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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죽어야 사는 그리스도의 법과 십자가의 가치 (갈 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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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사는 그리스도의 법과 십자가의 가치 (갈 2:20-21)

예전에 저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영혼에 감격과 은혜가 있었고 기도도 많이 했다. 특히 교회 안에서 깊은 헌신도 다 해봤다. 예수님을 믿어서 그런지 정말 기뻤었다. 그래서 전도를 해보겠다고 길거리에서 전도도 하고 소금과 물을 맞고 핍박을 당해도 행복했다. 형제들에게 복음을 말할 때 엄청난 핍박 속에서도 굉장히 행복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전도는 많이 했는데 열매가 없었다. 신앙생활이 안 되었다.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말하는데 제 삶은 쪼그라들고 안 되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하는데 제 삶에 전혀 응답이 없었다. 그래서 심지어 돈을 빌려 쓰려고 했고 자꾸 가면을 쓰고 예수를 잘 믿는척해서 거지근성으로 받아먹고 살면서 신앙생활을 했다.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해보려고 여러 신학자 밑에서 성경공부도 많이 했고 신유 집회하는 큰 어른들을 모시면서 노하우를 배워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뭔가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복음을 만난 후 성도들에게 ’저는 지금까지 사기쳤다‘고 고백했다. 

그 당시 저를 굉장히 사랑했던 사람들의 모임이 있었다. 제 점심밥이 식을까봐 이불에 똘똘 말아 따뜻하게 했다가 밥을 차려주기도 하고 제가 들꽃을 좋아한다며 새벽마다 들꽃을 꺾어서 목양실 꽃병에 꽂아두기도 했다. 그런데 제가 사기꾼이었다고 말하자, 그렇게 순순했던 사람들이 이상한 행동을 했다. 집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마귀의 일을 멸해야 한다고 소리치자 눈이 벌게지며 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하면서 함께 손잡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함께 했던 사람들이 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말이 너무 싫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를 버리고 떠났다. 그러면서 저는 이것이 안 되면 절대로 안 된다는 확신과 체험을 했다.

엡2:1~7에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적혀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살리셨다. 우리의 과거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상태였다.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그리스도 예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영혼에 담길 바란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가 그리스도로 인해 살았지만, 현재, 공중권세 잡은 자, 사탄이 우리를 사로잡아 불순종가운데 역사하는 영에게 이끌려 진노의 자녀가 되었다. 

여기에서 해방 받는 길은 그리스도밖에 없는 신앙생활을 보는 눈이 제게 열렸다. 그래서 미래는 고민하고 낙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래는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하늘에 앉았기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제 안에 임하였고 하나님이 저와 함께 사는 것이 신앙생활임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삶을 바꿔야 하나님의 성령은 역사하신다. 
  
* 죽어야 사는 그리스도의 법과 십자가의 가치  

→ 버리는 행복,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죽여야 마귀의 일이 멸해지고 승리한다

본문 21절,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율법을 지켜서 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죽음이 헛된 것이라고 했다. 

20절, 사도바울은 율법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몸부림을 쳤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영혼의 문제는 풀리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기 싫고 찬미하기 싫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는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져 신앙생활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알고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의 사람이 되길 포기했다고 고백했다. 

율법의 사람이 되길 포기해야 한다. 우리는 선과 악을 구분해선 안 된다. 창2장, 하나님이 안식일에 경고하셨다.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 선과 악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왜 율법의 사람이 되길 포기했는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원해서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바란다면 율법의 사람이 되길 포기해야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자기 인생의 방향을 알게 되었는데,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어떻게 누리고 기쁘게 하는지 그 방향을 알게 되었기에 그는 그리스도와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고 고백했다. 

하나님께 좋은 평가를 얻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동일시되면 강박관념이 사라진다. 우리는 하나님께 좋은 평가를 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강박관념이 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이 밤마다 산기도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주일에 아침은 기본으로 굶고, 아침 금식은 거의 평생하고 산에 가서 비닐을 뒤집어쓰고 기도했다. 이 세상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제 영혼에는 풀리지 않는 게 있었다. 이제 저의 삶은 그리스도께서 제 안에 살고 계시고, 제 삶은 저의 것이 아니라, 저를 사랑하고 저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간다.갈2:20. 

