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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재앙을 거둔 기도 (출 3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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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을 거둔 기도
출애급기 32:1-14

포퓰리즘 (곧 일반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형태)에 빠진 정치지도자를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요즘은 이런 포퓰리즘에 빠진 종교지도자들도 많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자신들이 인기 몰이를 하다가 보니까, 신앙적인 소신과 복음적인 원리보다는 대중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을 만들어 갑니다. 그래서 아론처럼 자기의 리더쉽을 유지하는데 필요하면, 언제든지 황금송아지 하나 만들고, 돈이 필요하면 황금 돼지를 만드는 종교지도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담대하게 주장하기를, ‘자기가 만든 황금송아지나 황금 돼지를 가르키면서, 여기에 하나님이 있다, 여기가 문제를 해결 받는 유일한 자리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유념하기 바랍니다. 사람이 만든 황금송아지와 황금돼지를 사랑하고 섬기며, 그 앞에서 아무리 뛰논다고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은 우상숭배의 죄를 짓는 것이란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죄란 윤리뿐만 아니라 하나님관에 있어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명한 길, 곧 복음의 진리, 생명의 길에서 전적으로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 출 32:1-14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지도자 모세가 야훼께 드린 기도인, 지은 죄 때문에 받아야 할 재앙을 거두게 한 기도,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린 기도에 대하여 몇 가지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본문 10절에서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라고 하신 야훼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성경말씀을 보면 야훼께서는 당신이 택하여 세운 지도자 모세를 통하여 이집트 땅에서 사백년 동안을 파라오의 노예로 고생을 하고 있는 히브리 민족을, 파라오의 압제로부터 해방을 얻게 하고, 이집트 땅에서 나오도록 구원을 행하시고, 그들을 야훼 하나님 곧 야훼의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런데 지도자 모세가 야훼로부터 율법 곧 언약을 바딕시 위하여 시내산에 올라가 40일간 자리를 비운 동안에, 지도자의 모습을 보지 못한 이스라엘은 불안해서 아론을 협박하여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경배하고 뛰놀면서, 야훼를 조롱하고 비웃으며, 우상숭배에 다시 빠지고 말았습니다. 형편이 갑자기 이렇게 돌변하자, 야훼 하나님의 마음도 돌변했습니다. 야훼께서 마음이 변하여 ‘내 백성’이라고 부르던,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우상숭배하고 야훼를 조롱한 이스라엘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지금 아주 두려운 말씀을 합니다. 본문 9-10절에서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기를, ‘나는 이 백성을 살펴보았다. 이 얼마나 고집이 센 백성이냐?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말아라. 내가 노하였다. 내가 그들을 쳐서 완전히 없애 버리겠다. 그러나 너는, 내가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하는 불신앙적인 모습을 보고 야훼께서 지도자 모세에게 분명하게 말하기를,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말아라.’라고 합니다. 야훼께서 본문 10절에서 모세에게 한,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너희가 네 맘대로 했느냐? 나도 내 맘대로 하겠다.(Now let Me alone)’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망가진 것처럼, 하나님께서 당신 길대로 가시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번 가만히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너무나 두렵고 무서운 말씀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야훼의 말씀은, 이제부터는 죄 짓는 사람들, 내가 명한 길에서 떠난 백성에 대해서는, ‘당신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오겠습니까? 아마도 세상 전체가 흔들릴 겁니다.

그런데 다행히 10절의 말씀은 그런 뜻만은 아닙니다. 우리말로 직역을 하면 ‘나를 말리지 마라.’라는 의미인데, 유대인의 히브리적 표현으로 본다면, 이런 표현에는 숨겨진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그 숨겨진 의미란 ‘나 대로 하게 하라’는 표현 가운데는 - ‘누군가 나를 말려 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겉으로 보면 ‘나를 말리지 말라.’고 하셨지만, 이런 표현에는 ‘모세야, 나 좀 말려주지 않겠니?’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룩한 야훼 하나님께서는 우리 썩어질 것을 뿌리치지 못하는 속된 성정을 가지고 계신 분이 아닙니다. 야훼 하나님께서도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안타까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야훼는 사랑이 충만하고, 자비한 분입니다. 그러므로 야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에 대해서 분노하실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돌이켜 죄많은 우리를 구원해달라고 모세처럼 간절하게 기도해야만 합니다.

