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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막달라 마리아 (눅 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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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마리아 (눅 8:1-3)


[그 뒤에 예수께서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그 기쁜 소식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가 예수와 동행하였다. 그리고 악령과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몇몇 여자들도 동행하였는데, 일곱 귀신이 떨어져 나간 막달라라고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인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그 밖에 여러 다른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의 일행을 섬겼다.]

• 덧씌워진 이미지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노량진 수몰 사고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태안 캠프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도 주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삼복더위의 한 복판을 지나면서 마음을 더욱 다잡아 나가야 하겠습니다. 내일은 막달라 마리아의 축일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막달라 출신의 마리아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옛날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이 참 흔한 이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성경에도 많은 마리아가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베다니의 마리아, 마가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 등입니다. 

다들 중요한 분들이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좀 각별합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그녀를 ‘일곱 귀신이 떨어져 나간’(눅8:2, 막16:9)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곱 귀신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좀 따져볼 필요가 있는데,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막달라 마리아를 행실에 좀 문제가 있었던 여인으로 간주합니다. 하지만 예수 운동에 있어서 막달라 마리아만큼 중요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예수와 만난 뒤 한 순간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골고다에서 제자들이 모두 줄행랑 쳐버렸을 때에도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켰고, 예수의 시신이 안장되는 광경도 지켜보았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 그 무덤가에 맨 먼저 당도한 것도 그녀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맨 먼저 당신을 드러내 보이셨고 부활의 첫 번째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

당시의 유대사회는 가부장적인 질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감안할 때, 복음서의 저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마리아가 부활의 첫 증인이라고 보도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각인된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 들린 자’ 혹은 ‘창녀’입니다. 그 여인이 ‘창녀’였다는 말은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여성의 모든 부정적인 이미지를 막달라 마리아에게 덧씌우곤 합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람들은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도,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깨뜨리고 그것을 예수의 머리에 부은 여인도 막달라 마리아라고 간주합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향유를 부은 사람을 ‘한 여자’라고 말하고 있고, 요한복음은 베다니의 마리아라고 말하는 데도 말입니다. 누가도 이 사건을 보도하고 있는데 그 여인은 그 동네에 있던 ‘죄인인 한 여자’(눅7:37)로 지칭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즉시 이 여인을 막달라 마리아라고 단정합니다. 어떤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죄인이라면 마땅히 막달라 마리아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인의 죄라면 그건 당연히 성적인 일탈일 거라고 사람들은 확신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보는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에도 막달라 마리아는 예루살렘의 유명한 창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운동에 동참하게 되자 위기의식을 느낀 종교 권력자들은 예수를 도덕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마리아를 보냅니다. 그들은 마리아에게 예수를 유혹해서 무너뜨리면 그 지긋지긋한 창녀굴에서 빼내 로마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예수를 유혹하기는커녕 오히려 예수의 거룩하심 앞에 무너지고 맙니다. 제작자들의 의도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대중들은 이 뮤지컬을 통해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였다는 편견을 강화하게 될 것입니다.

• 여성으로 산다는 것

유대사회에서 여성들의 인권은 존중되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은 공적인 삶에서 배제 당하곤 했습니다. 여성들은 가정에만 머물러야 했습니다. 자식을 낳지 못하면 하나님이 내리신 벌이라고 여겼습니다. 남자들은 회당 예배 때마다 "저를 여자로 짓지 않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여성들은 토라를 공부할 수 없었고, 가르칠 수도 없습니다. 회당에서도 한쪽 구석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야 했고, 기도회를 개최하는 데 필요한 최소인원인 열 사람을 헤아릴 때도 낄 수 없었습니다. 식사 때 가족을 대표하여 감사기도를 올릴 수도 없었습니다. 여성들은 거짓말쟁이로 여겨졌기 때문에 법정에서 증인이 될 수도 없었습니다.

여성들에 대한 종교적 권리 박탈은 사회적인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부유한 집안의 처녀들은 결혼 때까지 완전히 격리되었고, 결혼 후에는 베일을 쓰고 다녀야 했습니다. 가족 이외의 남자들에게 말을 건넬 수도 없었습니다. 여성들은 사소한 일에 몰두하기 때문에 배울 것이 없다고 여겼기에 남자들은 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또 여성들은 성적인 욕망에 넘치는 요부로 간주되었고, 여성들의 목소리 머리카락 다리 등은 아주 위험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사실 여성들의 인권이 그런대로 존중되기 시작한 것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조선시대에도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 허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시부모를 잘 섬기지 못하는 것’,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 ‘부정한 행위’, ‘질투’, ‘나병, 간질 등의 불치병’, ‘말이 많은 것’, ‘훔치는 것’이 그것입니다. 훔치는 버릇 말고는 너무나 자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많은 항목들입니다. 불치병에 걸리면 쫓겨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기가 막힙니다.

예수 운동의 가장 큰 특색 가운데 하나는 여성 제자들을 두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그 자체로 추문거리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성들의 동행을 만류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여러 여인들이 동행하며 예수 일행을 섬겼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당신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경청하는 베다니의 마리아를 칭찬하시기도 했고,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청하기도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의 서신들에도 여성들의 이름이 자주 등장합니다. 바울은 브리스길라, 뵈뵈 등의 여성을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혹은 동역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은혜의 시간이 지나가면서 교회가 제도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여성들의 지도력은 약화되거나 차단되었고, 남성 중심적인 교회질서가 수립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여성들의 이야기는 교회사의 한 구석으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경의 갈피 속에 담겨 있는 ‘감취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집중된 그런 편견도 남성 교권주의자들이 강화한 것이었습니다. 