사람을 기쁘게 하는 종교로 돌아간다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격적으로 누리는 자유를 포기하게 된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종교생활로 되돌아가지 말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격적으로 누리는 참된 자유를 누리길 바란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인격적으로 누리는 자유가 있어야 하는가? 

창조주 하나님을 아빠로 끊임없이 불러줘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인 신분과 권세를 누려야 한다. “창3:15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로 내 영혼에 있는 질병의 저주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찌어다.” 이렇게 저는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버리는 행복을 시작해봤다.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우리의 영혼을 향해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부르고 어떤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잃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성전 삼으시고 성령의 권능으로 인해 땅 끝까지 되도록 하나님이 성령으로 보존하시기에 모든 문제가 끝났다. 그래서 일심, 전심,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약속만 붙잡고 말씀을 영혼에 채우고 누리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이뤄 가신다. 이것이 신앙생활이다. 

그래서 버리는 행복이 시작되어야 한다. “자아 중심으로 신앙 생활하게 만드는 잔머리는 그리스도로 이름으로 무너질찌어다! ”이런 문제 앞에서 인간적 방법으로 계산하고 자녀된 신분 권세를 망각하게 만들며 마귀를 기쁘게 만드는 저주의 영은 그리스도로 무너질찌어다!“ 버리는 행복이 시작되어야 한다. 
  

→ 참된 응답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축복으로 가슴에 채워라

참된 응답은 그리스도밖에 없다.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 안의 축복은 무엇인가?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주셨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재림주로 오신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역사하는데 지금 내 영혼을 향해 두드리고 계신다. “볼찌어다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인데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어주면 더불어 먹고 마실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 되시고, 과거 현재 미래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다 해결하시고 죄의 사망으로부터 우리를 완전히 십자가 보혈로 해방하셨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어색하게 부르지 않고 우리 영혼에 아빠로, 영원한 우리의 신랑으로 영접하길 바란다. 그러면 우리 영혼에서 하나님의 영이 춤을 추게 하시고 그 춤을 추는 영이 우리 삶에서 나타나게 하옵소서. 그러면 항상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뻐하고 기도하고 그 이름으로 응답을 기대하며 감사할 것입니다.”라고 자꾸 자신을 살리고 버리는 행복이 시작되면 말씀으로 채워지기 시작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 삼으시고 성령으로 함께 하시면서 성령으로 그리스도 이름만 밝혀주신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함께 하심에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 불신앙은 산산이 무너질찌어다!” 

하나님의 성령의 힘입어 네 속에 있는 더러운 것을 버리면 행복은 시작된다. 우리 영혼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 시작한다. 성도의 축복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붙잡으면 응답이 오기 시작한다.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이 알아듣고 따라오기 시작한다. 그전에는 자장면을 사줘도 삐지고 시험 드는데, 제게 있는 것을 그들에게 주었더니 그들이 변하지 않고 시험도 들지 않고 함께 세계복음화를 위해 함께 하게 되었다.
  

→ 지금 공중 권세를 잡고 우리를 공격하는 마귀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밟고 내어쫓아라

언약을 붙잡고 기도했더니 저의 불신자 상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제가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져 사망권세 잡은 사단에게 묶여있었고 하나님이 지금 계시고 함께 하심에도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거짓말 하는 존재가 제 영혼에 똬리를 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살고 있는 지금 공중권세 잡은 자가 세상 풍습을 쫓게 만들고 불순종 가운데 역사하는 영을 뿌리므로 자녀된 신분권세,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해서 불신앙가운데 진노의 자녀로 살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요8:44,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진단하셨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 비진리고, 욕심쟁이라고 진단하셨다. 

그래서 저는 제게 들어있는 놈을 고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밟는다. 결박해서 내어 쫓는다. 과거에는 제 의지로 귀신을 때려잡으려고 했다. 자아중심이다. 율법으로 경건의 생활로 살아보려고 했다. 그런데도 풀리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지를 제가 체험하게 되었다. 

