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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옥 속의 찬양 (행 16: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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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속의 찬양 (행 16:25-34)
  

들어가는 말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바울과 실라’라는 전도자가 ‘빌립보’라는 도시에서 겪은 사건입니다 . 
빌립보는 오늘날 그리스 북동부지역에 있는 도시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점치는 소녀’에게 붙어 있는 귀신을 쫒아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델포이 신전의 무녀들이 아폴로의 신탁을 받아 인간의 운명을 알려줄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귀신을 쫒아냈으니까, 점괘가 나와야 점을 치지요? 
점치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습니다. 

그러니까 돈을 벌수가 없어요. 
그래서 ‘점치는 소녀’를 고용해서 재미를 톡톡히 보던 주인이 바울과 실라를 고소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귀신도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한 인간의 미래를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사탄도 타락한 천사이기 때문에 악령에 사로잡히면 인간의 미래를 어느 정도 알아맞힙니다. 
무조건 속이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면 무당과 점쟁이 속에서 역사하는 악령과 기독교의 성령은 어떤 점에서 다릅니까?
무당과 점쟁이 속에서 역사하는 악령은 사람을 옭아맵니다. 
자꾸만 구속해요. 
점치는 것 좋아하는 사람은 이사 한번 제대로 못합니다. 택일해야 돼요! 
집안에 못 하나 자기 마음대로 못 박습니다. 방향을 봐야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도 마음대로 못합니다. 궁합을 봐야합니다. 

무슨 귀신이 그렇게 삐치기를 잘 하는지.......
무당집에 갔다가 귀신을 달래는 굿 한번 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합니다. 
두려움을 줘요! 공포를 조성합니다.
“문제가 심각해. 이번에 굿을 하지 않으면 큰 아들에게 재앙이 있겠어.......” 
“집안에 사십 못 넘기고 죽은 사람 있지? 그 귀신이 벼르고 있어.”
이렇게 한마디만 해놓으면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넘길 부모는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일수 돈이라도 꿔서 굿을 해야 마음이 놓이지.......

이렇게 구속해서 사망으로 끌고 갑니다. 따라서 악령의 마지막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에게 자유를 줍니다.
죄의 종노릇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를 줍니다. 
사탄의 권세에서부터 자유를 줍니다. 
지옥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를 줍니다. 
결국 성령은 우리에게 영생을 줍니다.

바울과 실라가 겪은 상황

바울과 실라는 고소를 당하여 곤욕을 치르게 됩니다.
22절 “.......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하여”
24절 “.......그들을 깊은 감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바울과 실라는 나무 막대기로(with wooden whips) 매를 맞습니다. 
매를 맞은 몸은 터지고 욱신거립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 깊은 곳에 갇힙니다.
바울 사도는 후에 이때의 상황을 회고하면서 데전 2:2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수년 전 그리스의 빌립보를 방문할 기회가 있어, 빌립보 감옥에 가 봤습니다. 
그곳은 감옥이라기보다는 토굴이었습니다. 
죄수들의 인권을 고려하여 만든 오늘날의 감옥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산 중턱에 토굴을 깊이 파고 작은 입구에는 철문을 해 달았습니다. 
어둡고, 음습하고, 곰팡이 냄새가 나는 그런 죽음의 장소였습니다.
발은 든든한 차꼬에 채였어요.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그곳에서 찬송을 했어요.

25절 “한 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어디를 보아도 찬송할 수 없습니다. 
뭐가 좋아 찬송하겠어요? 
견디다 못해서 미쳐 광기를 부린다면 이해가 되지만, 제정신으로 찬송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찬송했다고 했습니다. 

어떤 기적이 일어나서 매 맞는 부분이 순식간에 아물었다거나, 
어둡고 음습하고 곰팡이 냄새가 나는 그 자리가 꽃향기 풍기는 정원이 되었다거나,
차꼬가 풀려 마음대로 안락한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는 내용의 보고도 없습니다.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그곳에서 찬송을 했습니다.

1. 어떻게 바울과 실라는 이런 상황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을까요?

고통스러운 나머지 기도는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어떻게 찬송을 할 수 있을까요?
바울과 실라가 찬송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1) 바울과 실라는 ‘이 고난은 내 삶에 유익이 된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롬8: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선’이란 영어로 ‘good’입니다. 
‘좋은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해되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지만, 이 고난의 상황은 내 삶에 좋은 것이 된다.’는 믿음이 기쁨을 주었고, 찬송하게 했습니다.

<무릎 꿇는 낙타처럼>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즉, 하루를 보내고 일을 끝마칠 시간이 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길 기다리며, 또 새날이 시작되면 또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주인은 낙타의 사정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타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짐을 얹어줍니다. 낙타는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마다하지 않습니다.그 짐은 낙타 자신의 존재가치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일을 다 이룬 후에는 주인의 손에 의해 내려질 짐이기 때문입니다.

낙타만이 주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들에게도 주인이 있습니다.”  
우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익이 되게 할 것을 믿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찬송할 수 있습니다.

2) 바울과 실라는 “이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분명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받아야 할 세 가지 세례가 있습니다.
① 물세례 -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믿을 때 받는 것이지요.
② 성령세례 -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받아야만 하는 것이지요.
③ 고난세례 - 이 고난은 우리가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하여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시면 성도들의 삶이 마냥 황홀한 장미 빛으로만 그려져 있는 게 아닙니다. 