사랑이 충만한 야훼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인생을 바라보고 진노하셨을지라도, 바로 그 순간에 지도자 모세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간절하게 죄인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중보자를 찾으신다는 점을 이 시간 분명하게 깨닫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일에 지도자 모세가 영적으로 미숙해서, 10절에 나오는 야훼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죄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중보기도하기를 포기하였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집트 땅에서 그래도 지도자 모세를 의지하고, 야훼의 백성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 모두가 광야에서 전멸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분별할 수 있었고, 그래서 낙심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함으로써, 이집트 땅에서 해방을 받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친구가 어릴 적에 TV 시청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해서 아버지께 꾸중을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보기에 공부는 안하고 TV만 보는 친구에게 어느 날은 야단치기를, ‘너 그렇게 TV가 좋으면, TV들고 나가라.’라고 하면서 야단을 쳤답니다. 그런데 제 친구는 아버지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여서, 진짜로 TV를 들고 방을 나갔답니다. 그러니 아버지에게 더 크게 혼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면, 성경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날마다 자라나고, 성령의 도우심 아래서 보다 더 성숙된 믿음을 소유한 신앙인으로 성장해야만 합니다.

철이 들지 않은 어린 아이는 부모의 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성장하면서 서서히 달라지는 것이 있는데, (1) 어머니를 이해하는 마음이 커집니다. (2)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하는 마음이 커집니다. 이처럼 자녀가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는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성숙한 자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남의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대접만 받던 딸자식이 시집을 가면, 무엇인가를 깨달았는지, 부모를 대접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딸아이가 그마큼 성숙했다는 증거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도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 성숙한 자녀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깨달아 아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지도자 모세는 야훼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지도자 모세는 진정한 중보자입니다. 본문 11절에서 모세는 기도하기를, ‘모세는 주 하나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주께서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주신 주의 백성에게 이와 같이 노하십니까?’라고 합니다. 11절에서 ‘모세는 주 하나님께 애원하였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구하다’, ‘애원하다’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하라’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간청하다’,‘애원하다’라는 뜻도 있지만 ‘아프게 하다’ ‘슬프게 하다’ ‘마음을 약하게 하다’는 의미를 가지고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도자 모세의 중보기도가 야훼 하나님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음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지도자 모세는 ‘나를 말리지 말라’고 하신 야훼 하나님의 심정을 잘 헤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여러분이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알 때, 그래서 주님의 뜻을 따라 기도할 때, 여러분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뒤흔들어 감동시키는, 능력의 기도가 된다는 점을 믿고,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세가 야훼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서, 기도한 것의 핵심은, 크게 2가지입니다. 
(1)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을 강하게 말합니다. 야훼께서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대하여 진노하셨을 때에, 지도자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네 백성’(7절)이라고 지칭합니다. 그러자 지도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주의 백성’(11~12절)임을 분명하게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살면서, 가장 위로를 받는 사항이 있다면, ‘내가 바로 주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것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사람이고, 결국 나사렛 에수 그리스도께서 구원할 존재라는 점을 확실하게 믿어야만, 썩어질 세상에서 담대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지금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하여,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이스라엘은 야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믿음과 고백입니다. 그러니까, 히브리 민족이 아무리 불신앙적이고, 노예근성이 깊게 뿌리박힌 민족이라고 할지라도,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 하나님의 것이고, 야훼의 소유라는 것을 굳게 믿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도자 모세는 본문 11-12절에서, 야훼 앞에서 담대하게 고백하면 간구하기를, ‘(출 32: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출 32: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라고 합니다.
야훼께서 지금 멸망당할 이스라엘을 돌보아야 하는 이유는, 당신께서 소유한 백성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도자 모세는 아주 강하게 지적하면서 주님의 자비를 간구했습니다.

다음으로 지도자 모세는 야훼께서 하신 언약에 호소를 합니다.  
야훼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고, 하신 약속은 절대로 파기하지 않는 분입니다. 그래서 야훼 하나님은 당신께서 하신 약속에 대해서는 언제나 신실하게 응답을 하십니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전혀 약속이 없이 행동을 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모두가 큰 두려움과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과의 관계를 맺으실 때에는 언제나 언약(약속의)관계라는 것을 설정하고, 당신께서 하신 약속을 따라서 역사를 하고, 인간에게 응답을 합니다.