우리의 과거는 분명 죄와 허물로 죽었고 그런 우리를 그리스도로 살리셨다. 그런데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이 삶에 나타나고 응답해 주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뭔가 내 인생이 꼬이고 안 풀리게 하는 것들이 우리를 묶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제 속에 빠지게 만들어서 꼬이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알고 보니 공중 권세를 잡은 마귀, 그는 현재 존재하고 있다. 

그 존재로 인해 우리 영혼에 뿌리를 깊이 내린 것이 있다. 원죄로, 근본문제로 인해 영적상태가 이상하다. 그래서 마귀를 잡아서 그리스도로 밟기 시작했더니 제 영혼이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버리는 행복을 시작해보자. 지난날 과거는 인생의 축복이고 미래의 발판이다. 저를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기를 꿰뚫어보고 다 맞춘다는 것이었다. 질병에 걸린 것까지. 불신자 상태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창3장으로 말미암아 찾아들어오는 모든 저주가 그리스도 예수로 풀어지길 바란다. 제가 과거의 신분을 모르고 신앙생활 했을 해보려고 해도 안 되었는데 과거 신분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어 쫓고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을 회복하자 그 때부터 하나님은 응답해주셨다.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돈이 없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과거의 신분은 돈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자녀 된 신분, 말씀이 들어오고 나서는 돈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참된 자녀, 십자가 보혈로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 부르셨다면 그리스도 이름을 통해서 나를 먹이시고 입히셨다.” 그 당시 돈 없다고 말은 하지 않고 이렇게 했다. “정장로님 중국갈테니 돈 좀 가져오시오” 

그런데 정장로님이 그런 소리를 듣고 제가 진짜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돈이 없음에도 돈을 가져오라는 것을 보니 이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하고 오히려 자신을 갱신하고 돈을 만들어 왔다. 

엄청난 환란, 큰 문제 속에서 갈릴리 초대교회 사람들은 어떻게 로마까지 정복했는가? 제가 사도행전을 깊이 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사람 이름과 지역의 이름,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이 사실적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예수가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났다는 절대적 복음으로 불신앙을 버리는 행복이 시작되면 나를 죽이고 내 안에 그리스도를 살리는 사람에게 세밀하게 하나님의 성령, 보좌의 성삼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발견했다. 눔바와 그 집과 교회. 루디아와 그 지역과 그 교회. 야손과 그 지역과 그 교회. 

그렇다면 요한계시록2:1~3장에 일곱 교회에 움직였던 보좌의 축복이 우리 예수사랑교회에서 꽃피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불신앙을 끊어야 한다. 오직 복음만 말하고 복음으로만 응답받고 복음으로만 부흥되고 복음으로만 하나님을 체험해야 한다.

그 때부터 하나님의 계획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청사진이. 우리의 이름이 발견되고 우리가 사는 지역이 발견되고, 집에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에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것은 너무 쉽다. 하나님의 청사진이 세계복음화임을 알게 된다. 창세전에 그리스도를 알리시려고 우리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까지 발견하게 되니까, 하나님이 나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시고 지금, 역사하시는구나. 그렇다면 뭐가 두렵고 뭐가 무서운가. 자기 개인의 인생에 마스터플랜이 나오는데, 얼마나 행복한가? 오늘 그런 믿음이 시작되길 바란다. 버리는 행복이 시작되면, 내 자아중심, 내 기준을 버리면 하나님의 역사를 본다. 그래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실을 보게 되면 버리는 행복은 시작된다.

사도바울이 가졌던 모든 것은 우리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다. 그 당시 최고의 학문의 소유자였고, 가말리엘 문하생, 로마 시민권자였다. 게다가 하나님을 아는 바리새인 중 바리새인, 철학자였다. 그런 그가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다. 왜 그런가?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가장 높고 높은 최고의 지식이고, 가장 고상한 것이고, 그리스도 이름에 모든 지식과 보화가 감춰져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 새로 찾는 행복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매일 함께 계신다. 새로 찾는 행복이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다. 성령께서 모든 것을 알게 하시고 가르쳐주신다. 예전에 성경을 볼 때 늘 비판하고, 시비하고, 따졌던 것이 제게서 사라지고 제 안에 새로운 행복이 성령의 역사로 발견되었다. 어떤 문제나 환란이 와도 하나님이 분명히 알고 계신다. 예전에는 머리를 쓰고 고민을 했기에 힘이 들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령이 계시기에 이 문제를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 그러니까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를 수밖에 없고 기도할 수밖에 없다.요14:14~16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이유는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함이다. 문제 속에서 성령인도를 안 받으면 더 엉뚱한 일이 일어난다. 행1:8, 이제 기도제목 하나만 잡게 되었다. “오직 성령 충만 주옵소서.” 성령 충만을 받으면 하나님의 힘을 받는다. 하나님의 힘을 받으면 세상을 이긴다. 