• 막달라

이제 잠시 막달라 마리아에게 논의를 집중해 보겠습니다. 그는 ‘일곱 귀신 들렸던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마치 그녀의 택호처럼 사용되는 ‘막달라’는 갈릴리 호수의 서안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주민들은 주로 직물업과 염색업에 종사했고, 갈릴리에서 잡은 물고기를 염장 처리하는 공장도 그곳에 있었다 합니다. 그런데 그 마을은 비극의 땅이기도 했습니다. 로마군대의 주둔지였기 때문입니다. 로마 군인들은 종종 정복당한 민족들에게 치욕감을 안겨주었고, 그 때문에 분노한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항거하면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잔인하게 진압하곤 했습니다. 갈릴리 여러 마을이 로마에 의해 참혹하게 유린당하곤 했는데, 막달라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마리아는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입니다. 어쩌면 가까운 일가붙이들이 로마군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하는 광경을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이화대학의 백소영 교수는 어쩌면 막달라 마리아가 경험했을 지도 모를 현실을 상상 속에서 그려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식을 듣고 가게로 뛰어왔을 때는 이미 제가 어쩔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기억하기도, 다시 말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에요. 하지만 눈을 감으면, 아니 눈을 뜨고 있어도 가게에 갇혀 로마 군인들이 지른 불에 스러져가던 일곱 사람, 제 가장 소중한 가족과 친구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보이고, 그들의 비명이 귓가에서 날카롭게 울렸습니다. 

어떻게 제정신일 수 있겠어요? 미처 날뛰는 저를 보며 사람들은 죽은 일곱 원혼이 들어가 저를 괴롭히는 것이라 했죠. 하지만 틀렸어요. 제 가족이, 친구들이 저를 괴롭힐 리 있나요? 그게 귀신이었는지, 제 안의 분노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분명 그들의 영혼은 아니었어요. 다만 전 분노와 두려움에 휩싸여 미친 여자처럼 거리를 헤매었죠. 제 눈에는 세상이 온통 불에 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군복을 입은 사람들은 다 그때 그 자리에서 히죽거리던 로마 군인들 같이 보였고요."(백소영, <인터뷰 on 예수>, 대한기독교서회, p. 174)

상상력을 동원한 것이기는 하지만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이런 일은 로마의 식민지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백소영 교수는 막달라 마리아를 괴롭혔던 ‘일곱 귀신’을 마음속에 일고 있는 분노와 두려움이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 내면의 상처와 고통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치유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부둥켜안는 예수, 마치 고통에 몸부림치며 땅바닥을 기듯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땅 바닥을 기어 마침내 하늘로 비상하도록 해주는 예수, 그분과의 만남이 막달라 마리아의 삶을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고통의 심연 속에서 몸부림치는 마리아를 보고 사람들은 일곱 귀신이 들렸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예수와 더불어 ‘일어선 사람’, 즉 부활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 단순한 조력자일 뿐인가?

이제 마지막으로 숙고해 보아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누가는 예수님께서 마을과 마을을 돌아다니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그 기쁜 소식을 전할 때, 열 두 제자 이외에도 여성 제자들 몇이 동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악령과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몇몇 여자들’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막달라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인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습니다. 

그 여인들은 예수와 동행하며 어떤 역할을 맡았을까요? 누가는 아주 간단하게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의 일행을 섬겼다"고 말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남성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주기 위해 따라 다닌 것처럼 오해하기 쉬운 구절입니다. 하지만 이 여인들은 가정에만 국한된 여성들의 역할을 거부하고 하나님 나라에 능동적으로 동참한 사람들로 기억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희생자 프레임에 갇혀 지내기보다는 사회적 통념에 도전하면서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기 위해 헌신한 일꾼들입니다.

앞에서 우리는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한 여자’의 이야기가 누가복음에 와서 ‘죄인인 여자’로 바뀌었다는 사실에 주목한 바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예수를 따라나선 ‘여자들’에 대한 남성들의 불편한 심기가 그대로 반영된 것(김호경, <여자, 성서 밖으로 나오다>, 대한기독교서회, p. 159)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성을 믿음의 좋은 본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이게 진실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런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던 여성들은 ‘악령과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이들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들에게 추문거리가 아닙니다. 그들은 말 못할 고통을 겪었기에 그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사람은 똑똑한 이들이 아니라 마음 따뜻한 사람들입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고전8:1b).

막달라 마리아를 기억하는 이때에 우리 자신의 시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저마다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을 함부로 비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그들에게 함부로 ‘찌지’를 붙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누군가를 향해 손을 내밀기보다는 고슴도치처럼 도사린 채 다가오는 사람들을 찌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막달라 마리아는 고통스러운 기억과 상처에 짓눌린 채 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만나 하나님 나라의 전사가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그를 괴롭혔던 모든 고통과 괴로움, 그리고 상처의 기억을 그는 다른 이들의 아픈 상처를 싸매주는 붕대로 삼았습니다. 지금 울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사방이 가로막혀 숨조차 쉬기 어려운 이들이 있습니까? 잊지 마십시오. 지금이야말로 주님이 가장 가까이 계신 시간입니다. 지금 별 일 없이 행복한 이들이 있습니까? 그 행복은 다른 이들에게 전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임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쉽지는 않습니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찬송 시인의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삶을 자꾸만 하나님께 봉헌해야 합니다. 상처와 고통의 기억을 오히려 상처를 싸매는 붕대로 만들었던 막달라 마리아처럼 우리 삶도 주님 안에서 깊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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