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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요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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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요 1:14)


대학시절 물리학 수업시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존 그리빈이라는 물리학자가 물에는 ‘괴상한 성질’이 있다고 했답니다. 모든 액체는 온도가 낮아지면 부피가 줄어드는데, 물만은 줄어들다가 어느 순간 얼음으로 바뀌면서 오히려 부피가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의 물보다 가벼워진다는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장로님이셨는데, 이것을 신앙적으로 풀이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담긴‘신비’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만일 물도 다른 모든 액체처럼 온도가 낮아져서 부피가 줄어들면, 큰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물이 얼면 얼음이 물속으로 가라앉으면 물이 저 바닥부터 얼게 되고, 결국은 물 전체가 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물속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다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물속의 생명체를 살리시기 위해서 유독 물에만 이런 ‘괴상한 성질’을 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음이 가벼워져 물 위에 뜨게 되고 아무리 추어도 강이나 호수나 바다 속은 얼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서 물속의 생명체들을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연 현상 속에는 현대 과학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신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이 신비 속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감춰져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가 자연현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신비들과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신비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신비 중의 신비가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성육신의 신비”입니다. 그리고 이 성육신의 신비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비해 놓으신 아주 특별한 섭리인 것입니다.

성육신

그러면 성육신이란 무엇일까요? 본문 14절 말씀을 신학적으로 설명한 개념입니다. 즉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는 말씀을 신학적으로 표현해 놓은 개념입니다.
여기서 ‘말씀’이란 간단히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성자 하나님’을 말합니다. 아직 성탄하시기 전 성부 하나님과 태초부터 함께 계셨고, 함께 일하셨던 바로 그 성자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리고 ‘육신’이란 간단히 말하면, ‘인간’을 말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육신(SarX)이란 단순히 ‘육체’(Soma)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몸과 마음과 영혼까지 다 포함한 전인격체를 말합니다.(갈 4:13)
그러니까 성육신이란 성자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성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신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요? 하나님일까요, 아니면 인간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반신반인일까요? 

초대교회 시절 이 문제에 답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잘못된 답을 찾은 사람들이 큰 세를 이루었습니다. 저들이 기독교 최초의 이단이 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두 이단을 들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하는 이단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고 결코 인간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만을 강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속된 인성을 가질 수 없는 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을 소위 ‘가현설’(Docetism)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이것은 잘못된 이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당신을 사람이라 부르셨습니다.(요 8:40) 그리고 요한은 이들에 대해서 이렇게 강하게 반박했습니다.(요일 4:2-3)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영이니라”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이단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남다른 탁월한 인간일 뿐이지 결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지 결코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셨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주장하는 것을 소위 ‘양자론’(Adoptionism)이라 부릅니다.
물론 이것도 잘못된 이단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 1:1에서 이점을 단호하게 확인해 줍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사도 요한은 이렇게 잘못된 이단들을 경계하면서 올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줍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면서 또한 참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요한 깔뱅은 [기독교강요]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말씀은 말씀이 육신으로 변했다거나, 말씀이 육신과 혼합되어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말씀이 그 계실 성전으로서 처녀의 태중을 택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사람의 아들되셨다는 뜻이다.

여기는 본질의 혼합이 있는 것이 아니고, 위격의 통일이 있다. 하나님의 아들의 신성은 그의 인성과 결합 통일되어, 두 본성은 각각 그 특이성에 손상을 받지 않은 채 결합하여 한 그리스도를 이루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쉽게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이 함께 어우러져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이것은 신비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참 하나님이시면서 참 인간인 존재가 있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성육신이 가능할까요? 이것이야 말로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딤전 3:16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감탄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이 놀라운 신비를 ‘경건의 비밀 ’이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신비는 오직 경건한 사람들만 믿음으로 깨달을 수 있는 비밀입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실 때만 ‘아멘!’할 수 비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놀라운 신비를 믿으시고, 바울처럼 그 놀라운 비밀을 찬양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육신의 은혜

그러면 도대체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성육신의 신비를 행하신 것일까요? 이 성육신의 신비는 우리에게 어떤 은혜일까요?

임마누엘의 은혜

오늘 본문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성육신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육신의 신비를 행하신 일차적인 목적은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우리 인생들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마 1:23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성자 하나님께서 아기로 태어나실 때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을 아기 예수로 탄생케 하시면서 그 이름 속에 그렇게 하신 목적을 담아두신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과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하셨을까요? 이것은 왜 우리에게 은혜가 되는 것일까요?
창 3:8 이하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뒤에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숨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에게 두려움이 밀려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인간이 실존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겪는 1차적인 어려움은 바로 두려움입니다. 철학적으로 말해 보면 ‘불안’(Anxiety)입니다.

