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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씨 뿌리는 밭의 비유(2) (마 13:3-9,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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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밭의 비유(2) (마 13:3-9,18-23)  

마태복음 13장은 천국 비유의 창고다. 그 많은 비유 중에서 첫 번째 기록된 것이 씨 뿌리는 비유다. 이 비유를 알고자 할 때 몇 가지 오해를 풀어야 한다.   

첫째 오해, 하늘 나라와 하나님 나라란 단어의 오해다.

비유 내용 그대로 천국이라고 말할 때 천국에 대한 생각을 자꾸 장소적 개념으로만 이해한다. 그래서 여기 천국을 하늘 나라라고 오해한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고 통치하는 인격적 개념, 존재 안에 일어나는 나라의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들어가게 될 천국, 내세의 하나님 나라도 있다. 그 내세의 나라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왜, 마태복음에서 하늘 나라, 천국이라고 기록하였는가? 하나님 나라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유대인들의 사고 방식 때문이다. 마태복음은 복음서를 받는 독자들이 유대인들이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고 부르는 것을 황송하게 생각하였다. 사실 야훼란 이름도 하나님이란 이름을 사용할 수 없어서 빈 칸으로 두었다가 그 이름을 써야 할 자리에 히브리 문자의 자음만 표기하여 읽게 된 것이 야훼이다. 그러니 하나님이란 단어 대신 하늘로 대치한 것이다. 

비유 연구를 할 때 이런 용어의 오해를 풀어야 비유를 제대로 바라보게 된다. 하나님 나라는 인격적 개념이다. 내 안에 일어나는 나라다. 그 예를 보자. 씨를 뿌릴 때 씨가 뿌려진 곳이 4곳이다. 예수님이 직접 마13:18~23에서 씨 뿌리는 비유를 해설하신다. 씨 뿌리는 밭이 장소처럼 생각되지만 사실 장소가 아니다. 인격적 마음의 개념이다.  

① 마13:19 길가에 뿌려진 자, 곧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기는 자요,

② 마13: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넘어지는 자요,

③ 마13: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④ 마13: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결실하도록 깨닫는 자다.  

밭은 인격적인 마음을 뜻하는 사람으로 표현되어 있다. 길가 밭 - 빼앗기는 자요, 돌밭 -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 밭 -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 - 결실하도록 깨닫는 자 등 전부 유형이 다른 ‘자’인 놈 자(者)를 쓰고 있다. 그러니까 씨를 뿌리면 씨를 받아들이는 밭은 사람의 마음인 것이다. 그리고 말씀을 받은 사람들의 유형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마음의 밭 소유자가 3/4이나 되고 열매를 맺는 밭을 가진 옥토의 마음의 소유자가 1/4이 되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이것은 말씀을 뿌리는 자에 대한 격려요 위로의 비유다. 75%는 흙이 없어, 흙이 깊지 않아, 뿌리가 없어 햇볕에 타버려 말라버린 씨가 되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낙심치 말라. 열매 없음을 또 비난치 말라. 75%가 열매 없음을 알아라.

  
둘째 오해, 씨는 말씀이지만 다른 비유에서도 말씀이라는 오해를 한다.

다른 비유에서 씨는 말씀이 아니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씨는 말씀이지만 다른 비유에서도 말씀이라고 뜻하지 않는다. 

마13:24~30의 비유에서 좋은 씨는 마13:38에 천국의 아들들이라고 설명한다. 또 마13:39에서 가라지는 악한 사람을 의미한다. 

또 마13:31에 겨자씨 비유를 보라. 겨자씨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라고 하였다. 여기서 작고 작은 겨자씨는 천국의 처음 상태를 말하는 것이요 말씀이 아니다. 그리고 겨자씨보다 큰 모든 씨, 그 모든 씨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말씀이 아니고 세상에 보이는 것의 힘이다. 그러나 겨자씨는 보이지 않게 시작된 천국의 파워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주님은 완성되어가는 하나님 나라의 과정을 겨자씨로 비유한 것이므로 씨는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운동성, 생명성을 말하는 것이다.
  

셋째 오해, 씨 뿌리는 자가 씨 뿌리는 법을 모른다는 오해를 한다.