어떤 아버지가 공부를 못하는 자녀에게 이렇게 약속을 했다고 합시다. ‘얘야, 네가 이번 시험에서 70점 이상만 맞으면, 아버지가 선물로 자전거를 사주겠다.’ 그러면 이런 약속에 대한 이익과 손해는 누가 봅니까? 경제적인 논리로 보면, 아버지는 어떤 이익도 보지 못합니다. 다만 일방적인 손해를 감당하면서, 자녀의 유익(실력)과 이익(자전거)을 이끌어 냅니다. 자녀에게 유익과 이익을 주기 위하여 아버지는 아들과의 관계에서 약속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전혀 이익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에수를 통하여 당신의 자녀를 위하여 언약의 관계를 맺으십니다. 이런 구원의 약속을 주신 이유는, 오직 당신의 자녀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녀를 복되게 하려고 주신 약속입니다. 
  
지도자 모세는 자신이 불신앙적인 히브리민족을 위하여, 야훼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아버지께서 주신 은혜의 약속과 사랑의 약속에 호소하는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은혜 받고, 보호받을 자격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단지 간구할 수 있는 길은, 아버지 되시는 야훼 하나님의 사랑의 약속에 근거한 호소밖에는 없음을 지도자 모세는 알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야훼께서 복주기러 약속한 민족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로부터 700여년 전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그들과 한 야훼의 약속을 상기하면서 기도합니다. 모세는 간구하기를, 야훼 하나님! 족장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셔서, 그들의 자손인 이스라엘을 떠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도자 모세의 기도는 여러분에게 좋은 기도의 모델이 됩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더욱 풍성해 지기 위해서는, 지혜롭게 지도자 모세의 기도의 원리를 사용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여러분이 그릿도 예수에게 호소할 수 있는 근거는, 오직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사람이고, 주님께 택함을 받은 사람이고, 성령의 능력 아래서 살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믿고 의지해서 부르짖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성경에 기록된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질 줄을 믿고, 의지하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존 브렌츠는 마틴 루터의 친구이자 용감한 종교 개혁자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브렌츠도 종교개혁에 반대하여 수많은 성직자들을 죽이고자 했던, 스페인 왕 찰스 5세의 미움을 받아서 체포당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스페인의 왕실 기병들이 그를 체포하기 위하여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구원의 음성이 들려오기를, "존! 빨리 빵 한 조각을 갖고, 아랫마을로 내려가거라. 거기서 문이 열려진 집을 발견하면, 그 집 지붕 밑으로 숨어라."라고 합니다. 존은 지시한 대로 마을로 내려가, 문이 열려진 집을 발견하고, 그 집 다락에 몸을 숨겼는데, 이후 수색이 계속되는 동안, 존은 그 다락방에서 약 14년 간을 숨어 지냈습니다. 존에게 빵 한 조각은 결코 14년 간의 양식이 될 수 없었지만, 존이 다락방에서 14년 이란 세월을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존 브렌츠가 다락에 숨어 지내는 동안, 날마다 암탉이 한 마리씩 다락방에 올라와서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달걀을 하나씩 낳는 것입니다. 이 일은 14년 간 한 번도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고, 그래서 브렌츠는 그곳에서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14년이 지난 어느 날부터 닭은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는데, 이것을 기이하게 여긴 브렌츠가 바깥 동정에 귀를 기울였더니, 병사들이 모두 다 떠나버렸다고 해서, 브렌츠는 아무 탈 없이 14년 만에 그 다락방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처럼 브렌츠의 기도는 14년 동안의 피난생활을 감당하게 했고, 모세의 기도는 하나님의 진노를 복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그래서 몽테뉴는 말하기를, ‘기도는 하늘의 축복을 받고, 노동은 땅에서 축복을 파낸다. 기도는 하늘에 차고 노동은 땅에 차니, 이 둘이 당신의 집에 행복을 실어다 준다.’라고 했고, 

필립 브룩스는 말하기를, ‘기도는 형식이 필요 없다. 깨어지고 부서진 마음의 소리나 한숨이나 속삭임이라도, 심령의 맑음과 회개함이 있다면 하늘의 길을 찾아낸다.’라고 했으며, 

톨스토이는 말하기를, ‘기도는 홀로 하는 것이 좋으며 또한 그래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 특히 흥분했을 때, 자신의 영혼과 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도 역시 좋은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어떤 형편의 기도도 좋습니다. 열심히 겸손하게 정직한 마음으로 기도하는데 정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지도자 모세의 기도,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알고, 주님의 뜻을 따라 간구한 기도입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모세의 합당한 기도에 응답하셔서, 이스라엘에게 화를 내리지 않으신 것처럼, 오늘 저와 여러분이 자기중심적 기도, 일방적 요청식 기도를 벗어나서, 아버지께서 원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에 합당한 기도를 하고자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이웃을 구원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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