개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회개할 때를 놓치면 불행해진다. 그리고 진실로 회개해야 한다. 가슴을 찢는 기도, 눈물로 통곡하는, 회개의 결단이 필요하다. 집단적으로 회개하고 돌아옴을 부흥이라고 한다. 
부흥은 다시 사는 것이다. ‘Revival’이다. 서구의 역사를 보면, 어떤 나라에서는 혁명이 일어났고, 어떤 나라에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 러시아 프랑스를 보면 혁명이 일어났고, 영국과 미국에는, 부흥이 일어났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영국과 미국에서는 왜 혁명이 없었는가? 

존 웨슬리의 부흥이, 영국을 피의 혁명에서 건져냈고, 조나단 에드워드의 부흥이, 미국을 건졌다. 죽이고 죽는 혁명을 원하는가? 우리는 부흥으로 혁명을 대신하기 바란다. 지금 영국은 선진국이지만, 17-18세기만 하더라도, 먹고살기도 힘들었던 가난한 나라였다. 감자로 생계를 이어가던 나라였다. 
수도 런던은, 각지에서 모여든 가난한 사람들이,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던 나라였다. 그런 영국이 부흥을 통해 살아나고, 최고 부국이 되었다. 미국도 부흥을 통해, 최고 부국이 되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된 이유는, 하나님을 믿는 나라가 되었을 때다. 

미국이 우리나라의, 구세주가 될 수 없다. 이 세상 어떤 강대국이라도, 우리를 다시금, 싸매어 줄 수 없다. 이 나라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이 나라, 이 민족의 참되신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갈 때만이, 하나님이 우리를 싸매어 주고, 우리를 다시 낫게 해주신다. 

3. 우리가 돌아가면 반드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하나님은 이틀 후에 살리며, 삼일 만에 일으키는 분이다. 빠른 시간 안에 치료하고, 회복시킨다는 뜻이다.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다. 성도들의 회개의 기도를, 외면하지 아니하실 것이다.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답해 주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그들은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이 그 부르짖음을 듣고, 그들을 종 되었던 애굽에서 해방시켜 주셨다.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였다. 사무엘을 위시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큰 우레 소리를 발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하나님은 이 민족의 기도를, 외면하지 아니할 것이다. 1950년 6월 25일은 주일이었다. 휴일을 맞아 많은 국군들이, 휴가를 떠났다. 물론 그 전에도, 전쟁의 위협이 있다고, 전방에서 계속 보고가 올라왔다. 이런 보고를 지도자들은 다 묵살시키고, 큰 소리만 쳤다. 헛소문만 퍼뜨렸다. 
아마 나이 드신 분들은, 아실 것이다. “전쟁이 터져? 전쟁이 터지면, 까짓것 서울에서 아침 먹고, 평양에서 점심 먹고, 저녁은 신의주가서 먹자!”면서, 우리 국군은 교만해서, 전쟁에 대비하지 못하고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드디어 전쟁이 터졌다. 우리 국군은 무방비상태였다. 

인민군들이, 밀물 듯이 밀려 내려왔다. 낙동강 이남으로 다 밀렸다. 잠시 잠깐 뒤면 우리 민족은, 자기 발로 부산 앞 바다로 빠져야 될, 형편이 되었다. 그때 우리가 어떻게 했는가? 해운대 바다 앞 모래사장에 다 모였다. 그래서 한 주간동안,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며 기도했다. 
기도회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사람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나라를 위해 기도했다. 기도회가 끝났을 때, 놀랍게도 그처럼 쏟아 내리던 폭우가 멎고, 하늘이 깨끗이 개었다. 

하나님이 이 민족의 회개기도에 응답해주어, 오키나와에 있던 미군 폭격기들이 이륙해서, 낙동강 근처에 집결해 있던 인민군들을 향해서, 엄청나게 폭격했다. 때를 맞추어,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단행했다. 그래서 인민군들은 어쩔 수 없이,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 민족은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신천지는 교회가 타락해서, 다른 구원자, 이만희를 보낸다고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가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받아 주신다. 다른 방법은 없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붙들고, 회개하면 된다.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하나님을 알고 배우는 것이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하는 분이다. 
하나님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게 임하신다. 밤이 깊어지면, 다시는 새벽이, 오지 않을 것만 같다. 영원히 밤만, 계속될 것 같다. 우리가 고난 가운데, 빠져 있을 때, 다시 새벽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고생이 계속 될 것 같다. 밤에 보초를 서는 사람들은, 새벽을 기다리는데 지친다. 

아침이 오지 않을 것만 같지만, 아침은 너무나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하나님은 진심으로, 구하는 자에게, 신실하게 나타난다.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듣지 않을 것 같아, 의심하기에 불안하다. 그러나 진심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때,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는 법이 없다. 반드시 나타난다. 

우리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회개하고 바로 살자. 우리가 지금 드리는 기도는, 절대로 헛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죄악을 돌이키고, 하나님께 돌아감이,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다. 군경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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