우리의 농사법으로 이 비유를 바라보면 정말 웃기는 파종법이다. ‘씨 뿌리는 이가 왜 결실을 거둘 수 없는 길가 밭, 돌밭, 가시떨기 밭에 씨를 던지는가?’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이런 오해를 벗어나려면 예수님 당시의 농사를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나라처럼 밭을 다 갈아엎고 나서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다. 그 밭에 나아가 씨를 먼저 뿌린다. 그러면 땅에 씨가 떨어지는데 농부는 그 다음 쟁기를 몰아서 땅을 갈아엎는다. 그래서 뿌려진 씨가 잘 덮어지기도 하고 또 어떤 씨는 길가 밭에 놓여 있게 되고 또 어떤 씨는 가시떨기 속에 놓여 있게 도니다. 이 비유의 삶의 자리가 우리와 다르다. 그래서 씨는 다양한 밭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회중들과 교회 안에서 말씀을 던지는 설교자는 어떤 유형의 마음 밭의 소유자인지 구별하고 나누어 말씀을 던질 수 없다. 철학자, 농사꾼, 장사치, 정치가, 교수, 탤런트, 체육인 등 그 마음에 외치는 설교는 일방적인 선포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회중들에게 던져주는 것이다. 잘 듣고 지키려는지, 잘 듣지 않고 안지키려는지는 하나님께 맡기고 일방적으로 던지는 선포다. 설교자는 씨 뿌리는 법을 안다. 설교를 작성하여 어떻게 던질지를 연구한다. 그러나 마음 밭을 일일이 구별할 수 없다. 보혜사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여 뒤집을 것이라고 믿고 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몇 가지 오해를 풀고 씨 뿌리는 비유를 바라보면 비유 이해에 도움이 된다.  

오늘 비유의 내용으로 돌아와서 씨가 떨어진 밭은 무엇을 뜻하는가?
말씀을 받는 사람의 마음의 유형을 보여준다.  

1. 길가 밭 같은 마음

길가 밭은 씨를 뿌릴 때 새들이 와서 먹어버린 마음이다.(마13:4) 길가 밭이란 사람이 다녀서 딱딱하게 된 밭이다. 이 밭에 뿌려진 씨는 싹이 날 수도 없다. 땅에 묻히지 못하고 한 알 그대로 있게 되고 새들이 그 씨를 먹어버린다. 이 마음의 소유자들은 말씀이 떨어져도 듣고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다.(마13:19) 말씀이 아무리 좋아도 길가 밭은 말씀이 들리지도 않고 들려와도 깨달음이 전혀 없다. 씨를 먹어버린 새는 마13:19에서 ‘악한 자’라 하였으니 말씀 자체를 빼앗아가는 마음 밭이다. 악한 자, 마귀가 가로채는 마음 밭, 어떤 변화의 조짐도 불가능한 것이다.  

2. 돌밭과 같은 마음

마13:5을 보면 돌밭은 흙이 얕다. 흙이 깊지 아니하여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 타 버려 뿌리가 없으므로 말라진 마음이다. 이 말은 말씀이 떨어졌고 그 말씀을 즉시 기쁨으로 받지만 견디지를 못하는 마음이다. 말씀이 좋아서 그 말씀대로 살려고 하지만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난다. 말씀대로 순종하려 하면 비방하고 손가락질 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 등이 공격하고 에워싼다. 그래서 마13:21의 해설처럼 곧 넘어지는 자다. 

돌밭은 말씀을 즉시 기쁨으로 받으니 쉽게 은혜를 받는 마음이다. 그런데 환난, 박해 앞에서 뿌리가 생기지 못한 흙이 얕은 마음 밭이니 곧 넘어지는데 명수다. 부흥회에서 은혜를 받고 주일 예배 때 은혜를 받고 “아멘 아멘” 하지만 집에 가서 넘어진다. 십일조 말씀을 깨닫고 “아멘 아멘” 했지만 남편이 반대하고 시부모가 반대하고 결국 아무 것도 순종하지 못한다. 포기하고 내던지고 만다.
  

3. 가시떨기 밭 같은 마음

마13:7을 보면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라고 하였다. 마13:22에서 그 해설을 보면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를 일컫는 것이다. 말씀이 정해주는 가치관을 지키려 하지만 그 말씀이 세상 염려, 재물 유혹 즉 세상적인 가치관에 눌려 자라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 염려, 이것은 마음의 평안을 다 빼앗고 주님이 없는 쓴뿌리 마음, 가시떨기 뿌리에 엉켜 살게 한다. 염려 때문에 감사도 못하고 신실하지도 못하고 아무 것도 못한다. 그리고 재물의 유혹, 말씀에 사로잡혀 살려 하지만 돈 몇 푼의 유혹 앞에서 그리스도인다움을 버린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판 에서도 물질 유혹을 이기지 못한 사람이다. 죽은 사자의 몸에서 건져 낸 단꿀에 취하여 나실인의 법도를 내던진 삼손도 물질 유혹을 이기지 못한 사람이다. 

오늘 이 시대도 물질 때문에 신앙의 싹을 틔우지 못하고 말라버린 사람들도 많다. 모든 가능성을 다 가지고 좋은 조건을 다 가지고도 아무 것도 못한다. 참으로 가련하고 불쌍한 마음이다. 교회가 무능한 것은 말씀을 듣고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열매 맺지 못하는 마음 밭과 달리 단 하나 열매 맺는 마음의 밭이 있다. 4. 씨 뿌리는 이를 기쁘게 한 밭! 그 밭은 좋은 땅의 마음이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마13:8에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고 한다. 좋은 땅이란 어떤 마음인가? 마13:23의 설명대로 말씀을 듣고 깨닫고 결실하는 자다. 여기서 깨닫는 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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