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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른 교훈과 합당한 삶 (딛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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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교훈과 합당한 삶 (딛 2:1-15)  

디도서 1장은 교회에서 다른 교훈을 전하는 거짓 교사를 막아내고 성도들을 지켜 믿음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 메시지였다면 디도서 2장은 디도가 올바른 교사가 되어 올바르게 바른 교훈을 가르쳐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딛2:1을 보라.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여...”라고 하였다. 바른 교훈이란 무엇인가? ‘바른’이란 말은 휘기아이누세스(uJgiainouv sh)로서 ‘건강하다’는 의미의 동사 휘기아이노의 현재 분사다. 여기서 파생된 형용사인 휘기에스는 ‘건강한’ 또는 ‘알맞은’이란 뜻으로 속이는 자들의 병든 가르침과 대조되는 말이다. 

디도는 목회 현장에서 확립된 교훈의 체계로 건강한 복음을 붙잡고 있었다. 다만 그 바른 교훈에 따르는 합당한 삶을 말해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목회를 하며 올바른 가르침을 하는 것이다. 딛2:2이하의 말씀은 올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는 내용으로 6가지 유형의 사람들에게 전해지도록 되어 있다.
  

1. 늙은 남자의 합당한 삶 (딛2:2)

여기서 늙은 남자란 가장 나이 많은 남자들을 말한다. 교회의 회중 중에서 목회자가 가장 먼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들은 연장자들이다. 나이 든 노인들은 경험이 많고 인생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다. 허나 나이 든 남자들에게도 약점들이 있다. 공자는 40이면 불혹(不惑)의 나이요, 50이면 지천명(地天命)의 나이요 60이면 이순(耳順)이요, 70이면 불유구(不蹂矩)라 하였다. 여기서 불유구란 마음에 원하는 바대로 하여도 어긋남이 없다는 말이니 얼마나 성숙한 것인가? 

그러나 성경은 늙은 남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말해준다. 성경은 사람이 나이가 70이 되어도 지천명의 나이가 못되고 역천명의 나이가 되기에 죄 있는 인생은 나이가 곧 성숙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를 먹으므로 행동이 굼뜨고 생각을 잊어버리고 자신감이 없고 소심함으로 일하고 고립과 서투름으로 넘어진다. 그래서 늙은 남자들은 위엄과 성숙을 잃지 말아야 함을 권면한다. 

딛2:2上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하며...” 이 세 가지는 노인의 위엄을 갖추게 한다. 신중하지 못하고 무절제하며 산다면 늙은 남자의 위엄을 훼손하게 되고 경건하지 못하면 신앙을 가르칠 수 없다. 오늘의 시대에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을 우습게 보고 인사도 안한다고 탓하지 말고 늙은 남자들이 더 경건해야 한다. 

그리고 딛2:2下을 보니까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하게 하고” 하였다. 신앙인으로 사는 이들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있다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 사람에 대한 사랑, 그리고 내일을 소망하는데서 오는 인내이다. 늙은 남자들은 위엄도 세워가야 하지만 온전하게 되는 성숙에 이르러야 한다. 나이가 많아서 할 것이 없다고 말하면 안된다. 늙은 남자의 성숙의 수준은 믿음의 온전, 사랑의 온전, 인내의 온전이다. 온전을 위해 하루 하루를 살아야 한다. 다른 갈망을 버리고 온전을 구해야 한다. 
  

2. 늙은 여자의 합당한 삶 (딛2:3)

여기서도 늙은 여자란 가장 나이 많은 여자들(Older Women)을 뜻한다. 딛2:3에 기록된 늙은 여자에 대한 권면은 행실의 거룩이다. 늙은 여자는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라고 했기에 행실이 거룩해야 한다. 

행실을 무너뜨리는 것은 무엇인가? 딛2:3中을 보면 “모함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며...”라고 했는데 모함하는 늙은 여자, 술에 인박혀 술을 떠나지 못하는 늙은 여자는 선한 것을 가르칠 수 없다. 늙은 여자는 젊은 여자들을 교훈해야 한다. 

딛2:4과 딛2:6을 보면 젊은 여자를 가르칠 책임자는 늙은 여자들이다. 그리고 젊은 남자를 가르칠 책임자는 목회를 하고 있는 디도 자신이다. 놀랍게도 젊은 여자의 교훈 책임자가 목회자가 아니고 늙은 여자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을 놓치면 안된다.

젊은 여자들을 훈육할 수 있는 것은 늙은 여자들이다. 늙은 남자나 젊은 남자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선한 것을 가르쳐야 하는 명령을 받은 늙은 여자들은 더욱 더 행실을 거룩하게 하여야 된다. 행실을 잘못되고 흙투성이인데 어떻게 선행을 가르치는가?