최근 북한에서 김정은에 대한 경호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정은 별장 주변에 100대의 장갑차가 배치되어있고, 행사장 주변에는 자동소총과 수류탄으로 중무장한 군인들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의 이동경로는 북한에서도 최고 기밀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며칠 전부터는 군 장성들이 김정은을 근접경호하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경호를 강화하게 된 것은 암살과 군사 구테타 발생을 두려워하는 김정은의 지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김정은이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정치적 기반 없이 다만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젊은 나이에 수령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언제 누가 어떤 이유로 등을 돌릴지 모릅니다. 그래서 김정은은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합니다. 공개적으로 이곳저곳을 다닐 수 없습니다. 
김정은뿐이겠습니까? 우리 모든 인간들의 마음 저 깊은 곳에는 불안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떠난 인간들의 삶의 본 모습입니다. 그야말로 이것이 인간의 ‘불편한 진실’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의 본 모습을 잘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저 불안과 두려움에서 건져주시기 위해 성육신의 신비를 행하신 것입니다.

몇 해 전  칠레에서 광부 매몰사건이 있었습니다. 700미터나 되는 깊은 땅 속에 33명이 매몰되어있었습니다. 다행히 69일 만에 전원이 무사히 구출되었습니다.

저들이 팀장에 의해 질서를 지키며 생활했고, 그 속에서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정말 기적적으로 그 깊은 곳으로 구멍이 뚫려 음식이 들어가고 한 사람씩 캪슐을 타고 구출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구출된 마리오 세불베다라는 사람이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저는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고립되어 지내면서 다시 밖으로 나갈 것에 대해서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밀려오는 순간에도 성육신의 신비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하심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모든 불안과 두려움을 다 떨쳐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주님의 약속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모든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버리시기 바랍니다.

죄사함의 은혜

마 1:2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성자 하나님께서 아기 예수로 이 땅에 태어나실 때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또한 ‘예수’라 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을 아기 예수로 탄생케 하시면서 그 이름 속에 그렇게 하신 또 다른 목적을 담아두신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의 죄를 사해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1차적인 문제인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고 나면, 인간 내면의 더 깊은 곳에 더 심각한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죄 문제입니다.
사실 여러 종교에 인간의 삶의 문제를 극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려놓고 비우고 욕망을 극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들이 그 다음 단계로 집중하는 것이 바로 죄의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죄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집중하는 방법이 바로 ‘고행’입니다. 대표적으로 인도의 힌두교 수도사들의 고행방법을 들 수 있습니다. 저들은 육체에 학대를 가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네스북에 오른 많은 기록들을 양산해 냅니다. 

예를 들어 한 자리에 제일 오래 버티고 서 있는 기록이 17년인데, 인도 수도사가 세운 기록입니다. 온 몸으로 기어서 가정 멀리 간 기록이 1400킬로인데, 이 또한 인도 수도가사 세운 기록입니다. 가장 오랫동안 손뼉을 친 기록이 58시간 9초이고, 한 다리로 오래 버틴 기록이 34시간인데, 역시 인도 수도사가 세운 기록입니다.
저들이 그렇다고 죄 문제를 해결했을까요? 저는 가끔 TV로 이분들의 표정을 보면 그 얼굴에 짙은 어둠이 있는 것을 봅니다. 결코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얼굴들입니다.

또한 불교 역시 죄 문제 해결을 위해 고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이미 고인이 된 성철스님은 8년간 ‘장좌불와’즉 드러눞지 않고 앉아서만 잠을 자는 고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10년간 ‘용맹정진’즉 암자 주위에 철조망을 쳐 놓고 그 안에서만 생활하는 최고의 고행을 수행했습니다.

성철스님이 이런 고행으로 죄 문제를 해결했을까요? 이분이 죽을 때 열반송에서 자기의 죄 값이 하늘에 미쳐 산 채로 불타는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하였답니다. 이것이 죄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한 말일까요?
그렇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인간의 죄 문제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훌륭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 해결 방법을 잘못 찾았습니다. 분명 사탄에게 속은 것입니다. 고행을 통해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속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입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가 되셔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우리가 이런 고행 없이 값이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 사함의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값없이 죄에서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육신의 신비를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면서 참 인간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육신의 신비를 통해 우리를 향한 그 크신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임마누엘의 은혜와 죄 사함의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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