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좁은 문과 넓은 문 사이에서! (마 7:13-14)

첨부 1


좁은 문과 넓은 문 사이에서! (마 7:13-14)

지난 주일에 ‘사명과 욕심 사이에서’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발람 선지자가 사명과 욕심 사이에서 방황합니다. 결국은 욕심을 선택합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은 ‘좁은 문과 넓은 문 사이에서’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겠습니다. 제목을 하나 더 붙이자면 ‘좁은 길과 넓은 길 사이에서’입니다. 둘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동시에 좁은 문과 넓은 문으로 들어 갈 수 없다고. 동시에 좁은 길과 넓은 길로 갈 수 없다고. 둘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과 넓은 문, 좁은 길과 넓은 길은 무엇일까요? 
예수님 믿는 사람은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제자의 삶을 살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1. 넓은 문- 넓은 길 

13절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첫 번째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큰 문입니다. 넓은 문입니다. 
넓은 문은 무슨 문일까요? 욕심의 문입니다. 내 욕심의 문입니다.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일까요? 욕심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문으로 들어온 겁니다. 

넓은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욕심의 문을 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도 제발 욕심이 좀 생겼으면 좋겠다 기도 안 해도 됩니다. 저절로 생깁니다. 
나도 제발 욕심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노력 안 해도 됩니다. 가만있어도 많아서 문제입니다. 
내 욕심의 넓은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닫히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넓은 문으로 들어가면 넓은 길이 나옵니다. 넓은 문으로 들어가면 넓은 길로 가게 됩니다. 
넓은 길로 가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길로 가는 것은 선택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욕심대로 사는 겁니다. 

넓은 길은 길을 찾으려고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넓은 길은 길을 찾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겁니다. 하기 싫으면 말면 됩니다. 
넓은 길을 가기는 쉽습니다. 부담이 없습니다. 자유로운 것 같습니다. 
당장은 좋아 보입니다. 당장은 만족을 줍니다. 당장은 행복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넒은 문으로 들어갑니다. 많은 사람이 넓은 길로 갑니다. 

그러나 넓은 문으로 들어가서 넓은 길로 가면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넓은 길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멸망’입니다. 욕심의 길의 끝은 멸망입니다. 욕심은 죄를 잉태합니다. 죄는 자라서 사망을 낳습니다(약1:15) 
이것이 아담 이후로 지금까지 인간의 역사입니다. 

발람이 사명을 버리고 욕심을 선택하여 넓은 문, 넓은 길로 갔습니다. 망합니다. 사망합니다. 자기만 망한 게 아닙니다. 함께 욕심의 길로 간 이스라엘 남자 24000명이 욕심의 넓은 길로 가다가 죽습니다. 욕심의 문으로 들어가면 자기도 망하고 남도 망하게 만듭니다. 

목회자가 교회에서 개인적인 욕심의 넓은 문으로, 욕심의 넓은 길로 가면 어떻게 될까요? 
자기에게 좋을까요? 교회가 좋을까요? 자기도 망하고 교회도 함께 망하는 길로 가게 됩니다. 한국교회가 이런 일로 얼마나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목회자 뿐이겠습니까? 

가정도 그렇지요. 한 사람이 욕심을 부려 넓은 문, 넓은 길로 가면 어떻게 될까요? 
자기는 좋을까요? 결국은 자기도 불행하고 온 가족이 불행합니다. 


2. 좁은 문- 좁은 길 

두 번째 문이 있습니다. 14절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좁은 문입니다. 좁은 문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요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예수님이 좁은 문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믿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좁은 문이신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니 믿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두드리라 그리하며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믿음의 문이 열리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구원의 문이 열리도록 두드려야 합니다. 전도의 문이 열리도록 두드려야 합니다. 문이 열릴 때까지 두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나대신 두드리고 두드려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 들어오게 된 사람들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면 좁은 길이 나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 온 사람은 좁은 길로 가야 합니다. 좁은 길로 가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을 따라 사는 길입니다. 주님의 종으로 사는 길입니다. 주님의 제자로 사는 길입니다. 제자의 사명을 감당하며 사는 길입니다. 주님의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 사는 길입니다. 