거기에는 고난의 가치관이 있습니다.
고후1:7절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고후4:17절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여기 보십시오! 
환난과 영광을 이렇게 비교했습니다. 
환난이란 잠시 받는 것, 환난 뒤에 받는 영광이란 영원한 것! 
환난이란 경한 것, 환난 뒤에 받는 영광이란 지극히 크고 중한 것!
이 고난은 우리를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기에 고난 중에도 찬송할 수 있습니다. 

3) 바울과 실라는 장차 받을 상급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행5:41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 나니라.”
롬8:18절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계2:10절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바울과 실라는 장차 받을 상급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가졌기 때문에 환난 중에서도 찬송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본문을 묵상할 때 주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아들아, 너는 바울과 실라가 겪었던 고통을 겪는다면 그들처럼 찬송할 수 있겠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을 때에 너는 지금처럼 미소를 가득 머금은 환한 표정을 지을 수 있겠니?”
크게 도전이 되는 질문이었습니다.
저의 속살을 드러내는 그런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께 동일한 질문을 드린다면 어떻게 대답하실 겁니까? 

복음성가- 하나님 한 번도 나를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 없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2. 감사와 찬송이 일으킨 변화를 보십시오.

본문에는 감사와 찬송이 일으킨 변화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26절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30절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까 하거늘”
찬양을 했더니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이 내용을 잘 보아야합니다.
이것이 오늘의 메시지입니다. 

찬양을 했더니 옥 터가 움직였습니다.
찬양을 했더니 옥문이 열렸습니다.
찬양을 했더니 매인 것이 다 벗겨졌습니다.
찬양을 했더니 간수가 회개하고 그 집이 구원받았습니다.
찬양의 역사가 이렇게 놀라워요! 

이런 역사는 과거에만 일어났습니까? 아닙니다.
오늘도 찬양하면 근심의 고리가 끊어집니다.
오늘도 찬양하면 기도의 문이 열립니다.
오늘도 찬양하면 사탄의 결박에서 벗어납니다.
오늘도 찬양하면 기쁨과 감사의 샘이 터집니다. 
오늘도 찬양하면 문제가 풀어집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찬송할 수 있을 때 힘껏 정성껏 뜨겁게 찬양하기 바랍니다. 
후두암으로 성대 제거 수술을 받고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목소리를 잃고 나니까 마음껏 찬송을 한번 불러보는 게 소원입니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우리도 목감기가 걸려 목이 잠기고 소리를 낼 수 없을 때 얼마나 답답합니까? 
그렇습니다. 

찬송하고 싶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찬송할 수 없어요. 
찬송하고 싶어도 건강이 허락하지 않으면 찬송할 수 없어요.
저는 건강과 목소리 내는 것은 별로 상관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목소리 내는 데 무슨 힘이 필요할까?’
그런데 알고 보니 건강을 잃으니까 목소리를 못 냅디다.
언젠가 여러분께 말씀드렸습니다.

이집트 ‘카이로 대학’에서 유학하던 분이었는데 그만 위암이 발병했습니다.
서울에 돌아와 진료를 받았습니다.
거의 마지막 순간에 저와 한번 통화하고 싶다고 하여 옆에 있는 환우가 핸드폰을 빌려 줘서 통화가 이뤄졌습니다.
“목---사----님---!” 한 음절씩 숨을 한껏 몰아쉬면서 이어 갔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이 한 마디 하기를 20여분이 걸렸습니다.
저는 그 때 깊이 깨달았습니다.
‘건강하여 말을 자유롭게 하는 것도 큰 축복이구나.’
‘당연하게 여겨져 잊기 쉬운 일이지만 또 잊고 살아왔지만 목소리 주심을 감사하고, 건강 주심을 감사하며, 찬송할 수 있을 때 뜨겁게 찬양을 올려 드려야 하겠구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찬송할 수 있을 때 힘껏 정성껏 뜨겁게 찬양하기 바랍니다. 
저는 찬송을 늘어 터지게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생각은 다른 데 가 있고 건성으로 부르는 찬양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생각을 집중하여 찬양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25절 “한 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고 했습니다.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생각을 집중하여 찬송했다는 얘기지요.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지하 감옥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양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의 정황이 감옥 같이 굳게 닫히고 우리를 질식시켜 버릴 것처럼 옥죄어 갈 때 주님께 기도하고 찬양합시다. 
바울과 실라는 쇠고랑을 찬 채 기도하며 찬양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손과 발이 묶인 듯 무력한 상황에 빠져들지라도 주님께 기도하고 찬양합시다.
그래서 땅이 흔들리고 감옥이 움직이는 체험을 합시다.
옥문이 열리고 쇠고랑이 풀어지는 경험을 합시다.
기도와 찬양의 생생한 참 능력을 맛보도록 합시다. 

19세기 영국교회의 목회자였던 윌리암 로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행복과 온전함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의 말은 당신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하라고 하는 말이 될 것입니다. 당신에게 재앙과 같이 느껴지는 일도 주님을 찬양하는 동안에 축복으로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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