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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권하노니 (롬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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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권하노니 (롬 12:1-2)


카멜레온은 자유자제로 주위의 환경에 맞춰 자기 몸 색깔을 바꿉니다. 청색이면 청색, 녹색이면 녹색, 황색이면 황색으로 변화를 시킵니다. 그래서 곤충학자들이 연구하면서 무지개 색 앞에서는 카멜레온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를 실험했습니다. 무지개 색 앞에서의 이 카멜레온은 자기의 몸 색깔을 무지개 색에 맞추고자 몸부림을 치는 가운데 피부가 터져 죽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삶도 내 육체가 요구하는 대로 다 따라 행하면 카멜레온처럼 파멸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소돔고모라의 유황불의 심판이 모두 카멜레온처럼 육체의 욕망에 맞춰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인생의 특징은 연습할 기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이 본선입니다. 그래서 일생(一生)이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 한 번의 삶뿐입니다. 또한 인생은 빨리 지나갑니다. 
어느 분이 서울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천안까지 가는데, 처음으로 타보는 고속열차인지라 자리를 찾느라 한참을 헤매다가 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그때 안내방송에서 천안역에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시계를 보니 22분이 걸렸는데, 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시내 목적지를 찾아가는데 30분이 걸렸다고 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마치 고속열차처럼 빠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벌써 이틀 후면 10월입니다. 

이렇게 빨리지나가는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면 후회 없는 보람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본문 1절에“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라고 하시면서 세상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알려 주셨습니다.

1. 하나님이 권하신 삶은 무엇입니까?

첫째,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2절에“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하셨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이 세대는 어떤 세대이기에 본받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오늘의 세대를 가리켜 모두가 말세지 말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종말에 나타날 사회풍조에 대해 마태복음 24:38~39에 말씀하시기를“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하셨습니다.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제도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육신의 욕망을 채우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 육체의 욕망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5:16~17 말씀에“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욕심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이 세대의 특징은, 자유라는 미명하에 내 몸을 방종에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발달과 선진이란 미명하에 물질주의 사상으로 가득 찬 세상입니다. 물질 제일주의의 위험성에 대해 하나님은 디모데전서 6:7~10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하셨습니다. 

또한 개성이라는 미명하에 자기중심적인 개인주의 즉 이기심이 가득한 세대입니다. 타락된 모든 죄악은 이러한 사고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이 세상입니다. 그래서“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하셨습니다. 본받지 말라는 것은“유행을 따라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유행이라 하여 다 아름답고,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어떤 유행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파멸로 끌고 가는 유행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 거대한 유행의 탁류 앞에 서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주5일제 근무입니다. 이 제도는 삶의 질을 높이는 좋은 제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에게는 유혹의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주 5일제가 있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축복의 증거입니다. 그만큼 넉넉하다는 증거입니다. 이제는 5일만 일을 해도 넉넉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민족이 5천년 역사 가운데 언제 이러한 날이 언제 있었습니까?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그만큼 많은 복을 받은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인간의 본능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증거가 유럽교회입니다. 그토록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며 세계 선교에 앞장섰던 영국이 지금은 복음화 율이 2% 정도라고 합니다. 시대의 유행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유행은 거부해야 합니다.

둘째,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2절에“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고 하셨습니다.“변화를 받으라.”는 것은“다른 방향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방향전환을 하라는 것입니다. 왜 방향전환을 해야 할까요? 그 방향은 멸망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방향은 실패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방향은 불행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방향은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이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지만 때로는 미물보다 더 미련할 때가 있습니다. 곤충인 개미는 비가 올 때쯤 되면 그 징조를 알고 안전한 곳으로 부지런히 이사를 갑니다. 거미도 큰 비가 올 것 같으면 어디론가 안전한 곳으로 대피를 합니다. 몇 년 전 동서남 아시아의 지진참사 때에 두꺼비나 코끼리가 스나미를 미리 감지하고 산곡대기로 피신한 사실이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래서 코끼리를 타고 놀던 관광객이 화를 면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6:2~3에“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대를 분별하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어야 하겠습니다. 