교회에서 권사님들이 중요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가정 원로인 권사, 연장자가 행실을 똑바로 함으로 가르칠 권위가 주어지는 것이다. 권사들이 교회에서 동네, 마을 구석 구석에서 험담이나 하고 다니면서 젊은 여자들을 훈육한다면 오히려 업신여김을 당할 것이다. 누가 존경하고 따를 것인가? 행실이 거룩해야 한다. 거룩을 가져다주는 것은 말씀과 기도다. 권사들이 말씀을 날마다 양식으로 먹고 기도를 날마다 호흡으로 삼으면 행실이 거룩해진다. 롬12:8의 기록대로 권사들은 권면하고 위로하는 자로서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가 될 수 있다.
  

3. 젊은 여자의 합당한 삶 (딛2:4~5)

딛2:4에서 보여주는 젊은 여자들, 그들은 나이는 어리지만 결혼한 이들이다. 그들은 교훈을 받아야 한다. 젊은 여자들은 가정에서의 살림, 법도, 예절을 배우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젊은 여자들이 잘 배워서 어떤 모습을 갖우어야 하는가? 딛2:4을 보면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라고 한다. 

사랑은 결혼의 기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희생과 섬김의 사랑이다. 젊은 여자들은 희생과 섬김을 외면하고 이기적으로 결혼 생활을 해서는 안된다. 오늘날 이기적인 여성을 똑똑하고 현대적인 여성이라고 말한다. 허나 성경은 남편과 자녀를 위해 손해보고 희생하라고 한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 사랑 위에서 집안 일을 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젊은 여자는 집안 일의 경영자다. 최고의 경영은 남편에게 복종하는 태도다. 복종은 결코 여자의 열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복종을 받는 남편은 여자보다 우월한 것이 아니다. 창조의 질서를 따라서 복종하는 것이고 남자는 책임과 희생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젊은 여자들은 집안 일을 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가? 

딛2;5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젊은 여자는 말씀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리에 있다. 그것은 가정에 대한 남편과 자녀에 대한 사랑과 복종이 있을 때 이루어진다. 가정 일에 대한 신중함이나 순전함이 없을 때, 집안 일에 대한 사랑과 복종이 없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훼방을 받는다. 젊은 여자들의 사랑없음 때문에 교회와 전도,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가 축소되고 만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나이 어린 여선교회가 희생, 섬김을 할 수 있도록 나이 많은 여자들이 가르쳐야 한다.
  

4. 목회자 디도의 합당한 삶 (딛2:6~7)

젊은 남자들을 가르치는 책임은 디도에게 있다. 딛2:6~7을 보면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되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라고 하였다. 목회자가 젊은 남자들을 가르치는 것은 보여주기로 가르친다. 삶의 모범은 예(example)가 되도록 하며 그 예(example)를 보는 것을 통해서 젊은 남자들은 배우고 따르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을 잘 살펴야 한다. 본이 되어야 한다. 
  

5. 젊은 남자들의 합당한 삶 (딛2:8)

젊은 남자들은 청년을 뜻한다. 청년들은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8절), 교훈을 부패케 하지 않는 바른 말을 하게 해야 한다.(7절) 바른 말을 하게 하려면 디도가 바른 교훈에 서야 하고 그 바른 교훈에 합당한 말을 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하늘의 영적 은혜를 가르치려는 목회자들은 복음의 바른 말을 하여 젊은 남자들이 다 바른 교훈, 바른 말을 내놓아야 한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진리에 서서 복음에 똑바로 서서 말을 한다면 대적하는 자가 함구무언(緘口無言)이 된다. 다른 교사, 다른 교훈으로 가정을 흔들고 교회를 흔들려던 대적자들이 부끄러워 아무 말도 못하게 된다. 복음의 바른 교훈으로 서는 것은 중요한 자기 무장이다.
  

6. 종들의 합당한 삶 (딛2:9~10)

딛2:9~10은 종들이 자기 상전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범사에 순종하는 것이다. 순종은 주인을 기쁘게 한다. 종이 하지 말 것은 주인을 거슬러 말하지 않는 것이요, 주인의 것을 훔치지 않는 것이다. 종은 시간도 훔치지 말고 물질도 훔치지 말고 정직해야 한다. 자신의 성품으로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어 충성스러운 삶을 드러내야 한다. 종이 자신의 품성으로 성실함과 충성됨으로 섬겨야 할 이유는 딛2:10에 기록된대로 단 한 가지 때문이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복음은 보석과도 같다. 복음이란 보석이 빛이 나게 하려면 종이 자신의 자리에서 신실해야 한다. 보석을 찬란하게 만드는 광택의 길은 결국 주어진 삶의 신실함에 달려 있다. 내가 연장자들이든, 젊은 사람이든, 남자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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