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지원과 사람의 관심 (느 1:1- )

첨부 1


하나님의 지원과 사람의 관심 (느헤미야1장)  
 
 
역사의 현장과 관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불러 모아 공동체를 세워서 이 땅에 뜻을 실현하기를 원하십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각 구성원들에게 은사와 직분을 주셔서 질서 있게 운영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도 그동안 고린도전서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동안 주일예배설교에 느헤미야서를 통해 하나님의 사역이 영적지도자와 평신도지도자가 각자의 사역과 직분을 조화를 이룰 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느헤미야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이스라엘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서 시작된 씨족(氏族) 공동체가 사사시대를 지나 통일왕국시대를 만나게 된 이후, 이스라엘은 남(南) 유다와 북(北) 이스라엘로 분열되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아시리아)에 의해 멸망됐고 남 유다는 앗수르를 멸망시킨 바벨론(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됐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은 유다의 수많은 왕족과 주요 인사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 후 바벨론 내부에 혼란이 거듭되다가 결국 매대(메디아)와 바사(페르시아) 제국에게 멸망이 됩니다. 바사의 초대 왕 고레스(키루스)는 이미 바벨론에 오랫동안 억류 돼있던 포로들을 돌려보내겠다는 칙령(B. C 536)을 발표합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에스라 1장1절~3절) 

이 사건은 예레미야의 예언(예레미야29장10절)대로 이루어졌고 실제로 1차적으로 스룹바벨 총독과 대(大) 제사장 예수아의 주도로 42,360명이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에스라1장1절~6장22절, B. C 537-515)

이들은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다 방해를 받아 중단되었을 때, 학개 선지자를 통한 말씀을 듣고 스룹바벨 성전을 완공했습니다. 성전은 건축되었으나 사람의 마음이 건축되지 않았을 때, 에스라의 인도로 약 1,400여명이 아닥사스다 1세 때 2차적으로 귀환(에스라7장1절~8장36절, B. C 458)하여 3일간 장막에 머물며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성벽이 무너진 채로 성전만 완성됐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잘 할 수가 없었고, 나라의 구심점(=중심을 향해 쏠리는 점)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완전한 영적, 국가적 회복을 원하셨고, 그 일을 위해 느헤미야가 귀하게 쓰임 받게 됐습니다.

① 성전은 건축이 됐지만, 성벽이 무너진 채로 있었고, 느헤미야의 헌신으로 진정한 회복이 열립니다. 우리교회, 한국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영적 지도자가 하나님 앞에 바로서야 할 뿐만 아니라 평신도 지도자도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② 성도여러분! 사는 게 비록 바쁘고 힘들지만, 살아가는 이유를 주님의 관심의 범위에서 찾으시기 바랍니다. 


느헤미야

느헤미야는 바사(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Artaxerxes) 1세의 수산궁에서 술 따르는 일을 맡은 관원으로서 영향력 있는 지위에 있었습니다.(B. C. 465-424). 

그의 이름과 끝 자인 “야”는 그 가족이 유다 전통 신앙에 충실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당시 술 맡은 관원은 술을 선택하는 기술이 있어야 했고, 왕이 마시기 직전에 독이 있는지 검사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왕의 신뢰를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에게 재치 있고, 쾌활한 동료 및 조언자이기도 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그 당시 술 맡은 관원은 다른 중책을 맡기도 하고, 나라의 옥새를 보관하기도 하고, 중요한 재정관련 행정을 보기도 해서 제안자의 역할을 했다는 자료도 발견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술 맡은 관원이 된 일은 하나님의 섭리도 있었지만 자신의 노력도 있었습니다.(근거: 칼 능동태) 느헤미야는 출세한 관원이었지만 고국의 상황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정보를 수집(근거: 샤알, 와우 계속법)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왕궁에서도 유다에서 믿었던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공동체에 관여했습니다. 그 공동체 식구 중에 하나냐가 유다에 다녀오자 상황을 물자 대답하기를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타버린 채』로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성전과 더불어 민족의 상징이요, 생명과도 같은 유산(遺産)이었습니다. 스룹바벨을 통해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었고, 에스라를 통해서 말씀이 선포되고 있음에도 유대인들의 상징이요, 생명 같은 성벽이 무너진 채로 방치되고 있다는 소식에 느헤미야는 듣자마자 울고, 슬퍼하며(근거: cw) 수일동안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지난 주 금요일에 단국대학교 도서관에 가는데 입구에 여름방학 동안 리더십 캠프를 알리는 플래카드를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며 노력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지도자는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과 같은 방향에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구름위로 빛나는 태양이 있듯이 현재 우리의 상황위에 더 빛나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 가치에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그 가치가 보이게 됩니다. 그 가치를 보면 비록 주먹만 한 심장이지만 다시 강력하게 뛰게 됩니다. 비록 수치스러운 조국의 현실이라도 관심을 갖는 신앙인! 자신의 문제만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조상의 죄까지도 회개할 줄 하는 사람을 지도자로 세우십니다.


기도의 방향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救主)로 모신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에 대해 어떤 신앙이냐에 따라 신앙의 형태가 달라집니다. 느헤미야의 기도에서 알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형태는

1]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도 긍휼을 기대하는 신앙이었습니다.『(5)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 하나이다 』는 기도로 계속 드리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만 하면, 우리의 신앙은 무게가 있지만 기쁨이 사라지고, 위선에 빠집니다. 하나님을 좋으신 하나님으로만 믿으면 행복한 듯해도 헌신에 약해지고, 방종에 빠지게 됩니다.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서 시원하다고 표현하시는 사실처럼, 하나님에 대해 두려움과 긍휼을 기대하는 사랑스러운 관계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시대에 이러한 신앙인을 찾고 계십니다.

2] 약속을 붙잡고 하는 기도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조국의 현실 앞에, 하나님! 모세에게 범죄를 하면 흩어버린다고 하셨지만 『(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고 하셨잖아요! 이제 귀를 기울이사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욕심이나 고집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내가 십자가를 짊어질 자세로, 약속을 붙잡고 하는 일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예) 1991년 노벨상 후보로 지명 되었던 닥터 월랙 (Wallach)의 <죽은 의사는 거짓말을 안한다>는 글을 소개합니다. 그는 축산업을 하는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수의사가 된 이후, 12년에 걸쳐 동물원에서 자연사한 454종류가 넘는 동물에 대해 약 17,500회 의 부검을 했으며, 동물원 인근 주민 3,000여명의 사체를 부검하고 어떤 사실하나를 알아냈습니다. 

그것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자연사하는 경우에 모두 영양 부족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영양이 풍부한 시대에 영양부족으로 죽는다는 주장이 실감나지 않지만 그는 칼로리와 단백질이 아니라 비타민 미네랄, 트레이스 미네랄, 그리고 히토류 결핍을 주장했습니다. 

사람들은 바쁘게 살아가지만 정작 어떤 목표나 목적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인들도 교회에 와서 수많은 예배를 드리지만 영적인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나 목적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생명을 얻는 일은 하나님의 관심을 찾는 일이고, 우리의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말씀을 먹는 일입니다. 그래야 영이 살고, 삶에 힘이 생깁니다. 또한 고난의 파도를 넘어 갈 수 있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