라인홀드 니버라는 사람이 이러한 기도를 했습니다.“하나님이여, 나에게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정을 주시고, 내 힘으로 고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그리고 이 두 가지 차이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낡고 더러운 옷처럼 벗어 버려야할 구습은 없습니까? 그것을 깨닫는 지혜와, 깨달았다면 과감하게 방향전환 즉 고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더러운 세상의 욕망을 쫓던 방향에서 의로운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아 하겠습니다. 오직 내 자신만을 생각하던 자리에서 전환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을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던 자리에서 절대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2. 하나님이 권하신 삶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의 몸을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본문 1절에“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하셨습니다. 

사람의 몸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엇엔가 드리며 살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어두움의 세력인 악한 영들입니다. 열왕기상 18:21에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고 했습니다. 빛과 어두움 사이에서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세월이 너무 빠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귀는 아담과 하와처럼 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눈은 남의 허물보다 내 자신의 부족함을 살피는 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매사에 믿음의 눈으로 가능성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입술은 남의 험담에 너무 익숙합니다. 그러나 세속을 본받지 아니한 입술은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입술은 부정적인 말에 너무도 익숙합니다. 그러나 세속을 본받지 아니한 입술은 항상 긍정적인 소망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옛말에“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이 말을 고쳐서“오르지 못할 나무는 사다리 놓고 올라가면 된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술은 생명을 살리는 입술이 되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입술이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철학자요 수학자인 화이트헤드가 한겨울 흰 눈이 많이 오는 거리를 걷다가 미끄러져 넘어진 노인을 쫓아가서 일으켜 준적이 있었습니다. 그 노인이 그에게“고맙습니다. 선생님은 예수를 믿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는“아닙니다.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라고 대답 했다. 그러자 노인은 정색을 하며“아니 어쩌자고 나이 그렇게 든 분이 예수를 믿지 않소. 나는 미끄러져 죽어도 주님께 가니까 걱정이 없지만 선생님은 어떻게 하려고 예수를 믿지 않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 뒤 화이트헤드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이고,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도록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실 몫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디모데후서 4:2에 말씀하시기를“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하셨습니다. 

우리의 옛 손은 움켜쥐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의 움켜쥔 손은 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누가복음 6:38)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성경을 가르치면서“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미워하면 안 됩니다. 혹 아무도 미워하는 사람이 없는 분은 손을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한참 침묵이 흘렀습니다. “누구도 미워하는 사람이 없는 분이 이렇게도 없습니까?” 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때 한 할아버지가 손을 들고 하는 말이“전에는 미워한 사람이 있긴 있었는디 다 죽었어.”라고 했습니다. 미워하던 사람이 죽고 없어서 미워하려 해도 미워하지 못하는 그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하기에 미워할 사람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은 시간을 아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이 세대의 욕망을 쫓아 살아가는 삶은 모두가 헛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부와 명예와 권세와 지혜를 모두 갖추고 누린 사람은 솔로몬입니다. 그런 그가 말하기를“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도서 1:2)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것과 육신의 영광에 초점이 맞춰진 삶의 결국은 다 헛된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을 꾸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꿈을 꾸어야 합니다. 

본문 1절에“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산 제물 같은 영적 예배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영적예배란 하나님께 자신의 몸으로 매일 행하는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께 정교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고, 장엄한 의식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성도다운 삶인 것입니다. 

영국의 주경 신학자 윌리암 바클레이는 진정한 산제사와 같은 예배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이렇게 말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교회에 하나님을 예배하러 간다.’그러나 그는 또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공장에, 상점에, 사무실에, 학교에, 차고에, 광산에, 조선소에, 밭에, 외양간에, 뜰에 하나님을 예배하러 간다.’라고”

산제사와 영적예배는 이처럼 하나님께 매일 매일의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머무는 곳에는 그리스도의 빛이 비취게 되는 것입니다. 