욕심 보따리는 내려놓아야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욕심 보따리를 짊어지고는 좁은 길을 갈 수 없습니다. 마16:24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좁은 길은 길이 좁고 협착합니다. 그래서 좁은 문으로 들어와서 좁은 길로 가려면 힘이 많이 듭니다. 고통스러울 때도 많습니다. 불편하고 부담스러울 때도 종종 있습니다. 때로는 외롭습니다. 때로는 고독합니다. 때로는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좁은 문, 좁은 길은 당장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당장은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찾는 사람이 적습니다. 소수의 사람이 좁은 길을 갑니다. 
좁은 길로 가다가 힘들어서 다시 넓은 문으로 되돌아가기도 합니다. 좁은 길로 가다가 포기하고 다시 넓은 길로 가기도 합니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좋은 설교 들으려고, 기적을 보려고, 병 고침을 받고 싶어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 받고 싶어서... 넓은 문, 넓은 길을 찾아 왔습니다. 
예수님이 좁은 문, 좁은 길을 말씀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12명만 제자의 길을 갑니다. 가룟 유다는 제자인데도 넓은 길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로 나온 많은 사람들이 좁은 문을 버리고 넓은 문으로 되돌아갑니다. 
좁은 길을 포기하고 넓은 길로 되돌아갑니다. 다시 넓은 문으로 되돌아가지 마십시다. 

좁은 문을 지나서 좁은 길로 끝까지 가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면 영생으로 인도합니다. 좁은 길로 끝까지 나가면 풍성한 삶으로 인도합니다.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면 자기도 살게 되고 남도 살리게 됩니다. 함께 살게 됩니다. 

좁은 문- 좁은 길로 끝까지 가는 셀리더를 보면 자기도 삽니다. 남도 살립니다. 


3. 좁은 문과 넓은 문 사이에서 좁은 문을 선택하라. 

좁은 문과 넓은 문으로 함께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둘 중 양자택일을 해야 합니다. 
좁은 길과 넓은 길로 함께 갈 수는 없습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좁은 문을 선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3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사람들은 두 문 중에서 어느 문을 선택합니까? 두 길 중에서 어느 길을 선택합니까? 
한국교회는 넓은 문과 좁은 문 사이에서 어느 문을 선택하여 들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까? 
넓은 길과 좁은 길 사이에서 어느 길을 선택하여 가고 있는 것 같습니까? 

우리 교회는 좁은 문과 넓은 문 사이에서 어느 문을 선택하여 들어가고 있을까요? 
우리 교회는 넓은 길과 좁은 길 사이에서 어느 길을 선택하여 가는 교회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좁은 문-좁은 길’과 ‘넓은 문-넓은 길’ 사이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머뭇거리는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합니다. 

왕상18:21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그만 머뭇거리십시다.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할 때입니다. 


맺는 말 

*한국목회자 협의회에서 설문조사한 내용입니다. 한주일 동안 성경을 전혀 읽지 않은 교인이 40%. 하루에 한 번도 기도하지 않는 교인이30%. 신앙생활하는 목적이 구원과 영생보다 건강 재물 성공등 축복을 받기 위해서라고 대답한 교인이 2004년 보다 세배 증가. 

10명 중 1명은 가나안 성도. 거꾸로 읽으면 안나가 성도. 가나안을 찾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교회 저 교회를 찾아다니는 성도. 관심있는 목회자의 설교를 듣기 위해 교회를 찾아다니거나 인터넷, 스마트 폰으로 설교를 듣는 나홀로 예배자. 이유는 매이는 게 싫어서.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서. 

넓은 문, 넓은 길로 가는 한국교회의 모습 같습니다.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떨까요? 
여러분의 모습은 어떤 것 같습니까? 

신30:19절 말씀입니다.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찬송 586장 1절입니다.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건가 주가 주신 새 목표가 우리 앞에 보이니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리라.> 

우리는 날마다 좁은 문과 넓은 문 사이에 서서 살아갑니다. 
좁은 문을 지나 좁은 길을 선택하여 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