버리는 행복이 오면 새로운 행복이 온다. 우리안의 과거의 질병을 버리면 새로운 행복이 온다. 예수님은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신다. 영혼에 뿌리내린 옛 체질 마귀의 체질을 뽑아내라. 그러면 네 속에 들어가 먹고 마실 것이다. 강한 자를 결박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가면 대적의 문을 취하게 된다. 불신앙적인 많은 과거를 끝내버리는 날이 되길 바란다. 사람들은 거의 상처 타령한다. 상처 많다고 하지 말고 상처로 “나에게 파고 들어와서 무기력으로 끌고 가는 저주의 영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가라 해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나를 위해 죽으시고 몸을 찢으셨다. 더러운 영아, 나는 컴플렉스 없다. 괜찮다.” 완전 끊어버리고 우리 영혼에 새로운 행복,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길 바란다. 

빌3:1~20, 하나님이 제대로 쓰실 바울을 봐라. 그렇게 멋있는 학벌, 혈통과 최고의 사람이 되어도 나는 그리스도 예수, 그 생명을 내 영혼에 얻음으로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최고의 고상한 것을 얻었으며 매일매일 발견되어지길 원한다고 고백했다.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생명이 우리 영혼에 부어진 바 된다면, 새로운 행복 성령이 계신다면 문제 앞에 생각을 바꿔라. 하나님은 나를 알고 계신다. 

* 주는 행복, 전도와 선교의 문이 열리도록 그리스도의 유일성으로  결론 내리자

불신앙의 뿌리를 그대로 가지고 살면 하나님의 축복을 놓친다. 새로 찾는 행복이 시작되길 바란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그 이름을 얻고 질병에 너무나 시달렸다. 40일 금식기도를 하며 세 번을 주께 간구했지만 하나님은 치료해 주시지 않고 질병이 네게 족한 은혜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같으면 욕 나왔을 텐데... 작은 문제 하나만 와도 그냥 영혼 속에서 늘 욕이 따라다니는데, 사도바울은 아멘했다. 그리고 성하지도 못한 몸을 이끌고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증거 했다. 새로 찾는 행복이 시작되었다면 하나님이 질병을 고쳐주시지 않아도 오히려 질병이 은혜라고 하실지라도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다는 최고의 고백이 여러분의 것이 되길 바란다. 

엡1:3~5, 바울은 하나님이 창세전에 우리를 예정하사 선택하셨고 우리를 준비했기에 엡1:17~19, 세 가지 기도가 시작되었다. 마음의 눈을 여사 하나님의 큰 능력을 보게 하시고, 그리스도 이름 안에 있는 기업의 풍성함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큰 부분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 우리에게 있는 것을 주자. “저 아직 상처 많거든요, 콤플렉스가 많아요,” 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래서 교회가 싫거든요, 우리 목사님 마귀 말 많이 해서 싫어요” 이런 것 다 버려라. 오직 복음만 말해라. 주는 행복이 얼마나 대단한지. 베드로가 “내게 있는 것 네게 주노니...”라고 선포했다. 과거 베드로가 가진 것이 무엇이었는가? 상처, 배신이었다. 그런데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선포했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새로 찾은 행복이 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그 성령을 가지고 우리의 미래는 그리스도와 하늘에 앉아있는데 하늘에 앉은 사람이 맨날 헛소리만 하는가? 예수는 그리스도, 너와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으로 결론 내리길 바란다.

  
* 언약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스도 영광의 나라를 놓고 그리스도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은혜주심을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을 알았사오니 버리는 행복이 시작되게 하시고, 새로 찾는 행복이 능력으로 나타나게 하셔서, 주는 행복 그리스도를 통해 전도와 응답의 문이 열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서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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