산제사와 같은 성도의 영적 예배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14~16에 말씀하시기를“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하셨습니다. 성도의 변화된 선한 삶이 세상의 빛이요, 세상의 소금이라는 것입니다. 

흔히“예수쟁이 말 못하는 사람 없다.”라고 합니다.“쟁이”라는 말은“전문가”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말 잘하는 것이 말 못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좋은 말입니다. 그렇다면 불신자들이“예수쟁이들 말 못하는 사람 없다.”라는 말을 좋은 뜻으로 한 말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신앙생활에 열심이고, 말은 그럴 듯한데 행동의 뒷받침이 안 된다는 것 아닙니까? 
이러한 성도다운 변화된 삶은 인간적인 노력이나 다짐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모두가 성령의 열매이기에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힘입는 비결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곳에 성령님이 오셔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3. 왜 우리는 이렇게 해야만 합니까?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본문 2절에 말씀하시기를“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은 성도의 본문입니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은 세상을 이기는 성도의 지혜입니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는 복된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카네기 강철회사의 후계자는 찰스 스웹(Charles Swab)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밖에 못 나온 사람으로 이 회사의 잡역부로 취직을 했습니다. 맡은 일은 잡역부였지만 그 마음속에는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성실함과 꿈 그리고 주인 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는 매일 매일 공장의 구석구석을 정리하고 깨끗이 청소를 했습니다. 마치 자기 집처럼 자기가 공장의 주인인 것처럼 그렇게 정리정돈을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가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찰스는 다른 사람들의 비난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히 공장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청소했습니다. 그러한 그의 행동과 태도는 결국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성실함을 인정받아 잡역부에서 정식 사원으로 발탁되었습니다. 

정식 사원이 되고 난 후에도 이전과 똑같이 열심과 주인 의식을 가지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의 행동은 곧 소문이 났고 이에 감동한 카네기 사장은 그를 비서로 채용했습니다. 카네기 사장의 비서가 된 그는 마치 사장 입의 혀와 같이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는“나는 이 회사의 주인으로서 5리를 가라하면 10리를 가고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을 주는 심정으로 일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성실히 일했습니다. 이러한 그를 지켜본 본 카네기 사장은 얼마나 감동했던지 전 사원을 모아놓고 당시 2000~3000달러의 연봉을 받던 그에게 100만 달러(10억)의 보너스를 주었습니다. 카네기 사장은 스웹이 품고 있는 꿈과 주인 의식은 그 어떤 값으로도 계산할 수 없는 것이라고 칭찬하였습니다.

강철 왕 카네기가 연로하여 은퇴할 때가 되자 사원들은 이 거대한 회사의 후계자는 과연 누가 될지에 대해 매우 궁금히 여겼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명문대 출신이 될까? 아니면 어느 명문대가의 자녀가 후계자로 발탁될 것일까? 이래저래 생각하며 모두들 궁금해 했습니다. 그러나 카네기 사장은 잡역부에서 자신의 비서가 된 찰스 스웹을 후계자로 지명했습니다. 이것은 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스웹 자신도 매우 당황하였습니다. 카네기 사장은 말하기를 학력과 지식이 높은 사람이 회사를 이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대한 사랑과 주인의식 그리고 꿈을 가진 사람만이 이 회사를 잘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꿈과 주인의식을 가지고 충성스럽게 일하는 찰스 스웹이야 말로 회사를 잘 이끌어 갈 주인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찰스 스웹의 경우에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주인의 마음이 흡족하도록 살아가는 삶, 주인의 마음에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영광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므로 이러한 것은 곧 하나님의 마음입니다.“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역대하 16:9)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살아가면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삶이되겠습니까? 그 해답이 오늘 봉독한 본문입니다.“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1~2)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삶의 목적이며 우리의 삶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 가셨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성령님이 오셔서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새롭게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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